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에서 장하준 교수는 누구나 알 수 있고 읽을 수 있는 개념과 글을 썼다. 그러나 의지가 없으면 아무도 할 수 없는 대안들을 숙제로 남겨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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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2008년 세계 경제 위기 이후 각 나라마다 금융을 중심으로 한 구제 경제 정책으로 파탄에 빠진 국가 경제를 회복하려 했다. 그 과정 중에 많은 세계 지식인들은 세계 경제 위기의 원인과 대책에 대해 고심했고, ‘인간의 탐욕’ 이라는 원초적인 부분부터 실제적인 ‘복잡한 금융 상품들의 부문별한 투자와 이해부족’, ‘중앙 정부의 경제 규제 약화’ 까지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했다.

  2011년 현재, 각 나라들은 중앙 정부 막대한 예산으로 인하여 국가 경제를 어느 정도 회복했고, 세계 경제 역시 회복세에 접어들었다. 우리나라도 코스피 지수가 세계 금융 위기 이후 단기간 내에 다시 2000선을 넘어섰으니 빠른 회복세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중산층 이하의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그다지 좋아지지 않았다. 지속적으로 물가는 올랐고 실업자는 늘어만 갔다. 기업은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의 비율을 늘렸고, 중앙 정부는 여전히 자유 무역을 중시하면서 신자유주의식 경제 운용을 계속 하고 있다. 결국 이전에 비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데, 경제는 회복되고 있다는 진단을 정부와 언론, 지식인들은 말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큰 도움이 되었다. 한국인으로서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강의하고 있는 장하준 교수는, 그의 저서들을 통해 항상 국가 차원의 차등적 보호주의 무역과 정부 주도의 경제 규제 정책 및 적극적인 시민 사회 운동을 지지했다. 물론 이 책에서도 그가 이전의 저서들에서 말했던 주장과 의견들을 되풀이 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지만, 어느 때보다 그의 주장과 의견들은 인상적으로 들릴 것이라 생각했다. 친절하게도 책 앞부분에 23가지 주장들 중 연관되는 것들을 관련지어 분류함으로써 독자가 흥미있는 분야를 선택하여 읽을 수 있게 돕고 있다.


  자유 시장처럼 보이는 시장이 있다면 이는 단지 그 시장을 지탱하고 있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는 여러 규제를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 뿐이다. <22p>

  23가지 중 첫 번째로 장하준 교수는 “자유 시장이라는 것은 없다”고 주장한다. 자유무역을 지향하는 세계 경제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로서 그의 주장은 다소 모순적이고 이질적이지만, 그가 제시하는 여러 가지 예를 살펴보면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다.

  구체적으로 자유무역은 상대적 국가상황 속에서 공정을 말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미국TV와 중국TV는 질과 양에서 차이가 나지만, 중산층 이하의 사람들은 값이 싼 중국TV를 선호한다. 그러면 상대적으로 높은 질이지만 가격이 비싼 미국TV의 수요는 줄어들 것이고, 다소 낮은 질이지만 가격이 싼 중국TV의 수요는 늘어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미국은 자국의 기업과 수출 활동을 보호하고 타국의 기업과 수출 활동을 제재하기 위해 자국 위주의 불공평한 보호 무역 정책을 만들 것이고, 그 정책으로 인하여 중국을 비롯한 미국과의 무역 관계에 있는 국가들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다른 나라들도 앞 다투어 보호 무역 정책을 지향한다면, 무역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자유 시장은 ‘자유’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결코 자유롭지 않다.

  한 개인이 받는 임금은 그의 가치를 완전히 반영하지 못한다. 부자 나라든 가난한 나라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받는 임금은 이민 제한 정책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정해진 것이다. 이민 노동자들로 쉽게 대체할 수 없는 부자 나라의 일부 시민들, 따라서 자신의 가치만큼 임금을 받는다고 할 수 있는(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사람들마저 그들이 일하는 사회 경제적 시스템 덕에 그만큼의 생산성을 올릴 수 있는 것이지 단순히 개인의 뛰어난 능력이나 근면성만으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56p>

  각 나라의 사회와 경제상황에 따라 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의 임금격차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조건은 고부가가치 산업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다. 마치 같은 부자라고 해도 가난한 나라의 부자와 부유한 나라의 부자에 차이가 있는 것처럼, 근본적으로 세계 여러 나라의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과 노동에 비해 공정한 대우와 임금을 받고 있지 못하다.

  장하준 교수는 이 문제의 첫째 원인으로 각 나라들의 이민정책금지 및 제한에 문제를 두고 있다. 간단하게, 같은 업종의 북한 노동자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일한다면 더 많은 임금과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지만, 미국의 이민정책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선진국은 행여나 이민자를 받더라도 고부가가치 산업의 우수한 노동자들을 받으려 할 것이고, 그 외 산업들은 대부분의 자국인들, 특히 사양산업(斜陽産業)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맡을 것이다.

  둘째 원인은 각 나라의 부자들이 보여주는 비생산성이다. 즉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사회 내에서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의 부자들은 혁신적인 투자나 경제 활동보다는 현 상태 유지나 조심스런 투자와 경제 활동을 한다. 이래서는 자국 경제 활동이 원활하게 될 수 없다. 부자들이 돈을 쓰지 않는다면 중산층 이하의 사람들 역시 돈을 쓰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의 부자들의 기대수준과 목표의 방향이 자신의 나라를 벗어나 선진국을 바라보지 않는 이상, 그들의 불평은 항상 자신들의 부의 유지와 이익을 위해 자국의 사회와 경제 상황에 불평만 쏟아낼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분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왜냐하면 지금이나 앞으로나 모든 나라의 경제조건이 같을 수 없고, 제한적인 정책이 동반되겠지만 이민정책이 활성화 되면 아무도 후진국에서 살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이론적인 가설에서 해답을 찾기 어렵다. 또한 장하준 교수의 말처럼 시장에 맡겨 두기만 하면 모든 사람이 타당하고 공평한 임금을 받게 될 것은 아니지만, “타당하고 공평한 임금” 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역시 어려운 일이다. 결국 글로벌 경제정책은 일부 선진국에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가 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하고, 차등적인 경제정책을 통해 선진국이외의 나라들에게 다양한 혜택과 조건을 허락해야 한다. 글로벌 경제정책은 넓은 땅을 가진 세계 인구 2위의 인도를 후진국으로 만들었고, 조그마한 땅을 가진 대한민국을 G20 의장국으로 만들기도 했다.

  우리는 단지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인터넷의 영향력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고 있다. 우리만 그러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본래 가장 최신의 기술이자 가장 눈에 띄는 기술에 현혹되는 경향이 있다. 조지 오웰(George Orwell)은 이미 1944년에 ‘물리적 거리(distance)’가 파괴되고 국경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흥분하는 사람들을 비판한 바 있다. 당시 사람들로 하여금 그렇게 호들갑을 떨게 만든 기술은 다름 아닌 비행기와 라디오였다. <65-66p>

  장하준 교수는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IT산업이 과연 혁명적이냐?”에 대해 어느 정도 인정은 하지만 상대적인 관점에서는 혁명적이라고 할 수 없다고 본다. 이에 대한 예로 세탁기와 전보를 인터넷과 비교한다. 세탁기는 가사노동을 단축시킴으로써 여성의 사회참여를 실질적으로 높였고, 전보는 이전의 인쇄문화와 우편운송에 있어서 혁신적인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인터넷은 세탁기만큼 특정 계층의 노동을 이전보다 월등히 줄이지 못했고, 전보보다 빠른 E-Mail을 만들었지만, 전보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큼 혁신적이지 못하다. 그래서 장하준 교수는 현 시대가 효율과 속도 면에서 이전보다 좋아진 것은 사실이나, 지나치게 과대평가되어 IT산업의 무한신뢰에 대해 경계해야 할 것을 당부한다. 즉 옛것을 과소평가해서도 안 되고, 새것을 과대평가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한창 ‘스마트 폰의 전쟁’ 중인 우리 시대에 생각해봐야 할 논점이다. 사람들은 스마트 폰으로 개인 SNS나 Blog에 빠르게 글을 올리고 다양한 앱을 통해 음식점, 의류점, 대중교통 정보 등을 미리 살펴보며 예약하고 결재 할 수 있겠지만, 단지 빠르게 진행될 뿐 혁신적인 모습은 아니다. 급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이 말에 반대의견을 내겠지만, 개인 SNS나 Blog 개인적 유희이고, 예약은 전화로도 가능하며 인터넷 쇼핑몰에서 결재를 했다고 물건이 더 빨리 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의 소비를 부추기고,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데 방해를 줄 수도 있다. 결국 IT혁명은 속도전으로 치우쳐질 뿐, 이전의 산업혁명만큼 혁신적이지 못하다. 중앙 정부와 기업은 IT산업에 대한 냉정한 판단과 정책을 세워야 할 것이고, 사람들 스스로도 가지고 있는 스마트 폰만큼 ‘스마트’한 면을 보여야한다.

  “사회 공동체라는 것은 없다. 오직 남자, 여자라는 개인, 그리고 가족 단위만 존재할 뿐이다.” 라는 대처 여사의 주장과는 달리 인간은 사회라는 울타리 없이 고립된 이기적 존재로 살아 온 적이 없다. 우리 모두는 도덕적 규범이 형성되어 있는 사회 안에서 태어나 그 규범들을 내 것으로 만드는 사회화 과정을 거치면서 성장한다. <80p>

  경제학에 있어서 인간의 이기심은 기초적인 원리의 배경이 된다. 그래서 인간의 경제활동은 이익추구를 위한 행동이고, 정부의 경제정책은 이런 이익추구를 공정하게, 정당하게 조절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이기심만을 경제학의 원리라고 보기엔 어렵다. 장하준 교수의 말처럼 “경제학 교과서에서 묘사하는 이기심 가득한 사람들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아무 것도 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제한적이거나 고립된 곳에서 생활하지 않으며, 단 한 곳의 슈퍼나 상점에만 가지 않는다. 그래서 경쟁은 가격과 품질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에서도 이루어진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인간의 이기심으로 귀결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귀결을 짓는다면 정말 이렇게 되어버린다. 다시 말해서 모든 경제원리가 인간의 이기심이라는 최악의 행동으로 규정된다면, 결과 역시 최악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2008년 세계 경제 위기의 원인 중 하나는 ‘인간의 탐욕’이었다. 즉 최악의 전제가 최악의 결과를 낳은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이기심을 가진 존재를 인정하되, 인간이 가진 이기심외의 다른 본성, 이를테면 선한본성을 경제에 활용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 장하준 교수의 생각이다.

  자기들의 과거 행적에도 불구하고 부자 나라들은 개발도상국들에게 국경을 허물어서 경제를 본격적으로 국제 경쟁에 노출시키도록 요구한다. 이런 요구는 지적 우위를 이용한 이데올로기 공세뿐 아니라 국가 간 원조나 자신들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IMF,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에서 제공하는 원조에 조건을 다는 방법 등으로 부과되곤 한다. 자신들이 개발도상국이었을 때에는 쓰지도 않았던 정책을 그들에게 요구하는 선진국들의 행태는 다음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내가 했던 대로 하지 말고 내가 말하는 대로 하라.’ <105-106p>

  오늘날의 강대국들은 거의 보호 무역으로 인하여 부를 축적했다. 보호 무역 정책으로 자국 기업들의 수출을 장려했고, 다른 나라에서의 수입은 철저한 검열과 높은 관세를 붙여 규제했다. 이 결과 내수 시장은 활성화 되어 국민들의 소비는 증가했고, 수입 관세 이익도 늘어나 국가 경제와 산업은 성장했다. 그러나 너도나도 보호 무역 정책으로 수출을 규제하니, 19세 후반부터 강대국들은 쌓여가는 재고품들을 처리하고 더 많은 무역 흑자를 위해 약소국들을 상대로 제국주의 정책을 적용한다. 당연히 강대국들은 약소국들에게 낮은 관세의 자유 무역을 고집했고, 원래 가격에 걸맞지 않는 불공정한 거래로 일관했다.

  이러한 상황은 ‘보이지 않는’ 제국주의 시대인 현 시대에서도 확인 할 수 있다. 크게는 EU, OPEC, NAFTA 등이 있고, 일반적으로는 FTA이다. 대륙 간 무역 블록화 현상으로 인접 국가들의 상호 이익을 추구하면서 자국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있고, 그렇지 못한 나라들은 FTA를 통해 양자 간 무역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하지만 나라마다 경제 규모와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공정한 무역 협정이 이루어질 수는 없다. 특히 FTA는 양 국가가 수입과 수출량을 고정하고 관세와 규제를 철폐할수록 강대국은 약소국에 비해 상당한 이익을 얻고 경제 규모와 수준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게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약소국은 강대국을 상대할만한 국가 경쟁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장하준 교수는 이런 자유 무역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아프리카나 일부 아시아 국가들이 과거나 현재 역시 가난한 이유는 자유 무역과 시장 정책에 있다고 주장한다. 즉 강대국들이 약소국들에게 자유 무역과 시장 개방을 강요하여 자신들한테 유리하게 경제 정책을 수립하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이는 약소국들이 강대국들에게 국가 전체를 착취당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또한 임금 격차에 대한 문제도 지적하는데, 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라도 임금은 강대국 노동자와 약소국 노동자 간에 천지 차이이다. 그래서 약소국의 노동자들은 강대국으로 이민이나 취업 비자를 받아 높은 임금을 받기를 원하지만, 강대국의 이민정책과 외국인 노동자 차별로 인하여 수월하지 않다.

  결국 강대국들은 보호 무역과 더불어 자국의 이익이 되는 정책들을 지속적으로 고수했기 때문에 지금의 선진국이 된 것이고, 약소국들은 강대국들에게 이용만 당하다가 뒤늦게 개발도상국이 되거나 아직까지도 후진국에 머무르게 된 것이다. 지금의 선진국들은 과거 자신들이 부를 축적했던 정책들을 지금도 고수하고 있는데도 개발도상국들과 후진국들에게 자유 무역과 시장 개방을 주장하고 있다. 억울하게 느끼는 개발도상국들과 후진국들이 반발해도 힘으로 밀어붙이고 있으니 ‘내가 했던 대로 하지 말고 내가 말하는 대로 하라.’는 장하준 교수의 표현은 아주 탁월하다.

  단순히 부자들을 더 부자로 만들어 준다고 해서 나머지 사람들이 더 부유해지는 것은 아니다. 만약 부자들에게 주어지는 더 많은 부가 사회 전체의 혜택으로 파급되게 하려면 국가는 각종 정책 수단(예를 들어 부자와 기업의 감세를 허용하는 대신 투자를 조건으로 제시)을 통해 부자들로 하여금 더 많이 투자하도록 해서 더 높은 경제 성장을 이루어 낼 수 있도록 하며, 복지 국가 같은 매커니즘을 통해 전 사회 구성원들과 성장의 과실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197p>

  1960~1970년대 우리나라는 수출주도형 무역과 대기업 위주의 정부 주도 계획 경제 정책을 추진했다. 성장과 분배에 있어서 성장을 선택한 것이다. 흔히 ‘일단 파이를 크게 만들어서 나중에 분배하자’라는 논리인데, 문제는 분배가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채 여전히 성장만을 외치고 있다는 점이다. 성장을 목표로 하는 동안 사회 계층 간 소득 격차는 너무나 커졌고, 양극화는 가속화되었으며, 한해에 많은 중소기업들이 파산을 한다. 그러나 중앙 정부는 여전히 수출주도형 무역과 대기업을 보조하는 경제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실제로 중앙 정부는 국내 경제의 회복보다 세계 경제 회복으로 인한 수출 증대를 더욱 바라고, 중소기업 백 개 파산하는 것보다 대기업 하나가 파산하는 것을 더욱 우려한다.

  근래에 복지에 대해 보수 세력은 저소득층부터 복지를 실시하자고 말하고 있고, 진보 세력은 전면 무상 복지내지 광범위한 복지로 맞서고 있다. 나는 어느 쪽에 특별한 지지를 보내고 싶진 않지만, 사회적으로 복지에 대한 관심이 집중된 것에 큰 환영을 표한다.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선거나 정치적 선전용이 아니길 바란다. 지금 서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실천과 확실한 보장이다. 서민들은 열심히 일하여 중앙 정부가 말하는 성장 정책에 인생을 다 바쳤거나 바치고 있는데, 아무런 혜택과 보장이 없다면 도리어 사회적 반감과 중앙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질 수밖에 없다. 30년 이상 파이를 키웠는데 지금도 나눠줄 것이 전혀 없다면 이상하지 않는가? 일부에서는 성장으로 인하여 국가 경쟁력이 상승하고 삶의 질이 높아졌다고 말하지만, 사회 구조적인 차원에서 살펴보면 여전히 분배는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분배는 항상 특권층에만 집중되었다. 그러므로 성장의 혜택을 받은 부유층과 대기업들은 스스로 금고를 열어 사회 복지 사업을 추진 및 확대해야하고, 중앙 정부는 복지 정책을 구체적으로 수립하여 체감할 수 있는 복지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더 이상 가난한 사람들의 억울한 죽음이나 생계형 범죄를 언론 매체에서 보고 싶지 않다.

  1990년대 중반까지 대학 진학률 10~15퍼센트로도 세계 최고의 국민 생산성을 기록한 스위스의 사례를 고려할 때 그보다 더 높은 대학 진학률은 사실 불필요하다는 추측을 할 수 있다. 설령 지식 경제의 부상으로 기술 요건이 많이 올라 스위스의 현재 대학 진학률 40퍼센트 대를 하한선으로 친다 하더라도(나는 이 하한선 수준이 너무 높다고 생각한다) 미국, 한국, 핀란드 같은 나라에서는 대학 교육의 절반 정도는 기본적으로 제로섬 게임인 ‘분류’ 과정을 위해 낭비되고 있다는 말이다. 이 나라들의 고등 교육 현실은 영화관에서 화면을 더 잘 보려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장면을 생각나게 한다. 한 사람이 서기 시작하면 그 뒷사람도 따라서 서게 되고, 그러다가 일정 비율 이상의 사람들이 서면 결국 모두가 서서 영화를 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말이다. 영화관에 있는 사람들이 이제 화면을 더 잘 볼 수도 없으면서 앉아서 보지도 못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248-249p>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높다. 가난하더라도 자식들 공부는 꼭 시키려는 부모님의 마음이 전통처럼 전해져 내려오고 있고, 가정에서 사교육비 지출 역시 높다. 내가 어렸을 때만해도 실업계 고등학교나 전문대는 졸업하기만 하면 취업을 빠르게 할 수 있었다. 물론 지금도 어느 정도 그렇지만, 그때는 대부분 정규직으로 취업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실업계 고등학교와 전문대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공부 못하는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인식되었고, 학생들은 특목고나 서울에 있는 중위권 이상 대학을 가기 위해 공부를 했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는, 전국에 대학들이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늘어나 대학을 가는 것보다 어느 대학을 가는 게 더 중요해졌다. 그리고 지금은 어느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을 걱정하는 시대가 되었다.

  나는 청년실업이 오랫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왜냐하면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하는 사람들은 많아졌지만, 취업할 일터는 적어지고 채용 규모 역시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공급은 많은데 수요가 적어져 재고가 쌓인 상황이다. 이러한 사회적 상황은 대학 입시생들이 의학계 학과와 법학, 사범계 학과로 몰리게 만들었고, 대학 졸업생들을 공무원 입시생들로 만들었다. 즉 고용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자신의 학과와 취향에 맞지 않은 소위 안정된 소득과 정년을 보장 받는 직업으로 선회하게 만든 것이다.

  이로 인해 직업의 서열화와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고, 특히 비정규직은 취업 기회를 준다는 말과 함께 ‘인턴’이라는 그럴듯한 말을 써가며 취업 준비생들의 애간장을 타게 할 것이다. 이것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보면 큰 손해이다. 다양한 직업에 다양한 학생들이 모여야지, 특정한 직업에만 다양한 학생들이 몰리면 그만큼 사회 전 분야의 후퇴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누구나 대학 가는 세상이 아니라, 누구나 일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2008년 세계 경제 위기의 원인과 진단, 그리고 재발 방지를 위한 장하준 교수의 소신을 알 수 있었다. 언론과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서 그는 우리나라에서 좌파 진보 지식인으로 분류되지만, 나는 그를 소신 있고 양심적인 지식인이라 생각한다. 적어도 그는 거짓말과 위선적인 행동을 아직까진 보여 주지 않았다. 그리고 이 책을 비롯한 그의 저서들에서 항상 일관된 주장과 의견들을 제시하기에 상투적인 내용이지만 설득력이 강하다.

  나는 경제학자들을 비롯한 사회 지도층 지식인들이 양심과 소신을 속이지 않고 자신들의 과오가 있다면 대중들에게 사과하고, 대중과 언론의 질타와 비판에 인정할 것은 인정했으면 좋겠다. 왕정시대부터 현대사회까지 사회 지도층 지식인들은 안일한 말로 왕을 현혹하고 이익을 위해 백성들을 수탈했다. 생각해보라. 어느 시대 때 왕이 신하들의 눈치나 수구적 간언을 극복하고 개혁과 진보적 정치를 지속 했었나? 또한 어느 시대 때 나라가 편안하여 백성들이 태평성대를 외치며 억울한 고통과 죽음을 잊고 살았나?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왕과 사회 지도층 지식인들은 백성들의 봉기에 두려워 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국민들은 중앙 정부와 사회 지도층 지식인들의 문제를 직시하고 있으며, 시민 의식이 성장하여 언제든지 거리로 나와 투쟁하거나 온라인 상에서도 탄원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장하준 교수는 누구나 알 수 있고 읽을 수 있는 개념과 글을 썼다. 그러나 의지가 없으면 아무도 할 수 없는 대안들을 숙제로 남겨 주었다. 책을 읽고 크게 부정할 사람은 없겠지만 적극적으로 대안을 실천할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지금 내가 아는 것을 확실히 안다고 말할 수 없다"라는 말이 바로 여기에 적용된다. 장하준 교수가 지적한 23가지의 오류들은 개선되지 않으면 공공의 비밀이 될 것이다. 그것을 막기 위해 나부터가 먼저 실천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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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11월 4주

  제32회 청룡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류승완 감독. 그의 수상소식에 나는 무척 기뻤고, 점점 성장하며 작품의 수준을 높여갔던 그의 열정이 이제서야 보답을 받은 것 같다. 이번에 내가 추천하는 영화들은 내가 보았던 류승완 감독의 영화들 중 그의 영화세계가 변화를 겪는 과정에 있는 영화들로 추천해보았다. 

  류승완 감독의 수상을 축하하며 계속 그의 작품활동을 응원한다. 

 

 

<아라한 장풍 대작전> - 2004년 作 

  화려한 촬영기법과 입이 벌어질 정도의 특수효과, 배우들의 개성있는 연기.. 영화를 다보고 나서 느낀 점들이다. 흥행보증감독인 강우석 감독이 기획했다는데 충분히 그 이유가 될만하다. 또한 류승완 감독의 영화에 빠지지 않고 주연배우로 등장하는 류승범은 이제 한층 더 성숙한 연기와 개성있는 캐릭터로 확실히 자리매김을 하였고 당찬 신인여배우 윤소이와 나이를 잊은듯한 안성기의 연기 그리고 적절한 조연들과 카메오들은 이 영화를 보는 동안의 재미이다. 이런 이유들로 류승완 감독의 5번째 영화가 된 이 영화는 류승완 감독의 대표작이 될 듯 싶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한국영화만의 창의성이 부족하다. 아마도 아쉬움은 거기서 시작된다. 일단 화려한 촬영기법과 특수효과는 매우 좋다. 그러나 매트릭스, 미녀삼총사, 소림축구, 올드보이 등에 비슷한 장면을 생각나게 했다. 또한 류승완 감독이 자신은 홍콩영화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직접 말했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 한국적인 재창조가 필요했다.

  물론 한국영화에서 이전에 잘 볼 수 없었던 영화지만, 아쉽게도 위에 언급한 영화의 촬영과 특수효과의 특징들을 한국적인 재창조가 없이 모방하거나 담습하였다. 그리고 권선징악과 여느 홍콩영화와 비슷한 상투적이고 평이한 스토리는 보는 이로 하여금 식상하게 할 우려를 낳았다. 그래도 난 이 영화를 보며 시종일관 재미있게 보았다. 또한 류승완 감독과 류승범의 완벽한 조화로 류승완 감독에게는 대표작으로 류승범에게는 연기의 영역의 넓어짐과 성장으로 비상한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짝패> -  2006년 作

  류승완 감독의 오랜만이지만 화려한 영화배우로의 외출. 결과는 성공이었다. 그의 말대로 '진정한 액션' 을 표방했다는데 영화 내내 눈을 뗄수 없는 액션이 난무했다. 이미 그 중심에는 국내 최고의 무술감독 정두홍이 있었고, 몸을 사리지 않는 괴짜 류승완이 있었다.

  영화 내용은 별거 없다. <옹박>, <13구역>을 보면서 어렵고 루즈한 스릴을 기대한다면 만든 놈과 본 놈 중에 누가 잘못일까? 그냥 즐겨라!  

<부당거래> -  2010년 作   

  우리나라 액션영화의 젊은 거장 류승완 감독. 나는 류승완 감독의 영화를 볼 때마다 화려하고 리얼한 액션에 눈이 즐겁다. 그의 절친한 친구인 정두홍 무술감독이 늘 함께하기에 더욱 그렇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일반적으로 액션영화들이 그렇지만, 스토리가 단순하고 관객들에게 전달하려는 내용도 인상적이지 못하다는 점이다. 류승완 감독도 이런 점에서 예외가 아니었으나, 이번 영화에서는 확실히 달라진 면을 보였다. 스토리도 괜찮았고 전달하려는 내용도 인상적이었다. 자기 계발과 고뇌한 흔적도 느껴질 정도였으니.. 그의 노력이 정말 대단하다. 

  영화는 사회 크게 세 가지 계층을 설정한다. 기득권자로 대변되는 검사. 돈과 빽은 없지만 능력 있는 형사. 목숨걸고 불법과 폭력을 행사하는 조직폭력배. 저마다 그들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문제를 풀어나간다. 그러다가 결국은 돈 많고 힘 쎈 사람이 승리한다. 돈 없고 힘 없는 사람은 가장 비참한 최후를 당하고, 가깝게 여기던 친구와 부하들에게 당하는 배신은 뼈아프다. 믿을 사람이 별로 없고 마음을 줄 수 있는 사람도 별로 없다. 그래서 공통적인 것은 항상 불안하다. 뜻대로 되는 것이 없고 언제 어떻게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말이다. 문제는 그 불안감 때문에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인간과 사회는 항상 불안하다. 불안은 범죄와 불법을 낳는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그의 차기작이 기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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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명의 연기력은 훌륭했지만 감독의 연출력에 아쉬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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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릴 스트립,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에이미 아담스 이 셋만으로도 영화를 볼 충분한 이유는 됐다. 연기파 배우 3명이 모여서 무슨 영화를
찍었을까? 영화를 다 본 후에 기억에 남는 것은 세명의 연기력은 훌륭했지만 감독의 연출력은 아쉬움이었다. 감독은 단순한 주제를 너무 단순하게
전개했다. 아마 위의 세 명의 배우가 출연하여 열연하지 않았다면 그다지 호응이 크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의심은 집요하고 지속적입니다."



처음 오프닝에서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의 이 한마디가 이 영화의 주제이자 하고 싶은 말이다. 신부역으로 열연한 호프만은 설교 중 상투적인
비유를 통해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한다. 안정적인 상황에서 불안정은 의심을 갖게 하고 그 의심은 커져 불안정의 원인을 제압하려 든다.
호프만은 의심의 근원이었고 메릴 스트립은 의심의 화신이었다. 애니 아담스는 그 둘 사이에 가치 갈등을 한다. (어떻게 보면 영화 포스터가 잘
어울린다)



영화 중간 중간에 나오는 감독의 은유적 비유는 조금 생각 만들었다. 그리고 도널드 어머니는 메릴 스트립 말대로 정말 어머니라고 할 수 없는
면을 가졌다. 또한 형식주의적 믿음 앞에서는 작은 변화도 주변의 의심과 공동체의 분란을 일으킨다. 이것이 거창한 개혁자의 이름 가진
이들에게는 지속적인 괴로움이다. 곧 의심은 안정의 다른 말이다.



"제 믿음에 회의가 들어요."



무명에 가까운 존 패트릭 샌리(John Patrick Shanley) 감독은 무난한 영화를 만들었다.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Philip Seymour Hoffman)은 신부로 열연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액션, 스릴러영화에서 멋진 악당으로 나오길 바란다.

메렐 스트립(Meryl Streep)은 중후한 중년 수녀연기를 잘했다. 그녀의 연기는 변화가 없지만 지루하진 않다.

에이미 아담스(Amy Adams)는 당돌한 수녀역을 귀엽게 소화했다. 이런 부류 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캐릭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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