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이룬 뜻 땅에서도 - 기독교 윤리 입문하기
남태욱 지음 / 모시는사람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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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에 바탕된 사회 의식과 개인 윤리 의식의 회복에 관하여 쉬운 글로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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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이룬 뜻 땅에서도 - 기독교 윤리 입문하기
남태욱 지음 / 모시는사람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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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어느 때보다 기독교, 특히 개신교를 향한 대중의 불신과 비판이 맹렬한 때이다. 원인은 간단하다. 현재 주류 개신교의 구조와 사상은 대중과 소통하기 어렵고, 사회적으로 모범이 되어야 할 목회자들의 소양과 자질은 의심스럽다. 더욱 참담한 것은, 이러한 문제의 원인들에 대해 개신교 내부에서 다양한 대책들이 강구되기보다는, 구태의연(舊態依然)한 모습으로 문제의 원인들을 더욱 확대시키거나 성장시키고 있기 때문에 개신교의 앞날은 암울하다.

 

  물론, 일부 목회자들은 거룩한 사명감을 가지고 자신에게 주어진 사역에 충성하고, 순결한 삶을 통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미력하게나마 감당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또한 개신교의 구제 사업들과 봉사 활동들은 우리 사회의 복지 증진에 큰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러한 이유들을 위안 삼아, 매스컴의 한 영역을 담당하게 된 개신교의 불의와 악행들에 대해 "개신교 전체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라는 항변을 하며 버틸 수 있을까?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이미 상처 입은 대중은 개신교를 "개독교"라고 조롱하고 있다.

 

  나 역시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현재 개신교의 참담한 상황 앞에 확실한 대안들은 없다. 신뢰는 서서히 잃든, 단번에 잃든, 한번 잃게 되면 회복하기 어려운 것이고, 지금의 개신교는 딱 그 상황에 있다. 하지만 차선으로 우선되어야 할 대안이 있다면, 성서에 바탕된 사회 의식과 개인 윤리 의식의 회복이다. 이 책은 그것에 관하여 쉬운 글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이중적 신분을 가지고 살아간다. 즉, 하나님 나라의 시민인 동시에 지상의 나라의 시민이다. 이 두 가지 신분과 정체성은 어느 것 하나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라고 해서 지상의 나라에 대한 의무나 권리를 무시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지상의 시민으로만 머물 수는 더더욱 없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31p>

 

  한 나라의 국민은 국가에서 정한 법과 윤리를 따라야 한다. 법은 강제력을 동반하고, 윤리는 인간의 존엄을 바탕으로 한다. 그래서 법을 위반하면 해당하는 처벌을 받게 되고, 윤리에 어긋난 행동은 비난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종교를 믿는 신자들에게는 추가로 종교의 경전과 교리를 체득하여 삶에서 실천해야 한다. 그것들은 신자들에게서 있어서 법과 윤리와 같다. 물론 강제력을 동반하지 않지만, 위반 행위에 따른 처벌은 전적으로 신의 판결에 있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두 나라에 소속된 국민들이고, 두 나라에 속한 법과 윤리를 지킴으로써 정체성과 신앙을 형성하고 체감한다.

 

  이러한 점에서 저자는 책을 통해 개신교의 윤리적인 앎과 실천을 설명하고 있고, 그리스도인들에게 개신교의 세계관으로 현실을 바라보고 이해할 것을 당부한다. 저자는 그리스도인의 "이중적 신분"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중적 신분"에 대한 구체적인 해석이 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윤리적인 의미의 양심이란 공동의 지식적 토대 위에 있는 것이다.  <138p>

 

  이 책의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로는 "양심"에 대한 저자의 주장이다. 양심은 철학자 칸트(I. Kant)의 주장대로 내면의 도덕률로 이해되는 인간의 중요한 윤리적, 도덕적 주체이다. 그러나 양심은 절대적이지 않고 상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즉 자신이 행한 말과 행위를 성찰할 때 양심은 가책(呵責)을 느끼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합리화를 시키도 한다. 그러므로 양심은 개인의 성품과 직결되며, 성장 과정 중에 습득한 지식들과 경험들에 영향을 받는다.

 

  저자는 개신교에서 일부 주장되는 "양심은 하나님의 음성이다"라는 일률적 주장을 반대하고 양심의 상대성을 말한다. 그러나 "성령"(Holy Spirit)에 의존된 신율적 양심의 근거를 들어, 양심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발현될 수 있는 가능성은 인정한다. 

      

  사랑(agape)의 이상은 니버의 사회 윤리의 궁극적인 규범인 셈이며, 정의는 부정의(injustice)한 사회에 대한 상대적 원리이다.  <162p>

 

  기독교의 "사랑"은 최대의 교리이자 선이다. 저자는 사랑의 중요성을 신학자 라인홀드 니부어(R. Niebuhr)의 주장들과 함께 역설(力說)한다. 아가페적 사랑은 정의(Justice)를 포함하고 사랑에 어긋난 정의는 부정의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정의는 사랑에 포함되지만 동일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절대적인 사랑에 비해 정의는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정의를 통해 간접적인 형태로 현실에 나타난다. 니부어는 정치를 통해 사랑을 간접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정의가 완전한 사랑과 일치되거나 동일시될 수 없는 긴장관계에 있어야 한다고 본다. 

 

  저자는 니부어의 이러한 주장들을 수용하며 통치자와 사회 기관들이 사회 내 정의를 실현하려는 제도나 노력으로 자신들이 가진 정치적 권력을 사용해야 하고, 그에 따른 과정과 결과는 아가페적 사랑을 지향해야 할 것이며, 비판 역시 사랑에 근거하여 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구원은 위로부터 조건 없이 주어진 불가항력적인 은총에 의한 것이지만, 성화된 성도의 삶은 끊임없이 자신을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라나야 한다. 그 책임은 분명히 우리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이것이 성서적이고 복음적인 가르침이다. 믿음과 행함의 문제는 창조적인 긴장관계 속에서 통일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구원은 현실 속에서 구체적인 행위를 통해 가시적으로 드러난 윤리적 실천을 통해 영적인 차원의 구원을 확인하거나 강화한다.  <188p>

 

  저자는 이 책을 마치는 말로 그리스도인의 안일한 구원론을 비판한다. 단순한 결신과 신앙고백들이 구원을 보장해주지 않으며, 입에서 맴도는 "믿음"이 구원을 완성시키지 않는다. 신자의 믿음은 항상 삶의 영역에서 나타나야 하고, 실천을 통해 신앙의 성숙을 체험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이상적인 모습은 예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처럼 사는 것에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고통과 평안의 이면적인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고, 받은 은혜에 감사하여 자신의 신앙을 삶의 영역에서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드러내야 한다.

 

  성서는 결코 행위 없는 신앙과 형식적인 예배를 주장하지 않는다. 성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구체적인 예화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으며, 하나님의 사랑이 현실에서도 실현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에게 실천을 촉구한다. 저자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성서에 바탕된 윤리적 실천이 하나님으로부터 "값없이 받은 구원"에 대한 반응으로써 당위와 의무를 갖는다고 주장한다.

 

 

  나는 교조주의에 빠진 종교는 종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양성이 결여된 교리와 신앙은 "종교 이기주의"에 빠지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신자들은 자신들이 처한 현실과 상황 속에서 항상 무엇이 가장 좋은 행동이고, 가장 신앙적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러한 고민은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만들고, 종교를 더욱 위대하게 만든다. 고뇌 없는 신앙생활은 뿌리 깊지 못한 신앙생활이고, 뿌리 깊지 못하기에 위기가 찾아오면 쉽게 변절한다.

 

  이 책은 그리스도인들 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다양한 개신교 서적들을 읽는다면, 좀 더 개신교의 신앙과 교리를 이해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저자의 주장대로, 읽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반드시 삶의 영역에서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믿음이 실천되어져야 한다.

 

  뿌리 깊은 신앙은 한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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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미래 - 10년 후, 나는 어디서 누구와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린다 그래튼 지음, 조성숙 옮김 / 생각연구소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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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로에 대한 상담은 고등학생 때나 하는 일인 줄 알았다. 그 때의 진로 상담은 입시 상담과 연결되었고 결론은 좋은 대학을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도 나는 진로 고민을 하고 있고 가끔 인생의 선배들에게 진로 상담을 받고 있다. 안정된 삶을 원한다면 평색 직장을 선호하며 직업을 선택하겠지만, 그런 직업들은 정해져 있고 경쟁률도 만만치 않다. 그렇다면 그 외의 다른 직업을 선택해야 하는데, 이는 무척이나 모험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확신이 서지 않아 두렵다.

 

  저자인 린다 그래튼은 이러한 사람들에게 10년 후의 미래 상과 직업에 대한 상관관계를 말하고 있다. 저자는 2025년에 제3의 산업 혁명과 같은 인식과 직업의 전환이 일어날 것으로 본다. 재미있지 않은가? 설령 10년 뒤에 내가 살아 있을지도 모르고, 한 치 앞을 전망하기 어려운데 10년 뒤의 일을 전망한다는 것은 너무나 상투적인 발상에서 시작된 저술이라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 사이의 격차가 커질수록 신뢰는 줄어든다.  <123p>

 

  직업에 대한 가치관이 바뀔 수밖에 없는 것은 현재 주류를 이루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 현실일 것이다. 저자는 직업에 대한 가치관 변화가 여러 가지 외부 요인들로 첨단 사회와 개인 능력 향상에 찾고 있지만, 현재 직업은 직업으로서의 가치보다는 안정과 금전에 따른 수단적인 측면에서 바라보고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안정과 금전에 대한 상호적 격차가 커질수록 완전 다른 삶을 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삶의 격차가 커질수록 직업에 대한 선호도 역시 달라질 것이다. 즉 안정된 삶과 금전적 여유를 가져다 주는 직업이 가장 좋은 직업이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블루오션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고 있는데, 물론 가능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현재 사회 구조적인 측면에서 블루오션은 정말 찾기 힘들다. 아마 언론에서는 블루오션을 발견한 특별한 사람 몇 명을 대서 특필하며 뭇 사람들을 격려하고 도전 의식을 신장시키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의 미래가 가치 중심적이고 능률적인 면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우정을 기르기 위한 시간과 공간은 미래에 대한 에너지원으로 작용할 것이다.  <303p>

 

  이 책의 핵심은 상호 협력과 네트워크 형성인데, 일에 대한 협력과 공동 작업이 온, 오프라인으로 형성되어 작동되면 어디서든, 나이에 관계 없이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조금 의아스러운데, 상호 협력과 네트워크 형성은 지금도 이미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정보 수집하기 유용한 시대에 살고 있고 그에 따른 여러 혜택도 누리고 있다. 다만 일을 할 수 있는 장소가 부족하고 자리가 없기 때문에 문제이다. 그리고 지금 사회에서 노인층의 직업 수요는 당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40-50대에 명퇴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어디서 무슨 일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을까? 정보는 넘치더라도 정보를 통하여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대상들은 항상 경쟁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다소 부정적인 리뷰가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현실의 청년 실업과 자유 경쟁은 미래의 직업 선택에 있어서 암울하게 다가온다. 직업이 직업으로서의 가치를 갖기에는 우리 사회는 너무나 물질 만능주의가 되어 있다. 직업의 귀천이 없다고 말은 하지만 귀천이 있고, 그에 따른 혜택의 격차도 너무나 크다. 지금과 앞으로도 직업 선택에 필요한 것은 안정과 금전적인 여유가 대부분의 사람들의 선택에 중요한 기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직업의 가치를 인정하고 열심히 일하려는 사람들의 의지를 부정하고 싶진 않다. 나도 거기에 속해 있고 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가와 정부는 나를 비롯한 사람들에게 직업의 안정성과 수요를 제공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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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정의로운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시장은 정의로운가 - 서울대 이정전 교수의 경제 정의론 강의
이정전 지음 / 김영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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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5년 동안 경제에 관련된 이슈들은 거의 매일 신문 1면을 차지했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국민들은 경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적극적인 경제 주체가 되었다. 그러나 대부분 세계 경제 상황에 따른 여파로써의 한국 경제 전망이 우세했다. 결국 한국 경제는 세계 경제의 소용돌이 속에 급격한 코스를 가진 롤러코스터와 같은 흐름을 보냈다.  

 

  이 책은 경제 철학 책이다. 여러 가지 경제 상황 사례들을 예로 들었고, 그에 따른 경제 철학에 따른 이론과 판단을 설명하면서 무엇이 가장 좋은 경제 이론인지 살펴 보고 있다. 특히 시장 만능주의에 대한 저자의 견해는 과감한 문제의식과 함께 다양한 예시로 무엇이 문제인지를 확실히 지적하고 있다.

 

  이성의 통제로부터 벗어난 욕망은 고삐풀린 욕망이다. 이 고삐 풀린 욕망을 돈벌이에 이용하는 시대가 자본주의 시대이다. 실업으로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는 미국에서 30억원짜리 손목시계가 불티나게 팔릴가? 단순히 남들 앞에서 으시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197p>

 

  자유 경쟁과 시장 만능주의는 "자유"라는 이름을 내세운 독재에 가깝다. 자유로운 경쟁을 허락하지만, 경쟁에서 이기는 것은 다수가 아니라 소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경쟁의 승리자들은 제한적 독과점 형태를 이루어 부를 축적할 수 있고, 이는 구조적인 문제로 다가와 자유 경쟁과 시장 만능주의 자체를 위협한다. 

 

  저자는 여기에 초점을 두고 자유 경쟁과 시장 만능주의가 어떤 점에서 정의롭지 못한 가에 따른 이론들과 사례들을 제시한다. 그래서 자유 경쟁과 시장 만능주의가 구조적인 차원에서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위에서 지적한 대로 자유를 내세운 독재에 가깝다고 본다. 

 

  시장의 확산과 발달은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협동을 점점 더 필요없게 만들고 그럼으로써 협동 정신을 시들게 한다.  <268p>

 

  경제 활동의 기본은 상호 거래이다. 파는 사람이 있고 사주는 사람이 있어야 경제 활동이 일어난다. 그러나 지금은 파는 사람들은 많은데 사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오히려 파는 사람들 내부에서 경쟁이 일어나 소규모 상인들을 대기업이 잠식시키고 있고, 골목 상권마저 장악한다. 또한 사는 사람들 내부에서도 부유층만이 광범위한 경제 활동을 할 뿐, 서민층은 경제 활동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제대로 된 경제 상황이 나올리가 없다. 그러므로 자유 경쟁과 시장 만능주의는 정의로운 성장과 분배에서 멀어지고 특정 계층이나 기업에 유리하게 흘러갈 수밖에 없다.

 

  저자가 책에서 지적하듯이 경제에 대한 접근은 단순히 자유 경쟁과 시장 만능주의로만 해석할 수 없다. 마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승리가 성장 위주의 경제 정책을 우선시하게 만들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는데, 이것은 매우 큰 오산이다.

 

  경제 뿐만 아니라 사회 정책에서도 다수의 정책이지만 소수의 권리와 인권은 어느 정도 지켜줘야 하는 것이다. 성장과 발전만을 앞세워 자유 경쟁과 시장 만능주의를 주장했던 지난 반세기 동안 구조적인 문제와 경제 정책의 원론적인 문제들은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로 귀결되었다. 이런 점에서 지금은 현재 경제 정책의 보완과 부양책이 아닌,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와 정의로운 성장과 분배에 관하여 논할 시점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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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운명 (반양장)
문재인 지음 / 가교(가교출판)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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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처럼 정치가 국민적 관심을 받는 시대도 없을 것이다. 더구나 2012년은 총선과 대선이 함께 있는 흑룡의 해이다. 한마디로 향후 5년, 혹은 그 이상의 대한민국의 운명이 올해 결정되어진다.이런 점에서 정치가 국민적 관심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핵심에는 지난 4년 동안 MB정권의 행보를 보고 실망한 국민들의 반응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국민들의 분노와 의견들을 듣고 살펴보면, 이전의 민주정권 특히 故 노무현 대통령의 향수가 짙게 느껴진다. 국민들은 지금 '사람 사는 세상'을 원하고 있다.

 

  얼마 전 우연히 TV 토크쇼에서 문재인 이사장이 나온 것을 보았다. 그 전에는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나왔는데, 문재인 이사장이 나온 것을 보니 TV 토크쇼마저 정치 유세장으로 돌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문재인 이사장을 잘 모른다. 그가 참여 정부 시절에 핵심 인물로 요직에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문재인' 이라는 사람 자체는 내게 무척 낯설었다. 내가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최근 통합 민주당이 생기고 나서부터였다. 관심이 생기니 당연히 그의 생각을 살피고 말을 들어보는 것이 실천으로 옮겨졌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기로 했다.              

 

 

  그때 썼던 '사람 사는 세상'을 그 후 줄곧, 심지어 대통령 재직 중에도, 그리고 퇴임 후에도 사인글로 썼다. 당신의 대통령 재임 중에도 '사람 사는 세상'이 여전히 멀었고, 따라서 그에 대한 염원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72p>

 

  1982년 8월에 사법 연수원을 마친 문재인은 판사를 지망했으나 대학시절 시위 참가 이력으로 변호사로 법조계 생활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첫 시작을 부산에서 인권 변호사로 활동 중인 노무현 변호사와 함께 공동 사무소를 사용하면서 처음으로 인연을 맺게 된다. 이후 그는 노무현의 동지로서 같은 목적과 목표를 세우고 이루어 나갔다. 

 

  88년 13대 총선에서 노무현 후보자가 선거 구호에 썼다던 '사람 사는 세상'. 당선되어서는 5공 청문회 스타로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했던 모습들을 문재인은 기억하고 있다. 그의 말처럼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세상'은 멀기만 한 것 같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계속해서 사인글로 쓴 것은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바라는 말이자, 공동으로 책임을 함께 나누자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문재인 스스로에게도 정치 입문에 있어서 상징적인 구호라고 생각한다.     

 

  오후에 출구조사 결과가 역전됐다. 확신이 섰다. 오후 6시 선대본부 사무실 TV앞에 모두 앉았다. 최종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예상대로였다. 우리의 승리였다. 모두 끌어안고 환호했다. 누구는 울먹이며 승리를 자축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내 생애 가장 기쁜 날 중 하나였다.  <102p>

 

  2002년 12월, 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그와 같은 드라마는 없을 것 같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우리 정치계는 '노무현'이라는 인물을 받을 수 있는 깜냥이 안 되었다고 생각한다. 정말 아쉽게도 '노무현'이라는 인물은 지금 필요하다. 나는 2012년에 '노무현'같은 인물이 후보에 나온다면 주저없이 찍을 것이다. 지금이라면 국민들은 '노무현'이라는 인물에 열광할 것이다. 아쉽게도 지금 우리 정치계는 오랫동안 인물난에 허덕이고 있다.   

 

  그리고 당선인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제가 정치를 잘 모르니, 정무적 판단능력이나 역할 같은 것은 잘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원리원칙을 지켜나가는 일이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제가 해야 하는 역할을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저를 쓰십시오." 그러면서 두 가지 조건을 말씀드렸다. "민정수석으로 끝내겠습니다", "정치하라고 하지 마십시오." 정치 이야기는 당선인의 후보시절 2002년 지방선거 때 부산시장 후보로 나서라는 압박을 강하게 받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당선인은 매우 기뻐하면서 그러자고 했다.  <201p>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정계에 입문한 문재인. 그는 분명 그때부터 정치인으로서 활동했다. 때문에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민정수석으로 정계에 입분한 문재인에게는 괜찮은 데뷔라고 생각한다. 노무현처럼 치열하게 투쟁한 정치인이 아니었고, 비록 대학시절 시위에 참가하고 구속 수감된 이력이 있지만 국민들이 보기에는 굉장히 스마트한 이미지가 다분하다. 나는 이것이 앞으로 정치인 문재인의 한계로 다가올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지금 그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민정수석이나 비서실장 같은 참모형 이미지를 빨리 벗어버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대통령은 줄곧 '장사꾼 논리'를 강조했다. "100% 국익 기준으로 하라. 우리가 이익이 되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안 하는 거다. 협상 과정에서 국익에 배치되면 안 해도 좋다. 조건이 맞지 않으면 언제든 중단해도 좋다." 이 점을 늘 강조했다.  <347p>

 

  책에는 참여 정부 때에 있었던 주요 정책들을 돌아보면서 문재인 스스로가 평가한다. 어떻게 보면 해명내지 변명일 수도 있고, 언론에서 다루지 못했던 진솔한 이야기들과 전후 사정을 알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그 중에서도 단연 한미 FTA에 대한 글들은 관심을 갖게 했다. 많은 분량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참여 정부가 한미 FTA를 어떻게 받아 들이고 추진했는지 대략적으로는 알 수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시절 '자주 국방'과 '자주 외교'라는 일념으로 전시 작전권 환수를 추진했던 것처럼, 한미 FTA 역시 미국과 대등한 입장에서 추진하려고 했던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문재인은 당시의 상황을 말하면서, 현 정부에서 추진하는 한미 FTA와 참여 정부에서 추진했던 한미 FTA의 협상 방식과 취지는 근본적으로 달랐음을 역설한다.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이 깨지는 것을 아주 가슴 아파했다. 당신의 정치인생의 실패로까지 생각했다. 대통령이 가장 아프게 생각한 것은 대선 패배가 아니었다. "힘이 모자라거나 시운(時運)이 안 되면 패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패배하더라도 우리의 가치를 부둥켜안고 있어야 다음의 희망이 있는 법이다. 당장 불리해 보인다고 우리의 가치까지 내버린다면 패배는 말할 것도 없고, 희망까지 일게 된다"는 것이 대통령의 생각이었다. 당시 우리 진영이 열린우리당을 깨고 나간 일을 대통령은 그렇게 봤다. 대통령은 "계산하지 않는 우직한 정치가, 길게 보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도 가장 좋은 길"이라고 늘 강조했다.  <366p>

 

  노무현 대통령이 창당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열린우리당'은 그의 퇴임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이것이 우리나라 정치의 고질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당 쇄신을 위하여 다른 정당들과 통합을 하거나, 당명을 바꾸고 지도부를 바꾸는 것은 거의 정형화 되었다. 지금도 여야는 이것에 당과 총선, 대선의 운명을 걸고 있다. 아쉽게도 열린우리당은 친노계열의 반란으로 해체되었다. 그 주역들은 지금도 '노무현'의 이름을 팔아가며 정치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데, 정말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아무리 스스로 회개하고 사죄한다 하더라도 주인을 팔아먹고 냉정하게 돌아선 사람들이 무슨 낯짝으로 '노무현'의 이름을 들먹이는가? 문재인 역시 그들에 대하여 섭섭함을 드러내고 있다.

 

  사실 정치란 권모술수와 물리적인 폭력으로 대변될 수 없는 것이다. 정치도 엄연히 사람이 주체가 되어서 사람을 살리는 정치를 해야 비로소 정치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우직하고 뚝심있는 정치인이 살아 남기에는 현실 정치판이 영악하지만, 국민들은 진정 그러한 성품을 가진 정치인을 바라고 있다. 문재인이 과연 그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앞으로의 정치 행보를 지켜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리틀 노무현이 될지, 정치인 문재인이 될지.. 시간이 지나면 분명해 질 것 같다.    

 

  대통령은 어쩌다 그런 곤경에 처하게 됐을까. 나는 대통령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가난했다. 가난이 그를 공부에 매달리게 했고, 가난이 그를 인권변호사의 길로 이끌었다. 그가 가난하지 않았다면, 자신처럼 힘들었던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을지 모른다.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돕겠다고 소박하게 시작한 일이 인권변호사였고, 민주화운동이었다. 정치는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 정치에 대한 그의 진정성이 그를 대통령까지 만들었다.  <406p>

 

  나는 아직도 2009년 5월 23일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토요일 아침에 인터넷 기사들을 보다가 속보로 보게 된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은 굉장한 충격이었다. 서거의 계기는 검찰의 수사를 받으면서 벌어졌던 언론과 국민들의 지탄 때문이었고, 그로 인해 손상된 도덕성과 자존심이 그를 낭떠러지로 몸을 던지게 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를 발표했던 문재인의 목소리가 지금도 기억난다. 걸걸한 목소리로 서거 소식을 알리는 그의 모습에는 왠지 모를 담담함이 있었다. 그러나 책을 읽어보니 슬픔을 겨우 억누르고 공식적인 회견에 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반 평생을 함께 했던 사람이기에 누구보다 노무현 대통령의 삶을 잘 알았던 그였다. 그때의 심정을 자세히 기록한 부분을 읽어보니 나도 마음이 울컥한다. 문재인과 나의 마음이 이때만큼은 동화되었다. 

 

  굴곡이 많고 평탄치 않은 삶이었다. 돌아보면 신의 섭리 혹은 운명 같은 것이 나를 지금의 자리로 이끌어 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한가운데 노무현 변호사와의 만남이 있었다. 그는 나보다 더 어렵게 자랐고 대학도 갈 수 없었다. 어려운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 나보다 훨씬 뜨거웠고, 돕는 것도 훨씬 치열했다.

  그를 만나지 않았으면 적당히 안락하게, 그리고 적당히 도우면서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의 치열함이 나를 늘 각성시켰다.

  그의 서거조차 그러했다. 나를 다시 그의 길로 끌어냈다.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야말로 운명이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  <467p> 

 

  운명처럼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서 지금에 이르게 된 문재인. 그의 멘토이자 동지였던 노무현은 그에게 많은 숙제를 남기고 이 땅을 떠났다. 그리고 지난 4년 동안 재야 인사로 활동하다가, 2012년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정치인으로 활동하려 한다. 이미 4월 총선에 부산에서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이후에 있을 일들은 아무도 모르고 추측성 기사만이 난무할 뿐이다. 스스로 변호사 체질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를 정치인으로 활동하기를 원하고 있다. 이는 그의 말대로 "운명이다"

 

  개인적인 견해를 말하자면, 나는 문재인이 대선에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지 않는다. 일단 현재까지의 모습을 볼 때, 권모술수나 정략적인 제안에 호의적인 인물이 아니고, 원칙과 타협을 중시하는 인물로 보여진다. 그렇다면 만약 그가 이번 총선에서 당선이 된다면, 국회의원으로서 본연의 임무를 다할 것이라 본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대선에 출마하려 든다면, 그것 자체부터 그의 정치적 이미지 훼손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크다. 현재 지지율이 상승세를 타고 있다고 하나, 뭔가 그에게는 특별함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그는 자신이 믿는 '운명'을 조급함이나 사심 없이 인내와 긴 시간을 가지고 걸어 가야 하는 것이다. 반면에 총선에서 낙선한다면, 그의 정계 은퇴가 빨라지거나 전면에 나서는 정치인이 아닌 후방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런 모습들이 현재까지는 잘 어울린다. 그러므로 2012년 4월은 자신이 믿는 운명과 자신이 가진 한계를 확인하고 시험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참여 정부의 향수가 짙어지는 지금 시점에서 이 책이 출간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이 정치인 문재인의 '출사표'라고 생각한다. 그가 현실 정치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말처럼 운명일까? 냉정하게 본다면, 현실 정치에 대한 불만과 아쉬움이'운명'이라는 말로 표현된 것처럼 보인다. 그의 지지자들은 분명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을 그에게 투영시키고 있다. 이는 유시민 지지자들이 바라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아무렴 어떠냐? 지금 대한민국 정치계는 오랫동안 인물난에 허덕이고 있고, 문재인 같은 인물은 필요하다. 단적인 예로 한나라당 비대위원장으로 박근혜가 임명된 것과, 통합 민주당의 대표로 한명숙이 된 것이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이다. 두 정치인이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국민들이 보기에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인물군들이 없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아마 2012년에는 전, 현직 정치인들이 쓴 정치 관련 도서들이 많이 출판될 것이다. 국민들은 그 책들을 읽으며 자신이 가진 정치 기조를 다듬을 것이고, 다가올 총선과 대선에서 소신 있는 주권 행사를 할 것이다. 개인적인 소망이 있다면, 이번에는 그 어느 때보다 후회없는 선택을 나를 비롯한 국민들이 했으면 좋겠다. .적어도 자신이 선택한 정치인이 위기에 처해 있다면 응원과 격려를 보내야 한다. 정치란 늘 변수가 있기 마련이고, 언론과 다수의 정계 X맨들은 선동과 연명을 위하여, 우리들이 선택한 정치인들을 공격할 것이다. 그때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지난 날의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우리 각자가 지지할 정치인을 찾고 알아보자. 그리고 그 정치인이 변절하지 않는 이상 끝까지 그를 돕자.

 

  정치인 문재인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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