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 - 그리고 책과 함께 만난 그림들……
곽아람 지음 / 아트북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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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들은, 그림이 되어 마음 속 풍경으로 남는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고 했다. 사람을 만드는 책, 책을 읽고 있는 당신, 당신은 책속에서 무엇을 찾고 있는가? 책을 통해 얻고자하는 것이 있는가? 아니면 책을 통해 무엇을 꿈꾸려 하는가? 마음속에 여운이 되고, 오래 된 울림이 되는 한권을 책을 만나본 적이 있는가? 당신을 만들어 낸 한권의 책, 서른 즈음의 나이를 맞이한 한 작가의 책에 대한,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자신을 만들어준, 꿈꾸게하고 마음속 오랜 울림이 되어준 한권의 책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게 된다. 마음속 풍경으로 그려진 한권의 책, 그 책들과의 만남이 시작된다.

 

어린시절 생텍쥐베리의 [어린왕자]를 읽은 기억이 있다. 어린 시절이다보니 굳이 기억나는 내용을 하나 꼽자면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보고 어른들은 쉽게 그것을 모자라고 생각한다는 내용이었던듯 하다. 그리고 20대에 만난 어린왕자속에서 내가 찾아낸 내용은 여우와의 대화에서 나온 '길들인다'라는 표현이었다. (사랑과 만남에 민감한 나이이다 보니...) 그리고 지금 30대에 만나는 어린왕자는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샘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라는 돈과 지위같은 외적인 가치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소중한 가치를 일깨우게 된다. 고전은 이처럼 자신의 시간과 함께 흐르고, 짧지만 단 하나의 기억 또는 그림으로 자리한다. 불현듯 어디선가 본듯한 느낌의 그림, 어디선가 마주쳤던 듯한 짧은 글들속에서 그 글과 그림은 또 다른 추억으로 자리한다.

 

문학의 힘은 단순한 언어적 힘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독자의 정서에 울림을 주는 파도와도 같은 것이다. 단순한 언어의 힘이 순간적이라면 문학의 힘은 오래 오래 지속되는 정서적인 힘인 것이다.

 

<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는 서른즈음의 시간에 머물러 있는 작가를 감명시켰던 문학작품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책속의 인상적인 장면들과 그 장면들을 볼 때마다 떠올리는 그림에 관한 이야기가 책, 그림의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어우러진다. 모두 4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맨 처음 우리의 정서를 다룬 우리의 문학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제목, 혹은 작가의 이름만으로도 익숙한 작가들의 작품들이 가득하다. 故 박경리선생의 [토지]에서부터 박완서의 [나목], 김승옥의 [무진기행], 황순원의 [소나기]등 낯익은 작가들의 작품에서 받은 인상적인 내용, 인물들을 화폭속에 담긴 그림과 연관지어 재미있게 풀어놓고 있다. 박완서 작가의 [나목]은 박수근 작가의 그림 '나무와 두 여인'을 그대로 닮아있기도 하고, 황순원의 [소나기]속 소녀는 사전트의 '바이올렛'의 소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이처럼 <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는 오래도록 기억되는 문학작품과 그 작품속의 한장면, 혹은 인상깊었던 인물들을 떠올리게하는 한장의 그림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문학과 그림이라는 두 장르를 동시에 즐길 수 있도록 만드는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 제2장에서는 아름답고 처연한 사랑에 관해서, 제3장에서는 인간적인 괴뇌를,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는 어린시절 책을 추억하게 만드는 동화적 상상력이 가미된 문학과 그림이야기를 그려낸다.



한 여자에게 모든것을 바친 한 남자의 최후를 그린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와 절묘하게 어울리는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창가의 남자'는 개츠비의 뒷모습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해보인다.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제임스 타소의 '과부'를 통해 스칼렛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주홍글씨], [오만과 편견]을 통해 아름답지만 힘겨운 사랑의 여정과 모습들을 그림과 함께 담아내고 있다. 제3장의 인간적 고뇌를 다룬 작품들은 개인적으로 읽어보지 못한 작품들이 많은 관계로 문득 떠오르는 한 장면이 없었다는 아쉬움이 있다.

 

"세상에서 제일 먼저 편지를 쓴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내가 말했다. "아이, 편지. 정말 편지를 받는 것처럼 기쁜 일은 없어요. 정말 누구였을까요? 아마 선생님처럼 외로운 사람이었겠죠?" 여자의 손이 내 손안에서 꼼지락거렸다.  - 김승옥의 [무진기행] 中에서 -

 

마지막 장에서는 추억의 고전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다. [빨간머리 앤], [어린왕자], [교황의 노새]에서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익숙한 작품들인 만큼 그 작품들을 단번에 떠올리게 하는 그림들이 있어 즐겁다. 노먼 녹웰이 그린 '눈에 멍이 든 소녀' 는 영락없이 빨간머리 앤의 익살스런 모습이다. 윤동주 작가의 작품은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어린왕자속 한 장면은 테르보르흐의 '편지를 든 채 술을 마시는 여인'으로 표현되는데 크게 공감되지는 않아 조금 아쉽다. 기다림의 순간을 채웠던 책, 책속 인상깊은 장면이 되어버린 그림에 관한 곽아람 작가의 이 책과 그림 이야기는 공감과 약간의 낯섬이 모두 교차하지만 책의 향기와 그림 냄새가 있어 너무 즐거운 작품이다.

 

나는 지독한 독서광도, 열정적인 미술 애호가도 아니다. 다만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그림을 책갈피 삼아 조금 더 아름다운 독서를, 문학을 액자 삼아 조금 더 풍요로운 그림 감상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P.5 글머리에... ]

 

개인적으로도 문학과 그림을 연결시키는 몇가지가 떠오른다. 댄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는 '모나리자'를 떠오르게 하고, 요시다 슈이치의 [악인]은 몽크의 '절규'를 연상시킨다. 이정명의 바람의 화원은 '미인도'를...

작가는 글 머리에서 <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 조금은 더 즐거운 독서와 풍요로운 그림 감상을 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이 작품을 쓴다고 말한다. 책속을 가득 채운 수많은 문학작품과 명화의 향연은 책을 들고 있는 내내 즐거운 미소가 번지도록 한다. 잘 몰랐지만 새롭게 알게 된 문학작품들, 그 문학작품들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한장의 명화들, 작가의 문학적 깊이와 그림에 대한 탁월한 이해, 독특한 해석에 마음을 모두 빼앗겨 버린다.

 

매력적인 작품들과 인상깊은 그림들이 펼치는 즐거운 만남, 그 즐거움속에서 쉽게 헤어나올 수가 없다. 독서의 방식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문학과 그림이 어울어지는 이런 독서와 그림의 이해도 무척이나 좋은 방법일것 같다. 모든 기다림의 순간을 함께 한 문학작품, 그리고 책과 함께 만난 그림들... 이 시간이 너무나 행복하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행복은 영원히 진행형이었으면 하고 바래본다. 그림이 되어 마음속 풍경으로 오래도록 남는 책들과의 만남이 더 많아지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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