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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 탐정이 되다 ㅣ 인형 탐정 시리즈 1
아비코 타케마루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인형이라는 건 애초에 혼을 가두어 놓은 도구야. ... 요시오가 열심히 마리코지 마리오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이 인형을 정말 생명이 깃든 존재로 만들려 했던 순간, 인간의 형태로 태어날 예정이었던 한 영혼이 이 인형에 깃들었다. 그렇게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 '아니.' - P. 59 -
<인형, 탐정이 되다>는 말 그대로 탐정이 되어버린 인형이 그들의 주변, 일상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사건을 해결해가는 추리소설의 형식을 지닌 작품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어쩌면 이런 제목을 가지게 되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인형이 되어버린 탐정!' 이라는 제목으로... [인형은 코타츠에서 추리한다]라는 첫번째 이야기속에서 인형 마리오는 자신이 어떻게 태어? 아니 생겨났는지를 설명하는 여주인공 무츠키와의 대화속에서 '영혼이 인형에 깃들었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물론 무츠키는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런 마리오의 표현으로 볼때 특별한 추리 능력을 지닌 인형 마리오의 존재는 오히려 탐정이 인형속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인형이 되어버린 탐정! 크리스마스 파티가 한창인 메구미 유치원. 젊은 복화술사 한명이 인형과 대화를 나눈다. 아이들은 그 인형의 순수한 목소리와 복화술사의 능숙한 연기에 흠뻑 빠진다. 그리고 또 한명 메구미 유치원 선생인 세노오 무츠키도 토모나가 요시오라는 복화술사에게 알듯 모를듯한 매력에 조금씩 물들어간다. 그러던 어느날 원장 선생님의 부탁으로 요시오의 집에 찾아간 무츠키는 인형, 마리오의 실체와 마주하게 된다. 사실 마리오가 그의 말처럼 인형에 깃든 영혼인지, 아니면 요시오의 이중인격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어쨌든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해도 요시오와 동일한 인격이 아님은 확실해보인다. 그렇게 마리오의 존재에 대해 거부감이나 두려움 없이, 스스로도 이해가 안될 정도로 쉽게 받아들이게 된 무츠키. 그리고 그들의 곁에 하나 둘 미스터리한 사건이 벌어진다.
연쇄 살인범의 이상 심리, 사회 병폐의 고발 그리고 최강의 반전이라는 까다로운 세 요소를 모두 성취한 수작이라 평가받는 [살육에 이르는 병]의 아비코 다메카루, 그가 이번엔 조금은 코믹하면서도 유쾌한 추리소설로 우리 곁을 찾아왔다. 이전 작품이 수수께끼와 트릭에 집중했다면 이번에는 수수께끼에 유머를 곁들인 다소 그와는 어울릴것 같지 않은 유쾌함을 무기로 하고 있다. 말하고 생각하고 추리하는 능력을 가진 인형 마리오! 이 독특한 소재를 우리 일상에서 쉽게 있을 법한 일들과 함께 버무려 명쾌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풀어내고 있다.
인형은 코타츠에서, 텐트에서, 극장에서 추리를 통해 사건을 해결하고 마지막 4화에서는 마리오를 잃어버린 요시오의 이야기가 담겨진다. 우리 일상에서 특별하지 않은 사건들이 발생하고 인형은 그 사건들을 논리정연한 추리를 통해 해결해나간다는 것이 이야기의 줄거리지만 발생한 사건과 인형 마리오의 추리는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유치원에서 파헤쳐친 토끼 무덤과 뒤바뀐 두마리의 토끼, 요시오가 공연하던 월드 쇼 텐트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오다기리 경부가 맡은 광고 대리점 사장 살인사건과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의 3부 '지크프리트'와의 관계, 그리고 이어지는 마리오의 행방불명과 마약 사건...

<인형, 탐정이 되다>는 인형 탐정 시리즈의 첫번째 이야기라고 한다. 인형 마리오가 어떤 존재인지를 시작으로 복화술사 요시오와의 관계, 그리고 불분명한 존재와 관계속에서 서로를 사랑하고 인정하게 되는 마지막 이야기까지, 인형 탐정 시리즈의 이 첫번째 이야기는 마리오가 풀어가는 재미있는 추리의 시간과 함께 주인공인 요시오와 인형 마리오의 존재감에 중점을 둔 작품이란 생각이든다. 더불어 마리오와 무츠키의 닿을듯 이어질듯 다가서는 사랑의 감정을 담은 러브 라인도 더욱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를 줄타기하듯 걷는 하루카의 삼각관계도 재밌는 설정으로 기대된다.
미스터리 추리소설을 표방하지만 이 작품은 어둡거나 두려움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이야기속에 살인사건이 있고, 동물을 죽이고 마약이 등장 하지만 그 결말은 우연 혹은 정당방위 정도로 충분히 치유될 수 있다. 우연한 사고나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일상의 일들에 대해서 인형 마리오가 발생한 사건을 논리적으로 추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낯설기도 하지만 무겁지 않고 경쾌하게 풀어나가는 이야기 구성이 즐겁기도 하다. 요시오나 무츠키의 시선에서 바라보던 사건을 조금은 폭넓고 깊이 있는 마리오의 시선으로 바라봄으로써 독자들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었던 여러가지 퍼즐을 쉽게 이해하고 맞추어 갈 수 있게 된다.
'누가 되는 대로 말한다고 그래! 흥, 어른들이란 이렇다니까. 때로는 어릴적 순진했던 마음을 떠올리고 솔직한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도록 해. 때때로 진실이 보일테니까.' - P. 65 -
마리오의 이말이 어쩌면 우리가 여기는 미스터리한 사건을 그렇게 쉽게 풀어갈 수 있는 하나의 열쇠일지도 모른다. 마리오는 영락없는 개구쟁이의 모습이다. 요시오의 거짓말에... '...삐뚤어져 버릴 거야!' 라고 말하는 마리오의 말에 웃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옮긴이의 재치이겠지만 마리오의 모습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던 대화라고 생각된다. 개구쟁이 마리오의 유쾌한 입담과 추리의 세계속에서 <인형, 탐정이 되다>는 짧지 않은 시간을 우리에게 기꺼이 내어주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인형 탐정 시리즈는 앞으로도 계속 우리와의 만남을 준비할 것이기에 무척이나 기대된다. 조금은 무겁고 조금은 더 치밀한 트릭과 반전이 살아있는 추리소설도 재미있겠지만 독특한 캐릭터들이 살아있고 편하고 즐겁게 다가갈 수 있는 이런 류의 추리소설도 상당한 매력을 가진다고 말할 수 있을것 같다. 마리오, 요시오, 무츠키... 그들이 만들어갈 재미있는 추리의 세계, 사랑 이야기,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비밀의 문이 어서 빨리 열리기를 기다려본다. 그리고 아직 만나지 못한 아비코 다메카루의 다른 작품들과도 만나기를 조심스레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