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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늦기 전에 부모님의 손을 잡아 드리세요
이상훈 지음, 박민석 사진 / 살림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오래전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아침 이른 시간 집에서 키우던 소에게 밥을 주기 위해 사랑방 아궁이에 불을 피우시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시던 아버지. 그 시각 자식들의 밥을 준비하시는 엄마의 부엌 굴뚝에선 하얀 연기가 솜털구름처럼 피어오른다. 하루종일 논과 밭에 나가 시커멓게 그을린 얼굴과 거칠기만한 손이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버린 우리 아버지와 엄마, 늦은 밤 아이들이 모두 잠들고 나서야 힘겨운 몸을 뉘일수 있었던 아버지 엄마의 몸에선 언제나 시큼한 삶의 냄새가 배어 있었다.
엄마가 해주시던 손칼국수! 가끔 그 맛이 그립다. 이름난 칼국수 집을 가더라도 그 추억의 맛은 찾을 길이 없다. 아버지가 장에 다녀오시며 검은 비닐 봉지에 싸오시던 선지, 그리고 친히 끊여주시던 선지국의 그 얼큰한 맛을 이제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더 늦기전에 부모님의 손을 잡아드리세요> 제목만으로도 벌써 눈물이 흐른다. 아버지 엄마의 손길이 그립다. 잡아드리고 싶은데, 안아드리고 싶은데,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은데... 이제 그럴 수가 없으니...
'어쩌면 자식이란 낳고 기르고 먹여야 하는, 짐 중에서 가장 무거운 짐일 것입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 짐을 놓으신 적이 없습니다. 동생을 낳고도 곧바로 호미 들고 밭으로 나가셔야 했던 어머니. 어머니는 그 지친 몸을 아랫목에 눕히신 적조차 없습니다.' - P. 17 -
어머니의 손에는 가족들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큰형가족과 엄마, 그리고 직장을 다니던 내가 함께 살던 시간. 첫직장 생활에 지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온 나, 엄마는 과일을 들고 내 방문을 슬며시 여신다. 오늘 하루 어떤 일들이 있었고, 무엇을 했고 이런 저런 일들을 말씀하시던 엄마의 모습, 모든게 귀찮아 듣는둥 마는둥 귀를 열어두고 누워 TV만 뚤어지게 바라보는 나. 그때 왜 엄마와 마주앉아 엄마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는지, 농사일에 지쳐있는 엄마의 거친 손 한번 잡아드리지 못했는지... 지금 이 시간 너무 후회스럽고 안타까운 마음이다.
부모님의 손을 잡아드리기엔 이제 너무 늦어 버렸다. 어버이날 작은 카네이션 하나 가슴에 꽂아드리지 못하는 안타까움, 산소에 난 풀들을 뜯으며 아내 모르게 눈물을 훔친다. 그 이별의 시간이 벌써 오래전인데도 불구하고 엄마에 대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눈물은 마를줄을 모른다. <더 늦기전에 부모님의 손을 잡아드리세요> 는 잊고 있었던 그리움의 눈물을 새삼 가슴속에서 끌어오르게 만드는 작품이다. 그 제목들만으로도 가슴을 울컥하게 만든다. 아버지가, 엄마가 살아계실때 꼭 해드렸으면 좋았을 작은 모습들이 후회와 안타까움으로 눈물이 되어 흘러내린다.

예전에 그런 CF가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편을 나누어 방송하던... 어머니 편에서는 '재춘이네 간판'에 대한 짧은 내용을 통해 엄마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이 CF는 '자식의 이름으로 사는 게 그게 엄마 행복인 게다' 라는 마지막 카피로 가슴을 찡하게 만들기도 했다. 아버지 편에서는 '행복을 담아낸 사진속에 항상 아버지는 계시지 않았다'는, 가족들을 위한 아버지의 사랑과 헌신이 담긴 내용이었다. 아버지, 어머니의 가족들을 위한 뜨거운 사랑이 배어나던 두편의 CF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책 속 [아버지와 다정하게 둘이서 사진을 찍으세요] 을 읽다보니 오래전 이 CF들이 새삼 떠오른다.
더 늦기전에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꼭 해보라는 서른 두편에 담긴 작은 당부들을 하나씩 실천해 본다면 아마도 지금 이 시간 나, 혹은 작가가 느끼고 있을 후회와 안타까움이 조금은 덜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어린시절을 떠올리게하는 흑백사진속 부모님의 모습, 낡고 허름한 아버지의 자전거, 천진 난만하게 뛰어노는 아이들, 외로이 놓여있는 엄마의 털신, 허름한 집 앞 장독대... 우리 어린시절을 고스란히 담아놓은듯한 빛바랜 사진들이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더 크게 만든다.
'어머니는 소리내어 우시지만 아버지는 눈물을 삼킨다고 했습니다. 그런 아버지에게 남모를 사랑을 전해보세요. 바쁜 와중에 같이 얼굴 마주하고 밥 먹는 일 하나에도 사랑은 담겨 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오시는 길에 마중 한번 나가는 것은 어떨까요. 또 그저 무표정에 "왜 나와 있냐?" 하시겠지만, 마음으로는 벌써 다 큰 아들이 대견스러울 겁니다.' - P. 106 -
이제 두 달 후면 아빠라는 이름을 얻게된다. 너무 기쁘지만 가끔은 왠지 모를 무거움이 어깨를 짖누르기도 한다. 요즘들어 '아버지' 라는 이름이 자주 입가에 맴돈다. 8남매라는 대가족을 거친 두 손으로 키우신 아버지의 위대함, 그리고 그 속에서 아버지가 겪으셨을 중압감이 어떠했을지 감히 짐작하기조차 힘들다. 부엌에 몰래 들어가 소주를 조금씩 마시는게 유일한 낙이셨던 아버지, 누구에게 그 중압감을 털어놓지도 못하고 자신의 두 어깨에 모두를 짊어질 수 밖에 없었을 아버지의 모습이 안스럽기만 하다. 지금이라면 꼭 안아드리고 두손이라도 잡아드렸을텐데...
<더 늦기전에 부모님의 손을 잡아드리세요> 이 책을 내려놓으며 앨범이 꽂힌 책장으로 달려간다. 아직도 한없이 밝은 모습을 웃고 계신 아버지, 그리고 엄마의 모습. 사진 속에서 어색한 미소를 지으시는 그 순수한 모습이 너무 반갑고 그립고 눈물겹기만 하다. '잘 지내시죠?' 오늘은 엄마와 아버지가 계신 산소에 꽃이라도 한송이 놓아드려야겠다. '살아 있는 동안 부모님께 꼭 해드려야할 32가지 마음의 선물' 이란 부제가 함께하는 이 책속의 선물은 부모님께 드리는 것이 아닌것 같다. 부모님께 해드리지만 그 선물들은 자기 자신이 받는 것이다. 흐르는 눈물을 쉽게 멈출수 없는 책, 부모님께 해드리지만 자신이 더 행복한 책, 가족의 사랑을 확인하고 행복을 선물하는 그런 책 한권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