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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는 알고 있다 ㅣ 블랙 캣(Black Cat) 20
로라 립먼 지음, 윤재원 옮김 / 영림카디널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예전에 우유를 먹다보면 눈에 들어오던 사진들이 있었다. 아이를 찾는다는, 몇 살이고 어떤 옷을, 어디서 잃어버렸다던지 하는 자세한 내용들과 함께 붙어있는 사진들. 그때는 몰랐지만, 아니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아빠라는 이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나이를 먹고 보니, 그 아이도 그렇지만 아이의 부모가 겪을 아픔이란 것이 새삼 가슴속에 와닿는다. 시간이 흘렀지만 요즘에도 그런 아이들의 실종, 유괴 사건들이 쉴 새없이 벌어진다. 작년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었던 혜진, 예슬이 사건도, 범행의 잔혹성에 치를 떨었고 그 처벌에 다시한번 분노해야했던 조두순 사건도 그리 먼 시간 이야기가 아니다.
IT선진국이라고 떠들어대는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잃어버린 아이를 찾지 못해 그 가족들에게 아픔의 시간을 안겨주는 것일까? 아이들이 돈벌이의 수단으로 이용된다는 잔혹한 현실... 해외입양이라는 명목으로 팔려가고 일부 고아원에서는 인원수를 맞추기위해 일부러 아이 부모를 찾지 않는다는... 이런 말도 않되는 이야기들이 들려오기도 한다. 더욱 기가 찰 노릇은 아이들이 성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도무지 상상이 되지도 않고 생각하기조차 무섭고 두려운 이런 모습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사회의 현실이다.
유괴, 성폭력, 그로 인한 가족의 고통, 이런 사회적인 이슈를 다루고있는 한편의 소설과 만나게 된다. 로라 립먼의 <죽은 자는 알고있다>는 기존에 보여지던 ’(아동) 유괴’라는 소재를 따르지만 그 구성에서 조금은 독특한 점들을 보여준다. 기존 작품들에서는 누군가의 실종, 유괴, 그리고 그 사건을 파헤치는 경찰, 혹은 아버지와 같은 가족들이 범인의 실체를 밝히고 그 대상을 구하게 되던지 아니면 죽음에 이르렀다는 가슴아픈 이야기와 같은 스토리가 전개된다. 유괴를 다룬 작품들은 이처럼 왜? 누가? 그리고 어떻게? 해결하는지에 촛점이 맞춰지고 있다.
’귀뚜라미가 없을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 사건은 귀뚜라미와 함께 시작되었다. 그가 알고 있는 건 이 여자가 진실과 거짓 사이를 오가고 있다는 것, 어떤 부분은 정확하지만 또 다른 부분은... 빚어냈다는 것분이었다...’ - P. 356 -
하지만 <죽은 자는 알고있다>는 다르다.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그 사고의 가해자인 40대의 여인은 자신이 지금으로 부터 30년전인 1775년 3월 발생한 베서니 가(家) 두 자매 유괴사건의 당사자라고 말한다. 당시 15세였던 언니 서니 베서니와 11살의 헤더 베서니는 쇼핑몰에서 사라진후 연락도 없고 시체도 발견되지 않은채 그렇게 30년이란 시간속에 묻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자매 유괴사건이 있은지 30년, 교통사고를 낸 한 여인은 자신이 당시 11살 이었던 동생 헤더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왜? 이제와서 그 사실을 말하는 것일까? 그녀가 정말 헤더일까? 지금 그녀가 가진 이름은 페넬로페 잭슨이고, 과거 그녀의 또다른 이름은 제인 도우이기도 하고 루스 라이빅이기도 했다. 과연 그녀의 정체는 무엇일까? 정말 그녀가 헤더라면 두 자매 유괴사건의 전모는 밝혀질 수 있을까?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한 그녀를 둘러싸고 그를 도와주려는 사회복지사 케이, 그녀의 변호사 글로리아, 인판티 형사, 과거 그녀의 사건을 맡았던 윌로우비 등 과거의 실종사건과 현재의 그녀가 말하는 진실을 쫓는 시간여행은 흥미를 더해간다.
’지금 그녀는 자신이 가진 유일한 것, 누군가의 죽음을 발판으로 만든 지난 16년간의 삶을 보호해야 했다. 죽은 자들이 있었기에 그녀는 인생을 얻었다. 좋은 싫든 그건 그녀의 진짜 삶이었고, 이제까지의 삶 중에서 가장 오래 살아온 나날들이었다.’ - P. 60 -
왜? 누가? 어떻게? 를 찾아 떠나는 재미가 유괴라는 소재를 다룬 작품들의 공통된 특징이었다면 이 작품 <죽은 자는 알고있다>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오로지 왜? 라는 물음표이다. 왜? 유괴를 했는가 보다는, 사건 피해자인 유괴되었던 소녀가 왜? 이제서야 자신의 신분을 말하고 있는것인지, 그렇다면 왜? 그녀는 지금까지 진실을 알리지 못했으며, 30년이란 시간속에서 그녀가 지키고자 했던것은 과연 무엇는지가 중요한 포인트인 것이다.
’진실에 나이를 부여할 수 있다는 생각. 그게 마치 음주나 투표인 것처럼. 오, 데이브와 미리엄은 바쁘게 일하면서도 허접하기 그지없는 댐을 만드는 비버와 다름없었다. - P. 275 -
<죽은 자는 알고있다>, 우연히 발생한 사고, 그리고 30년이라는 시간을 거슬러 발생한 사건과의 연관성, 쉴새없이 과거와 현재를, 주인공을 둘러싼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눈과 발로 파헤쳐지는 흥미로운 추리소설이다. 하지만 조금 아쉬운 점도 있다. 과거와 현재를 쉴새 없이 오가면서도 사건의 해결과 추리의 실마리를 풀어갈 수 있게 하는 속도감이 조금은 아쉽게 느껴진다. 중반 이후 헤더라고 주장하는 그녀의 입을 통해서 사건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면서 속도감있는 전개가 보이지만 사실 그 전까지는 책속에 몰입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헤더 베서니, 그녀의 말은 정말 사실일까? 이런 물음에 대해서 책은 종종 트릭을 사용해서 읽는 독자들의 머리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녀가 정말 헤더? 아니면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거짓을? 혹은 헤더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또 다른 여자? 다양한 추리를 이끌어내는 이런 트릭과 마지막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반전의 묘미가 이 책이 진정 수많은 상과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이유임을 설명해주는 듯 하다.
죽은 자들은 정말 알고있을까? 아니 무엇을 알고 있을까? 제목에서 말하는 이 죽은 자들이란 도대체 누구를 말하는거지? 오로지 책을 내려놓을 때까지 수많은 물음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닌다. 책을 내려놓는 마지막 순간, 순식간에 터져버리는 물음표들로, 상쾌한 즐거움을 만끽하게 될 것이다. 추리소설이 던지는 유쾌한 재미와 더불어 ’가족’이라는 이름, 유괴와 성폭력과 같은 사회문제까지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시간이었다. <죽은 자는 알고있다>, 로라 립먼이라는 이름과 오랜시간 함께 기억될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