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이야마 만화경
모리미 도미히코 지음, 권영주 옮김 / 문학수첩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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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본을 표현하는 수많은 수식어들이 있다. 그 중 눈에 띄는 하나가 바로 '축제(마쯔리)의 나라' 라는 것이다. 축제, 즉 일본의 '마쯔리' 는 대부분 풍작과 풍어를 비는 의식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일본의 대표적인 역사적 풍습으로 신사나 절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것이 특징이다. 그 중 관서지방을 대표하는 기온 축제, 기온 마쯔리는 일본에서도 그 화려함과 장대함을 손에 꼽을 정도라고 하는데... 기온 마쯔리의 밤, 흥이 절정에 오르는 밤을 요이야마라고 한다. 요이야마를 둘러싼 화려하고 신비한 이야기들이 이 책 <요이야마 만화경>속에서 빛을 내기 시작한다.

 

요이야마와 연관된 6가지 이야기들이 만화경처럼 신비로운 색채를 만들어낸다. 발레학원에 다녀오다 축제에 흠뻑 빠져 언니를 잃어버린 소녀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15년전 요이야마에 잃어버렸던 딸을 만화경속에서 찾게 된 아버지의 이야기, 초금붕어를 기르는 엉뚱한 사내와 요이야마에 벌써 3번째 초대되지만 계속해서 친구에게 골탕을 먹게 되는 남자의 이야기, 기온제 사령부를 만들고 선배의 친구를 속이려는 엉뚱한 사람들, 그리고 길을 잃어버렸던 자매들중 언니의 이야기가 쳇바퀴돌듯 다시 원점으로 이야기를 되될려 놓는다. 요이야마를 둘러싼 다양한 군상들의 신비하고도 경쾌한 이야기들이 하룻밤 절정에 이른 요이야마의 풍경을 즐겁게 수놓는다.

 

만화경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을 줄 안다. 크기가 같은 길쭉한 평면거울 3개로 만든 이 괴상한 추억의 물건은 한자로 일만 만(萬), 빛날 화(華), 거울 경(鏡)으로 쓰여지는데 같은 모양이 다시는 나타나지 않고 계속 변화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만화경은 우리 어린시절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그 안에 무엇이든 넣으면 전혀 색다르고 모두 다른 모습으로 변해버리는 신비 그 자체인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 만화경이란 제목이 쓰인 이유 또한 그런 이유에 있을것이다. 만화경 자체가 소설속 주요 소재로 쓰이기도 했지만 만화경이 만들어내던 그 신비함 자체가 요이야마가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신비로움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요이야마 만화경>은 '교토의 소설가' 라고도 불리는 모리미 도미히코의 작품이다. 그의 작품들은 거의 대부분 교토를 배경으로 쓰여졌다고 한다.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작가는 왜 교토를 배경으로 고집하냐는 질문에, 자신이 살고 있고 대학시절을 보내 교토가 신비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신비한 일이 일어날것 같은 교토! 그래서 작가는 그런 독자의 기대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신비하고 매력적인 공간으로서 교토를 작품의 배경으로 자주 사용한다고 말한다. 교토!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지만 그런 의미에서 언제고 한번쯤 꼭 찾고 싶어지는 장소가 될 것 같다.

 


[유정천 가족]으로 2009년 우리 곁을 찾아왔던 작가 모리미 도미히코. 너구리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의 사랑을 보여주었던 이 작품속에서도 작가는 작가 나름의 상상력으로 독자들을 재미와 감동으로 이끌었었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그만의 매력을 느끼게하는 환상과 신비로움 가득한 마쯔리의 세계로 독자들을 매혹시킨다. 만화경을 들여다보는듯한 신비롭고 몽환적인 작품의 분위기는 특별한 사건이 아닌 색다른 배경을 통해 이야기를 매력적이고 돋보이게 만들어내고 있다.  

 
 
기인이나 거짓말을 태연하게 떠드는 몽상가처럼 만화적인 캐릭터들의 등장에 대해서 작가는 주변 인물들을 통해 그런 캐릭터들을 창조해낸다고 말한다. 재밌게 말하고 행동하는 주변의 사람들이 그에게 다양한 소재와 캐릭터들을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독특한 배경, 유쾌한 이야기들, 색다른 캐릭터, 몽환적 분위기, 인상적인 제목... 모리미 도미히코의 작품이 주는 이런 특별함이 그를 기억하고 사랑받게 만드는 이유일 것이다. 처음 만화경을 바라보며 느꼈던 신비함과 만화적 캐릭터들이 주는 재미까지 고스란히 담아내는 색다른 이야기의 매력에 독자들은 쉽게 빠져들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교토 소설가만의 매력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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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블랙 장르의 재발견 1
오스카 와일드 지음, 서민아 옮김 / 예담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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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헨리 워튼 경은 자유를 추구하는 쾌락주의자이다. 젊음과 아름다움 순수를 두루 갖춘 미소년 도리언 그레이를 만나게 된 헨리는 그에게 흥미를 느끼게 되고 조금씩 그를 타락의 늪으로 빠뜨리고 만다. 헨리의 친구인 화가 바실은 도리언의 초상화를 그려주게 되고, 자신의 젊음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영혼마저 기꺼이 내어 놓겠다는 도리언의 말에 초상화는 낮은 미소로 대답하기에 이른다. 도리언에게 처음으로 찾아온 사랑, 결혼까지 생각했던 그 였지만 그녀의 연기에 실망하고 과감히 그녀를 버리게 되고, 연극 배우였던 시빌 베인은 그 충격에 자살을 하게 되고...

 

도리언의 모습이 담긴 초상화는 그가 보이는 행동의 변화처럼 잔인한 미소를 머금으면서 조금씩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도리언은 늙지도 그의 미모는 사라지지도 않는다. 영혼을 팔아버린 도리언은 점점 더 헨리 경의 쾌락속에 빠져들게 되고 그 유혹은 살인에 이르기까지 한다. 영원한 젊음을 유지하게 된 도리언, 도리언의 악행을 짊어지고 늙어가는 도리언의 초상화. 그의 주변에서 계속 발생하는 살인사건. 과연 도리언은 영원한 젊음을 간직할 수 있을까? 바질이 그린 이 초상화의 비밀은 무엇인고, 이 초상화에 담긴 비밀을 도리언은 지켜낼 수 있을지... 이야기는 더욱 더 깊고 깊은 쾌락과 환상속을 내달린다.

 

'예술가는 아름다운 것들의 창조자이다. 예술을 드러내고 예술가를 감추는 것이 예술의 목적이다. ... 도덕적인 책이라거나 부도덕적인 책이라는 것은 없다. ... 예술가에게 생각과 언어는 예술의 도구이다. 예술가에게 악덕과 미덕은 예술을 위한 재료이다. ... 모든 예술은 전혀 쓸모없다.' - <도리언그레이의 초상> 서문, 오스카 와일드 -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오스카 와일드의 1891년 作이다. 오스카 와일드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아이들을 위한 동화와 희곡 작가라는 수식어인듯 하다. [행복한 왕자]를 비롯한 그의 동화들은 아이들의 환상을 자극하는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그리고 [살로메]와 같은 희곡을 썼다고 하는데 아직 그 작품들을 만나보지는 못했다. 그리고 이 작품,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그가 남긴 유일한 장편소설이라고 한다. 벌써 한 세기를 훌쩍 넘긴 이 작품이 불과 몇년전 영화로 우리 곁을 찾아오기도 하고, 소설로 아직까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이유, 책을 읽어본 독자들이라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있으리라.

 



미모의 청년 도리언, 헨리 경의 유혹으로 시작된 그의 쾌락주의와 추악한 인간성의 변화는 결국 그를 비참한 결말로, 파멸로 이끌게 된다는 스토리 구성은 조금은 단순해 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유미주의적 표현들과 화려한 문체, 초상화가 늙어간다는 판타지적 묘사나 영혼을 건 악마와의 거래와 같은 독특한 설정들이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을 오래도록 독자들에게 관객들에게 사랑받게 만든 비결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욕망' 이라는 단어속에는 '과하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과하다는 것은 언제나 모자람만 못하다고 했다. 영원한 젊음에 대한 욕망은 단순히 어제만의 일은 분명 아닐것이다. 얼마전, 성형미인은 자신의 영화에 출연할 수 없다고 말했다던 헐리우드 영화 감독의 소식이 있자, 그 아래 수많은 댓글들이 달렸었다. 그 댓글들중에서 '우리나라 배우들중 그 영화에 출연할 배우는 없겠다' 던 한 네티즌의 우스갯소리가 떠오른다. 간단한 성형은 성형 축에도 끼지 못하고, 보톡스는 미용이 되어버린 웃지 못할 현실. 젊음을 향해, 욕망을 위해 추악함과 잔혹함까지 보이는 우리시대의 현실이 백년을 넘겨버린 고전속에 거울처럼 선명히 보여진다.

 

'예술을 위한 예술의 옹호자' 오스카 와일드 

이 작품으로 지금까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오스카 와일드이지만, 동성애 사건에 휘말려 감옥에서 2년의 실형을 치른 오스카 와일드. 아이러니하게도 재판과정에서 이 작품이 그 증거물로 제시되기도 했다고 한다. 오스카 와일드, 그를 성공과 파멸로 이끈 작품이 공교롭게도 바로 이 책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었던 것이다. 그는 이 책의 서문을 통해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자신의 가치관을 정확하게 피력하고 있다. 세상이 보내는 자신에 대한 따갑고 차가운 시선에 대해 작품을 통해 자신의 유미주의적 예술관을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자네가 늙고, 주름지고, 추해질 때, 생각이 한 줄 한 줄 주름을 패어놓아 이마에서 생기가 사라질때, 열정이 그 끔찍한 불길로 입술에 낙인을 찍을 때, 그때 비로소 알게 될 걸세. 젊음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몸서리치게 느끼게 될 거야...' - P. 46 -

 

위에서 말하는 헨리 경의 말을 가만히 듣다 보면 작가가 말하려는 두가지 뚜렷한 주제를 느낄 수 있을것 같다. 이 시대 젊음을 유지하고자 하는 수많은 욕망에 대한 경고이자 젊은이들만의 고귀한 특권인 청춘을 어떻게 보내야하는지에 대한 교훈이 엿보인다. 욕망과 양심, 두 이율배반적인 관념의 공존에 대한 그의 질문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에 아직도 우리는 속시원한 대답을 내어놓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쾌락, 그리고 파멸로 이어지는 오스카 와일드가 말하려는 욕망의 덫을 우리는 언제쯤 깨닫게 될 수 있을지...

 

읽는 내내 화려한 문체에 압도당한다. 오래된 고전이지만 이 작품을 쉽게 읽을 수 있는 것은 지금도 그의 작품이 사랑받고 공감받는 이유와 같은 맥락일 것이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오스카 와일드가 전해준 단순한 현실적 교훈을 넘어서 환상적이고 독창적인 동화적 상상이 가미된 재미와 구성에 매혹되고 만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의 살인자를 통해 오스카 와일드를 보게 되고, 그를 통해 우리 현실의 모습들을 만나게 된다. 오스카 와일드의 펜끝에서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자 현실속 우리 자신의 얼굴이 담긴 초상화와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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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비밀
톰 녹스 지음, 서대경 옮김 / 레드박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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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친구와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있다. 천주교에 다니던 친구, 무늬만 크리스챤인 내가 나눈 대화의 요지는 바로 '신의 존재'에서 멈추어 있었다. 신은 존재할까? 누구에게 묻더라도 속시원히, 아니면 과학적이고 확실한 대답을 그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영원히 논쟁으로만 남을 수밖에 없는 질문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우리의 대화 역시 결론도 없이 단순한 논쟁으로 그치고 말았지만. 친구가 했던 말중 이 말만이 선명하게 기억된다. 지금의 종교는 신앙이 아닌 종교에만 머물러 있다는...

 

신은 존재할까? 이 질문에 대답하는... 아니 그 질문에 대해서 사색하게 만드는 즐거운 미스터리 추리소설과 마주한다. 종교적 믿음이 있건 없건간에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창세기'에 대한 비밀을 현대적 시점에서, 소설적 상상을 가미한 작품이 바로 톰 녹스의 <창세기의 비밀>이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고고학적 발견과 그를 둘러싸고 발생하는 살인사건들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색다른 팩션 스릴러의 진수를 담아낸다. 이 작품은, 지적 호기심과 재미, 감동을 안겨주는 화제작으로 전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제 그 비밀의 문을 조심스레 열어보려 한다.

 

종군기자 출신의 해외 특파원 로브 러트렐, 이혼과 딸의 죽음으로 우울증에 시달리는 경력 10년의 베테랑 형사 마크 포레스터 반장, 그리고 생물인류학자이자 인골 고고학자인 미모의 여인 크리스틴 마이어... 형사와 기자, 고고학자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바로 이 작품을 이끌어간다. 터키 남동부 쿠르드 지역의 괴베클리 테페에서 역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고고학 유적지가 발견된다. 약 1만 2000년 전에 지어진 이 건축물은 기원전 8000년경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땅속에 매장되었다고 하는데...

 

<창세기의 비밀>은 두 가지 사건을 중심으로 구성 된다. 벤자민 프랭클린 박물관 관리인이 지하실 바닥을 파헤치던 대여섯명의 괴한들에게 혀가 잘리고, 그의 가슴에 다윗의 별을 새기다가 달아난 사건이 그 하나이고, 세계 최초의 종교 건축물이라는 추측속에 발굴 작업을 진행하던, 이 사원이 세상에 공개되는것을 막으려하던 고고학자 브라이트너 박사의 죽음이 또 다른 하나의 축을 이루고 있다. 여러가지 미스터리를 품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 그리고 계속되는 연쇄살인. 포레스터 반장과 로브 기자는 서로 다른 곳에서 전혀 관련없어 보이는 사건들의 실체를 파헤치게 되고 그 속에서 굳게 닫혀있던 창세기의 비밀의 문을 서서히 열어가게 된다.

 



 

브라이트너 박사가 남긴 비밀노트, 인신공희를 즐기는 범인의 정체, 검은 책의 비밀, 프리메이슨이었던 벤자민 프랭클린, 괴베클리 테페가 간직한 역사의 미스터리... 무거운 두께를 가늠케하는 이 책은 스릴과 액션, 미스터리를 간직한체 조금씩 속도를 높여간다. 일찌기 우리는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를 통해서 숨막힐듯한 스릴과 액션, 추리의 진수를 경험한 적이 있었다. 그 이후 많은 작품들속에서 그와 유사한 내용과 인물 구성이 두드러진 것도 사실인데, 말하자면 이 작품도 그런 팩션소설의 전형을 따르고 있다.

 

종교와 역사를 다시 한번 되돌아 보게 만드는 작품이 바로 <창세기의 비밀>이다. 어느 것이 옳고 그름을 따질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삶속에서 바라보는 종교적 현실이 바로 소설속에서 팩션으로 새롭게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속에서 우리는 '신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인간의 본성과 가치를 탐색' 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었다. 종교와 철학, 역사속에서 신에 의해 구원된 세상, 창조론의 위선을 조목조목 비판하던 그의 목소리는 우리에게 잠시 귀를 기울이게 만든것이 사실이다.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종교적 비판의 목소리, 신앙은 없고 종교만 존재하는 현실속 비뚤어짐이 바로 [만들어진 신]이나 이 작품 <창세기의 비밀>속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 작품의 작가 톰 녹스는 칼럼 저널리스트와 기자로 활동했었다고 한다. 이런 그의 경험은 이 작품에도 철저하게 반영되어 기자 특유의 섬세한 구성과 추리, 생동감 넘치는 스펙터클, 잘 알지 못하던 미지의 영역에 대한 즐거운 탐미가 적극적으로 반영되어 있는듯 하다.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괴베클리 테베에 관한 팩션을 쓰기로 결심했다는 작가의 이 작품은, 영원 불멸의 작품, 도스토 예프스키의 [죄와 벌] 처럼 오랜 시간 독자들의 마음을 붙들어 놓을 그런 작품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지적 추리! 이 작품이 가진 가장 크고 특별한 매력이 바로 이것이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캐릭터들이 뿜어내는 매력도 물론이지만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괴베클리 테페라는 실제하는 장소에 숨겨진 비밀을 탐구하는, 종교와 역사, 철학을 넘나드는 지적 호기심에 대한 자극은 독자들을 책속에 빨려들게 만들기에 충분해 보인다. 역사적 사실, 스토리적 허구, 기자로서의 경험이 긴장감을 내려놓을 수 없는 특별한재미와 경험속으로 우리를 이끈다.

 

톰 녹스는 그의 두번째 작품 [카인의 유전자]의 집필을 거의 마쳤다고 한다. 그 작품 역시 실제 미스터리를 기반으로 한 팩션소설이라고 하는데, 무척이나 기대하게 만든다. 인간은? 신이란 존재는? 풀리지 않는, 알려지지 않은 수수께끼의 실체를 찾아 떠난 즐거운 여행이 이제 그 막을 내리려 한다. 데뷔작에서 보여준 그의 열정, 하지만 신인작가의 작품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치밀한 구성과 흡입력이 다음 작품에서는 얼마나 더 큰 꽃으로 피어오를지 기대하게 된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또 다른 비밀의 문이 그의 펜끝에서 어떤 모습으로 창조될지 두근거리는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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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 상상과 몽상의 경계에서
김의담 글, 남수진.조서연 그림 / 글로벌콘텐츠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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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내린 눈! 벚꽃이 만개한 4월, 때아닌 눈이 흩뿌린다. 따스한 봄볕에 온 몸을 맡겨보고픈 바램은 사치라는듯 시샘을 내는 추위가 눈으로 절정을 이룬다. 계절의 이야기를 떠나, 4월 오늘 내린눈은 우리에게 지난 겨울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짧았지만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 속에서 또 많은 이야기들이 피어 올랐으리라. 잠시 걸음을 멈추고 지금의 나를 돌아보는 시간! 느닷없기도 했지만 그래서 신선하고 색다른 경험이었던 4월의 눈, 그런 눈처럼 오늘을 특별하게 만드는 작은 책 한권과 마주한다.

 

'어둠의 존재. 지금의 나에게 여전히 존재하며 두려움이라는 집을 짓고 내가 침몰하기만을 기다린다. 난 여전히 괴물과 싸우고 있다.'   - P. 09 -

 

삶의 습작처럼 흩뿌려진 과거와 현재의 기억이 책 제목처럼 상상처럼, 몽상처럼 그 경계에 자리한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규정짓는 듯한 '상처, 이해, 성숙'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작가는 추억속 아지랭이를, 현실에 주어진 일상들을, 동화속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나즈막이 들려준다. 오래전 천근만근한 짐보따리를 둘러맨 엄마의 뒷모습, 어린시절 밤이 무서웠던 기억들, 놀이터 아이들의 소꿉장난놀이에서 현재를 새롭게 바라보게 만든다. 그리고 현재의 나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가슴 두근거려 뛰쳐나가고 싶은 꿈은 무엇입니까?

누가 뭐라 해도 달려가고 싶은 꿈이 무엇입니까?

나의 꿈은 무엇이었나? 어릴적 꿈은 상상처럼 푸르르고 찬란했다. 현실에 놓인 나의 꿈은 이미 몽상이 되어버린지 오래고, 그런 꿈조차 있었는지 아스라하다. 크면 무엇이 되겠다고 당당하게 말하던 열정의 온도계는 거침없이 아래로 아래로 향하고 있다. 그래... 오래전 나의 꿈은 무엇이었지?

 

넌 인생에서 지키고 싶은 열가지가 뭐야?

모건 프리먼의 '10 아이템스 오어 레스'란 영화속에서 그는 '자신이 살면서 지키고 싶은 것'을 열가지 이하로 말해보라고 했단다. 나에게 지키고 싶은 열가지? 음~ 무엇이 있을까? 가장 먼저 역시 건강이 아닐까? 그리곤 음... 생활속 마음의 여유를 간직하는 일, 내 서재와 책들, 축구 사랑, 항상 고마운 가족과 친구들, 음... 우리 강아지 짱구, 정원에 심은 과일나무들... 고민고민 해봐도 열가지를 채우기는 힘들것 같다. 그만큼 삶에 열정이 없었단 말인가? ㅠ.ㅠ

 



 

내가 지키고 싶은 것들 중 한가지였던 친구, 친구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이 책속에도 유독 눈에 띈다.

 

'친구도 인해 끊임없이 변화하며 동화되고 친구의 향기에 나의 향기를 적시며 결국엔 서로의 향기를 맡을 수 없게 된다. 가끔 친구로 인해 상처를 받더라도 우리 서로 한걸음 뒤에서 지켜봐주고 사랑하지. 내가 받은 상처보다 더 마음 아파할 친구를...'

 

굳이 친구라고 한정지을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자신의 주변에 있는 연인, 친구, 가족... 모두에게 가능한 이야기일것 같다. 친구의 향기에 나의 향기를 적시며 동화되어 향기조차 하나가 되어간다는 말이 너무 감미롭고 사랑스럽다.

 

<Her 상상과 몽상의 경계에서>는 이처럼 추억 혹은 일상속에서 느낌과 경험을 특별한 이야기들로 채색한 작품이다. 단순히 상상이나 몽상만으로 치부할 수 없는, 우리가 현실에서 배우고 또 배워도 모자라지 않을 거대한 느낌표를 수도 없이, 너무나도 많이 선물해주는 작품이다. 짧은 글속에 담긴 깊이 있고 색깔있는 이야기들이 시각적 즐거움과 감성적 만족을 전해준다. 조서연, 남수진의 일러스트 또한 그녀가 써내려간 상상과 몽상의 경계를 감각적으로 잘 표현해주고 있다.

 

용기는 희망을 위하여 다시 한 번 주어지는 기회이다.

용기와 희망! 아마도 작가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 꿈을 잃고 걸어온 당신, 그리고 나. 하지만 우리가 잃어버린것이 단지 꿈만이 아니었다. 희망의 끈까지 잠시 우리는 놓치고 살아온 것이리라. 하지만 작가가 전해준 이 한마디, 용기와 희망! 이 말로 우리는 다시금 놓쳤던 희망의 끈을 움켜쥐게 된다.

 

상상과 몽상의 경계에서 헤메이던 우리에게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현실을 바라보고 미래를 꿈꾸게 만들고 있다. 잊고 있었던 열정과 용기, 희망이란 단어에 온기를 불어넣어 준다. <Her 상상과 몽상의 경계에서>를 처음 만났을때, 참 독특한 책이겠구나 했던 이 책에 대한 첫인상은 내려놓을때쯤 너무나 특별한 책으로, 오래도록 기억될것 같다고 각인되어 버리고 만다. <Her 상상과 몽상의 경계에서>! 작고 가볍지만 무게가 느껴지는, 쉽게 넘기지만 깊이를 느끼게하는, 용기와 희망으로 채색된 매력적인 그녀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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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
김인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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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정으로 정권을 잡은 인조, 그리고 그의 아들 소현세자. 1636년,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머리를 조아리던 인조, 그리고 볼모로 청에 잡혀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의 역사속 시간이 소설 <소현>속에 그려진다. 소현세자라는 이름은 최근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드라마 [추노]를 통해서 많이 익숙해진 이름이리라. 소현세자의 억울한? 죽음, 원손을 비롯한 그의 일족의 안타까운 최후, 청에 볼모로 함께 끌려갔던 동생인 봉림대군, 향후 왕이 된 효종의 북벌 정책... 등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담아낸 한 시대가 이 책속에서 시작된다.

 

9년이란 시간 동안 청의 발밑에서 '노루'의 꼴을 하고 있었던 소현이었다. 이미 죽은 노루가 아니라 언제고, 앞으로 죽어야 할, 아직까지는 살아있지만 한시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사냥터의 노루 신세... <소현>은 그런 안타까운 삶을 살아간 소현세자의 볼모 생활중 환국전 2년의 심양 생활을 그리고 있다. 청태조 누르하치가 죽고, 그의 8남이던 홍타이지가 청태종에 등극했다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한 시기, 조선왕의 무릎을 꿇게 만들었던 구왕 도르곤이 다시금 강력한 권력자가 되어있던 시기였다.

 

<소현>은 소현세자의 눈에 비친 명의 멸망에 대한 두려움, 조선과 아비에 대한 그리움이 그려진다. 소현세자의 눈에 담긴 시간들과 함께 적국에 볼모로 잡혀있던 시간, 그의 곁을 지켰던 사람들, 동생 봉림대군을 비롯해 아비가 정승이 된 바람에 볼모로 끌려온 석경, 종친의 여식에서 청에 끌려와 대학사의 첩이 된 흔, 조선의 노비에서 청의 역관이 된 만상 등 조선과 청을 오가며 전혀 다른 삶을 살아야 했던, 가슴아픈 시간의 생생한 모습을 보여주는 그들의 안타깝고도 색다른 이야기들이 소현의 주변을 채색한다.

 

'말의 간격은 시간이고, 시간의 간격은 세계의 간격이었다. 어제는 살아 있었던 황제가 오늘은 죽어 있는 것처럼... 세계가 그렇게 어지러워 세자는 몸이 자주 아팠다.' - P. 24 -

 

'나라를 빼앗기고 자존을 빼앗기고 자식을 빼앗기는, 빼앗길 수 있는 모든 것을 빼앗기는 임금의 눈이 젖어 있었다.' - P. 26 -

 

오랑캐 청나라에 대한 인조의 경멸, 하지만 명나라의 멸망을 눈앞에서 지켜본 소현, 그리고 그의 곁을 지키던 사람들. 소현세자는 환국 이후 두 달만에 세상을 등지게 됐다고 한다. '학질'이라는 난데없는 병으로 죽음을 맞이한 소현의 실질적인 죽음에 대해서 세인들은 인조에 의해 그가 살해되었을 거라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하지만 이 작품 <소현>에서 작가가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는 작가의 말처럼 그의 죽음에 대한 원인이 아니라, 소현과 그의 아버지 인조, 그들이 가진 고독이라고 말한다. 아들이 가졌던, 아비가 느꼈던 고독의 실재와 아픔의 실체가 그 시간속에 녹아있는것이다.



 

시간의 간격, 세계의 간격... 누구보다 더 가까이 변화의 시기, 명나라의 멸망과 청나라의 현실을 직시 할 수 있었던, 그리고 자신의 조국 조선에 대한 그리움으로 몇번이고 꿈속에서 압록강을 오갔던 고독과 그리움을 간직한 소현세자가 있다. 반정으로 정권을 잡고 패배로 머리를 조아린 끝에 임금이라는 이름을 유지한 인조, 볼모로 끌려간 아들 또한 그들에 의해 세자로 인정받았다. 그들의 편이 되어버린 세자 그리고 그렇게 생각해버린 아버지는 눈이 젖어든다. 나라를, 자식을, 모든것을 빼앗겨버렸다고 생각한 아버지, 임금 인조.

 

'새 한마리가 맑고 따사로운 햇살을 가로질러 날아갔다. 강남에서 날아온 새가 어느새 먼 곳, 북쪽에까지 이르러 있었던 것이다.' - P. 334 -

 

<소현>은 흡싸 김훈의 [남한산성]을 떠올린다. 이야기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속에 담긴 내용과 그 문체가 그렇다는 것이다. 전쟁을 이야기 하지만 전쟁 소설이 쏟아내는 화려하거나, 볼거리 가득한 전쟁씬이나 영웅담이 아니라 전쟁의 참혹함속에서 바라보지 못했던 세세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작가 만의 문체로 섬세하고 치밀하게 쓰여진 것 같이, 이 작품도 그렇다는 것이다. <소현>이라고 하면 소현 세자의 죽음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그 눈에 보여지는 죽음이라는 소재보다는 그 안에 담긴 더 깊고, 진한 향기를 이 작품은 우리에게 전한다.

 

역사적 시간을 고스란히 꺼내어 우리 앞에 내어놓은 작가의 땀이 책속에서 고스란히 느껴진다. 소현을 비롯해 봉림대군, 심석경 등 실존했던 역사적 인물들 사이로, 만상, 흔, 막금 등 독특한 신분과 변화를 겪게되는 캐릭터들을 배치해 이야기의 재미를 더해주는 부분은 역사 팩션 소설만이 가진 특별한 매력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역사적 사건과 소설적 허구가 만들어낸 탄탄한 스토리 구성이 독자들을 역사적 흥미와 팩션의 재미속으로 쉴새없이 몰아넣는다.

 

변화의 시대, 조선에 남겨진 아픔의 상처, 그 상처의 시간이 김인숙 작가의 펜끝에서 생생한 현실처럼 되살아난다.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아비의 고독, 그리고 아들의 고독을 독자들도 책을 내려놓는 순간 고스란히 전해질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펜끝에서 되살아난 상처입은 시간속 조선, 그리고 소현과 인조의 모습이 뚜렷하고도 선명하게 눈앞에 흘러 지나간다. 그리고 맑고 다사로운 햇살 사이를 하얀 새 한마리가 가로지른다. 그렇게 '소현'은 우리 곁에 되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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