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백 모중석 스릴러 클럽 21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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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약(Tell No One)',  '영원히 사라지다(Gone for Good)' , '단 한 번의 시선(Just One Look)' , '마지막 기회(No Second Chance)' , '숲(The Woods)'... 누군가에겐 익숙한 이름들 이겠지만 누군가에겐 아직은 낮설음 그 자체로 다가오는 이름들이다. 에거서 크리스티, 코난 도일, 존 그리샴, 스티븐 킹에 이르기까지... 누군가가 이들과 함께 당당히 이름을 올려도 좋을 작가의 이름을 들려주었다. 그의 이름은 바로 할런 코벤이다. 하지만 그의 이름, 그리고 그와 함께하는 작품들이 아직은 내겐 낯설음 그 자체이다. 할런 코벤! 낯설음으로 시작했지만 미스터리 추리소설의 대가들, 그 익숙한 이름들과 나란히 아니 가장 앞에 이름을 남길 수 있을지 나의 손에 들려있는 이 책 <결백(The Innocent)>을 조심스레 펼쳐본다.

 

'처음으로 세계적인 미스터리 문학상인 에드거 상, 셰이머스 상, 앤소니 상을 모두 석권한 스릴러 작가'라는 그에 대한 소개가 이채롭다. 아니 시선을 확~ 사로잡는다. 처음 접하는 작가의 작품을 만나는 일은 한마디로 즐거움이다. 낯설음으로 시작해서 그에게 빠져드는 매력을 찾아내는 일, 그 자체가 특별함을 만들기에... 할런 코벤, 낯선 작가이기에 그에 대해서나 그의 이전 작품들에 대해 찾아보게 된다. 그리고 그의 작품들을 접했던 다른 독자들의 평가도 함께... 할런 코벤이라는 이름앞에 익숙했던 미스터리 스릴러 작가의 이름들이 있다. 아니 그들의 이름 앞에 할런 코벤이라는 이름이 있다. 독자들의 그에 대한 평가가 바로 그렇다. 미스터리 스릴러 작가라는 수식앞에 가장 먼저 존재하는 이름, 할런 코벤! 그렇게 이 작품 <결백>을 시작한다.

 

당신은 그를 죽일 의도가 없었다. 스무살의 맷 헌터의 성장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한다. 그리고 우연하게 그를 찾아온 불행, 그리고 예기치 못한 살인. 그로 인해 맷 헌터의 삶은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변하고 만다. 4년간의 수감생활, 아버지의 죽음, 교도소내의 폭행... 수많은 고통을 견디고 출소하게된 맷 헌터, 또 다른 인생의 반전을 기대하며 그는 빛의 세상속으로 다시 나오게 된다. 그리고 9년 후, 맷 헌터에게는 특별한 일들이 찾아온다. 아내 올리비아의 임신사실을 알게 되고 이제 그에겐 행복의 시간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처럼 보인다. 맷 헌터, 그의 기구했던 젊은 날은 이제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처럼....

 

호텔방의 여자. 우아한 드레스 차림으로 침대에 앉아 있는 여자. 사실 그녀의 머리는 갈색이었다. 백금색 머리는 가발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올리비아. 바로 그의 아내였다.

 

휴대폰은 진동한다. 그리고 당신은 응답한다. 아내의 임신, 태어날 아이를 위한 보금자리, 이제 그에게 행복의 시간이 다가오려 한다. 그때, 그에게 전송된 한장의 사진. 허름한 모텔과 낯선 모습의 아내의 모습이 담긴 사진한장으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아내의 행적을 캐어내기 위해 사설탐정을 고용하는 맷 헌터. 그리고 또 다른 이야기가 그 곁에서 펼쳐진다. 세인트 마거릿 여자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한 수녀의 죽음. 맷 헌터의 어린시절 친구이기도 한 주검사 수사관 로렌 뮤즈가 풀어가는 또 다른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자신의 친엄마를 찾는 소녀, 엄마를 죽인 살인자를 찾아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하겠다는 소녀, 죽은 메리 로즈 수녀, 그리고....또 한 사람... 

 



<결백>은 할런 코벤, 그와 만난 첫 작품이다. 그와의 첫 인상을 표현한다면 '숨 막힌다. 시선을 뗄 수 없다. 매력적이다.' 라고 말하고 싶다. 500페이지를 훌쩍 넘기는 무거운 두께를 지닌 책이지만 한번 손에 들고 보면 내려놓을 수 없는 마력?을 지닌 작품이다. 젊은 시절의 단 한번의 실수가 가져온 아픔, 새로운 삶을 꿈꾸려는 주인공에게 찾아온 갑작스런 한장의 사진, 그리고 주인공의 이야기와 전혀 상관 없을것 같았던 다른 사건과 이야기들이 얽히고 설키면서 만들어가는 퍼즐이 주는 특별한 재미가 압권인 작품이다.

 

미스터리 추리 소설의 재미는 누가 뭐라해도 반전의 묘미일 것이다. 마지막 반전을 향해 치닫는 동안에도 우리는 할런 코벤이 그려놓은 절묘한 미로속에 빠져 헤어나올수 없다. 절묘하게 연결된 예상치 못한 사건과 사건, 독자들은 그속에서 뒤통수를 그에게 몇번이고 내놓아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 퍼즐이 제자리는 찾는 순간, 거침없이 또 한번의 무지막지한 할런 코벤의 일격과 마주하게 된다. 강력한 흡입력과 플롯의 구성! 그의 작품이 주는 또 다른 매력이 바로 그것이다.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면서도 그 반전조차 반전이 아닌 트릭으로 만들어버리는 그가 가진 특별한 플롯 구성이 돋보인다. 그렇게 우리는 책속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

 

그의 작품들에 대해 살펴보면서 이전 작품속에 담긴 내용과 이번 작품 <결백>속에서 찾아낸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책속의 주인공들이 특별할 것 없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가 중점을 두는 부분은 그런 인물들이 가진 의외의 관계 혹은 그들의 삶 이면에 감추어진 진실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한번의 시선] 속에는 한장의 사진과 남편의 실종이, [마지막 기회]에서는 유괴된 딸을 찾는 아버지가, [영원히 사라지다]에서는 행방불명된 형을 찾는 동생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리고 이 작품속에서도 평범한 남자 멧 헌터와 그의 아내 올리비아에게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처럼 특별한 영웅의 등장이나 거대한 스케일이 아닌 작고 평범함 속에서 특별함을 꼬집어내는 흡입력있는 작품을 만드는 작가의 모습이 바로 할런 코벤임을 느끼게 된다.

 

소름 끼치는 서스펜스, 잊히지 않는 캐릭터, 그리고 충격적인 반전. 히치콕마저 아마추어처럼 보이게 만드는 작품!  포브스 매거진은 이 작품 <결백>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짧지만 명확하고 가장 간결한 표현이 아닐까 생각된다. 재미와 반전을 넘어 그가 만들어낸 평범한 이들이 색다른 캐릭터로 재탄생한다. 히치콕마저 아마추얼 보이게 만든다는 표현이 절묘해보인다. 댄 브라운은 그를 진정한 스릴러의 거장이라 칭송했다고 한다.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장르의 대표적인 작가들 앞에 그의 이름이 가장 먼저 앞서야 한다던 한 블로거의 말이 옳았음을 책을 내려놓으면서 깨닫게 된다. 할런 코벤, 처음 <결백>을 만나기전 던져졌던 물음표(?)는 이제 확실한 느낌표(!)로 다가온다. 그리고 다른 그의 작품들을 만난 후 그 믿음은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히치콕을 아마추어처럼 보이게 만드는 그의 매력과 오래도록 함께 할 수 있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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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ing
장현 지음, 김형근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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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이'의 가장 이상적인 외모에 대한 정답은 무엇일까? 나는 그 해답이 영화 [캐스트어웨이]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이는 이래야 한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흔하고 평범해서 투명인간과 같은 존재이지만, 나에게는 세상에서 나를 위로해줄 수 있는,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존재. 그 존재를 [캐스트어웨이]식으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냥 배구공이지만 나에게는 윌슨!'   - P. 54 , [윌슨] 中에서-

 

나에게는 윌슨! 이 멋진 말로 <사랑 ing>를 시작하고 싶다.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던 말이 바로 이것이었다. 이 책의 제목을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사랑中'이라고 해야할까? '사라~~~ㅇ'이라고 해야할까? '사랑 진행형'이라고 해야할까? 하여튼 이 가을, '사랑' 이라는 이 작은 단어가 밀려오는 추위를 따스하게 감싸줄 수 있을 거라는 유혹과 함께 집어든 책이 바로 <사랑 ing>이다. 왜 사랑했을까? 왜 헤어졌을까? 지금도 사랑하고 있을까? 지금 나의 사랑은? 하는 물음들에 작은 답을 전해줄것만 같은 예쁘고 따스한 이 책과 그렇게 만난다.

 

<사랑 ing>속에는 4개의 Scene속에 76편의 작고 소소한 사랑 이야기들이 피어난다.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인양 들리는 '네가 나 때문에 화가 났으면 좋겠어'를 시작으로 해서 '사랑해서 아프다', '이별의 속도'를 지나 '어린아이의 언어'속으로 빠져든다. 아프고, 슬프고, 지겹고.... 사랑한다. 누군가의 어린아이같은 순수한 사랑에서부터 유미의 빈칸채우기에 이르기까지 마음속에 담겨져있는, 말하지 못한 사랑의 또 다른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네 눈길에 닿지 않는 곳에 내 눈길이 닿는 일. 이제부터 너는 네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너를 나로 인해 알게 될 것이다. .... 내가 별 생각없이 내뱉는 푸념이나 너를 칭찬하는 말이 네가 알지 못했던 너를 비춰주는 거울이 될것이다. 나는 내 편견이나 바람때문에 거울이 왜곡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하지만 너무 깊은 상처가 있다면 그런것은 보여주지 않는 그런 거울이고 싶다.' - P. 59 , [두피에 난 점] 中에서 -

 

사랑을 시작한 여자의 가슴에는 날마다 무지개가 뜬다고 했던가? 그 무지개 같은 사랑의 모습들속에는 다양한 색깔들이 숨겨져 있다. 질투가 담긴 어린 아이같은 붉은 색도 있고, 유자차에 담긴 사랑같은 노란색도, 행복이 깨어질까 두려워하는 검은빛깔도 담겨있다. 위험 앞에서 서로를 위하는 순수한 흰색이 있고, 이별로 인해 생긴 마음의 상처를 닮은 진한 커피색도 있다. 그렇게 <사랑 ing>는 수많은 이들의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섬세한 색깔로 그려내고 있다.

 

가을엔 무척이나 '사랑'이라는 말에 잘 현혹된다. 떨어지는 낙엽, 차가워지는 바람, 그리고 외로움, 아니면 사랑이 주는 외로움... '사랑해서 외로웠다' 라는 이정하 시인의 시처럼 사랑하면서도 외롭기만한 이들에게 다른 사람들의 사랑이야기는 목마른 이에게 내려주는 빗줄기와 같을 것이다. 그들은 어떤가? 그들은 사랑의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갔을까? 잠시 고개를 들어 창문너머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보고픈 열망. 그것이 어쩌면 가을, 사랑을 이야기하는 책에 우리가 다가가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사랑 ing>에 빠져드는 이유일것이다.



'막 연애를 시작한 커플이나 누군가를 짝사랑하는 사람은 그 대상을 마치 엄마가 갓난아기를 바라보듯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 P. 87 , [의미부여] 中에서 -

 

얼마전 TV동화에 나온 말중에 이런 이야기가 떠오른다. 결혼을 하고 시간이 흐른뒤 서로에게 무관심하고 사랑하지 않는 가족이라는 관계만을 유지하는 부부에게 필요한것이 무엇인가 하는... 그 답은 바로 '서로 아껴주는 것' 이라고 한다. 연애할때나 결혼 초기에는 서로 상대방의 시선을 쫓아 먼저 해주고 힘들까봐 애써서 기꺼이 해주다가도 시간이 지난후 언젠가부터는 상대방이 아닌 자신의 몸을 아끼는 맘이 더 커진다고 한다. 그때부터는 모른척하고 나의 시선에만 모든것을 고정시키는 이기적인 모습이 되어버린다. 갓난아이를 바라보듯, 다칠까 힘들까 아플까 시선을 맞추고 모든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는 초심, 사랑의 초심을 <사랑 ing>를 통해서 새롭게 느낄 수가 있다.

 

책의 내용도 그렇지만 책속에 담긴 일러스트가 마음을 따스하게 이끈다. 손목에 줄을 묶고 내달리는 그와 그 뒤를 달리는 그녀, 사랑의 외줄을 타는 듯한 그녀, 왠지 외로워보이는 머플러 소녀.... 풋풋함과 따스함이 묻어나는 일러스트가 매력적이다. 이야기가 담겨있는 그림을 그리고 읽는 이로 하여금 상상하게 만드는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는 김형근 작가의 작품들이 사랑이라는 소재를 더욱 매력적이고 빛나게 만들어준다.

 

코에 여드름이 났다고 해서 턱에 사라졌던 여드름이 다시 생기지도 않는다. 하지만 마음의 상처는 다르다. 다 아물었다고 생각했던 상처들이 다른 상처들로 인해 다시 살아난다. - P. 137 , [재생] 中에서 -

 

사랑이 언제나 예쁘고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가끔은 따가운 가시를 가지고 있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지겨움이라는 감정의 골짜기를 만들수도 있다. 사랑해서 슬플수도 있고 이별해서 아플수도 있다. 이 가을 '사랑'이라는 이름이 담긴 책에 자꾸 기웃거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궂이 아프지도 지겹지도 않지만 지금 이 사랑을 더욱 굳건히 지키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날씨때문에 조금은 식어버린 사랑의 온도를 조금만 더 올려보고 싶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따스한 그림과 더 따스한 이야기가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사랑 ing>는 그런 시간을 우리에게 선물해준다. 사랑하는 그녀에게 말하고 싶다. 아프고 슬프고 가끔은 지겹지만 그래도 사랑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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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금서
김진명 지음 / 새움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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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은 최초라는 말을 참 좋아하는 듯 싶다. 일제 침략기를 거쳐 남북전쟁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산하에서 끼니조차 해결하지 못해 허리띠를 졸라매었고 경제 발전을 위해 빨리빨리를 외치며 지금까지 앞만보고 달려왔다. 가난의 대물림을 죽기보다 싫어 하던 부모들은 아이들을 책속에 묻어버렸고, 경제발전의 그림자는 돈의 노예가 되어버린 대한민국을 창조했다. 돈 그리고 권력을 향해 너나없이 달려들던, 세계 어느나라보다 뛰어나다면, 최초에 최고라면 그 어느것에건 목을 메는 사람들의 열정?이 살아숨쉬던 20세기, 다시 한세기를 넘기고 이제서야 우리는 우리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본다. 정녕 뒤돌아봄 없이 달려온 길이기에 걸어온 길속에 잊고 있던 아픔과 고통으로 일그러진 그림자를 보고 이제서야 조금씩 후회와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해 미리 생각하게 되는 시간을 갖게된다.

 

우리가 그토록 쉼없이 달려온 이유중 하나는 아픔을 잊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아직도 스포츠에서 한일전이 벌어진다 하면 온국민이 눈과 귀를 모으고 응원을 한다. 일본한테 만큼은 질수없다! 국민 모두의 마음일 것이다. 누가 자격지심!이라고 하면 그렇게 받아들이자, 하지만 어쨌든 일본한테는 질수없다! 올해는 안중근 의거 100주기를 맞는 해이기도 하다. 그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활발하지만 얼마전 매스컴에 나온 그의 동상이 설 자리가 없다가 어렵사리 한 지자체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는 소식에 씁쓸함을 감출수 없다. 아직도 그의 유해는 발견되지 않았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기꺼이 한몸 바친 그의 혼이 아직도 타국땅을 헤메이고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메여온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이것이...

 

친일인명사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4389명의 친일인물에 대한 명단을 발표했다. 10년여에 걸친 그들의 노력은 현재 발표와 관련한 찬반 양론에 맞서 그 의미마저 퇴색하게 만들고 있다. 아직도 사회 고위층, 지도층에 뿌리내려진 친일후손들의 일그러진 역사인식으로 우리 사회는 또 다른 분열의 시간속에 놓여지고 있다. 인명사전을 반대하는 그들의 논리는 일반적인 것들이다. 친일의 기준은 무엇이고, 그 이후 공과에 대한 인정은 어떻게 할 것인가? 반성이 없는 발전과 용서, 화해는 있을 수 없다. 자신의 부모, 조부모의 잘못에 대한 반성이 있고 역사가 올바로 선 이후 그들이 대한민국을 위해 땀흘린 노고는 치하되고 인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일본, 중국, 북한, 그리고 대한민국.... 21세기를 달려가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는 역사의 시간속을 헤매이고 있다.

 

<천년의 금서> 김진명 작가의 이 작품과 마주하면서 앞서 언급했던 많은 사례와 사회적이슈로 자리하고 있는 문제들이 먼저 떠오른다.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독도문제와 역사왜곡, 북한의 역사인식 문제... 그리고 무엇보다 대한민국 역사학계와 보수라 자청하는 국론 분열을 자극하는 친일, 친미에 몸바치고 있는 많은 이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죽은 자가 남긴 다섯 개의 별자리, 실종자가 남긴 한 통의 메일' 사서삼경에 매달려 죽은 대학 여교수의 죽음에서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자살로 단정지어졌지만 자살이라 보기 힘든 상황에 목반장은 스스로 사건을 파헤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여교수 김미진의 친구인 ETER의 물리학자 이정서와 만나게 된다. 그의 죽음이 타살이라 확신하게된 정서는 또 다른 친구 은원의 실종 사실을 듣게 되고 우연히 과거 은원과 사용하던 웹하드에서 그녀가 사라진 실마리를 찾고 그녀를 따라 중국으로 떠난다.

 

'나는 오성의 집결을 관측하고 기록한 흔적을 보고 동국이 이미 큰 나라를 이루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로부터 천 년 후 이들의 자손이 주를 찾았으니 그 내력이 중화에 못지않으리라. 놀라운 일이로다! 놀라운 일이로다!'   - P. 128 -

 

미진이 죽음 직전 연구하던 내용은 '역사 기록의 천문학적 진실', 그리고 은원의 실종 동기는 '韓'의 실체와 관련된 것이다. 정서는 물리학자답게 사건의 해결을 위해 과학적 지식과 논리적인 추리를 동원한다. '韓'의 유래를 찾기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 은원, 그리고 그녀가 벌이는 이 일은 미진을 죽음으로 까지 이끌게 된다. 그녀들을 위험으로 이끈 '韓'의 실체는 무엇이고, 은원에게는 어떤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그리고 미진은 누구에 의해 죽음을 맞게 된 것일까?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를 품고 정서는 중국 대륙에서 은원의 흔적을 찾아 헤메인다. 왕부의 [잠부론], [씨성본결] 그리고 사서삼경중 [시경]속에 담긴 '韓'의 의미를 찾는 정서와 은원은 역사의 시간속에 엉크러진 기나긴 미로를 뚫고 나올 수 있을까?



사실 요즘들어 김진명 작가의 작품을 선택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린 시절 만나보았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감동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그의 작품을 국수주의에 사로잡힌 글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도 어느 정도는 동감하는 부분도 있다. 그의 많은 작품들과 만났다. [한반도], [신의 죽음], [가즈오의 나라], [살수], [황태자비 납치사건].... 국수주의에 조금은 치우친 느낌도 있지만 그의 작품이 가진 매력은 우리가 잘몰랐고 잊고 있던 역사에 대한, 현실속에서 우리에게 지금쯤은 필요하고 인식해야할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근현대사, 혹은 과거 역사시대를 거닐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던 역사적 패배의식을 씻게 만드는 그 무엇이 바로 그의 작품의 매력일 것이다.

 

하지만 거대한 비밀, 그리고 그 비밀을 풀어가는 주인공들의 흥미진진하고 스피디한 이야기들이 후반과 종반에 가면서 허무한 마무리를 맞는다는 것이 이 작가의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이 라는것이 바로 안타까운 점이 아닐까 생각된다. 너무 일이 커졌네?하며 생각할때쯤 허무하게 끝나버리는 이야기 구조! 사실 이번 작품 <천년의 금서>를 들면서 망설이게 만들었던 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예전 작품에서 보이던 그런 아쉬움에 대해서 조금은 마음을 놓아도 좋을 듯 하다. 국수주의 라는 비판에 당당해지고, 마지막조금은 더 치밀하고 섬세해진 작품이라고 <천년의 금서> 이 작품을 말하고 싶다.

 

정서는 이미 왕부의 [씨성본결]과 강족과의 관계를 통해 중국에서는 역사가 바로 현실의 정치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 P. 218 -

 

책속에 담긴 정서이 느낌! 그 느낌을 지금 우리가 갖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중국의 동북공정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고,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 우기는 그들의 악의적 책동을 손놓고 지켜봐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어제였던가 가수 김장훈씨의 독도를 위한 기부 뉴스에 그래도 마음이 수그러든다. 냄비처럼 끊어오르다 금새 사그러지는 역사 인식과 태도가 아니라 김장훈씨와 서경덕씨처럼 지속적으로 우리의 입장을 올바르게 알리는 현실과 역사인식에 대한 태도변화가 어느때보다 절실한 요즘인것 같다. 책속에 담겨있듯이 나라의 이름속에 담긴 '韓'의 비밀을 알고, 찾는 것이 잃어버린 간도를 되찾고 타국에서 길잃고 헤메이는 독립운동가들의 넋을 위로하는, 더 발전된 대한민국을 만드는 시작이 되지 않을까? 문득 생각해본다.

 

"나라의 힘은 반드시 경제에만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밥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일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우리의 과거를 알아야 미래를 세웁니다. 우리의 조상을 찾는 일이야말로 자손을 위하는 가장 분명한 길입니다."  - P. 324 -

 

우리는 지금까지 돈과 권력을 위해 쉼없이 달려왔다. 이제 밥이 중요한 시대는 아니라 생각된다. 더이상 쓰라린 역사의 상처를 껴안고 보잘것 없어 보이는, 일제가 그려준 식민사관의 틀 안에서 역사를 돌아볼 것이 아니라 새로운 역사를 찾고, 우리 손에 쥐어진 것 안에서 새로운 사실을 깨쳐나가는 모습들이 필요한 것이다. 프랑스에 있던 직지심경과 외규장각 도서를 찾아내어 그 실체를 세상에 알려준 박병선 박사! 그녀가 얼마전 암선고를 받고 투병중이란 소식을 들은것 같다. 그녀의 빠른 쾌유를 빈다. 누구도 몰랐고, 찾지 않았던 우리의 소중한, 아니 세계의 소중한 유산이 지금도 어디에 얼만큼 어둠에 갖혀 숨겨져 있는지 모른다. 역사를 찾는일, 그것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도, 단 몇명 학자의 손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닐것이다. 모두가 눈을 크게 뜨고, 잘못된 오류를 바로잡고, 우리가 모르는 역사의 실마리를 찾으려 할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리라.

 

<천년의 금서>는 또 한번 우리에게 큰 충격을 전해준다.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대韓민국의 비밀, 역사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앞으로 우리는 어떤 역사인식과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새삼 생각해보게 만든다. 사계절이 변화하듯 정체함이 없이 우리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선물하는 김진명 작가에게 다시한번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식지않는 그의 열정에 찬사를 보낸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 많은 대한민국 비밀의 판도라 상자가 열리기를 희망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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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해피 데이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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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다 히데오와의 마지막 만남은 2008년 7월이다. [최악] 이라는 작품속에서 '역시~오쿠다 히데오' 하고는 그의 이름에 고개를 끄떡이던 것이... '나처럼 불행한 사람이 세상에 또 어디 있냐고??'로 시작해서 '안 좋은 일이 있다는 건 인생의 중심에 서있다는 증거야' 라는 말을 통해, 그만의 시선과 감각으로 우리의 힘겨운 삶을 편안하고 즐거운 맘으로 담아낼수 있었던 그 만의 힘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 바로 [최악]이었다. 그리고 일년여 '우리 집에 놀러오실래요?'라며 미소 짖는 한 소녀의 부름에 이끌려 그와의 만남을 다시금 준비하려한다.

 

오쿠다 월드속으로 빠져든다. 오쿠다 히데오를 말할 때 사람들은 경쾌함을 가장 먼저 손에 꼽는다. 평범해보이는 일상도, 특이할 것 없는 등장인물도 그의 손을 거치고, 그의 눈속에 잠시 들어갔다오면 특별한 그 무엇인가로 무장해 색다름을 갖게 된다. <오~해피데이> 속에는 여섯 가족의 이야기가 색다름으로 그려진다.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삼십대 중반에서 사십대 초반의 부부와 아이 두명 정도가 함께하는 평범한 가정이 등장한다. 우리 일상 속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고, 혹은 우리 가족의 이야기인양 지극히 평범한 그들의 이야기를 오쿠다 히데오는 어떻게 풀어나갈까.

 

각각 세명의 아줌마와 아저씨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마흔 두살의 전업주부 야마모토 노리코, 서른 여덟살의 평범한 영업사원 다나베 마시하루, 서른아홉살의 전업주부 사토 히로코, 서른 여섯에 명퇴에 이른 유무라 유스케, 서른넷의 주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오야마 하루요, 마흔 두살의 소설가 오쓰카 야스오가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전업주부에서 베스트셀러 작가에 이르기까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평범하면서도 특별할 것 없는 가족들의 모습이 색다르게 펼쳐진다.

 

우연한 기회 옥션에서 인터넷 경매를 하게 되고 쓸모 없어진 피크닉 테이블을 팔게 된 한 전업주부가 느끼는 새로운 삶의 기회와 즐거움을 그려낸 [Sunny Day]는 전업주부라는, 쓸모 없어진 테이블과 같았던 자신의 존재와 생활속에서 삶의 새로운 기쁨과 자신의 위치,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일깨우는 내용을 그린다. [우리집에 놀러오렴]은 서른 여덟에 아내와 별거하게 된 남자가 돌아보는 결혼생활, 그리고 다시 자신만의 공간을 꿈꾸면서 조금씩 아내에 대해서 이해해간다는 내용을, 홍보용 우편물에 주소와 이름을 입력하는 재택알바를 하는 서른 아홉의 전업주부의 상상속 일탈을 그린 [그레이프프루트 괴물]은 중년 부부들의 속마음을 잠시 들여다보는 시간도 선사한다.



결혼한지 6년 아내와 아들을 부양하던 서른 여섯의 가장은 하루아침 회사가 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이 소식에 새롭게 일을 시작한 아내와 입장이 뒤바뀌게 된다. '주부가 된 남편과 가장이 된 아내' 사이의 다툼이 아닌 이해의 시선을 오쿠다 히데오는 [여기가 청산] 속에 담는다. [남편과 커튼]은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고 자신만의 사업, 커튼 가게를 차기겠다는 동갑내기 남편과 아내의 이야기가 있다. 남편이 시작하는 새로운 일에 대한 아내의 불안, 하지만 듬직하게 남편의 모습에 행복은 더해가고... 마지막 이야기 [아내와 현미밥]속에는 어느날 갑자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부부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호화와 사치가 그 소재가 아닌 아내가 주장하는 로하스 식단과의 다툼, 위선을 폭로하려는 작가의 재미있고 따뜻한 이야기가 소개된다.

 

<오~해피데이>의 표지에서 웃고 있는 꼬마가 참 귀엽다. '우리 집에 놀러 오실래요' 하고 커다란 막대사탕 두개를 들고 썩쏘를 짖고 있지만 책을 내려놓고 난 후에야 그 녀석이 짖는 미소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다. 가족들의 이야기, 평범해 보이지만 여는 가정에서나 겪을 만한 작은 문제?들을 가진 그들의 이야기이기에 엉켜진 실타래를 풀기는 좀처럼 쉽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오쿠다 히데오는 그런 문제들을 가족들간의 말다툼 한번 없이 말끔하고 경쾌하게 풀어낸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깔끔히... '내가 이정도야~'라고 하듯 미소짓는 꼬마의 미소에 그제서야 고개가 끄덕여진다.

 

지극히 평범하다. 따지고 보면 어느 가정에서나 머리 꽤나 아플만한 고민과 작은 다툼들이 그속에 숨겨져 있다. 전업주부로 살아가는 아내들의 고민 그리고 새로운 것을 동경하는 일탈의 욕구, 실직과 명예퇴직에 대한 가장의 불안과 가족의 위태로움, 이혼이라는, 이제는 일상적으로 들리는 가정 불화 등 다양한 가족들의 고민을 오쿠다 히데오는 무거움과 두려움속에 담아두는 것이 아니라 여느때처럼 경쾌하고 활기차게 풀어내고 있다. '이거 너무 쉬운거 아냐?'하고 의문이 생길 정도로...

 

오쿠다 히데오. 그의 작품은 웃음이 있어 좋다. 배꼽잡고 쓰러질 정도의 엉뚱함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은 그 웃음뒤에 자리한 깊이있는 고민과 사색의 시간일 것이다. 웃음으로 해결하지만 결코 웃기지만은 않은 우리의 현실을 그토록 쉽게 웃음으로 해결하고 치유하는 그만의 손놀림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한참 웃고 나면 따뜻한 그 무엇인가가 가슴으로 부터 끌어오른다. 오쿠다 히데오 만이 그려낼 수 있는, 창조해내는 특별함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그의 전 작품 <최악>과 만난 후, 이런 말을 했었다. '당신에게는 더이상 최악은 없고 '최선' 만이 남게 될 것이다.'라고... <오~해피데이> 이 책을 내려놓으면서는 이런 생각이든다. '그들에겐, 우리 가족에겐 이제 행복만이 가득할 거라고...' 말이다. 영화 씨스터엑트에서 들리던 그 경쾌한 음악 '오 해피데이'처럼 가사는 아니더라도 그 경쾌함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오쿠다 히데오의 가족 이야기속에 이 가을을 맡겨보는 것도 참 좋을 것같다. 겨울의 문턱에서 밀려오던 차가움을 씻어낼 따스함을 느껴보고 싶다면 말이다. 마지막으로[Sunny Day]에서 노리코가 했던 말을 모두에게 전하고 싶다. '내게는 가족이 있다'... 오~ 해피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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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되어버린 남자
알폰스 슈바이거르트 지음, 남문희 옮김, 무슨 그림 / 비채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10명중 9명은 하루 독서시간이 채 10분이 되지 않으며, 성인 4명중 한명은 일년 내내 책을 한권도 가까이 하지 않는다.' 먼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들의 책에 대한 현실이다. 오늘도 수없이 많은 책들이 우리 주변에서는 넘쳐난다. 소설에서 자기계발서, 역사, 경제, 인문, 고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책들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그 어느것의 손도 덥석 잡으려 들지 않는 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하물며 책읽기가 취미?라는 사람들도 있으니...

 

왜? 라는 물음이 조금은 어색하기까지 하다. 나 자신 조차도 책과 가까이 하기 시작한 시간이 그리 오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빠서, 시간이 나지 않아서, 책을 들면 잠이와! 볼만한게 없던데.... 핑계도 여러가지겠지만 책과 친구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마음속 '여유'를 잃어버렸기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 쉼없이 뛰어가는 사람들속에서 뒤쳐지지 않으려 달려가지만 도전과 목표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발걸음은 왠지 무겁기만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여유란 찾을 길이 없어보인다. 책속에서 찾을 수 있는 색다른 도전과 삶의 지혜까지 던져 버릴만큼 우리 시대는 '빠름'과 '속도'란 병에 걸려버린 것일까?

 

반면 책에 미쳐버린 사람들도 있다. 애서가, 장서가, 책벌레, 책수집광, 독서광, 작가, 문필가, 편집자, 도서관 사서, 고서점가.... 사실 책에 미친 사람들이라지만 아직 그런 부류의 사람들과 만남을 갖아본 기억이 없기에 지극히 그들의 증상?이 어떤지 표현하기는 그렇다. <책이 되어버린 남자> 알폰스 슈바이거르트의 이 책에 대한 판타지는 자칭 혹은 타칭 책에 미쳐버린 사람들, 책과 사랑에 빠진 이들에게 바치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된다.

 

비블리 씨에게 있어서 독서란 하루도 빼놓을 수 없는 '습관'이 되었고, 나아가 하루라도 제때 충족시키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강렬한 '욕구'가 되었다.    - P. 67 -

 

<책이 되어버린 남자> 그의 이름은 '비블리' 씨이다. 벼룩시장에서 발생한 한 여인의 갑작스런 죽음, 그녀의 앞에는 <그 책>이라는 제목의 오래 되보이는 책 한권이 놓여있었다. 그녀는 '그 책' 앞에서 입술이 일그러지고 핏기가 사라지며 죽음을 맞이한다. 그 자리에서 '그 책'에 끌려 급기야 충동적으로 책을 훔치고야 마는 비블리씨! 애서가이면서 책에 미친 비블리씨, 어린시절부터 20년 넘는 세월 동안 책을 수집하고 함께해 온 그였지만 '그 책'을 만난후 갑자기 다른 책들에 대한 혐오감이 들기시작한다. 그리고 모든 책들을 고물장수에게 팔아버리게 된다. 그리고 매일밤 악몽에 시달리게 된다. 악몽속 주인공, 등장인물은 오로지 '그 책'뿐이었다.

 

비블리씨의 책에 대한 사랑은 자신이 갖고 싶은 책이라면 살인까지도 저지르는 것도 상상할 수 있었다. 책을 소유하겠다는 광적인 열정을 가진 비블리씨와 '그 책'과의 만남 이후, 계속되는 악몽으로 병원을 드나들던 그는 결국 어느날 입이 딱 벌어지고 귀를 찢을 듯한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그 책'이 되어버린다. 책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비블리의 운명은 수많은 사람들의 손에 옮겨다니게 된다.

 



 

자신의 집을 청소하던 청소부 여인과 그녀의 아이에게로, 다시 시립도서관에서 수집벽에 눈이멀어 가위를 집어드는 도서관장에게로, 출판사의 편집자, 출판을 거절당한 작가, 비평가, 책 수집광.... 등 책이 되어 책과 관련이 있는 혹은 책을 사랑한다는 그들의 손에서 손으로 옮겨진 '그 책', 비블리씨는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자신의 삶, 책의 생(生)을 느끼고 깨닫게 된다.

 

'책을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책꽂이에 고스란히 꽂아 두기만 하지 않고, 낮이고 밤이고 손에서 놓지 않아 손때가 묻고, 책갈피가 닳고, 메모가 깨알같이 뒤덮이게 만든다.' - P. 153 -

 

책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책의 납골당?을 소유한 부자 수집광의 책사랑일까, 비블리씨의 상상처럼 살인도 마다하지 않을 책에 대한 광적인 열정일까, 출판사 편집자인 저스틴 폴처-크라머 양의 베스트셀러작가와 무명작가를 편가르는 행동일까, 아니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양심의 가책도 없이 책에 가위를 집어드는 위선적인 도서관장의 모습일까. '그 책'이 되어버린 비블리씨의 책 여행에서 우리가 갖고 있던 책에 대한 사랑의 의미를 다시한번 되새겨보고 우리의 모습이 책속에 비친, 책을 사랑한다는 이들의 모습과 얼마나 닮아 있는지 거울을 들여다보듯 느껴보는 시간이 될것같다.

 

<책이 되어버린 남자>에서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는 사람이 책이 되어버렸다는 판타지적인 소재도 그렇지만 그 속에 담긴 일러스트도 한 몫하고 있다. 일러스트레이터로도 활동중인 독일 작가 알폰스 슈바이거르트의 '그 책'과 비블리의 여행은 독특한 느낌의 일러스트로 독자들과 책과의 거리를 좁혀주고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을 간직하고 있다. 덧붙여 비블리씨가 모아 두었다는 책에 관한 명언들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꼭 기억해두어도 좋을 느낌으로 다가온다. [P. 81~83]

 

'책은 가장 현명한 노인이요, 가장 용감한 대장부이다. 책은 가장 모성깊은 여인이요, 가장 사랑스럽고 귀여운 소녀이다. 일곱권의 책을 가진 사람은 더 이상 사람을 사귈 필요가 없다!' -뵈리스 프라이헤어 폰 뮌히하우젠 -

'좋은 책이란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 게 아니라, 무엇을 앗아가야 한다. 우리가 확신하는 어떤것을.' - 얀 그레스호프 -

'책장은 곧 그 사람이나 마찬가지이다. 나에게 당신이 가진 책들을 보여주면,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 줄 수 있다.' - 알프레드 마이스너 -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책일 경우, 첫눈에는 좋은 책이요 근사한 책일 때가 많다. 내가 책을 통해 배울 점을 찾는 경우, 그런 독자들이 찾아 주지를 않는다.' - 페터 빅셀 -

 

책을 사랑한 남자, 책에 미친 한 남자의 책에 대한 열정과 책이 되어 펼쳐진 여정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그 책'은 지금 어디에서 누군가의 손에, 아니 또 다시 누군가 그 책이 되어 사람들속을 헤메이고 있을까? 책에 대한 사랑, 책에 대한 열정이 가지는 올바르고 진정한 의미를 다시한번 되새기고, 책과 가까이 하지 않은 이들이라면 책속에 담긴 오래도록 기억되는 명언들을 통해 책과 가까이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이 책'을 내려놓는다. 단순히 책수집광이 아닌, 반대로 책을 증오하는 사람이 아닌 책을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더욱 많아지길 바래본다. 그리고 책과 가까이 할 '여유'가 들어설 작은 공간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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