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의 등
아키모토 야스시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시인은 죽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죽음을 목전에 두고 어찌 이런 감상을 쏟아 낼수 있을까 의아심이 들기도 하지만 시인의 감성은 죽음조차 아름답고 솔직하게 그려낸다. 어느날 누군가 당신에게 죽음을 예고한다면 가장 먼저 어떤 생각이들까? 죽음에 대한 '공포'? '왜 나만!' 그래야하는지에 대한 '분노'? 이루지 못한 삶에 대한 '집착'? 모든게 끝난다는 '절망'? 그리고... 한 남자에게 그런 죽음의 예고가 찾아온다. 그의 이름은 후지야마 유키히로...

 

딸 하루카와 아들 슌스케, 그리고 아내와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던 후지야마 유키히로. 갑작스레 그를 찾아온 말기암 제4기 선고는 앞서 언급했던 죽음과 연관된 단어들... 공포, 분노, 집착과 절망이라는 감각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딸 아이의 웨딩 드레스 차림을 볼 수 없다는 안타까움, 출세 경쟁에서 기권해야 한다는 분노, 자신의 프로젝트를 완결하지 못한다는 절망감... 남은 시간은 6개월... 잠시나마 이런 죽음에 대한 불안감에 사로 잡혔던 유키히로는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후회없이 남은 시간을 보낼 자신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코끼리는 자신의 죽음을 알아차렸을 때, 무리를 떠나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간다고 한다. 자신의 죽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일까? 아니면 세상의 미련을 끊고 싶기 때문일까?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 고독의 소용돌이 속에서 혼자 모습을 감출 수는 없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배웅을 받고 싶다. 그 사람은 행복하게 살았다고 박수를 받고 싶다....' - P. 384 -

 

병원에서 권하는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자신과 연관된 사람들에게 '유서'를 전하기로 결심한 유키히로. 그가 만든 유서목록에 따라 ... 중학교 시절 첫사랑, 고등학교 시절 절교했던 한 친구, 옛 동료들, 그리고 가족에게 자신의 유서를 전한다. 그에게 연명치료를 권하던 의사의 말처럼 그의 마지막 삶의 시간들은 과거 자신이 걸어온 흔적을 되짚으며 자신이 놓쳐버린 것들, 잊고 지냈던 일들을 거내어 놓으면서 삶을 되돌아보는 '자기 찾기' 의 과정이 된다.



유키히로가 사람들에게 전한 유서, 그리고 그에게 되돌아온 그들의 편지... 6개월 밖에 살수 없음을 알았을때 그 당혹감은 말로 표현하기 쉽지 않은 충격일 것이다. 하지만 그 충격에서 벗어나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세상과 화해해가는,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걷는 마지막 시간이 이 작품 <코끼리의 등>을 읽는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과 깊은 메세지로 다가온다. 떠나는 사람을 위한 위로, 남은 사람들을 위한 화해... 이 작품이 주는 진정한 감동은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것 같다.

 

'인간은 정말로 혼자 있고 싶을 때, 아무도 없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 많은 곳을 선택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P. 07 -

 

<코끼리의 등>은 이 말과 함께 시작된다. 죽음을 앞두고 무리를 떠나 혼자만의 길을 떠나는 코끼리의 뒷모습이 아닌 돌아보고 내다보고 나아갈 수 있는 인간만이 가진 삶의 진정성, 죽음에 대한 고찰이 유키히로의 죽음, 아니 마지막 삶의 모습속에서 그려진다. 마지막 삶이 주어진 시간, 그 특별한 시간을 놓치지 않으며 자신만의 시간으로 색다르게 채색해가는 유키히로의 마지막 뒷모습이 외로운 '코끼리의 등'이 아닌 모두의 어깨에 팔을 걸친 다채롭고 밝은 모습이기에 더욱 감동적이다.

 

삶의 마지막, '이 세상 소풍을 끝내는 날' 귓가에 들리는 아내의 '수고했어요' 라는 목소리가 어떤 느낌일지 감히 상상하기 쉽지 않다. 단지, 그만큼 사랑하는 이들에게 충분히 사랑받고 사랑할 수 있어 행복했던 삶이기에 죽음의 순간 삶에 대한 미련 따위는 전혀 남지 않을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고독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려 마지막 삶을 살았던 유키히로 그의 마지막 삶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6개월의 모습이 우리들 남은 삶의 시간들속에 스며들기를 소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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