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여관
임철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0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새 나는 덫에 걸려 있었다. 대상도 모를 분노와 절망, 그것이 그 덫의 이름이었다. 그 캄캄한 분노와 슬픔의 강물속으로 무작정 자맥질해 들어가다 막막한 심연의 바닥에 문득 발이 닿았을 때, 비로소 어렴풋한 깨달음이 찾아왔다. 어차피 삶이란 다만 견디어내야 할 뿐이라는 것.

-역자후기중


역사가 개인들에게 남겨준 상처가 아니었던들, 한평생을 죄책감과 괴로움으로 살아가지는 않았을 주인공들. 저마다의 상처를 안고, 고통속에서 역사와 싸우며 지나간 세월들.

요즈음은 과거는 역사가 평가하게 놔두자는 말을 홀연히 흘리는 사람과 이미 역사를 망각의 숲에서 지워버린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백년여관의 주인공들의 기억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괴로움을 안고 살아남은 자들에 의해 또한 망자들은 기억될 것이다.

역사를 기억하며 사는게 최소한 그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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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코레아니쿠스 - 미학자 진중권의 한국인 낯설게 읽기
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진중권의 새로운 에세이다. 서구사회를 기준으로 한 한국인 비판이라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많은 부분 공감을 하며 읽을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의 해박한 지식과 읽다보면 곧 나의 이야기인듯 느껴지는 글솜씨에 감탄을 하며 읽었다. 대중적으로 쓰여진 글이라 쉽게 읽혀지는 장점도 있다.
책은 3부-근대화, 전근대성, 미래주의로 이루어져 있다.
근대화에 관련된 글들은 기존 진중권씨의 입장을 다시 한번 쉽게 말로써 풀어줌으로써 한국의 근대화 과정을 설명해주고 있어서, 이해하기가 편하다.
전근대성과 관련된 글들은 아마도 읽으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찔리면서도, 왠지 기분이 씁쓸해지는 느낌을 가졌을 것 같다.
남 앞에서는 보여주기 싫은 모습 또는 개인적인 습성 등을 적나라하게 지적받는 느낌이다.
다만, 서구인과 동양인을 대립적으로 서술하는 부분이 많아서 사실임을 인정하면서도, '그럼 우리가 이렇게 미개한 종족들인가? 그럼, 서구인들은 그렇게 뛰어난가?'라는 의문이 계속 들었었다.
미래주의와 관련된 글들은 한국의 IT와 인터넷 문화발전과 짝퉁문화의 발전이 1부와 마찬가지로 근대화 과정에 대한 설명과 연결이 되어 설득적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같은 사회현상을 보고, 아무런 판단과 생각없이 세상을 살았던게 아닐까라는 자기 반성이 들었고, 그의 글중 인상적인 글들을 적어놓으려고 한다.

- 진중권은 국민성과 정체성이라는 말보다 '하비투스'라는 개념으로 한국인의 습속을 관찰하여 드러 내려하였다.
- 우리의 습속을 비하할 생각도 없고, 자화자찬을 늘어놓고 싶지도 않다. 비하를 해버리기에는 한국의 역사가 너무나 아프고, 자찬을 하기에는 아직 이 사회에 문제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p14, 프롤로그)

[근대화] 프랑켄슈타인-낯선 근대인을 만나다.

- 서구의 근대화에는 자유주의와 개인주의가 동반됐다. 한국의 근대화 역시 1930년대 일본이나 독일에서나 볼 수 있는 '군대화'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이런 형태의 근대화에서는 신체의 훈육에서 국가와 시장이 하나가 된다. 가령 '싸우면서 건설하자'라는 향토예비군가의 구호.
(p32, 기계화) 

- 국가 주도로 경제성장을 하던 시대가 지났다고 신체의 훈육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가면서, 과거에 국가가 하던 버릇을 오늘날은 시장이 넘겨받은 듯하다. 사원들에게 극기훈련이나 산악 행군을 시키는 것은 우리 기업문화의 빼놓을 수 없는 특징.
한국의 기업들은 말로는 창의적인 인재를 원한다고 하나, 실제로는 여전히 개발독재 시대의 군사문화를 실천한다.
(p35, 기계화)

- 국가 주도의 경제가 민간 주도로 넘어가면서, 오늘날에는 국가를 대신하여 시장이 인간의 신체를 개조하는 역할을 넘겨받았다. 요즘 신문 지면에서 '맞춤형 인재'라는 말을 종종 본다. 이 말은 주로 대학에서 기업의 요구에 맞는 인간을 생산해주는 시스템을 가리킨다.
(p42, 회사인)

[전근대성] 죽은 양반의 사회-미완의 프로젝트

- 서구의 문명화는 부상한 부르주아 계급에 의해 근대적, 시민적 형태로 발전한 반면, 자본주의를 몰랐던 동양에서 문명화는 봉건적 신분제의 틀을 벗지 못했다. (중략)
  서구에서 문명화는 계몽주의와 보통교육을 통해 사회의 전 계층에게 확산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에티켓이라 부르는 것도 원래는 귀족문화의 요소였던 것이 오랜 시간에 걸쳐 하층까지 대중화한것이다. 하지만 동양에서는 근대적 보통교육이 지체되고, 교육을 특정 계층에만 한정해온 신분제 때문에 예법이 사회의 하층까지 전파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그 결과 일반 시민들은 ' 예법의 공동화', 이른바 '에티켓의 부재'라는 상태에 놓이게 된 것이다.   서구의 부르주아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궁정에서 귀족문화를 접하면서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흡수할 수 있었다. 부르주아가 교양을 갖추는 데에는 몇 세대가 걸리는 법이다. 하지만 고속 성장을 통해 급하게 부상한 '동양', 특히 한국의 부르주아들은 미처 교양과 예법을 갖출 시간이 없었다.
(P91, 전사들의 나라)

- 황우석 사태를 보자. 황 박사는 과학자임에도, 이 사회는 그의 연구에 의혹을 제기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또 논문이 조작된 것으로 드러났음에도 황 박사에 대한 대중의 믿음은 여전히 깨지지 않았다.
(p106, 데카르트와 황우석)

- 졸부 근성을 지닌 상류층은 정신적, 문화적 격조가 아니라 아무나 살 수 없는 값비싼 '명품'등으로 신분적 차이를 드러내려 하고, 대중은 경제적으로 무리를 해서라도 똑같은 명품을 구입하여 그 차이를 지우려 한다. 대한민국의 명품 문화는 취향의 표현이라기보다는 그 성격이 조선 후기 체면 문화를 상업화한 것에 가깝다. 한국식 자본주의의 천민서은 여기서 비롯된다.
(p118, 전 인민의 양반화)

[미래주의] 디지털, 사이보그 그리고 짝퉁 - 테크네와 메트릭으로 무장하라 

-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미래주의'란 20세기 초반에 유럽에서 일어난 예술운동. 전통에 대한 과격한 거부와 기술에 대한 맹목적 추종을 모토로 한 '미래주의'운동이 등장한 곳은 주로 러시아와 이탈리아처럼 근대화의 흐름에 뒤처졌던 나라들이었다. 한국인이 가진 그 '미래주의적' 면모 역시 그와 비슷한 맥락에서 형성된 것일 게다.
(p187, 미래주의)

- 구술문화가 강한 곳에서는 인터넷의 사용도 남다르다. 문자문화에서 인터넷 사용이 '정보적'이라면, 구술문화가 강한 곳에서의 인터넷 사용은 '친교적'이다. 문자문화의 인간들은 정보가 필요할 때에만 인터넷에 접속해 정보를 찾은 후에는 곧바로 나온다. 반면 구술문화가 강한 한국의 네티즌들은 찾을 정보가 없어도 인터넷에 접속하여, 여기저기 남의 블로그나 홈페이지로 마실을 다닌다. 문자문화에서 인터넷은 정보의 교류를 위한 망이나, 구술문화에서 인터넷은 관계 맺음의 망으로 기능한다.
(p193, 디지털 구술문화) 

- 디지털의 발전과 더불어 문자문화가 저물면서, 근대 이전과 근대 이후가 묘하게 합류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삼국지를 읽고 감동을 먹는 전근대적 감성이 곧바로 디지털이 열어주는 탈근대의 신화적 의식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컴퓨터 게임에는 '설화'라는 전근대적 요소와 'IT'라는 탈근대적 요소가 필요하다. 현재 이 두조건을 갖춘 나라는 한국뿐이다.
(p199, 디지털 삼국지)

- 근대화의 급속함은 과거와 현재 사이의 거리를 좁혀 한국인 몸속에 강한 전근대성을 남겼고, 뒤처졌던 과거에 대한 기억에서 오는 특유의 성급함은 현재와 미래 사이의 거리를 좁혀 한국을 그 어느 곳보다 미래주의적인 나라로 만들었다.
(p287, 에필로그)

- 한국의 근대화는 일면적이었다. 신체를 기계화하는 '군대화' 과정속에서 존재의 개성화, 정신의 합리화는 미완의 근대화 프로젝트다. 또 산업화 과정에 수반된 무차별한 시장주의는 문화적, 생태적, 인간적 가치들을 간단히 계량화해버렸다. 
  미디어의 급속한 대중화는, 황우석 사태에서 드러나듯이, 첨단 기술에 신화적 의식이 결합된 소프트 파시즘으로 이어졌다. 가상을 실재로 착각하는 이 영상 문맹에서 벗어나려면 영상문화에 문자문화의 성취인 합리성, 성찰성을 도입해야 한다.
(p290,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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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기획자들
기획이노베이터그룹 지음 / 토네이도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능력보다 성실함이 기획에서 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왔던 몇년간이었다.
시장조사부터 전략기회까지 꼼꼼하게 하다 보면 아이디어가 나왔고, 잘 정리해서 보고하면 인정을 받곤 했었는데, 이제는 성실함으로 승부를 걸기엔 경력의 압박이 문제다.
단지 성실함만으로는 이제는 힘들것 같다는 생각과, '기획자로서 자질이 있는가?' 라는 꾸준한 자기 반성과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이 책을 보기 시작했고, 문제제기로서는 성공한 듯 싶다.

기획이란 자신이 가진 정보와 정보 네트웍을 이용하여 전략적 분석을 하고, 그에 따른 전망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면 할 수록 어려워지는 것이 기획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만큼 늘어나는 경력차와 기대수준때문에 부담감이 갈 수록 커져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늘 똑같은 업무와 반복적인 기술 수준으로 직장생활을 이어가고자 하는게 아니라면 기획이라는 업무만큼 지적 호기심과 자기 발전을 보장해주는 직업도 없다. 

다만 이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부족했던 점을 정리해보고 보완하고자 노력할 계기로 삼고자 한다.
물론 이 책이 기획 업무의 상세한 프로세스와 전략적 사고를 하는 방법 등을 소개해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것을 원한다면 차라리 맥킨지류의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 책은 동기 부여의 책이고, 그것으로서는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아래는 나에게 부족했던 점을 정리해 본 것이다.

우선 첫번째는 업무와 관련된 내부적, 외부적 역학관계를 조정할 수 있는 능력(조직 관리 및 커뮤니케이션 능력)
두번째 IT분야 뿐 아니라 전체적인 시장 트렌드 분석 능력
세번째 회계 부문 지식
네번째 프리젠테이션 스킬
다섯번째 다양한 분야에서의 지식, 상식

이 외에도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우선은 다섯개를 기본으로 하여 발전시키고자 한다.

또한 아무나 한다고 얘기하는 기획 업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기획 업무에서 벗어나 나만이 가질 수 있는 경쟁력있는 뭔가를 찾으려고 한다.  
내가 하는 일 속에서 성취감을 찾으며, 무엇보다 열정을 가져서 나의 열정의 에너지로 하여금 주변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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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아 - 어느 시골의사 이야기 존 버거 & 장 모르 도서
존 버거 지음, 장 모르 사진, 김현우 옮김 / 눈빛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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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물이 깊었다. 그때는 신과 인간이 격하게 함께 흘러갔다. 이후에 얕아진 물은, 더 맑아지기는 했지만, 항상 출렁거려야 했고, 바로 그 얕음 때문에 알러지에 걸린것처럼 끝도 없이 시달려야만 했다. 강줄기가 휘는 지점을 볼 때마다 의사는 자신의 실패를 생각한다. -24쪽

소년 시절에 사샬은 콘래드의 책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바닷가의 영국 중산층 가정에서의 삶이 가지는 지루함과 자기만족감에 반해, 콘래드는 바다를 통해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제공해 주었다. 하지만 그렇게 주어진 시적인 것에는 남성적이지 않거나 쇠락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반대로 상상할 수 없는 것에 맞서는 남자들은 모두 강하고, 절제되고, 말이 없었으며,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콘래드가 끊임없이 경계했던 능력은 동시에 그가 호소했던 바로 그 능력, 상상력이었다. 바다는 이러한 모순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것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바다는 상상력에 호소했지만, 상상 할 수 없을 정도로 성난 바다에 맞서기 위해서는 , 그 도전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상상력을 버려야만 했다. 상상력은 고립과 두려움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58쪽

기본적인 욕구들이 해결되는 것에 감사할 줄 알기 위해서는 상당한 정도의 자의식이 필요하게 마련이니까-69쪽

몸이 아플때는 많은 관계들이 단절된다. 질병은 무언가를 분리시키는 것으로, 왜곡되고 분열된 자의식을 형성한다-75쪽

특별하다는 느낌을 악화시킨다는 점에 있어서는 대부분의 불행감도 질병과 비슷하다. 좌절감은 자신만의 차별성을 확대시키며 스스로 커져간다. 객관적으로만 보자면 이는 비논리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 사회에서는 좌절감이 만족감보다 훨씬 더 일상적인 감정이며, 흡족한 느낌보다는 불행하다는 느낌이 더 흔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객관적인 비교의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자기 자신을 확인시켜 주는 무엇을 외부세계에서 찾지 못한다는 것이다.
확인의 부재는 곧 무기력함으로 이어지는데, 이 무기력함이 바로 외로움의 핵심이다. -81쪽

불행한 환자가 의사를 찾아와서 자신의 병을 이야기할때는, 적어도 자신의 그 부분(병)이 무엇인지는 알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의사의 임무는 분명 환자를 한 인간으로서 알아주는 것이다. 누군가 자신을 알아준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면-이러한 알아줌에 환자 스스로도 알아보지 못하고 있던 자신의 성격의 면면까지 포함되는 것은 당연하다.-전혀 희망이 보이지 않던 불행감에도 변화가 생길 것이다 어쩌면 행복해질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될 지도 모른다.

불행한 사람으로 하여금 누군가가 자신을 알아준다고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의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불행한 사람은,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취급받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러한 아무것도 아닌 상태가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특별함을 아프게 확인시킨다. -82쪽

그는 자신의 상상력에 부합하면서도 억압되어 있지 않은 그런 경험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다. 새로운 경험에 대한 그러한 열정을 만족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서, 현대사회에서 서른 살 이상된 사람들의 상상력은 사장된다. -85쪽

하나의 자아를 다양한 자아들로 확장하고 싶은 욕구는 아마도 처음에는 과시욕에서 출발한 것일 수도 있다.

자기 자신의'과시'를 판단해 줄 사람 역시 자신뿐이다. 지금의 동기는 바로 앎이다. 거의 파우스트적인 의미에서의 앎-86쪽

일반적 문화라 함은 거기에 비춰 개인이 스스로를 알아볼 수 있는, 적어도 자신의 모습중에서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부분을 알아볼 수 있는 거울의 역할을 해야 한다. -107쪽

상식은 절대 스스로를 가르칠 수 없으며,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점이다. 결핍되어 있던 기본적인 교육이 회복되는 바로 그 순간, 모든 상식적 생각들은 의심스러운 것이 되고 상식의 기능 전체가 파괴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110쪽

상식은 본질적으로 정적이다. 그것은 이데올로기에 속해 있는데, 그 이데올로기는 사회적으로 수동적인 사람들, 그들의 처지를 지금의 상태로 만든 것이 무엇인지, 또 누구인지를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데올로기다 .

그리고 그들이 '상식이잖아요'라는 말로 무언가를 정당화하려 할 때, 그것은 주로 자신들의 아주 깊은 감정이나 본능을 부인하거나 혹은 거꾸로 드러내려 할 때 핑계로 하는 말인 경우가 많다. -111쪽

비통함을 느끼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생긴 모든 일들에서 비롯된 그 한순간에 발이 묶여 버린 사람들이다. 사건들의 불가역성이라는 견고함에 직면해서-미처 대비하지 못하고 있던 이들에겐 끔찍한 일일 것이고, 또한 완벽히 준비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그들의 경험은 같은 자리를 맴돌게 된다. 시간의 꼬리를 잡을 수도 없고, 자신의 꼬리만을 좇아, 그렇게 눈이 먼 채 인생의 어느 한순간 안에서만 맴돌 뿐이다. 그때 한순간은 얼마나 많은 것을 그 안에 포함하는가? -140쪽

앎에 대한 그의 열망은 자신의 시간을 채워 줄 건설적인 경험에 대한 열망이어서, 주관적으로 말하자면 그 시간은 비통함을 느끼는 사람들의 '시간'에 비견될 만한 것이 된다. -141쪽

고통의 원인이 개인을 대상으로 할 때, 개인이 그 고통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도덕적인 본보기와 실재적인 힘의 이용사이에는 넘어설 수 없는 견고한 경계가 세워져 있는데, 그 경계를 넘어선 곳에서 생존은 우연적인 것에 의해 결정될 뿐이다. -144쪽

예민한 척하지 말자. 예민할 수 있다는 특권이 바로 운 좋은 사람과 불행한 사람을 나누는 기준이다. -1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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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일까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공경희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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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단순연애소설이 아니다. 그렇다고 연애지침서도 아니다.
평범한 이야기지만, 보통은 다양한 지식과 철학적 사고를 이용하여 평범한 남녀의 심리를 너무나 공감되게 그려내고 있다.

사랑을 하는데 약자와 강자로 구분되어지는 관계를 인정할 수 있을까?
엘리스는 남자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높이고자 했으므로 약자의 역할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기 위해 많은 생각들을 양보한다.
사랑이라는 이유만으로 권력에 휘둘림을 당하고 자기존중감을 내팽겨친다면 결국 불행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많은 부분 공감하면서 읽었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 방황하고, 사랑에 아파하며, 어떤 사랑을 해야 할지 고민할 뿐 아니라 제일 중요하게도 자기 스스로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의문이 드는 사람에게 가볍고도 적절한 책인것 같다.

- 아래 따옴표들은 책 내용 중 인용한 것이다. -

앨리스는 자기의 존재를 높이는 방식으로 쇼핑과 책,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이용한다.

"자기 문제를 홀로 직시하지 않으려고 다른 사람의 문제를 끌어들이는 것보다 더 혐오스런 일이 있을까?"

" 그녀는 자기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확신하지 못했고, 자연히 외부에서 실마리를 찾으려 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이 제공하는 상에 자기 자신을 맞추려 했다."

책을 읽는것조차 자기편견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사실 나도 그러하지 않은가 싶다.

" 사람을 괴롭히는 글은 명료하게 술술 읽히는 글보다 왠지 그럴듯하고 더 심오하게 더 참되게 받아들여진다. 하이데거나 후설에게 빠진, 예민한 독자는 '이 글은 정말 심오하구나. 내가 이해를 못하는 걸 보면 나보다 똑똑하구나. 이해하기 어렵다면, 틀림없이 이해할 만한 가치가 더 클거야." 라고 생각한다- 책을 내던지며 말도 안되는 헛소리라고 말하지 않고.
학구적인 자기학대는 은유적인 편견을 반영한다. 진실은 얻기 어려운 보물이며, 쉽게 읽고 배울 수 있는 것은 경박하고 중요하지 않다는 편견이다.

인간관계에서도 이런 현상이 있다. 마음이 열려 있고, 명쾌하고, 예측 가능하고 시간을 잘 지키는 애인보다는 힘들게 하는 애인이 더 가치가 있는 것 같다. "

" 그 남자는 '나한테 화났어요?'라는 질문 - 잘못한게 없는, 착하고 상냥한 여자가 묻는-에 내포된 너그러움에 익숙하지 않앗다. 그 남자는 몹시 불퉁했고, 그걸 자책할 만큼 성숙하지는 않았지만 그게 상대에게 책망을 받을 일이라는 것은 인식했다. "

"반면 앨리스는 그 남자가 변덕을 부려도 비위를 맞추려는 자기패배적인 성향때문에 스스로 고통을 받았다. "

"관계란 스스로 균형을 잡고자 하는 원초적이고 잔혹한 욕망이라고 말할 수 있다."

" 타인들이 우리를 이해하는 폭이 우리 세계의 폭이 된다. 우리는 상대가 인식하는 범위 안에서 존재할 수 밖에 없다. "

" 관계의 기반은 상대방의 특성이 아니라, 그런 특성이 우리의 자아상에 미치는 영향에 있다.

"고통은 성숙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함께할 수 있는 단계에서 만난 두 사람은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같은 방향을 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한동안 합치되었던 것은, 넓고 갈림길이 많은 길에서 일어난 우연의 일치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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