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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 브로드 1
팻 콘로이 지음, 안진환 외 옮김 / 생각의나무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성장소설’ 하면 팀 보울러라는 작가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다. [스쿼시]나 [리버보이]와 같은 그의 작품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고통과 아픔, 만남과 이별을 통해 조금씩 성장해가고 꿈과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들을 만나게 된다. 이런 성장소설에 우리가 쉽게 공감하고 빠져들수 있는 이유는 청소년기의 수많은 만남속에서 갖게되는 이별과 새로운 삶으로 뛰어 오르기 위해 웅크리는 아픔에 대한 ’공감’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별의 상처와 아픔의 치유가 있어야만 새로운 자신만의 시간을 향해 조금씩 조금씩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처음... 단순히 성장소설이라는 말이 제법 어울릴 듯한 <사우스 브로드>라는 작품을 만난다. 아픈 과거의 시간을 거슬러 자신에게 흘러든 시간을 이해하고 동화하며 우정과 사랑을 키워가는 소년의 이야기로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사우스 브로드>는 겁이 많고 조금은 소심하지만 그저 평범하기만 한 소년의 목소리로 말문을 연다. 자신이 너무나 따르던 형의 갑작스런 자살의 충격으로 정신병원과 마약소지로 보호관찰을 받게 된 레오, 그렇게 삶에서 표류하던 레오는 시간이 흐르고 이제 18살이 되면서 과거의 아픔에서 벗어나 조금씩 스스로의 길을 찾아가게 된다. 하지만 그의 운명을 되바꾼 모든 일은 1969년 6월 16일에 시작된다.
’그 어떤 일도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이 사실을 힘겹게 배웠다. 그 힘겨움이 어떤 진실에 도달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알기 오래전에 말이다.’ - P. 19 -
서로 관련없어 보이는 일련의 사건들이 일어난다. 운명의 그 날 레오는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갖게 된다. 성유다 고아원에서 만난 골칫덩이라 불리는 고아 남매 나일즈와 스탈라, 옆집으로 이사 온 매혹적인 쌍둥이 남매 시파와 트레버, 유서 깊은 러틀레지 가문의 채드워스와 프레이저, 그리고 채스워스의 여자친구 몰리, 흑인 코치 제퍼슨의 아들인 아이크... 이들과의 운명적인 만남으로 레오는 특별한 이야기를 만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한때 천주교 예수성심회의 수녀였다는 어머니의 과거도...

<사우스 브로드> 1권에서는 레오와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성장에 대해 이야기가 진행된다. 평범한 성장소설을 만나듯 차분하고 조금은 평범하게 이야기는 전개된다. 고아, 신분의 차이, 마약과 인종과 같은 다양한 격차와 차별 가운데에서도 그들의 성장과 꿈을 위한 몸부림은 그다지 커다란 문제가 없이 긴 여정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 운명의 날, 그들의 운명적 만남은 또 하나의 퍼즐 놀이처럼 전혀 새로운 이야기와 사건들을 만들어 내게 되는데..
’몇년이 지나고서야 운명이란 것이 황급히 뒤를 쫓아와 잔인한 발톱으로 나를 건드릴 수도 있다는 것을, 최악의 운명은 온갖 순진무구한 거스로 변장을 하고 이삿짐 트럭과 고아원, 사우스 브로드의 마약단속으로 위장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 P. 20 -
신분의 벽을 넘어서는 사랑, 동성애자로 에이즈에 걸려 행방불명 된 친구와 우정, 자신의 꿈을 이루지만 공허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안타까운 여인의 삶과 그들이 가지고 있던 충격적인 과거, 인종적 차별이라는 커다란 벽과 맞서 싸우던 친구,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레오의 아내 스탈라의 죽음... 그리고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형의 자살속에 숨겨진 놀라운 비밀이 안겨주는 반전에 이르기까지... <사우스 브로드>는 이처럼 단순한 성장소설로만 볼 수 없는 다양한 사건들과 사회적 문제들을 담아 커다란 재미와 깊이 있는 감동으로 철저하게 무장하고 있다.

마지막... <사우스 브로드> 이 책을 내려놓으면서 이 작품이 단순히 성장소설 정도로 불려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섬세하고 편안하면서 유려하게 그려낸 청소년기 아이들의 모습은 굳이 유형을 분류하자면 성장소설이라는 이름과 맞닿아 있겠지만, 이야기가 전개되고 눈부시고 놀라운 팻 콘로이만의 색깔로 채색되는 문학이라는 몸체와 마주하는 순간 이 작품이 단순히 소설이 아닌 예술 작품이라는 신념을 갖게 된다. ’팻 콘로이의 소설을 읽는 것은 미켈란젤로가 시스틴 성당 천장화를 그리는 현장을 보는것과 같다’라는 Houston Chronicle의 찬사가 마음에 와닿는다.
’우리는 우연의 힘과 인간사의 마법을 이해한다. ... 운명이란 장나감 총을 쏘듯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 삶을 만신창이로 만들고, 바로 그날을 영원히 잊지 못할 날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존재다.’ - 2권 , P. 462 -
조금은 잔인하고 쓸쓸한 삶이지만 이처럼 아름답고 찬란하게 포장할 수 있는 것이 문학과 예술이 가진 힘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삶이 무엇인지, 우연을 가장한 운명, 수도없이 부딪치는 인연의 퍼즐은 어떤 모습으로 연결되고 짜맞추어 지는지를 바라보면서 우리 앞에 놓여진 인생의 행복과 희망의 끈을 다시금 붙잡아본다.
’어둠속에서 별이 더 밝게 빛난다’ 고 했던가? 어둠의 시간에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짙게 드리운 어둠이 아니라 어둠속에서 더 밝게 빛나는 하늘위의 별임을 잊지 말아야함을 <사우스 브로드>는 기억하게 한다.
팻 콘로이의 소설은 참 눈부시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놓고 입속에 살며시 고이는 침처럼, 그의 작품 앞에선 살며시 침이 고인다. ’돈이나 권력보다 사람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은 ’언어’, ’색’ 그리고 ’리듬’에서부터 나온다’는 말이 있다. 언어로 색을 만들고 그 색에 리듬을 부여한 팻 콘로이의 <사우스 브로드>는 앞서 말했듯 단순히 소설이 아닌 예술 작품이다. 재미와 감동을 통해 우리의 삶과 운명속에서 희망을 노래하는, 찌들고 힘든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수줍게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한 편의 예술 작품의 이름이 바로 <사우스 브로드> 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