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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익문사 1 - 대한제국 첩보기관
강동수 지음 / 실천문학사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우연히 발견한 '대한제국 말에 활약했던 한 조선인 테러리스트에 대한 관동군 첩보대의 신문조서철' 한 권, 경술국치 100년을 즈음해서 특별한 역사소설 한 권이 우리를 찾아왔다. 1902년부터 1913년 까지 첩보기관 요원과 테러리스트로 활동한 인물, 이인경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일본의 정객 오쿠마 시게노부를 대련에서 저격하다 미수에 그친 이인경, '제국익문사'라는 첩보기관과 연관된 대한제국 말기의 어수선한 국내외 정세와 한반도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다양한 사건들을 현실감 넘치게 써내려간 팩션소설이 바로 이 작품 <제국익문사> 이다.
'일제침략기' 란 이름으로 우리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시간을 아직도 우리는 잃어버린 빈공간으로 남겨두고 있다. 그 당시를 이야기하는 작품들도 종종 찾을 수 있지만, 친일, 친북, 친미... 아직까지도 이데올로기의 시대를 살고 서로 다른 관점과 시각에 대해서는 쌍심지를 키고 반대 아닌 반대, 이유없는 공격을 서슴지않는 편협된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아직도 과거를 되돌아보고 현재를 새롭게하는 시간을 방해하고 있는것이 바로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식민사관에 사로잡혀 한반도 내에 역사를 가두고, 엄연히 존재하는 잘못을 사죄나 아픔의 치유없이 두리뭉실 넘겨보려고, 혹은 친일 매국노를 독립운동가로 매도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믿을 수 없는 현실이 버젓이 자행되는 우리의 모습이 부끄럽다. 단순히 과거를 묻어 버리는 데에만 열을 올리고, 잘못에 대한 용서도, 사죄도 없이 '그 당시 않그런 사람이 어딨어?' 하는 식의 당당한 모습을 한 그들이 역겹기만 하다. <제국익문사>는 어쩌면 단죄에 대한 심판이나 첩보원의 영웅담을 담아낸 작품이기에 관심이 가는 것이 아니라 잊혀진, 감추어진 역사에 대해서, 우리가 몰랐던 새로운 인물의 발견을 통해 아픔의 시대, 그 시대를 살았던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시대를 이해하는 시간을 전해주기 때문이 아닐까싶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앞서 언급했듯 제국익문사의 첩보요원 이인경이다.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자기 자신의 신변안전을 위해 고종이 설립한 첩보기관인 제국익문사, 이 작품은 1905년을 배경으로 하지만 사실 그 시간 전후 10년이란 역사적 시간을 담고있다. 갑신정변, 을미사변에서 을사조약에 이르기까지... 대한제국 말의 혼란한 국내외 정세속에서 이인경이란 인물과 그에 반하는 나라의 국적(國賊) 우범선이란 인물과의 대결구도를 취하고 있다. 우범선이란 인물은 실존인물로써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우장춘 박사의 친부라고 한다.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했던 우범선, 그를 쫓는 이인경의 아버지 또한 우범선과는 친구이면서 시해사건에 가담했던 인물이다.

작가는 처음 이 작품을 구상했을때 우장춘 박사를 작품의 주인공으로 내세워 명성황후의 시해와 부친 우범선에 대한 원죄 의식을 담아낸 기구한 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써내려가려 했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우범선을 쫓는 이인경이란 인물속에서 '우장춘'의 모습이 오버랩되기도 한다. 우범선이란 실제인물, 명성황후 시해사건, 제국익문사 등 실제 역사적 사건과 시간속에서 작가는 허구의 세계를 가미해 이야기의 극적 즐거움을 추구한다. 사실 우범선은 1903년 일본에서 고영근에게 처단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소설속에서 우범선은 극적으로 살아나 다시 정변을 꾸미려한다는 허구적 스토리를 만들어 낸것이다. 그리고 '우장춘'의 다른 모습이기도한 이인경의 등장도 팩션소설의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인 것이다.
<제국익문사>는 20세기 초 대한제국의 한성과 제물포, 일본고 중국, 러시아에 이르는 거대한 스케일을 담아낸다. 혼란한 시기 동북아의 정치 역학적 구조를 뒤돌아보고 그들의 삶과 다양한 인물들이 쏟아내는 시대상에 비친 모습들을 읽어 내려간다. 명성황후의 시해와 대한제국의 멸망을 단순히 친일파와 일본의 야욕이 빚어낸 결과로만 바라보지 않고 명성황후와 그의 친족들이 가진 한계점, 개혁과 개화라는 역사적 시대적 순리를 거스른, 약간은 무능했던 고종 황제의 모습, 나라를 팔아먹는 썩어빠진 조정대신과 관리들... 일본에 의해 빼앗겼지만 우리 스스로가 그 잘못된 결과를 불러온 것은 아닌지 책을 읽으면서 고민하고 안타까움에 휩싸이게 된다.
일본의 거물 정치인 암살 미수로 일본 헌병대에 붙잡힌 이인경이 고백하는 형식을 빌어쓴 이 작품은, 우범선이란 인물에 대해서는 그 자신이 자신의 입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액자소설의 형식을 띄기도 한다. 두 권의 묵직한 책속에 담긴 경술국치 그 전후의 모습이 여전히 안타까움으로 남는다. 팩션소설의 매력은 이미 지나버린 시간을 작가가 의도한대로, 혹은 새로운 인물들을 통해 변화시키고 새로운 모습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새로운 인물들을 통해 바라본 아픔의 시간, 되돌리고 싶은 시간 여행을 통해 그 시간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되었다.
"...우리는 자칫 일제 감점기를 박제품과 같은 것으로 방치하는 오류를 범하기 쉬운데, 이 각별한 소설은 '지금, 여기'의 삶과 백년 전의 삶이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역설한다. 박제된 역사에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는 장쾌한 서사도 놀랍지만 무엇보다 애국과 매국 사이에서의 갈등을 다루는 균형 잡힌 시선이 신뢰가 간다. ..." - 소설가 조정래 -
'한 줄 한 줄 글을 쓰는 과정 역시 고통과 행복의 반복이었다.' 고 말하는 작가의 말. 박제품으로 방치하던 역사의 시간을 새롭게 조명하고 애국과 매국 사이의 갈등을 절묘하게 조합한 작가의 솜씨를 칭찬하는 조정래 작가의 추천사가 인상적이다. 책을 내려놓을때면 작가 자신의 고민도, 조정래 작가의 추천사에도 모두 고개가 끄덕여진다. 경술국치 백년을 즈음해 만나게된 이 한 권의 책이 과거를 통해 현재를 새롭게 하는 시간이 되었을 줄 믿는다. 그리고 다시한번 작가의 열정과 노고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