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는 알고 있다 블랙 캣(Black Cat) 20
로라 립먼 지음, 윤재원 옮김 / 영림카디널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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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예전에 우유를 먹다보면 눈에 들어오던 사진들이 있었다. 아이를 찾는다는, 몇 살이고 어떤 옷을, 어디서 잃어버렸다던지 하는 자세한 내용들과 함께 붙어있는 사진들. 그때는 몰랐지만, 아니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아빠라는 이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나이를 먹고 보니, 그 아이도 그렇지만 아이의 부모가 겪을 아픔이란 것이 새삼 가슴속에 와닿는다. 시간이 흘렀지만 요즘에도 그런 아이들의 실종, 유괴 사건들이 쉴 새없이 벌어진다. 작년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었던 혜진, 예슬이 사건도, 범행의 잔혹성에 치를 떨었고 그 처벌에 다시한번 분노해야했던 조두순 사건도 그리 먼 시간 이야기가 아니다.

 

IT선진국이라고 떠들어대는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잃어버린 아이를 찾지 못해 그 가족들에게 아픔의 시간을 안겨주는 것일까? 아이들이 돈벌이의 수단으로 이용된다는 잔혹한 현실... 해외입양이라는 명목으로 팔려가고 일부 고아원에서는 인원수를 맞추기위해 일부러 아이 부모를 찾지 않는다는... 이런 말도 않되는 이야기들이 들려오기도 한다. 더욱 기가 찰 노릇은 아이들이 성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도무지 상상이 되지도 않고 생각하기조차 무섭고 두려운 이런 모습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사회의 현실이다.

 

유괴, 성폭력, 그로 인한 가족의 고통, 이런 사회적인 이슈를 다루고있는 한편의 소설과 만나게 된다. 로라 립먼의 <죽은 자는 알고있다>는 기존에 보여지던 ’(아동) 유괴’라는 소재를 따르지만 그 구성에서 조금은 독특한 점들을 보여준다. 기존 작품들에서는 누군가의 실종, 유괴, 그리고 그 사건을 파헤치는 경찰, 혹은 아버지와 같은 가족들이 범인의 실체를 밝히고 그 대상을 구하게 되던지 아니면 죽음에 이르렀다는 가슴아픈 이야기와 같은 스토리가 전개된다. 유괴를 다룬 작품들은 이처럼 왜? 누가? 그리고 어떻게? 해결하는지에 촛점이 맞춰지고 있다.

 

’귀뚜라미가 없을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 사건은 귀뚜라미와 함께 시작되었다. 그가 알고 있는 건 이 여자가 진실과 거짓 사이를 오가고 있다는 것, 어떤 부분은 정확하지만 또 다른 부분은... 빚어냈다는 것분이었다...’ - P. 356 -

 

하지만 <죽은 자는 알고있다>는 다르다.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그 사고의 가해자인 40대의 여인은 자신이 지금으로 부터 30년전인 1775년 3월 발생한 베서니 가(家) 두 자매 유괴사건의 당사자라고 말한다. 당시 15세였던 언니 서니 베서니와 11살의 헤더 베서니는 쇼핑몰에서 사라진후 연락도 없고 시체도 발견되지 않은채 그렇게 30년이란 시간속에 묻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자매 유괴사건이 있은지 30년, 교통사고를 낸 한 여인은 자신이 당시 11살 이었던 동생 헤더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왜? 이제와서 그 사실을 말하는 것일까? 그녀가 정말 헤더일까? 지금 그녀가 가진 이름은 페넬로페 잭슨이고, 과거 그녀의 또다른 이름은 제인 도우이기도 하고 루스 라이빅이기도 했다. 과연 그녀의 정체는 무엇일까? 정말 그녀가 헤더라면 두 자매 유괴사건의 전모는 밝혀질 수 있을까?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한 그녀를 둘러싸고 그를 도와주려는 사회복지사 케이, 그녀의 변호사 글로리아, 인판티 형사, 과거 그녀의 사건을 맡았던 윌로우비 등 과거의 실종사건과 현재의 그녀가 말하는 진실을 쫓는 시간여행은 흥미를 더해간다.

 

’지금 그녀는 자신이 가진 유일한 것, 누군가의 죽음을 발판으로 만든 지난 16년간의 삶을 보호해야 했다. 죽은 자들이 있었기에 그녀는 인생을 얻었다. 좋은 싫든 그건 그녀의 진짜 삶이었고, 이제까지의 삶 중에서 가장 오래 살아온 나날들이었다.’  - P. 60 -

 

왜? 누가? 어떻게? 를 찾아 떠나는 재미가 유괴라는 소재를 다룬 작품들의 공통된 특징이었다면 이 작품 <죽은 자는 알고있다>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오로지 왜? 라는 물음표이다. 왜? 유괴를 했는가 보다는, 사건 피해자인 유괴되었던 소녀가 왜? 이제서야 자신의 신분을 말하고 있는것인지, 그렇다면 왜? 그녀는 지금까지 진실을 알리지 못했으며, 30년이란 시간속에서 그녀가 지키고자 했던것은 과연 무엇는지가 중요한 포인트인 것이다.

 

’진실에 나이를 부여할 수 있다는 생각. 그게 마치 음주나 투표인 것처럼. 오, 데이브와 미리엄은 바쁘게 일하면서도 허접하기 그지없는 댐을 만드는 비버와 다름없었다. - P. 275 -

 

<죽은 자는 알고있다>, 우연히 발생한 사고, 그리고 30년이라는 시간을 거슬러 발생한 사건과의 연관성, 쉴새없이 과거와 현재를, 주인공을 둘러싼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눈과 발로 파헤쳐지는 흥미로운 추리소설이다. 하지만 조금 아쉬운 점도 있다. 과거와 현재를 쉴새 없이 오가면서도 사건의 해결과 추리의 실마리를 풀어갈 수 있게 하는 속도감이 조금은 아쉽게 느껴진다. 중반 이후 헤더라고 주장하는 그녀의 입을 통해서 사건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면서 속도감있는 전개가 보이지만 사실 그 전까지는 책속에 몰입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헤더 베서니, 그녀의 말은 정말 사실일까? 이런 물음에 대해서 책은 종종 트릭을 사용해서 읽는 독자들의 머리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녀가 정말 헤더? 아니면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거짓을? 혹은 헤더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또 다른 여자? 다양한 추리를 이끌어내는 이런 트릭과 마지막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반전의 묘미가 이 책이 진정 수많은 상과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이유임을 설명해주는 듯 하다.

 

죽은 자들은 정말 알고있을까? 아니 무엇을 알고 있을까? 제목에서 말하는 이 죽은 자들이란 도대체 누구를 말하는거지? 오로지 책을 내려놓을 때까지 수많은 물음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닌다. 책을 내려놓는 마지막 순간, 순식간에 터져버리는 물음표들로, 상쾌한 즐거움을 만끽하게 될 것이다. 추리소설이 던지는 유쾌한 재미와 더불어 ’가족’이라는 이름, 유괴와 성폭력과 같은 사회문제까지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시간이었다. <죽은 자는 알고있다>, 로라 립먼이라는 이름과 오랜시간 함께 기억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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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지구멸망
나미키 신이치로 지음, 오경화 옮김 / 이미지앤노블(코리아하우스콘텐츠)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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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구멸망! 2009년 한반도, 아니 세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키워드중 하나는 바로 '2012년 지구멸망'이라는 이 짧은 문장일 것이다. 지구와 인류의 멸망을 소재로 한 작품들은 과거에도 이미 수도없이 많이 넘쳐났었다. 지구와 혜성의 충돌을 그린 영화 [아마게돈]이나 [딥임팩트]에서 부터, 지구 내부의 변화로 엄청난 재앙이 일어난다는 [볼케이노]나 [코어], 지구 온난화에 의한 새로운 빙하기의 도래를 그린 [투모로우]에 이르기까지 태양, 외부행성, 지구의 내부에서 발생가능한 지구멸망과 관련한 소재들이 인간에게 무시무시한 경고의 메세지를 전해주고 있다.

 

그리고 2009년 또 한편의 영화가 우리를 찾아왔다. 바로 [2012] 라는 영화가 그 주인공이다. 이 영화는 2012년 12월 태양과 행성들이 일직선이 되면서 태양풍의 영향으로 지구내부가 폭발하게 되어 인류가 대재앙에 휩싸인다는 이야기 전한다. 이런 '지구멸망'이란 소재는 예전에도 그렇고, 현재를 넘어 미래에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다만 우리가 2012년이라는 특정한 시간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상상의 세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과학과 종교, 역사적인 분석에 입각하기 때문이다. 단순한 재미와 볼거리, 그리고 허황된 공포가 아닌 과학적인 분석과 추리가 가능한 '사실'에 가깝기에 주목을 받게되는 것이다.

 

'고대 마야의 예언! 그 예언에는 천재지변과 인류 멸망으로 향하는 'X데이'가 예언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놀랍게도 그 날짜까지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다. 그 'X데이' = 운명의 날이 2012년 12월 22일 이라고! 고대 마야 문명이 남긴 예언서에 그것이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 P. 14 -

 

<2012년 지구멸망>은 불과 3년도 채 남지 않은 지구멸망이라는 대사건이 과연 어떻게 생겨났고 알려지게 되었으며 그 사건의 허와실을 단순한 예언으로의 치부하는 것이 아닌 과학적인 근거의 제시를 통해 읽는 독자들에게 그 판단을 맡겨두고 있다. 운명의 날, 2012년 12월 22일이라는 고대 마야의 예언, 태양 활동의 이상 징후, 인류 문명에 숨겨져 있는 지구 멸망의 코드들, 거대 천체 X의 존재와 포톤 벨트의 정체는 무엇이고 이런 지구멸망의 징후은 어떤것들이 있는지를 제시하고 있다. 지구멸망이라는 주제에 대한 과학적 근거제시하고 얼마남지 않은 현실의 시간앞에 서있는 우리에게 어떤 길을 걸을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예언, 종말을 말할때마다 빠지지 않는 이름이 바로 '마야문명'이라는 미스터리에 휩쌓인 또다른 인류의 모습이다. 그들은 종종 외계인이 등장하는 영화의 단골 소재가 되기도 하는데, 영화속에서는 종종 그들이 남긴 유물들과 외계인간의 연관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왕묘속 석관의 뚜껑에 새겨진 비행체를 운전하는 듯한 조종사의 모습이 바로 그렇고, 거대한 피라미드를 비롯해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건축물들이 그렇다. 과거에 세워졌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대단한 문명의 수준을 보여주는 이들의 유산은 마야문명과 외계인들의 관계를 의심케 하기에 충분하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또하나 있다. 마야의 역법이 바로 그것인데, 마야인들은 2종류의 달력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하나는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태양력이고 다른 하나는 260일, 13개월을 1년으로 하는 '종교력'이다. 여기에서 의아한 점은 태양계에서 이 종교력의 주기에 맞아떨어지는 행성이 없다는 사실이다. 마야의 신화속에 이런 구절이있다고 한다. '세계와 인류는 3번 창조되었고 3번 멸망했다. 그리고 4번째로 현재의 세계와 인류가 창조되었다'라고... 이런 일련의 사실과 문헌들로 볼 때 마야인의 외계인 기원설은 설득력을 더한다.

 

지구멸망을 이야기하면서 마야인의 외계인 기원설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바로 그들이 사용한 역법에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독특한 역법을 통해 역사를 '시간의 순환'으로 바라보았다고 한다. 그들이 말하는 시간의 순환이 바로 '5000년 주기설' 인데, 마야인들의 예언서 '콰우티틀란연대기'에는 5번째 태양의 시대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5번째 태양의 시대는 기원전 3113년 시작되었고, 인류는 5번째 태양의 시대의 종언으로 끝난다고 한다. 지구 멸망에 대한 예언의 시간이 기원전 3113년에서 5128년이 경과 된, 바로 2012년을 가르키고 있는 것이다.

 

마야력의 라마트를 본뜬 미스터리 서클이 지속적인 출현하고 지구 파멸의 신호인 천체현상, 태양과 달이 정확하게 일직선상에 늘어선다는 금환식이 2012년일어나 종말의 날의 시작을 알린다고 예언은 전한다. 단순히 마야문명만이 이런 지구종말의 예언을 말하고 있는것이 아니다. 이집트의 파라오 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와 그 부장품에 새겨진 숫자는 인류 멸망을 가르키는 또 다른 예이고 이 외에도 지구 멸망을 예언하는 문명의 흔적들은 수도 없이 많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2012년은 태양 활동 측면으로 볼 때 단기적인 극대기에 해당된다고 한다. 11년마다 돌아오는 흑점수의 변동 사이클의 극대기라는 것인데, 이런 격렬한 태양활동으로 인해 지구 송전선망이 교란되고 해일과 폭풍의 엄습, 그리고 빙하기의 도래가 예측되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미국 정부가 주도하는 극비 프로젝트 '노아'에 대한 이야기도 솔솔 전해지고 있다. 다음으로 우려되는 사건은 미지의 거대 천체 X에 대한 것과 태양계의 외곽을 공전하는 네메시스가 혜성의 집을 자극해 태양계로 수많은 혜성들이 침입하게 된다는 가설도 전해진다.

 

지구를 들끓게 하는 온난화를 비롯한 이상 기후들, 지구뿐만 아니라 태양계의 모든 행성에도 이런 이변을 일어 난다고 하는데 그 원인이 바로 '포톤 벨트'이다. 헬리 혜성의 발견자인 영국의 천문학자 에드먼드 핼리경에 의해 발견되었다는 포톤 벨트는 전자파 구름으로 멀지 않은 미래 태양계는 포톤 벨트와 충돌하게 된다고 한다. 아니 이미 태양계는 포톤 벨트의 영향을 받고 있는지도... 지구를 비롯한 태양계 행성들에 생겨나는 이변의 원인을 과학자들은 바로 포톤 벨트에서 찾고FONT-SIZE: 11pt"><2012년 지구멸망>은 고대 문명의 예언을 시작으로 지구에 나타나고 있는 이상 기후의 징후들, 거대 행성 X, 포톤 벨트, 네메시스... 과학으로 입증 가능한 다양한 분석들이 지구 멸망의 증거들을 우리 눈앞에 제시하고 있다. 물론 이같은 지구 멸망의 징후들이 명확하게 '과학적 사실'에만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고대 예언으로 시작해, 그에 연관된 분야의 가설과 흔적들을 2012년에 맞추어 가는 느낌도 드는것이 사실이다.

 

이 작품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세지는 지구멸망설에 대한 단순한 공포심 유발도, 종말론의 또 다른 이름도, 지구멸망에 대한 완전한 해답의 제시도 아니다. 다만, 예언과 과학적 근거를 제시함으로써 오히려 막연한 공포를 배제하고 해답이 아닌, 지구 멸망에 대해서 개인 나름의 재해석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이끌어내도록 만드는데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파멸, 재생, 진화? 어떤 것에 대한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얼마남지 않은 시간일 지라도, 혹은 <2012년 지구멸망>이 하나의 헤프닝으로 끝날 지라도 그것에 대해 한번쯤 고민함으로써 현재와 미래를 살아갈 소중한 가치를 얻게 만드는, 귀중한 시간앞에 우리를 세우는 것이 아닐까!

 

21세기가 도래하면서 우리는 Y2K [year two kilo problem]라는 문제에 대해 걱정하고 모든것이 혼란스러웠던 과거의 시간을 기억할 것이다. 하나의 헤프닝으로 끝났지만 그를 통해 우리는 여러가지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하면서 대비하여왔다. 그리고 아무 문제 없이 당당하게 21세기를 살아간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무관심으로 상처입은 지구, 우주를 다시금 되돌아보고 앞으로 살아갈 미래의 시간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를 갖게 된 것이다. 바로 이것이 이 책 <2012년 지구멸망>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소중한 메세지가 아닐까?

 

'걱정과 두려움'은 사람을 과거에 갇히게 만들고 미래로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는다. 우리가 지금 꿈꾸고 나아가야 할 것은 바로 희망, 행복,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충분할 것이다. 예언과 과학적 근거를 통해 바라 본 지구멸망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이런 희망과 행복을 전해주기에 충분해 보인다. 더이상 막연한 걱정과 두려움에 갖혀 현재와 미래에 놓여있는 행복과 희망을 놓치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는 듯하다. 2012년 우리는 커다란 '변화' 앞에 놓여있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이 아닌 변화를 즐길줄 아는 여유가 이 시간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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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 드라큘라 사진관으로의 초대
김탁환.강영호 지음 / 살림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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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괴한 상상력! 도무지 다른 말로는 표현이 어려운 책 한권과 마주한다. <99 - 드라큘라 사진관으로의 초대>는 강영호라는 이름의 낯섬보다 김탁환이라는 이름의 환호와 함께 집어든 책인데... 살짝 후회?라는 '첫인상'으로 다가온 작품이다. 사진의 불유쾌함이 그런 첫인상을 만들었다. 괴물, 상상력, 드라큘라 사진관, 홍대, 마성의 판타지아...라는 수식어구들에 끌리지만 불편한 사진들 때문에 조금은 불편하게 다가온다. '기괴' 라는 말 말고는 더이상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사진들에 처음 들었던 책을 그대로 내려놓았다.

 

포토 판타지! 사진의 불유쾌함에서 벗어나고자 '강영호'라는 사진 작가를 찾아본다. 혼을 흡수할 수 있는 '흡혼'의 사진술사 라는 그에 대한 표현이 멋지다. 단순히 카메라 맨, 사진 작가라는 이름이 아닌 사진술사! 라는 표현이 아름답다. 춤추는 사진 작가라는 강영호, 한때 그가 대한민국 영화 포스터의 90%이상을 담당했고, 화보와 광고 촬영에도 참여 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란다. 내눈이 그렇게 싸구려인가? 하는 의구심과 함께... 그에 대한 화려한 경력, 미사어구에도 불구하고 불유쾌했던 첫인상이 그렇게 쉽게 사라지질 않는다.

 

그들안에 갇혀있던 괴물을 불러내다. 이야기꾼 김탁환! 가장 최근에 읽었던 그의 작품은 [노서아 가비]였다. [천년습작]을 통해 그의 글씨기를 배우기도 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그를 대표하는 것은 [혜초], [방각본 살인사건], [열하광인], [리심]....등 셀수 없이 많은 역사소설일 것이다. 숱한 과거의 인물들에게 영혼을 빌려준 영혼의 이야기꾼 김탁환이 이번엔 전혀 색다른 상상의 날개를 펼쳐든다. 흡혼의 사진술사와 영혼의 이야기꾼의 만남이 빚어낸 환상의 세계가 기지개를 편다.

 



<99 - 드라큘라 사진관으로의 초대>를 이끌어가는 인물은 바로 홍대앞, 드라큘라의 성이라 불리는 상상사진관의 주인이기도 한 '강영호' 이다. 이 작품은 사진을 통해 이야기하고 사진에서 쏟아져나온 기괴한 괴물, 아니 인간의 탐욕과 욕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현실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하지만 기괴한 사진들 만큼이나 머릿속에 들어가 정신차리지 못할 정도의 어지러운 상상들이 난무한다. 7가지 인간군상, 인간을 닮은 괴물의 이야기는 하나하나 정말 독특을 넘어 특별, 아니 역시 기괴하다.

 

'어떤 이야기는 강영호 작가가 제안하고 던져줬고, 나는 그 이야기에 나의 상상력과 또 나의 실제 이야기를 뒤섞었지요. 밤늦게까지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와 생각을 제안하고 자극했습니다. 서로의 몽상을 주고 받은 거지요. 표지에 '김탁환 글, 강영호 사진' 이렇게 표기하지 않고 김탁환 강영호 장편연작소설이라고 붙인 이유가 여기에 있지요.'   - P. 270 , 작가 인터뷰 中에서 -

 

사실 김탁환의 역사소설속에 빌려준 영혼이 조금은 맑고 즐거운 영혼이었다면 강영호와 함께 한 상상의 날개는 조금은 무겁고 역시 기괴하다. 홍대앞 '상상사진관'이 만들어지게 된 이야기를 담은 '상대성 인간'을 시작으로 ' 인간의 자유에 대한 갈망을 담은 듯한 [알바트로스 인간]에 이르기까지 상상사진관에 얽힌 이야기나 혹은 주인공 강영호 자신의 경험담 같은, 아니면 김탁환의 상상만으로 이루어진듯한 기괴하고 기발한 7가지 이야기들의 독특한 인간의 모습으로 되살아난다.



그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단연 [인간인간인간] 이다. '턱을 기르는 왕'이라는 부제가 어울리는 이 작품속에 등장하는 사진 역시 발칙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보단 그 사진을 통해 써내려간 이야기가 매력적이다. 지하철 기관사 'T', 그가 운전하는 지하철로 뛰어들어 죽을 사람람의 얼굴 모습이 사건이 일어나기 3일 먼저 그의 배에 나타난다, 사망자를 예고한다는 기발한 설정, 그리고 기괴함속에 담겨있는 안타까운 사랑이야기가 인상깊은 작품이었다.

 

사실 7편의 단편들이 있지만 그나마 쉽게 이해할수 있는 작품들은 두서너편 정도에 그친다. 앞서 말한 [인간인간인간]이나 [상대성인간] 정도가 빠져들만하지 나머지 단편들은 이해도, 몰입도 좀처럼 쉽지 않은것이 사실이다. 국내 기존 문학속에서 판타지 장르나 미스터리 추리소설 등 조금은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원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 작품 <99 - 드라큘라 사진관으로의 초대>는 너무 상상을 초월하며 발칙하기까지 하다. 상상력을 키워가는 사진들의 불편함이 이야기의 재미에 묻혀 조금은 나아지지만 이제 도무지 밑도 끝도 없는 상상력에 재미를 잃어버린 느낌이다.

 

이 작품의 작가들에 대한 신문인터뷰에서 '왜 99인가?' 라는 질문에 강영호 작가는 이렇게 대답한다. '실존하는 내 이미지 하나에 감춰진 이미지 99개가 더해졌을 때 완벽한 존재가 형성된다는 뜻이다. 책에서 99는 '나' 라는 9와 '김' 이라는 9가 마주보고 서 있는 거다. 극단적인 두 존재가 만나서 엉킨 것이다.' 라고... <99>는 단순한 상상력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불편한 진실' 혹은 '자기 자신속에 숨어 있는 마성을 깨우는 듯'한 이미지를 내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기획적 이미지와 황당한 이야기가 두 사람의 동거를 불편한 관계와 결과물들의 양산으로 이끌지 않기를 빌어볼 뿐이다.

 

개인적으로는 소재의 선택이 매우 탁월했다고 느껴진다. '드라큘라의 성', '상상 사진관'... 하지만 사진으로 연결되거나 혹은 연결되지 않거나 단편들이 모여지면서 느껴져야 할 어떤 스토리의 일관성이 배제된 느낌, 너무 과장된 상상, 불편한 사진들이 책을 내려놓을 때까지 마음을 무겁게 짖누른다. 그들의 땀과 열정, 탁월한 소재의 선택, 풍부한 상상력, 새로운 장르로의 도전에는 박수를.... 하지만 재미가 배제되고 너무 강렬해 불편하기까지도한 사진과 이야기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느껴진다. <99 - 드라큘라 사진관으로의 초대>, 99를 위해 1을 버린 작품이 되지 않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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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 브로드 2
팻 콘로이 지음, 안진환 외 옮김 / 생각의나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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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소설’ 하면 팀 보울러라는 작가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다. [스쿼시]나 [리버보이]와 같은 그의 작품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고통과 아픔, 만남과 이별을 통해 조금씩 성장해가고 꿈과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들을 만나게 된다. 이런 성장소설에 우리가 쉽게 공감하고 빠져들수 있는 이유는 청소년기의 수많은 만남속에서 갖게되는 이별과 새로운 삶으로 뛰어 오르기 위해 웅크리는 아픔에 대한공감’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별의 상처와 아픔의 치유가 있어야만 새로운 자신만의 시간을 향해 조금씩 조금씩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처음... 단순히 성장소설이라는 말이 제법 어울릴 듯한 <사우스 브로드>라는 작품을 만난다. 아픈 과거의 시간을 거슬러 자신에게 흘러든 시간을 이해하고 동화하며 우정과 사랑을 키워가는 소년의 이야기로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사우스 브로드>는 겁이 많고 조금은 소심하지만 그저 평범하기만 한 소년의 목소리로 말문을 연다. 자신이 너무나 따르던 형의 갑작스런 자살의 충격으로 정신병원과 마약소지로 보호관찰을 받게 된 레오, 그렇게 삶에서 표류하던 레오는 시간이 흐르고 이제 18살이 되면서 과거의 아픔에서 벗어나 조금씩 스스로의 길을 찾아가게 된다. 하지만 그의 운명을 되바꾼 모든 일은 1969년 6월 16일에 시작된다. 

 

’그 어떤 일도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이 사실을 힘겹게 배웠다. 그 힘겨움이 어떤 진실에 도달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알기 오래전에 말이다.’ - P. 19 -

 

서로 관련없어 보이는 일련의 사건들이 일어난다. 운명의 그 날 레오는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갖게 된다. 성유다 고아원에서 만난 골칫덩이라 불리는 고아 남매 나일즈와 스탈라, 옆집으로 이사 온 매혹적인 쌍둥이 남매 시파와 트레버, 유서 깊은 러틀레지 가문의 채드워스와 프레이저, 그리고 채스워스의 여자친구 몰리, 흑인 코치 제퍼슨의 아들인 아이크... 이들과의 운명적인 만남으로 레오는 특별한 이야기를 만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한때 천주교 예수성심회의 수녀였다는 어머니의 과거도...



 

<사우스 브로드> 1권에서는 레오와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성장에 대해 이야기가 진행된다. 평범한 성장소설을 만나듯 차분하고 조금은 평범하게 이야기는 전개된다. 고아, 신분의 차이, 마약과 인종과 같은 다양한 격차와 차별 가운데에서도 그들의 성장과 꿈을 위한 몸부림은 그다지 커다란 문제가 없이 긴 여정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 운명의 날, 그들의 운명적 만남은 또 하나의 퍼즐 놀이처럼 전혀 새로운 이야기와 사건들을 만들어 내게 되는데..

 

’몇년이 지나고서야 운명이란 것이 황급히 뒤를 쫓아와 잔인한 발톱으로 나를 건드릴 수도 있다는 것을, 최악의 운명은 온갖 순진무구한 거스로 변장을 하고 이삿짐 트럭과 고아원, 사우스 브로드의 마약단속으로 위장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 P. 20 -

 

신분의 벽을 넘어서는 사랑, 동성애자로 에이즈에 걸려 행방불명 된 친구와 우정, 자신의 꿈을 이루지만 공허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안타까운 여인의 삶과 그들이 가지고 있던 충격적인 과거, 인종적 차별이라는 커다란 벽과 맞서 싸우던 친구,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레오의 아내 스탈라의 죽음... 그리고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형의 자살속에 숨겨진 놀라운 비밀이 안겨주는 반전에 이르기까지... <사우스 브로드>는 이처럼 단순한 성장소설로만 볼 수 없는 다양한 사건들과 사회적 문제들을 담아 커다란 재미와 깊이 있는 감동으로 철저하게 무장하고 있다. 



마지막... <사우스 브로드> 이 책을 내려놓으면서 이 작품이 단순히 성장소설 정도로 불려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섬세하고 편안하면서 유려하게 그려낸 청소년기 아이들의 모습은 굳이 유형을 분류하자면 성장소설이라는 이름과 맞닿아 있겠지만, 이야기가 전개되고 눈부시고 놀라운 팻 콘로이만의 색깔로 채색되는 문학이라는 몸체와 마주하는 순간 이 작품이 단순히 소설이 아닌 예술 작품이라는 신념을 갖게 된다. ’팻 콘로이의 소설을 읽는 것은 미켈란젤로가 시스틴 성당 천장화를 그리는 현장을 보는것과 같다’라는 Houston Chronicle의 찬사가 마음에 와닿는다.

 

’우리는 우연의 힘과 인간사의 마법을 이해한다. ... 운명이란 장나감 총을 쏘듯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 삶을 만신창이로 만들고, 바로 그날을 영원히 잊지 못할 날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존재다.’ - 2권 , P. 462 -

 

조금은 잔인하고 쓸쓸한 삶이지만 이처럼 아름답고 찬란하게 포장할 수 있는 것이 문학과 예술이 가진 힘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삶이 무엇인지, 우연을 가장한 운명, 수도없이 부딪치는 인연의 퍼즐은 어떤 모습으로 연결되고 짜맞추어 지는지를 바라보면서 우리 앞에 놓여진 인생의 행복과 희망의 끈을 다시금 붙잡아본다.

’어둠속에서 별이 더 밝게 빛난다’ 고 했던가? 어둠의 시간에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짙게 드리운 어둠이 아니라 어둠속에서 더 밝게 빛나는 하늘위의 별임을 잊지 말아야함을 <사우스 브로드>는 기억하게 한다.

 

 팻 콘로이의 소설은 참 눈부시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놓고 입속에 살며시 고이는 침처럼, 그의 작품 앞에선 살며시 침이 고인다. ’돈이나 권력보다 사람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은 ’언어’, ’색’ 그리고 ’리듬’에서부터 나온다’는 말이 있다. 언어로 색을 만들고 그 색에 리듬을 부여한 팻 콘로이의 <사우스 브로드>는 앞서 말했듯 단순히 소설이 아닌 예술 작품이다. 재미와 감동을 통해 우리의 삶과 운명속에서 희망을 노래하는, 찌들고 힘든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수줍게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한 편의 예술 작품의 이름이 바로 <사우스 브로드> 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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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 브로드 1
팻 콘로이 지음, 안진환 외 옮김 / 생각의나무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성장소설’ 하면 팀 보울러라는 작가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다. [스쿼시]나 [리버보이]와 같은 그의 작품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고통과 아픔, 만남과 이별을 통해 조금씩 성장해가고 꿈과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들을 만나게 된다. 이런 성장소설에 우리가 쉽게 공감하고 빠져들수 있는 이유는 청소년기의 수많은 만남속에서 갖게되는 이별과 새로운 삶으로 뛰어 오르기 위해 웅크리는 아픔에 대한공감’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별의 상처와 아픔의 치유가 있어야만 새로운 자신만의 시간을 향해 조금씩 조금씩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처음... 단순히 성장소설이라는 말이 제법 어울릴 듯한 <사우스 브로드>라는 작품을 만난다. 아픈 과거의 시간을 거슬러 자신에게 흘러든 시간을 이해하고 동화하며 우정과 사랑을 키워가는 소년의 이야기로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사우스 브로드>는 겁이 많고 조금은 소심하지만 그저 평범하기만 한 소년의 목소리로 말문을 연다. 자신이 너무나 따르던 형의 갑작스런 자살의 충격으로 정신병원과 마약소지로 보호관찰을 받게 된 레오, 그렇게 삶에서 표류하던 레오는 시간이 흐르고 이제 18살이 되면서 과거의 아픔에서 벗어나 조금씩 스스로의 길을 찾아가게 된다. 하지만 그의 운명을 되바꾼 모든 일은 1969년 6월 16일에 시작된다. 

 

’그 어떤 일도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이 사실을 힘겹게 배웠다. 그 힘겨움이 어떤 진실에 도달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알기 오래전에 말이다.’ - P. 19 -

 

서로 관련없어 보이는 일련의 사건들이 일어난다. 운명의 그 날 레오는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갖게 된다. 성유다 고아원에서 만난 골칫덩이라 불리는 고아 남매 나일즈와 스탈라, 옆집으로 이사 온 매혹적인 쌍둥이 남매 시파와 트레버, 유서 깊은 러틀레지 가문의 채드워스와 프레이저, 그리고 채스워스의 여자친구 몰리, 흑인 코치 제퍼슨의 아들인 아이크... 이들과의 운명적인 만남으로 레오는 특별한 이야기를 만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한때 천주교 예수성심회의 수녀였다는 어머니의 과거도...



 

<사우스 브로드> 1권에서는 레오와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성장에 대해 이야기가 진행된다. 평범한 성장소설을 만나듯 차분하고 조금은 평범하게 이야기는 전개된다. 고아, 신분의 차이, 마약과 인종과 같은 다양한 격차와 차별 가운데에서도 그들의 성장과 꿈을 위한 몸부림은 그다지 커다란 문제가 없이 긴 여정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 운명의 날, 그들의 운명적 만남은 또 하나의 퍼즐 놀이처럼 전혀 새로운 이야기와 사건들을 만들어 내게 되는데..

 

’몇년이 지나고서야 운명이란 것이 황급히 뒤를 쫓아와 잔인한 발톱으로 나를 건드릴 수도 있다는 것을, 최악의 운명은 온갖 순진무구한 거스로 변장을 하고 이삿짐 트럭과 고아원, 사우스 브로드의 마약단속으로 위장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 P. 20 -

 

신분의 벽을 넘어서는 사랑, 동성애자로 에이즈에 걸려 행방불명 된 친구와 우정, 자신의 꿈을 이루지만 공허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안타까운 여인의 삶과 그들이 가지고 있던 충격적인 과거, 인종적 차별이라는 커다란 벽과 맞서 싸우던 친구,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레오의 아내 스탈라의 죽음... 그리고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형의 자살속에 숨겨진 놀라운 비밀이 안겨주는 반전에 이르기까지... <사우스 브로드>는 이처럼 단순한 성장소설로만 볼 수 없는 다양한 사건들과 사회적 문제들을 담아 커다란 재미와 깊이 있는 감동으로 철저하게 무장하고 있다. 



마지막... <사우스 브로드> 이 책을 내려놓으면서 이 작품이 단순히 성장소설 정도로 불려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섬세하고 편안하면서 유려하게 그려낸 청소년기 아이들의 모습은 굳이 유형을 분류하자면 성장소설이라는 이름과 맞닿아 있겠지만, 이야기가 전개되고 눈부시고 놀라운 팻 콘로이만의 색깔로 채색되는 문학이라는 몸체와 마주하는 순간 이 작품이 단순히 소설이 아닌 예술 작품이라는 신념을 갖게 된다. ’팻 콘로이의 소설을 읽는 것은 미켈란젤로가 시스틴 성당 천장화를 그리는 현장을 보는것과 같다’라는 Houston Chronicle의 찬사가 마음에 와닿는다.

 

’우리는 우연의 힘과 인간사의 마법을 이해한다. ... 운명이란 장나감 총을 쏘듯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 삶을 만신창이로 만들고, 바로 그날을 영원히 잊지 못할 날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존재다.’ - 2권 , P. 462 -

 

조금은 잔인하고 쓸쓸한 삶이지만 이처럼 아름답고 찬란하게 포장할 수 있는 것이 문학과 예술이 가진 힘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삶이 무엇인지, 우연을 가장한 운명, 수도없이 부딪치는 인연의 퍼즐은 어떤 모습으로 연결되고 짜맞추어 지는지를 바라보면서 우리 앞에 놓여진 인생의 행복과 희망의 끈을 다시금 붙잡아본다.

’어둠속에서 별이 더 밝게 빛난다’ 고 했던가? 어둠의 시간에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짙게 드리운 어둠이 아니라 어둠속에서 더 밝게 빛나는 하늘위의 별임을 잊지 말아야함을 <사우스 브로드>는 기억하게 한다.

 

 팻 콘로이의 소설은 참 눈부시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놓고 입속에 살며시 고이는 침처럼, 그의 작품 앞에선 살며시 침이 고인다. ’돈이나 권력보다 사람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은 ’언어’, ’색’ 그리고 ’리듬’에서부터 나온다’는 말이 있다. 언어로 색을 만들고 그 색에 리듬을 부여한 팻 콘로이의 <사우스 브로드>는 앞서 말했듯 단순히 소설이 아닌 예술 작품이다. 재미와 감동을 통해 우리의 삶과 운명속에서 희망을 노래하는, 찌들고 힘든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수줍게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한 편의 예술 작품의 이름이 바로 <사우스 브로드> 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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