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금서
김진명 지음 / 새움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나라 사람들은 최초라는 말을 참 좋아하는 듯 싶다. 일제 침략기를 거쳐 남북전쟁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산하에서 끼니조차 해결하지 못해 허리띠를 졸라매었고 경제 발전을 위해 빨리빨리를 외치며 지금까지 앞만보고 달려왔다. 가난의 대물림을 죽기보다 싫어 하던 부모들은 아이들을 책속에 묻어버렸고, 경제발전의 그림자는 돈의 노예가 되어버린 대한민국을 창조했다. 돈 그리고 권력을 향해 너나없이 달려들던, 세계 어느나라보다 뛰어나다면, 최초에 최고라면 그 어느것에건 목을 메는 사람들의 열정?이 살아숨쉬던 20세기, 다시 한세기를 넘기고 이제서야 우리는 우리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본다. 정녕 뒤돌아봄 없이 달려온 길이기에 걸어온 길속에 잊고 있던 아픔과 고통으로 일그러진 그림자를 보고 이제서야 조금씩 후회와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해 미리 생각하게 되는 시간을 갖게된다.

 

우리가 그토록 쉼없이 달려온 이유중 하나는 아픔을 잊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아직도 스포츠에서 한일전이 벌어진다 하면 온국민이 눈과 귀를 모으고 응원을 한다. 일본한테 만큼은 질수없다! 국민 모두의 마음일 것이다. 누가 자격지심!이라고 하면 그렇게 받아들이자, 하지만 어쨌든 일본한테는 질수없다! 올해는 안중근 의거 100주기를 맞는 해이기도 하다. 그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활발하지만 얼마전 매스컴에 나온 그의 동상이 설 자리가 없다가 어렵사리 한 지자체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는 소식에 씁쓸함을 감출수 없다. 아직도 그의 유해는 발견되지 않았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기꺼이 한몸 바친 그의 혼이 아직도 타국땅을 헤메이고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메여온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이것이...

 

친일인명사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4389명의 친일인물에 대한 명단을 발표했다. 10년여에 걸친 그들의 노력은 현재 발표와 관련한 찬반 양론에 맞서 그 의미마저 퇴색하게 만들고 있다. 아직도 사회 고위층, 지도층에 뿌리내려진 친일후손들의 일그러진 역사인식으로 우리 사회는 또 다른 분열의 시간속에 놓여지고 있다. 인명사전을 반대하는 그들의 논리는 일반적인 것들이다. 친일의 기준은 무엇이고, 그 이후 공과에 대한 인정은 어떻게 할 것인가? 반성이 없는 발전과 용서, 화해는 있을 수 없다. 자신의 부모, 조부모의 잘못에 대한 반성이 있고 역사가 올바로 선 이후 그들이 대한민국을 위해 땀흘린 노고는 치하되고 인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일본, 중국, 북한, 그리고 대한민국.... 21세기를 달려가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는 역사의 시간속을 헤매이고 있다.

 

<천년의 금서> 김진명 작가의 이 작품과 마주하면서 앞서 언급했던 많은 사례와 사회적이슈로 자리하고 있는 문제들이 먼저 떠오른다.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독도문제와 역사왜곡, 북한의 역사인식 문제... 그리고 무엇보다 대한민국 역사학계와 보수라 자청하는 국론 분열을 자극하는 친일, 친미에 몸바치고 있는 많은 이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죽은 자가 남긴 다섯 개의 별자리, 실종자가 남긴 한 통의 메일' 사서삼경에 매달려 죽은 대학 여교수의 죽음에서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자살로 단정지어졌지만 자살이라 보기 힘든 상황에 목반장은 스스로 사건을 파헤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여교수 김미진의 친구인 ETER의 물리학자 이정서와 만나게 된다. 그의 죽음이 타살이라 확신하게된 정서는 또 다른 친구 은원의 실종 사실을 듣게 되고 우연히 과거 은원과 사용하던 웹하드에서 그녀가 사라진 실마리를 찾고 그녀를 따라 중국으로 떠난다.

 

'나는 오성의 집결을 관측하고 기록한 흔적을 보고 동국이 이미 큰 나라를 이루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로부터 천 년 후 이들의 자손이 주를 찾았으니 그 내력이 중화에 못지않으리라. 놀라운 일이로다! 놀라운 일이로다!'   - P. 128 -

 

미진이 죽음 직전 연구하던 내용은 '역사 기록의 천문학적 진실', 그리고 은원의 실종 동기는 '韓'의 실체와 관련된 것이다. 정서는 물리학자답게 사건의 해결을 위해 과학적 지식과 논리적인 추리를 동원한다. '韓'의 유래를 찾기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 은원, 그리고 그녀가 벌이는 이 일은 미진을 죽음으로 까지 이끌게 된다. 그녀들을 위험으로 이끈 '韓'의 실체는 무엇이고, 은원에게는 어떤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그리고 미진은 누구에 의해 죽음을 맞게 된 것일까?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를 품고 정서는 중국 대륙에서 은원의 흔적을 찾아 헤메인다. 왕부의 [잠부론], [씨성본결] 그리고 사서삼경중 [시경]속에 담긴 '韓'의 의미를 찾는 정서와 은원은 역사의 시간속에 엉크러진 기나긴 미로를 뚫고 나올 수 있을까?



사실 요즘들어 김진명 작가의 작품을 선택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린 시절 만나보았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감동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그의 작품을 국수주의에 사로잡힌 글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도 어느 정도는 동감하는 부분도 있다. 그의 많은 작품들과 만났다. [한반도], [신의 죽음], [가즈오의 나라], [살수], [황태자비 납치사건].... 국수주의에 조금은 치우친 느낌도 있지만 그의 작품이 가진 매력은 우리가 잘몰랐고 잊고 있던 역사에 대한, 현실속에서 우리에게 지금쯤은 필요하고 인식해야할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근현대사, 혹은 과거 역사시대를 거닐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던 역사적 패배의식을 씻게 만드는 그 무엇이 바로 그의 작품의 매력일 것이다.

 

하지만 거대한 비밀, 그리고 그 비밀을 풀어가는 주인공들의 흥미진진하고 스피디한 이야기들이 후반과 종반에 가면서 허무한 마무리를 맞는다는 것이 이 작가의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이 라는것이 바로 안타까운 점이 아닐까 생각된다. 너무 일이 커졌네?하며 생각할때쯤 허무하게 끝나버리는 이야기 구조! 사실 이번 작품 <천년의 금서>를 들면서 망설이게 만들었던 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예전 작품에서 보이던 그런 아쉬움에 대해서 조금은 마음을 놓아도 좋을 듯 하다. 국수주의 라는 비판에 당당해지고, 마지막조금은 더 치밀하고 섬세해진 작품이라고 <천년의 금서> 이 작품을 말하고 싶다.

 

정서는 이미 왕부의 [씨성본결]과 강족과의 관계를 통해 중국에서는 역사가 바로 현실의 정치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 P. 218 -

 

책속에 담긴 정서이 느낌! 그 느낌을 지금 우리가 갖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중국의 동북공정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고,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 우기는 그들의 악의적 책동을 손놓고 지켜봐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어제였던가 가수 김장훈씨의 독도를 위한 기부 뉴스에 그래도 마음이 수그러든다. 냄비처럼 끊어오르다 금새 사그러지는 역사 인식과 태도가 아니라 김장훈씨와 서경덕씨처럼 지속적으로 우리의 입장을 올바르게 알리는 현실과 역사인식에 대한 태도변화가 어느때보다 절실한 요즘인것 같다. 책속에 담겨있듯이 나라의 이름속에 담긴 '韓'의 비밀을 알고, 찾는 것이 잃어버린 간도를 되찾고 타국에서 길잃고 헤메이는 독립운동가들의 넋을 위로하는, 더 발전된 대한민국을 만드는 시작이 되지 않을까? 문득 생각해본다.

 

"나라의 힘은 반드시 경제에만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밥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일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우리의 과거를 알아야 미래를 세웁니다. 우리의 조상을 찾는 일이야말로 자손을 위하는 가장 분명한 길입니다."  - P. 324 -

 

우리는 지금까지 돈과 권력을 위해 쉼없이 달려왔다. 이제 밥이 중요한 시대는 아니라 생각된다. 더이상 쓰라린 역사의 상처를 껴안고 보잘것 없어 보이는, 일제가 그려준 식민사관의 틀 안에서 역사를 돌아볼 것이 아니라 새로운 역사를 찾고, 우리 손에 쥐어진 것 안에서 새로운 사실을 깨쳐나가는 모습들이 필요한 것이다. 프랑스에 있던 직지심경과 외규장각 도서를 찾아내어 그 실체를 세상에 알려준 박병선 박사! 그녀가 얼마전 암선고를 받고 투병중이란 소식을 들은것 같다. 그녀의 빠른 쾌유를 빈다. 누구도 몰랐고, 찾지 않았던 우리의 소중한, 아니 세계의 소중한 유산이 지금도 어디에 얼만큼 어둠에 갖혀 숨겨져 있는지 모른다. 역사를 찾는일, 그것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도, 단 몇명 학자의 손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닐것이다. 모두가 눈을 크게 뜨고, 잘못된 오류를 바로잡고, 우리가 모르는 역사의 실마리를 찾으려 할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리라.

 

<천년의 금서>는 또 한번 우리에게 큰 충격을 전해준다.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대韓민국의 비밀, 역사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앞으로 우리는 어떤 역사인식과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새삼 생각해보게 만든다. 사계절이 변화하듯 정체함이 없이 우리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선물하는 김진명 작가에게 다시한번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식지않는 그의 열정에 찬사를 보낸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 많은 대한민국 비밀의 판도라 상자가 열리기를 희망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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