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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ing
장현 지음, 김형근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0월
평점 :
'그이'의 가장 이상적인 외모에 대한 정답은 무엇일까? 나는 그 해답이 영화 [캐스트어웨이]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이는 이래야 한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흔하고 평범해서 투명인간과 같은 존재이지만, 나에게는 세상에서 나를 위로해줄 수 있는,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존재. 그 존재를 [캐스트어웨이]식으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냥 배구공이지만 나에게는 윌슨!' - P. 54 , [윌슨] 中에서-
나에게는 윌슨! 이 멋진 말로 <사랑 ing>를 시작하고 싶다.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던 말이 바로 이것이었다. 이 책의 제목을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사랑中'이라고 해야할까? '사라~~~ㅇ'이라고 해야할까? '사랑 진행형'이라고 해야할까? 하여튼 이 가을, '사랑' 이라는 이 작은 단어가 밀려오는 추위를 따스하게 감싸줄 수 있을 거라는 유혹과 함께 집어든 책이 바로 <사랑 ing>이다. 왜 사랑했을까? 왜 헤어졌을까? 지금도 사랑하고 있을까? 지금 나의 사랑은? 하는 물음들에 작은 답을 전해줄것만 같은 예쁘고 따스한 이 책과 그렇게 만난다.
<사랑 ing>속에는 4개의 Scene속에 76편의 작고 소소한 사랑 이야기들이 피어난다.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인양 들리는 '네가 나 때문에 화가 났으면 좋겠어'를 시작으로 해서 '사랑해서 아프다', '이별의 속도'를 지나 '어린아이의 언어'속으로 빠져든다. 아프고, 슬프고, 지겹고.... 사랑한다. 누군가의 어린아이같은 순수한 사랑에서부터 유미의 빈칸채우기에 이르기까지 마음속에 담겨져있는, 말하지 못한 사랑의 또 다른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네 눈길에 닿지 않는 곳에 내 눈길이 닿는 일. 이제부터 너는 네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너를 나로 인해 알게 될 것이다. .... 내가 별 생각없이 내뱉는 푸념이나 너를 칭찬하는 말이 네가 알지 못했던 너를 비춰주는 거울이 될것이다. 나는 내 편견이나 바람때문에 거울이 왜곡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하지만 너무 깊은 상처가 있다면 그런것은 보여주지 않는 그런 거울이고 싶다.' - P. 59 , [두피에 난 점] 中에서 -
사랑을 시작한 여자의 가슴에는 날마다 무지개가 뜬다고 했던가? 그 무지개 같은 사랑의 모습들속에는 다양한 색깔들이 숨겨져 있다. 질투가 담긴 어린 아이같은 붉은 색도 있고, 유자차에 담긴 사랑같은 노란색도, 행복이 깨어질까 두려워하는 검은빛깔도 담겨있다. 위험 앞에서 서로를 위하는 순수한 흰색이 있고, 이별로 인해 생긴 마음의 상처를 닮은 진한 커피색도 있다. 그렇게 <사랑 ing>는 수많은 이들의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섬세한 색깔로 그려내고 있다.
가을엔 무척이나 '사랑'이라는 말에 잘 현혹된다. 떨어지는 낙엽, 차가워지는 바람, 그리고 외로움, 아니면 사랑이 주는 외로움... '사랑해서 외로웠다' 라는 이정하 시인의 시처럼 사랑하면서도 외롭기만한 이들에게 다른 사람들의 사랑이야기는 목마른 이에게 내려주는 빗줄기와 같을 것이다. 그들은 어떤가? 그들은 사랑의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갔을까? 잠시 고개를 들어 창문너머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보고픈 열망. 그것이 어쩌면 가을, 사랑을 이야기하는 책에 우리가 다가가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사랑 ing>에 빠져드는 이유일것이다.

'막 연애를 시작한 커플이나 누군가를 짝사랑하는 사람은 그 대상을 마치 엄마가 갓난아기를 바라보듯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 P. 87 , [의미부여] 中에서 -
얼마전 TV동화에 나온 말중에 이런 이야기가 떠오른다. 결혼을 하고 시간이 흐른뒤 서로에게 무관심하고 사랑하지 않는 가족이라는 관계만을 유지하는 부부에게 필요한것이 무엇인가 하는... 그 답은 바로 '서로 아껴주는 것' 이라고 한다. 연애할때나 결혼 초기에는 서로 상대방의 시선을 쫓아 먼저 해주고 힘들까봐 애써서 기꺼이 해주다가도 시간이 지난후 언젠가부터는 상대방이 아닌 자신의 몸을 아끼는 맘이 더 커진다고 한다. 그때부터는 모른척하고 나의 시선에만 모든것을 고정시키는 이기적인 모습이 되어버린다. 갓난아이를 바라보듯, 다칠까 힘들까 아플까 시선을 맞추고 모든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는 초심, 사랑의 초심을 <사랑 ing>를 통해서 새롭게 느낄 수가 있다.
책의 내용도 그렇지만 책속에 담긴 일러스트가 마음을 따스하게 이끈다. 손목에 줄을 묶고 내달리는 그와 그 뒤를 달리는 그녀, 사랑의 외줄을 타는 듯한 그녀, 왠지 외로워보이는 머플러 소녀.... 풋풋함과 따스함이 묻어나는 일러스트가 매력적이다. 이야기가 담겨있는 그림을 그리고 읽는 이로 하여금 상상하게 만드는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는 김형근 작가의 작품들이 사랑이라는 소재를 더욱 매력적이고 빛나게 만들어준다.
코에 여드름이 났다고 해서 턱에 사라졌던 여드름이 다시 생기지도 않는다. 하지만 마음의 상처는 다르다. 다 아물었다고 생각했던 상처들이 다른 상처들로 인해 다시 살아난다. - P. 137 , [재생] 中에서 -
사랑이 언제나 예쁘고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가끔은 따가운 가시를 가지고 있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지겨움이라는 감정의 골짜기를 만들수도 있다. 사랑해서 슬플수도 있고 이별해서 아플수도 있다. 이 가을 '사랑'이라는 이름이 담긴 책에 자꾸 기웃거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궂이 아프지도 지겹지도 않지만 지금 이 사랑을 더욱 굳건히 지키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날씨때문에 조금은 식어버린 사랑의 온도를 조금만 더 올려보고 싶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따스한 그림과 더 따스한 이야기가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사랑 ing>는 그런 시간을 우리에게 선물해준다. 사랑하는 그녀에게 말하고 싶다. 아프고 슬프고 가끔은 지겹지만 그래도 사랑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