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1
마크 레비 지음, 강미란 옮김 / 열림원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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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은 어디에서 시작되나요? 우리의 조상은 과연 누굴까요? 이런 인류의 근원적 질문을 시작으로 거대한 스케일의 모험과 사랑의 이야기들이 우리곁을 찾아온다. 고고학자와 천체 물리학자라는 캐릭터들이 자아내는 독특한 느낌의 <낮>이라는 이 작품은 프랑스의 작가 마크레비의 소설이다. '영혼을 울리는 로맨스의 연금술사'라 불리는 작가 마크 레비의 이번 작품은 새로 출간될 [밤] 이라는 작품과 함께 커다란 기대를 갖게 만든다.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궁금하지 않아, 아드리안?' ..... '그러는 넌 키이라, 새벽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알고 싶었던 적이 없었니?' - 2권 , P. 324 -

 

천체 물리학자인 아드리안은 우주 연구를 위해 칠레에 갔다가 고산병으로 작업을 그만두게 된다. 고고학자 키이라 역시 에티오피아에서 인류의 기원을 쫓다가 폭풍우로 일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우연처럼 이어진 운명적인 그들의 재회. 에티오피아 계곡에서 만난 수수께끼 같은 소년 아리에게 선물 받은 목걸이 하나로 그들의 거대한 모험은 시작된다. 더불어 사랑의 연금술사 마크 레비의 로맨스는 시작된다.

 

그리 짧지 않은 두 권의 책을 집어 들고 천체 물리학자와 고고학자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펼쳐낼 즐거운 모험에 기대감을 감출 수가 없다. 미스터리한 소년이 건넨 목걸이의 비밀, 그 비밀을 파헤치면서 만나는 낯선 사람들, 그들을 뒤쫓는 비밀 조직, 그리고 세계 곳곳을 누비는 즐거운 모험. 현장감 넘치는 세계 곳곳의 모습들과 스릴과 긴장 가득한 이야기 구성은 읽는 이들의 마음을 매혹시키기에 충분해 보인다.

 

출간 전 <인디아나 존스>를 방불케 한다는 이 작품의 소개에 시선을 빼앗긴 것이 사실이다. 세계 곳곳에 대한 생생한 현장감이 살아있고, 과학적 지식이 이야기의 재미를 극대화 시키고는 있지만 사실 이 작품을 <인디아나 존스>와 비교하는건 조금의 무리가 있어 보인다. 치밀한 분석과 수수께끼에 쌓인 비밀을 풀어가는 <낮>의 이야기 전개는 모험도 모험이지만 미스터리와 로맨스가 더 큰 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력적인 주인공들을 눈앞에서 바라보듯 생동감 넘치는 작가의 펜 끝은 더욱 박진감 넘치는 모험의 세계를 선물해주고 있다.

 



 

 

언제나 무거운 두께를 자랑하는 책들과 마주할때면 이 작품을 쓰기 전까지 작가가 흘렸을 땀을 생각해보려는 습관이 생겼다. 아프리카, 아시아, 그리고 유럽을 망라하는 광활한 스케일의 이 작품은 단지 다양한 세계의 모습들을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고 직접 가본것처럼 생생한 현장감을 전해준다. 작가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그런 현장감을 전해줄 수 있을지 상상하기 쉽지 않다. 책속에 나오는 과학적 지식도 마찬가지이리라. 4년여를 넘게 준비했다는 작가의 열정과 땀의 무게가 인상 깊게 남는다.

 

'밤'에 읽기 좋은 소설 <낮> !!!

별을 두 손에 조심스레 들고 있는 여신의 모습을 한 책의 표지가 인상적이다. <낮>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이처럼 '신비로움'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미스터리한 소년 아리와 목걸이에 담긴 비밀. 책 곳곳에서 들려오는 철학적 질문들... 수수께끼에 쌓인 사람과 조직들... 이런 신비로운 분위기가 <낮>을 색다른 재미속으로 우리를 이끈다. 이런 분위기 때문일까? <낮>은 조용하고 신비로운 '밤'에 읽으면 더욱 어울릴만한 그런 작품이다.

 

책의 1권에서는 아드리안과 키이라 각자의 삶의 모습들이 어떤 연관성을 찾기 힘들게 그려지지만 결국 그들의 모습은 또 다른 연결고리로 이어지고 2권에서 그와 그녀 사이에 연결된 우연적인, 아니 필연에 가까운 만남이 시작되게 된다. 그와 함께 미스터리한 모험과 독특한 색깔의 로맨스가 독자들의 오감을 만족시킨다. 더불어 작은 책 두 권에 담겨진 철학적 가르침과 작가가 쏟아놓은 색다른 세계관이 읽는 이들의 마음을 매혹시킨다.

 

 

'인생은 우리 모두의 상상력을 합친 것보다 더 큰 상상력을 가지고 있죠. 가끔 작은 기적을 이뤄내기도 한답니다. 그러니 온 마음을 다해 믿으면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 2권, P. 323 , 이보리의 편지 中에서 -

 

마크 레비!의 작품은 사실 이 작품이 처음이다. 국내에서도 일곱권의 작품을 출간했다는 그이지만 아직까지 그의 작품을 만나보지 못했다니 조금은 부끄럽기도 하다. 출간될 때마다 베스트셀러를 기록한다는 그의 작품만의 매력은 무엇일까? 단지 이 작품 <낮>을 놓고 볼 때, 단순한 볼거리와 재미는 물론이고 그 속에 담긴 철학적 가치, 세계관이 미스터리와 모험이라는 장르속에서 절묘하게 녹아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책속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작가의 땀과 열정이 고스란히 즐거움과 감동이 되어 되살아난다. 곧이어 출간된다는 <밤>의 또 다른 이야기들이 <낮>이 가진 약간의 아쉬움을 덮고, <낮>이 주었던 즐거움을 배가 시켜줄지 또 다른 기다림을 준비해본다. 밤 낮 없이 그의 작품을 즐기고 싶다. 마크 레비, 그의 작품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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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의 등
아키모토 야스시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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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시인은 죽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죽음을 목전에 두고 어찌 이런 감상을 쏟아 낼수 있을까 의아심이 들기도 하지만 시인의 감성은 죽음조차 아름답고 솔직하게 그려낸다. 어느날 누군가 당신에게 죽음을 예고한다면 가장 먼저 어떤 생각이들까? 죽음에 대한 '공포'? '왜 나만!' 그래야하는지에 대한 '분노'? 이루지 못한 삶에 대한 '집착'? 모든게 끝난다는 '절망'? 그리고... 한 남자에게 그런 죽음의 예고가 찾아온다. 그의 이름은 후지야마 유키히로...

 

딸 하루카와 아들 슌스케, 그리고 아내와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던 후지야마 유키히로. 갑작스레 그를 찾아온 말기암 제4기 선고는 앞서 언급했던 죽음과 연관된 단어들... 공포, 분노, 집착과 절망이라는 감각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딸 아이의 웨딩 드레스 차림을 볼 수 없다는 안타까움, 출세 경쟁에서 기권해야 한다는 분노, 자신의 프로젝트를 완결하지 못한다는 절망감... 남은 시간은 6개월... 잠시나마 이런 죽음에 대한 불안감에 사로 잡혔던 유키히로는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후회없이 남은 시간을 보낼 자신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코끼리는 자신의 죽음을 알아차렸을 때, 무리를 떠나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간다고 한다. 자신의 죽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일까? 아니면 세상의 미련을 끊고 싶기 때문일까?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 고독의 소용돌이 속에서 혼자 모습을 감출 수는 없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배웅을 받고 싶다. 그 사람은 행복하게 살았다고 박수를 받고 싶다....' - P. 384 -

 

병원에서 권하는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자신과 연관된 사람들에게 '유서'를 전하기로 결심한 유키히로. 그가 만든 유서목록에 따라 ... 중학교 시절 첫사랑, 고등학교 시절 절교했던 한 친구, 옛 동료들, 그리고 가족에게 자신의 유서를 전한다. 그에게 연명치료를 권하던 의사의 말처럼 그의 마지막 삶의 시간들은 과거 자신이 걸어온 흔적을 되짚으며 자신이 놓쳐버린 것들, 잊고 지냈던 일들을 거내어 놓으면서 삶을 되돌아보는 '자기 찾기' 의 과정이 된다.



유키히로가 사람들에게 전한 유서, 그리고 그에게 되돌아온 그들의 편지... 6개월 밖에 살수 없음을 알았을때 그 당혹감은 말로 표현하기 쉽지 않은 충격일 것이다. 하지만 그 충격에서 벗어나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세상과 화해해가는,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걷는 마지막 시간이 이 작품 <코끼리의 등>을 읽는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과 깊은 메세지로 다가온다. 떠나는 사람을 위한 위로, 남은 사람들을 위한 화해... 이 작품이 주는 진정한 감동은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것 같다.

 

'인간은 정말로 혼자 있고 싶을 때, 아무도 없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 많은 곳을 선택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P. 07 -

 

<코끼리의 등>은 이 말과 함께 시작된다. 죽음을 앞두고 무리를 떠나 혼자만의 길을 떠나는 코끼리의 뒷모습이 아닌 돌아보고 내다보고 나아갈 수 있는 인간만이 가진 삶의 진정성, 죽음에 대한 고찰이 유키히로의 죽음, 아니 마지막 삶의 모습속에서 그려진다. 마지막 삶이 주어진 시간, 그 특별한 시간을 놓치지 않으며 자신만의 시간으로 색다르게 채색해가는 유키히로의 마지막 뒷모습이 외로운 '코끼리의 등'이 아닌 모두의 어깨에 팔을 걸친 다채롭고 밝은 모습이기에 더욱 감동적이다.

 

삶의 마지막, '이 세상 소풍을 끝내는 날' 귓가에 들리는 아내의 '수고했어요' 라는 목소리가 어떤 느낌일지 감히 상상하기 쉽지 않다. 단지, 그만큼 사랑하는 이들에게 충분히 사랑받고 사랑할 수 있어 행복했던 삶이기에 죽음의 순간 삶에 대한 미련 따위는 전혀 남지 않을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고독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려 마지막 삶을 살았던 유키히로 그의 마지막 삶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6개월의 모습이 우리들 남은 삶의 시간들속에 스며들기를 소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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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사는 너 1
오드리 니페네거 지음, 나중길 옮김 / 살림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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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적인 장애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공간을 넘나드는 한 남자, 저주처럼 느껴지던 그의 시간 여행은 어느 날 한 여인과의 운명적인 만남과 사랑으로 그의 삶은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하게 되는데... [시간 여행자의 아내] 라는 정말 독특한 상상으로 니페네거 신드롬을 일으키며 우리 곁을 찾아왔던 오드리 니페네거, 그녀는 또 다시 색다른 로맨스 소설을 들고 우리곁을 찾아왔다. 또 한번의 니페네거 신드롬을 기대케하는 불멸의 사랑, 죽음도 갈라놓지 못하는 진정한 로맨스가 펼쳐진다.

 

'오드리 니페네거' 가 쏟아내는 문학적 상상력은 아마도 그녀가 꿈꾸었을 예술성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순수미술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그녀의 예술성은 아마도 문학분야에서 그 화려한 꽃을 피우는 밑바탕이 되어주었을지도 모른다. 영화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그녀의 전작 [시간 여행자의 아내]에서 보여지는 마술같은 미적 표현과 사랑의 아름다운 색감은 그래서 더욱 오래도록 사람들의 시선과 감각속에 각인 되고 있다는 생각된다.

 

그녀가 선택한 두번째 로맨스는 엘스페스의 죽음을 지켜보는 로버트의 모습과 함께 시작된다. 쌍둥이 자매, 언니 엘스페스와 동생 에디, 그리고 엘스페스의 연인 로버트, 에디의 쌍둘이 딸 줄리아와 발렌티나, 그리고 마틴과 마레이케의 엇갈린 사랑, 운명같은 사랑, 미스터리한 이야기들이 <내 안에 사는 너>를 이끌어간다. 전작이 SF적인 환상을 담아낸 작품이라면 이 작품은 영혼의 이야기를 담은 운명적이고 미스터리한 사랑을 그려낸다. 엘스페스와 에디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엘스페스는 왜 쌍둥이 조카들에게 자신의 유산을 넘겨 주었는지... 결말에 이르러서야 그 물음들에 대한 대답을 들을 수 있다.

 

죽은 영혼의 몸으로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엘스페스, 엘스페스를 그리워하다 그녀의 조카 발렌티나에게 마음을 열게 되는 로버트, 줄리아와 마음을 주고 받는 마틴, 단순한 쌍둥이란 존재가 아닌 거울을 마주보듯 판박이처럼 똑 같은 외모, 점하나까지 거울에 비춰 진것 같은 그녀들 - 본질적으로 하나의 생명체이며 상반되는 점을 가진 쌍둥이 줄리아와 발렌티나 - 이들이 전해주는 사랑의 엇갈린 감정들과 다툼, 집착,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이 엘스페스의 아파트라는 고정된 공간속에서 색다르게 연출된다.

 



'사랑' 이라는 말이 담고 있는 의미를 이 책의 페이지를 넘기면서 새삼 생각해보게 된다. 죽은 후에도 사랑을 잊고 떠나지 못하는 엘스페스, 그녀의 사랑을 지키기 위한 이기적인 행동, 마틴의 강박증 때문에 그를 떠나버린 마레이케, 엄마와 이모, 그들의 대를 이어 불안한 관계를 보여주는 쌍둥이 줄리아와 발렌티나의 집착과 어긋난 사랑, 그리고 에디와 잭... 사랑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참 힘들것 같다. 하지만 줄리아와 마틴의 이야기속에서 조금이나마 작가가 이야기하려는 사랑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를일이다.

 

'사랑하는 일은..... 조바심을 내는 일이에요. 상대방을 즐겁게해 주고 싶고, 본모습을 들킬까 봐 두려워하면서도 상대가 자신을 알아주길 바라죠. .... 뭐라고 해야 할까. 위엄 같은 건 모두 던져 버리고 어둠 속에서 알몸으로 흐느끼는 거라고나 할가요.' - 2권,  P. 112 -

 

오드리 니페네거는 유령이라는 존재를 통해서 초자연적인 이야기를 아무 부담없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끌어간다. <내안에 사는 너>는 그녀의 전작 만큼이나 매력적인 캐릭터들, 놀랍지는 않더라도 이야기속에 몰입하게 만드는 전반적인 구성, '사랑'이라는 소재를 능수능란하게 풀어가고 새롭게 만들어가는 작가의 예술적인 힘에 놀라게 되는 그런 작품이다. 환상적이고 잔잔한 로맨스가 즐거움을 주었던 영화 [시간 여행자의 아내] 처럼 꼭 영화로 만나 볼 수 있었으면 하고 독자들이 기대하게 만드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된다.

 

<내안에 사는 너>는 파격적이거나 미스터리처럼 반전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유령이라는 독특한 존재, 쌍둥이라는 캐릭터들이 만들어가는 신비스럽고 초자연적인 이야기들의 매력에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을 지닌 작품이다. 한 폭의 그림에 독특한 환상을 화려하게 수놓은 전작과는 또 다른, 사랑과 집착이 빚어 낸 짙은 카키색 혹은 진한 커피향과 같은 사랑이 드리워진 몽환적인 소설이 니페네거 신드롬으로 독자들을 열광시키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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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늦기 전에 부모님의 손을 잡아 드리세요
이상훈 지음, 박민석 사진 / 살림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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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아침 이른 시간 집에서 키우던 소에게 밥을 주기 위해 사랑방 아궁이에 불을 피우시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시던 아버지. 그 시각 자식들의 밥을 준비하시는 엄마의 부엌 굴뚝에선 하얀 연기가 솜털구름처럼 피어오른다. 하루종일 논과 밭에 나가 시커멓게 그을린 얼굴과 거칠기만한 손이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버린 우리 아버지와 엄마, 늦은 밤 아이들이 모두 잠들고 나서야 힘겨운 몸을 뉘일수 있었던 아버지 엄마의 몸에선 언제나 시큼한 삶의 냄새가 배어 있었다.

 

엄마가 해주시던 손칼국수! 가끔 그 맛이 그립다. 이름난 칼국수 집을 가더라도 그 추억의 맛은 찾을 길이 없다. 아버지가 장에 다녀오시며 검은 비닐 봉지에 싸오시던 선지, 그리고 친히 끊여주시던 선지국의 그 얼큰한 맛을 이제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더 늦기전에 부모님의 손을 잡아드리세요> 제목만으로도 벌써 눈물이 흐른다. 아버지 엄마의 손길이 그립다. 잡아드리고 싶은데, 안아드리고 싶은데,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은데... 이제 그럴 수가 없으니...

 

'어쩌면 자식이란 낳고 기르고 먹여야 하는, 짐 중에서 가장 무거운 짐일 것입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 짐을 놓으신 적이 없습니다. 동생을 낳고도 곧바로 호미 들고 밭으로 나가셔야 했던 어머니. 어머니는 그 지친 몸을 아랫목에 눕히신 적조차 없습니다.'   - P. 17 -

 

어머니의 손에는 가족들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큰형가족과 엄마, 그리고 직장을 다니던 내가 함께 살던 시간. 첫직장 생활에 지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온 나, 엄마는 과일을 들고 내 방문을 슬며시 여신다. 오늘 하루 어떤 일들이 있었고, 무엇을 했고 이런 저런 일들을 말씀하시던 엄마의 모습, 모든게 귀찮아 듣는둥 마는둥 귀를 열어두고 누워 TV만 뚤어지게 바라보는 나. 그때 왜 엄마와 마주앉아 엄마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는지, 농사일에 지쳐있는 엄마의 거친 손 한번 잡아드리지 못했는지... 지금 이 시간 너무 후회스럽고 안타까운 마음이다.

 

부모님의 손을 잡아드리기엔 이제 너무 늦어 버렸다. 어버이날 작은 카네이션 하나 가슴에 꽂아드리지 못하는 안타까움, 산소에 난 풀들을 뜯으며 아내 모르게 눈물을 훔친다. 그 이별의 시간이 벌써 오래전인데도 불구하고 엄마에 대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눈물은 마를줄을 모른다. <더 늦기전에 부모님의 손을 잡아드리세요> 는 잊고 있었던 그리움의 눈물을 새삼 가슴속에서 끌어오르게 만드는 작품이다. 그 제목들만으로도 가슴을 울컥하게 만든다. 아버지가, 엄마가 살아계실때 꼭 해드렸으면 좋았을 작은 모습들이 후회와 안타까움으로 눈물이 되어 흘러내린다.

 



예전에 그런 CF가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편을 나누어 방송하던... 어머니 편에서는 '재춘이네 간판'에 대한 짧은 내용을 통해 엄마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이 CF는 '자식의 이름으로 사는 게 그게 엄마 행복인 게다' 라는 마지막 카피로 가슴을 찡하게 만들기도 했다. 아버지 편에서는 '행복을 담아낸 사진속에 항상 아버지는 계시지 않았다'는, 가족들을 위한 아버지의 사랑과 헌신이 담긴 내용이었다. 아버지, 어머니의 가족들을 위한 뜨거운 사랑이 배어나던 두편의 CF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책 속 [아버지와 다정하게 둘이서 사진을 찍으세요] 을 읽다보니 오래전 이 CF들이 새삼 떠오른다. 

 

더 늦기전에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꼭 해보라는 서른 두편에 담긴 작은 당부들을 하나씩 실천해 본다면 아마도 지금 이 시간 나, 혹은 작가가 느끼고 있을 후회와 안타까움이 조금은 덜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어린시절을 떠올리게하는 흑백사진속 부모님의 모습, 낡고 허름한 아버지의 자전거, 천진 난만하게 뛰어노는 아이들, 외로이 놓여있는 엄마의 털신, 허름한 집 앞 장독대... 우리 어린시절을 고스란히 담아놓은듯한 빛바랜 사진들이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더 크게 만든다.

 

'어머니는 소리내어 우시지만 아버지는 눈물을 삼킨다고 했습니다. 그런 아버지에게 남모를 사랑을 전해보세요. 바쁜 와중에 같이 얼굴 마주하고 밥 먹는 일 하나에도 사랑은 담겨 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오시는 길에 마중 한번 나가는 것은 어떨까요. 또 그저 무표정에 "왜 나와 있냐?" 하시겠지만, 마음으로는 벌써 다 큰 아들이 대견스러울 겁니다.'   - P. 106 -

 

이제 두 달 후면 아빠라는 이름을 얻게된다. 너무 기쁘지만 가끔은 왠지 모를 무거움이 어깨를 짖누르기도 한다. 요즘들어 '아버지' 라는 이름이 자주 입가에 맴돈다. 8남매라는 대가족을 거친 두 손으로 키우신 아버지의 위대함, 그리고 그 속에서 아버지가 겪으셨을 중압감이 어떠했을지 감히 짐작하기조차 힘들다. 부엌에 몰래 들어가 소주를 조금씩 마시는게 유일한 낙이셨던 아버지, 누구에게 그 중압감을 털어놓지도 못하고 자신의 두 어깨에 모두를 짊어질 수 밖에 없었을 아버지의 모습이 안스럽기만 하다. 지금이라면 꼭 안아드리고 두손이라도 잡아드렸을텐데...

 

<더 늦기전에 부모님의 손을 잡아드리세요> 이 책을 내려놓으며 앨범이 꽂힌 책장으로 달려간다. 아직도 한없이 밝은 모습을 웃고 계신 아버지, 그리고 엄마의 모습. 사진 속에서 어색한 미소를 지으시는 그 순수한 모습이 너무 반갑고 그립고 눈물겹기만 하다. '잘 지내시죠?' 오늘은 엄마와 아버지가 계신 산소에 꽃이라도 한송이 놓아드려야겠다. '살아 있는 동안 부모님께 꼭 해드려야할 32가지 마음의 선물' 이란 부제가 함께하는 이 책속의 선물은 부모님께 드리는 것이 아닌것 같다. 부모님께 해드리지만 그 선물들은 자기 자신이 받는 것이다. 흐르는 눈물을 쉽게 멈출수 없는 책, 부모님께 해드리지만 자신이 더 행복한 책, 가족의 사랑을 확인하고 행복을 선물하는 그런 책 한권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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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의 드라이브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신유희 옮김 / 예담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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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수도 없이 많은 선택과 마주하게 된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번의 선택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 오래전 모 개그맨이 했던 '그래 결정했어~' 하는 프로그램처럼 선택의 결과를 미리 알 수 있다면 아마도 그 선택은 너무나 쉽고 일사천리가 되겠지만 우리 삶은 맘처럼 쉽지만은 않은게 현실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후회와 함께 '~했다면' , '~라면' 하는 일종의 몽상을 갖게 된다. 그런 몽상에 휩싸인 한 남자의 이야기가 우리곁에 다가온다. 그 몽상가의 이름은 '마키무라 노부로' 이다.

 

<그날의 드라이브>는 마키무라 노부로라는 초보 택시기사의 이야기이다. 한때 잘나가는 은행맨으로 근무하기도 했지만 파견근무명령은 받게 되고 결국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 마흔셋, 결혼한지 15년인 노부로는 아내 리츠코와 두 아이, 게이타와 도모미와 살고 있다. 은행맨 앞에 '전직'이란 수식어가 붙어 버린 노부로는 새로운 직장을 물색하지만 결국 초보 택시운전 기사가 되고만다. 이제 삼개월 어느것 하나 익숙하지 않는 도쿄, 새로운 생활이 노부로에게 찾아온다.

 

매일매일 할당된 택시 지입금을 내지못해 하루종일 허덕이고 스트레스로 뒤통수에 원형탈모까지 생긴, 가족 생활은 가족 생활대로 삐걱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노부로에게 '~라면' 하는 몽상은 하루의 즐거움과 현실의 고통을 덜어줄 위안이 된다. 몽상가 노부로, 택시안에서 만난 손님에게 스카웃 제의를 받는 꿈을 꾸고, 과거 자신의 연인이었던 메구미와 연결되었다면 하는 꿈을 꾸면서 자신의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노부로. 현실 부적응과 몽상에 사로잡혀, 인생은 우연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는 노부로의 삶속에 서서히 변화가 일기 시작한다. 

 

노부로는 생각한다. 다시한번 인생을 달리 살 수 있다면....

뿅뿅뿅뿅뿅뿅.... 꿈이 깨어나는 소리...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노부로와 같이 잘못 꼬여버린 인생에 대해서 좌절하고 새로운 삶을 살수 잇다면 하는 몽상에 휩싸이곤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몽상처럼 녹녹하지 않다. 하루하루 삶을 걱정해야 하고,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감은 한시도 가장들의 어깨와 마음을 쉽게 내려놓을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노부로와 닮아있는 우리의 인생에서 노부로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되는지 <그날의 드라이브>는 유쾌하고 경쾌하게 그 해답은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즐거운 몽상이 늘어갈수록 현실에 대한 불만은 커져만 간다. 단순한 몽상의 틀을 넘어 자신이 놓치고 있던 것들이 무엇인지를 깨달아가는 노부로를 보면서 유쾌한 기분과 함께 마음이 따뜻해진다. 과거 연인에 대한 지나친 몽상이 아니라 그 몽상속에서 현실에 도움이 되는 것을 찾을 수 있는 지혜가 노부로에게는 있었다. 은행맨이라는 자만심과 초보 택시기사라는 박탈감속에서 자신이 놓치고 있었던 가족에 대한 소중함을 노부로는 깨닫게 된다.

 

그 앞에 뭐가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래서 길이 재미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지나온 길은 결국 잘못되지 않았다, 하는 유의 기분은 전혀 들지 않았다. 잘못된것 투성이다. 접어 들어야 할 길을 몇번씩이나 지나쳐버렸다. 헤매고, 멀리 돌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어찌 됐든, 이미 지나온 길로 다시 돌아가는 건 조금도 즐거운 일이 아니다. - P. 334 -

 

책 속에서 한국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등장한다. 택시 회사 사장의 말속에 '인연을 엔으로 살 수 없다. 은혜는 원으로 살 수 없다.' 라는 말과 함께 한국을 유교의 나라구나 라고 감탄했다는 부분인데... 사장의 얄팍한 꼬임이지만 어찌되었건 우리나라를 좋게 평가하는 부분인것 같아 마음이 뿌듯해 지기도 한다.

 

노부로의 택시 속에서는 참 다양한 인물 군상이 등장한다. 술 주정뱅이, IT사업에 뛰어든다는 청년, 자신을 유혹하는 게이 아저씨, 할당량을 채우는데 큰 공을 세운 짐을 든 할머니... 다양한 인물 군상을 바라보면서 우리와 전혀 다를 것 없는 현실 세계에 시선을 돌리게 된다. 더 낳은 미래를 꿈 꾸고 희망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 노부로도 우리 자신들도 그들의 틈바구니에 끼인 한 사람일 것이다. 단순한 우연을 기대하지도, 과거에 집착해 후회로 불만스런 현실을 과장시키지 않는, 현실을 살아갈 힘이 되어주는 소설이 바로 이 <그날의 드라이브>인 것이다. 

 

'초보 택시 기사' '좋은 초보 아빠'가 되다.

노부로는 아들을 위한 야구 글러브와 딸을 위한 워크맨을 사게 된다. 몽상가 초보 택시 기사가 어느새 좋은 초보 아빠로 변해가는 모습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작고 초라한 택시를 운전하는 노부로에게서 우리가 살아갈 희망과 삶의 이유를 배울 수 있었다. 현실에 대한 불만, 과거에 대한 집착이 아닌 현실을 사랑하고 미래를 꿈꾸는 긍정의 힘을 얻을 수 있게 된것이다. 어디선가 '나, 다시 돌아갈래', 가 아닌 '나, 이제 행복해' 라는 노부로의 커다란 외침이 들리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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