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네트워크 - The Social 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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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계열 강국인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SNS가 없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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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네트워크 - The Social 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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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미국 <TIME>지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인 마크 주커버그(Mark Zuckerberg).

창업주이자 기업인 인맥구축서비스(SNS) 'Facebook'은

전 세계 인구 중 약 반 정도가 방문했고,

5억명 이상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더구나 아직 30세도 안 된 나이에 

자신의 삶이 영화로 제작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하버드 출신에 자산가치 500억 달러를 가진 기업을 운영하고,

세계적인 유명인사에 억만장자라면 성별과 외모를 떠나 누가 관심을 갖지 않겠는가?

미국식 천재 영화들의 상투적인 구성이 예감 되더라도

어떻게 그런 엄청난 일을 할 수 있었는 지를 살펴 보는 것은

젊은 세대들에게는 좋은 일이다. 

 





 

"잘 들어, 넌 컴퓨터 분야의 인재로 성공 할 수 있겠지만,

 널 좋아하지 않는 여자를 평생 그리워 하며 살게 될 거야.

 넌 공부 밖에 몰라서 그렇게 됐다고 생각하겠지만.

 지금 너가 차인 진짜 이유는 너가 재수 없는 인간이기 때문이야."

 

하버드 학부생이자 컴퓨터 천재인 마크 주커버그는 

2003년 가을 같은 학교 학생들인 웡클보스 형제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은 후,

친구들과 함께 유명 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터넷 SNS인 'The Facebook'을 만든다.

만들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학생들이 가입을 했고,

유명 대학교 학생들이 아닌 전 세계인들을 대상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그리고 많은 투자자들과 'Napster' 창업주인 숀 파커까지 가세한다.

엄청난 성공과 부를 축적한 마크 주커버그.

그러나 2개의 소송을 동시에 진행해야 했고,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거나 친한 친구를 잃게 생겼다. 

 



 

"접속해서 이것 저것 하겠지만 결국 애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은.."

 

"섹스!"

 

"맞아, 애인을 필요로 하는 거지."

 

"진짜 아이디어 좋다."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의 앤드류 가필드(Andrew Garfield)는

괜찮은 성인 연기를 보여주었고

그가 출연한 영화들 중 가장 길고 인상적인 배역이었다.

 

미국의 아이돌 스타 저스틴 팀버레이크(Justin Timberlake).

나는 그의 음악과 사생활을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여직 그가 출연한 영화들에 비해 그나마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영화에서 연출된 장면들이 실제 삶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에어리언3>,<세븐>의 데이비드 핀처(David Fincher)가 아니였으면,

이 영화는 지루한 영화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여러 장르의 영화들을 만들었지만 늘 그가 말하고 싶은 말은,

"인간에게는 어두운 면이 존재하며

 상상에서만 이루어 질 것 같은 일들이 당신에게 벌어질 수 있다"이다.

그는 이 영화로 근래에 유명 영화제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고 있다.

 



 

"고기를 많이 잡을 수도 있지만, 큰 고기 한 마리를 잡는 방법도 있어."

 

상당히 괜찮은 영화이다.

기존 미국식 천재 영화에 현실감을 더했다고나 할까?

하버드생 뿐만 아니라 미국의 유명 대학교 학생들이 취업보다 창업에 관심이 있고,

비록 불법을 행하더라도 재능과 능력이 유망한 학생이라면

학교차원에서 보호하려는 관행은 이제 익숙한 모습이다.

아쉽게도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창업 보다는 취업에,

불법을 행하면 학생의 재능과 능력에 상관없이

학교의 명예를 위해 자퇴나 퇴학을 권장한다.

 

영화를 본 사람들 중에서

"결국 Facebook과 마크의 소송들은 모두 개인의 이익을 위한 질투심이었네?",

"하버드생이니까 가능할 수 있었던 거야!" 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버드생이나 개인의 이익을 위한 질투심에 문제를 거론하긴 유치하다.

미국은 가난한 청년 스티브 잡스에게 여러 가지 직업을 주었고, 

흑인이자 14세 미혼모인 오프라 윈프리를 최고의 토크쇼 진행자로 만들었다.

투기의 귀재 워런 버핏을 능력 있는 투자자로 인정했다. 

그리고 중산층이라면 누구나 개인 변호사를 쓸 정도로 법적 절차에 익숙하고,

대화와 토론, 합의가 생활이다. 

 

부러워 해야 할까?

어느 정도의 환경적 영향들은 있었겠지만 대게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작은 아이디어에 전 재산을 걸고,

지나칠 정도의 질투심과 경쟁심으로 사업을 추진하면서,

때로는 몇 개의 소송들로 원고측과 말싸움을 해야 한다.

이건 미국에서만 상상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느 정도 사회 환경이 구비되어 있다면

우리나라와 전 세계 어디에서도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다만 생각과 행동의 차이일 뿐이다. 

 



 

"마크 씨는 재수 없는 사람이 아니지만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Blog, Twitter, Me2Day, Facebook 등등..

SNS계열의 커뮤니티들을 접해 봤지만, 

개인적으로 Blog가 가장 좋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것들은 실시간적으로 자신의 삶을 중계하는 듯 운영할 수 있지만,

나는 그런 동적인 운영보다 누군가에게 의미있고 도움이 되는

개인 컨텐츠들을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다.

 

또한 인맥 기반의 구조는 조금 신경 쓰인다.

일촌, follower, 이웃 수 등과 방문자 수와 조회수는

왠지 모르게 신경이 쓰이고 

남들에게 자신의 높은 인기를 대변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것이 영향력이 되어 새로운 권력을 형성하는 느낌이 든다.

 

물론 내가 운영하는 Blog도 그렇지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형식상 맺은 일촌은 형식적인 대우를 하고,

특별하게 맺은 일촌은 특별하게 대우를 한다.

모든 사람들과 친해질 수 없다면

진실한 친구를 조금씩 늘려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이것도 인간관계이니까.

 

관심 있는 이성이나 그리운 친구들, 고마운 은사님들을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개인 SNS를 찾을 수 있다면 기쁜 일이다.

관심 있는 이성이 결혼은 했는지 아니면 아직 솔로인지 뭘 하며 사는지 궁금할테고,

그리운 친구들은 예전처럼 다시 만났으면 좋겠고,

고아운 은사님들은 스승의 날이나 개인적인 만남과 연락을 통해

지난날의 고마움을 표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일촌공개'나 '친구'로 제한이 되어 있다면,

기쁨보다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몰려 온다.

물론 남의 사생활을 허락도 없이 훔쳐보는 것은 잘못된 일이지만,

이미 인터넷 보급률 세계 1위인 우리나라에서

개인 사생활 정보 노출은 어찌 보면 막을 수 없는 일이다.

그건 마치 천장에 생선을 매달고 밑에는 긴 사다리를 놓은 상태에서 

배가 고픈 고양이에게 "알아서 먹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자신의 정보들을 제한해 달라고 말하지 않는 이상,

어느 정도의 개인 정보는 유출될 수밖에 없다.

 

Facebook의 성공은 바로 거기에 있다.

처음 보는 관심 있는 이성이 솔로인지 연인인지 알 수 있고,

친구의 친구가 나의 친구가 될 수도 있는 기회를 마련했으며,

친구수락만 하면 최소한의 개인정보 외에는 모두 공개된다.

그리고 가입신청에 있어서 신경쓰이게

주민번호를 넣거나 핸드폰 번호를 적지 않아도 된다.

 

IT계열 강국인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SNS가 없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우리나라 정서상 개인 정보 공개나 유출은 사람들에게 비호감적이다.

하지만 인터넷 자체가 개인 정보 공개나 유출에 앞장서고 있으니

네티즌들은 이미 피해자이자 가해자이고 공범인 셈이다.

너무 고상한 척은 할 필요 없다.

 

나는 나 자신과 내 생각들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표현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Blog를 운영하고, 

내가 제공하는 컨텐츠들은 거의 전체 공개이다. 

처음부터 모르는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 Blog를 시작했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어느 정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 같다.

 

아쉽게도 나는 컴퓨터 분야에 뛰어난 재능과 능력이 없지만,

우리나라에 사는 컴퓨터 천재가 무례한 장난(?)으로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켜 준다면,

머지않아 한국형 SNS 커뮤니티가 만들어 질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테블릿 PC이나 스마트폰은 장식품이 아닌

빠른 정보습득과 소통의 도구가 되어 

이용자들이 지속적으로 컨텐츠들을 만들어 줘야 한다.

 

비단 IT 뿐만은 아니라 사회 전 영역에서 변화는 필요하고,

새로운 커뮤니티들과 컨텐츠들은 지속적으로 나올 것이다.

개인 정보 유출이 개인의 인권과 사생활을 침해 하는 것은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인터넷을 안 할 수는 없다.

내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익명성을 이용한 개념 없는 네티즌들이다.

누군가의 친구가 되고 싶으면 자신의 이름과 소개를 먼저 해야 한다.

그게 예의이다.

 

상업적 목적이 아닌 일촌신청은 언제든지 환영이다.

근데 요새는 아르바이트 모집이나 자사 홍보를 위해 일촌신청을 한다.

다들 진짜 열심히들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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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화속으로 - 71-Into The F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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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상관없이 군대를 가본 남자들이라면 공감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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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화속으로 - 71-Into The F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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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적인 것은 아니지만,

6월에는 6.25 전쟁을 소재로 한 한국영화들이 자주 개봉한다.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달이자, 오래 전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고 의로운 피를 흘렸던 6월.

반 세기가 지나서 이젠 잊혀진 전쟁처럼 느껴졌지만,

2010년는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재확인시켜 준 한 해였다.

그리고 그 날의 비극을 잊지 말라는 죽은 자들의 외침이었다.

 



 

"학도병은 군인인가? 군인이 아닌가?"

 

북한군의 기습 남침에 남한군의 패색이 짙던 1950년 6월.

포항을 지키던 남한군 강석대 대위는 상부의 지시로 낙동강 전선으로 이동할 것을 명 받는다.

그러나 상부의 지시더라도 포항을 사수하려는 의지가 강한 강석대 대위는,

중대장 오장범을 비롯한 71명의 학도병들에게 포항을 사수해 줄 것을 부탁하고,

지원이 필요할 시에는 언제든지 무전으로 연락하라고 말한다.

한편, 승승장구하며 포항으로 진격하는 북한군 부대장 박무랑은,

소수의 학도병들만이 저항하는 학교를 점령하려 진군한다.

 



 

"너희들의 조국이다, 반드시 지켜낼 것이라 믿는다."

 

<신라의 달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의 차승원은

올해 가장 인상적인 연기를 한 배우 중 한 명이다.

그의 연기성장은 대단했고 앞으로 그가 국내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서의 연기가 가장 좋았다.

 

<말죽거리 잔혹사>의 권상우는 괜찮은 연기를 보였다.

연기실력에 비해 저평가된 배우이지만

그건 자신이 자초한 일이라 어쩔 수 없다.

여긴 할리우드가 아닌 한국이다.

그는 영화보다 TV드라마 배우에 가깝다.

 

아이돌 스타 최승현(T.O.P)은 정직한 연기를 했다.

아직 많은 대사를 소화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는 것이 분명하여,

표정연기로 자신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그러나 국내 영화제에서 상을 받을 만한 연기는 아직 아니었다. 

 

<장군의 아들>, <고스트 맘마>, <남자의 향기> 김승우는 배역이 가장 잘 어울렸다.

그의 장점인 강한 남성적 이미지와 연기가 돋보였고,

그의 마지막 대사는 짧지만 인상적이었다.

 

<똥파리>의 윤승훈과 <구타유발자들>의 신현탁, <거침없이 하이킥>의 김혜성도 좋은 연기를 했다.

박진희와 김성령은 특별출연 했는데, 너무 짧아 아쉬웠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의 이재한 감독은 멜로와 액션에 어느 정도 소질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미국에서 자라고 영화를 배웠지만 한국인의 감성과 센스를 가졌고,

개봉 초기 논란이 되었던 'Sea of Japan'으로 깨달은 점이 많을 것이다. 

앞으로가 기대되는 감독이다.

 



 

"12시에 여서 다시 만납시다."

 

<태극기 휘날리며>에서도 볼 수 있듯이

당시 학도병들은 수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한 남한군의 고육지책이었다.

그들은 총 쏘는 방법만 배우고 현역 군인들과 같이 즉시 최전선에 배치되었다.

생각하면 얼마나 기가막힌 일인가?

사춘기의 청소년들을 전쟁터로 데려가 총 한 자루 쥐어 주고

최전선에서 잘 훈련된 북한군을 상대로 조국을 위해 싸우라고 하다니!

전쟁에는 이유불문이 없다하더라도 그들은 너무 어렸다.

 

시대가 많이 변했기에,

영화에서 학도병들이 어머니를 그리워 하는 모습들을

오늘날의 청소년들이 보면 어색한 기분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시대에 상관없이 군대를 가본 남자들이라면 공감 할 것이다.

부모님과 친구들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미안하다."

 

나는 대부분의 군 생활을 군단 정훈공보부(군 언론기관)에서 복무했다.

하루 평균 2~3건이 넘는 크고 작은 사고들이 예하 부대로부터 올라왔고,

북한군의 도발이나 그 외 타 군 사건, 사고를 정리하여 보고했다.

전쟁이 터지지 않아도 군인들은 다치거나 죽었다.

대부분 국방의 의무를 위해 입대한 병사들이다.

때론 같은 군인으로서 서글퍼졌다.

"그들을 기다리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었을 텐데.."

 

국방의 의무란 무엇인가?

군복만 입었다고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 속 깊이 가족과 친구들을 비롯한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겠다 다짐하고,

나라의 안전과 보호를 위해 목숨도 바치겠다는 투철한 정신이 의무를 만든다.

좋은 싫든 군대에 와서 이것을 깨달았다면 국방의 의무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군인이다.

 

교전으로 인하여 서해에 잠들고 포격에 산화한 군인들과

행군 도중 운전병의 실수로,

어이없는 총기사고로,  

아니면 개인 부주의나 지휘관의 부주의로,

다치거나 죽은 군인들은 젊은 목숨을 바쳤다.

자랑스럽고 명예로울 수 있겠지만,

억울하거나 원통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 때문에 국민들은 오늘과 내일을 산다.

 

수많은 사람들과 군인들이 이 나라를 위해 죽어갔다.

무섭고 두려워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참았고,

자신을 기다리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있었기에 더욱 물러설 수 없었다.

지원 병력을 요청했지만 지원 병력은 언제 오는 지도 모른 채 그저 싸웠다.

설사 그들의 손에 총이 없었더라도 전투상태가 아니었더라도,

군인들은 국민들을 대신하여 총알과 포탄을 맞아야 했다. 

 

그들에게 말한다.

"고맙고,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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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집권플랜>을 읽고 리뷰를 남겨주세요
진보집권플랜 -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하다
조국.오연호 지음 / 오마이북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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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의 오연호 기자와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조국 교수의 대담집이다. 스스로 ‘진보·좌파’라고 칭하는 두 사람이 만나서, 현실적인 근거를 들어 민주·진보세력의 재집권과 그에 따른 중·장기적 대안들을 솔직하게 대화한다.

  손에 닿는 책의 감촉이 좋았고, 적당한 페이지수라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나온 진보 논단이기 때문에, 현재 한국 정치계에 있어서 진보 세력의 위치와 상황들을 알 수 있고, 진보의 미래를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계속 ‘장례식 모드’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두 거인은 갔습니다. 두 분은 자신의 몫을 다했습니다. 할 만큼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이제 살아 있는 사람들이 대중의 고통이 어디에 있고, 그 고통을 풀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믿음직한 사람·조직·세력을 대중의 눈앞에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명박은 물론, 김대중과 노무현을 넘어서는 가치가 무엇인지 분명히 정립하고, 그 가치를 실현할 세력을 형성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세상은 바뀌지 않습니다. <33p>

  민주·진보 세력(책에는 개혁·진보 세력이라 표현하지만 난 이 표현이 더 좋다)의 거목이었던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는 충격과 동시에 민주·진보 세력의 위기였다. 이후 선거철만 되면 뚜렷한 리더와 끈끈한 단결이 부재하여 국민들에게 감정적 호소와 상황적 반사이익만을 노렸고, 롤러코스터와 같은 패배와 승리를 반복했으나 전체적으로는 패배에 가까웠다.

  또한 2007년 대선참패 이후 고질적인 내부분열과 집권 세력을 견제하는 것이 아닌 교착하고, 대화와 타협보다는 생떼와 헐뜯기에 급급한 민주·진보세력을 보면 무척 답답하다. 1970~80년대에 국민들의 편에서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고 독재정권에 맞서 싸운 민주투사들과 ‘386세대’들은, 입으로는 국민의 기본권 수호와 권익을 말하면서 행동은 보수적이다. 지금까지 나는 진보를 흉내 내는 사람들은 많이 봤지만 진보다운 진보를 별로 보지 못했다.

  저는 진보·개혁 진영이 재집권을 하면, 이후 10년을 연속해서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많이 바뀌었어요. 그 10년간 사람들 의식이 바뀌다 보니 이명박 정권 들어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 거죠. 진보·개혁 진영이 재집권을 한다면 처음 1~2년 동안 어떠한 제도적 개혁을 할 것인지는 물론, 대통령 임기 중간에 있는 선거에서 어떻게 이겨 진보·개혁 진영을 강화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영악할 정도의 전략을 짜두어야 합니다. <311p>

  민주·진보 세력은 이미 수구·보수 세력의 문제점들은 알고 있었고 그에 따른 대안들과 정책들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지만, 추진력과 결단력이 부족하여 지난 집권 10년 동안 지지했던 국민들의 바람과 요구를 외면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 대안들과 정책들을 다시 제시하니 한심하다. 하긴 그것들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았으니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결론적으로 아직 그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책을 읽고 있으면 진보는 마치 아직 개봉일이 잡혀있지 않은데 홍보만 열심히 하고 있는 블록버스터급 영화처럼 느껴진다. 과연 2012년이나 그 이후 빠른 시기에 진보가 집권할 수 있을까? 변수는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상당히 전망이 어둡다. 국민들은 자신들의 삶이 불안하다고 느끼면 변화보다는 안정에 먼저 관심을 둔다. 물론 지금의 집권 세력도 국민들에게 많은 불안감을 주고 있지만, 진보가 집권하면 달라질 것이라 낙관할 수 없다. 조국 교수의 말처럼 정말 진보가 국민들에게 밥을 먹여주고, 반값 아파트, 반값 등록금, 일자리 창출, 정의로운 사회를 만든다는 확신이 없는 이상, 진보를 지지할 이유는 없다. 국민들은 이미 보수와 진보에게 여러 번 속았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투표는 하겠지만 그리 큰 신뢰를 주지 않는다. 차라리 국민들이 직접 일어나 나라를 바꾸는 게 더 빠를 것이다.

  보수의 정책을 반대하는 것만이 진보라 말할 수 없고, 보수의 정책을 찬성한다고 진보의 정체성을 잃는 것이 아니다. 진보는 무엇을 위한 반대와 찬성인지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이는 보수도 마찬가지인데,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 정치계는 국정 현안에 대한 찬성과 반대가 소신과 견제가 아닌, 지나친 상호비방과 중상모략에서 비롯된다. 서로의 정책과 의견을 얍삽하게 공격하여 국민들의 눈과 마음에 인상적인 모습을 각인시키려는 정치쇼가 너무 작위적이다. 또한 보수와 진보가 서로 국민을 위한다고 정책들과 대안들을 제시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둘 다 국민을 위한 것일 때도 있고, 둘 중에 하나나 둘 다 아닐 때도 있다. 보수의 강점은 법과 원칙의 준수이고, 진보의 강점은 인권과 사랑의 실천이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의 보수와 진보는 그 강점을 살리고 있는가? 서로 집권하려 들기 전에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이 책은 어려운 책이 아니다. 그동안 진보에 대해 몰랐거나 더욱 잘 알고 싶다면, 쉽게 읽을 수 있다. 조국 교수는 상당히 열린 시각을 가지고 있고 보수와 진보를 바라보는 관점이 예리한 편이지만 신선하지는 않다. 물론 그의 학문적, 정치적 소신이겠지만, 이미 많은 진보주의자들이 말해왔던 것들을 신선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허깨비의 반복일 뿐이다. 혹시라도 그가 학자와 정치인 사이를 갈등한다면 학자의 길을 계속 걸으시라고 권고하고 싶다. 故 노무현 대통령도 정치인 유시민에게 “당신은 정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듯이, 학자는 학자의 위치에서 소신을 말하는 것이 더 아름답고 멋지다. 난 ‘제2의 정운찬’을 보고 싶지 않다.

  예전에 내게 누군가가 내 블로그의 글들을 보고 “진보적인 글을 쓰시네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도 내가 쓴 글들을 다시 보니 진보적인 성향의 글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진보이기 때문에 그런 글들을 쓰지 않았다. 그리고 어디에서도 나 스스로가 진보이거나 보수라 말하지 않았고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주관 없는 실용주의와 얍삽한 기회주의를 표방하는 약아빠진 중립도 아니다.

  굳이 말하면 나는 ‘계몽’(啓蒙)이다. 보수와 진보는 장단점이 있다. 진보와 보수 중 어느 한쪽이 집권을 해도 다른 한쪽을 무조건 무시하거나 정치적으로 반대하면 오늘날과 같은 소통이 부재한 시대에 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중립은 더더욱 안 된다. 중립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스스로 중립이라고 말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다. 내가 그동안 보수와 진보에 관련된 책들과 자료들을 보면서 느낀 것은 보수와 진보를 아우를 수 있는 단어는 ‘계몽’뿐이었다. 그래서 나 스스로 계몽주의자(Enlightener)라 칭했다.

  나는 18세기와 같은 ‘계몽’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눈과 마음을 갖는 ‘계몽’을 꿈꾼다. 물론 나의 소신과 주관에서 비롯된 언행과 글이겠지만, 그것 역시 어떤 하나의 관점일 것이다. 보수이거나 진보일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무엇일수도 있다. 선택은 읽는 사람과 듣는 사람과 보는 사람에게 있다. 다만 나는 오늘도 ‘계몽’을 위해 공부하고, 내가 말하며 썼던 글과 같이 사람들과 대화하며 삶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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