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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반대한다 - 우리시대에 고하는 하워드 진의 반전 메시지
하워드 진 지음, 유강은 옮김 / 이후 / 2003년 2월
평점 :
미국이 바그다드를 점령함으로써 이라크 전쟁이 끝났다. 미국은 애초에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혐의로 이라크를 공격한다고 했으나 정규군끼리의 전쟁이 거의 막바지에 접어드는 지금,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는 커녕 '소량살상무기'(대량, 소량이라는 구분 자체를 하워드 진은 거부하겠지만)마저도 10년여에 걸친 경제봉쇄조치로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 뚜렷해지고 있다.
대신 그들은 서서히 말을 바꿔 가다가, 이제는 후세인 정권으로부터 이라크인들을 해방시켰다는 점을 애써 강조한다. 그리고는 미군의 점령을 환호하는 이라크인들의 이미지를 연일 그들의 비공식적 공보부(CNN과 Fox TV 등)를 통해서 튀는 CD처럼 반복하고 있다. '미국인들이 언제부터 그렇게 이라크인들의 억압과 인권에 관심을 가졌을까' 하는 미스테리를 남긴 채...
<전쟁을 반대한다>, 하워드 진의 이 책이 이라크전 이후에 출간되었다면 분명 그의 책은 하나의 작은 챕터를 더 포함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번 이라크전 역시 '현대적 민주주의의 발명자' 미국이 실상 가지고 있는, 여느 독재자들 못지 않은 - 오히려 능가하는 - 타자에 대한 잔인함과 자국 제일주의를 매우 비극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한 '좋은 나라'들은 후세인이나 히틀러로 상징되는 '악의 세력'을 응징하기 위해 선한 창과 방패를 사용했다고 선전하지만, 역사적인 진실에 따르면 무고한 수천, 수만, 수십만, 수백만을 그저 정치적 군사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아무 거리낌없이 학살해 왔을 뿐이며, 이것은 '악의 세력'이 자행한 범죄보다 결코 더 정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요 몇 주동안 이라크에 떨어져서 수많은 어린이를 해친 '눈 먼 스마트 폭탄(저자는 결코 '스마트 폭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은 과거 드레스덴, 도쿄, 르와양, 히로시마, 베트남, 리비아, 코소보 등지에서 오직 정치, 군사적 이익을 위해 수도 없이 몸서리쳐지는 지상지옥을 만들어 냈던 그 '대량살상무기'의 또 다른 종류일 뿐이다.
하워드 진은 이 모든 무덤덤할 정도의 20세기적 잔인함이 마키아벨리적 현실주의에서 연유한다고 진단한다. '결과적으로 무기를 든 예언자는 정복에 성공한 반면, 말뿐인 예언자는 실패했다.' 면서 도덕적인 판단보다 군주나 국가의 이익을 우위에 놓은 마키아벨리가 그 이후 모든 세대에서 위정자와 그 참모들로 하여금 대량 살상에 무감각하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 타자의 희생을 정당화하는 야만적인 정치세계를 이루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마키아벨리의 반대쪽 극단으로서, 히틀러와 같은 인물에 맞서는 '정당한 전쟁'마저도 진정한 윤리적 정당성은 없다는 주장을 밀고 나간다. 대신 그는 파시즘과 같은 비민주적 세력에 대항하는 방법으로 전쟁보다는 조금 더 오래 걸리겠지만,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방법, 즉, 게릴라전, 비타협, 사보타지, 지하운동 등, 원칙적으로 비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할 것을 권고한다.
하지만 이라크전에서도 보듯이 아직도 세상은 마키아벨리의 제자들이 권력을 쥐고 있는 듯하다. '시간 낭비하고 있군요. 그 어떤 것도 바꾸지 못할 겁니다. 그건 인간본성이니까요.' 라는 가상적인 마키아벨리의 대사와 '과연 그렇게 될지 한번 탐구해볼 만한 주장이다.' 라는 약간의 자신없음을 내포한 그의 대꾸는 이러한 비관적인 현실에 대한 극렬반전평화주의자의 절망 반, 희망 반이 섞인 복잡한 심경(물론, 희망에 무게가 실려있다)을 씁쓸히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