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OO선생님은 고양이를 다섯마리 키우고, 강아지도 네 마리...." 하면서 딸아이가 떠들어댄다. 결국은 우리도 고양이를 키우자는
말이다. 집 안에서는 아니지만, 커다란 개 네마리에 얼마전 새끼들이 태어나 다섯마리가 추가된 우리 집의 사정상 고양이는 정말 아니될 말이
아닌가? 단호한 아빠의 'No!'에 살짝 시무룩해진 딸아이는 한창 예쁜, 젓을 막 뗄때가 된 강아지들과 강아지 엄마라도 된듯 아쉬움을 달랜다.
예쁘긴 하다. 하지만 언제나 이별이 마음이 아파 아빠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얼마전에도 그랬듯 아이들과 헤어질때 울고불고, 그 난리를
겪어본 아빠로서도 어쩔 수가 없기때문이다. ㅠ.ㅠ
기나긴 시간 동안의 빗소리를 뚫고 오랫만에 살짝 고개를 드리운 햇살이 너무 반갑기만한 날씨다. 깨끗, 상큼, 달콤하다는 표현이 맞을까 모를
기분 좋음이 아침부터 설렘처럼 다가온다. <고양이는 안는 것>이라는 책 한 권을 읽고 난 후의 기분이 또 이런 상쾌함과 다아 있어
너무 즐겁다. 제목만 볼 때는 고양이와 연관된 그런 저런 평범한 작품이겠거니 했었다. 근데 아니다. 뭐랄까? 깊이가 느껴지고 감동과 행복이란
느낌이 마구마구 샘솟는, 왠지 모를 기분 좋은 느낌이 온 몸을 감싸는 다양한 감정이 휘몰아친다.
아오메 강, 네코스테 다리,
그리고 고양이들의 밤샘 집회!
아오메 강에 혼자 떠내려온 고양이 요시오, 네코스테 다리에 사는 고양이들에게 가까스로 구조된 요시오는 자신을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여자 사오리를 만나러 가다가 이런 일을 당했다고 말하는... 그렇게 요시오와 네코스테 다리의 고양이들이 만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자신을
인간이라고 생각했던 요시오, 그리고 불편했던 어린시절을 거치면서 고양이 요시오를 만나고 요시오라는 이름을 가진 선생님을 짝사랑했던 마흔살의
뚱뚱한 여자 계산원 사오리의 이야기도 관점을 달리해 그려진다. 그리고 그들의 헤어짐까지...
"고양이는 그리는 것이 아니라 안는 것이라고 화가가
그랬어."
색각이상으로 고양이와 같은 세계를 보고 있다고 말하는 화가 고흐와 못생긴 삼색고양이 키이로의 인연이 다음 이야기를 이끈다. 시장에서 다른
형제들이 모두 팔려나가고 자신만 남았던 못생긴 키이로를 기꺼이 사랑해 주었던 고흐! 고흐는 키이로와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 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셈이 많았던 고흐의 조카 호노 때문에 사건이 일어나고, 키이로 역시 결국 네코스테 다리에 다다르게 된다. 네코스테 다리에는 키이로의
언니인 피카도 있었고 회색 고양이 쿠로도, 모두들 그분이라 부르는 흰색 고양이도, 그리고 아오메 강의 정령이 아닐까 싶은 길 고양이들을 돌보는
할머니와 아주머니 아저씨가 함께 했다.

모두 다섯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는 이 작품은 고양이와 인간이 가진 서로의 사연과 인연을 이야기한다. 가족에게 버림받은 여자, 창작의 고통에
시달리다 희망을 찾았지만 예기치 않은 죽음을 맞이한 화가, 길 고양이를 돌보는 사람들, 그리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가는 이들... 또 그들의
반대편에는 고양이들이 있다. 자신을 인간으로 생각했던 고양이가 있는가 하면, 행복한 삶을 꿈꿨지만 예기치 않은 사고로 주인을 잃은 고양이,
가족을 교통사고 잃어버린 아기 고양이, 그리고 몇 번의 환생, 그 기억을 고스란히 기억하는 네코스테 다리의 신비한 고양이 '그 분' 처럼...
이별을 가슴에 안은 다양한 고양이들의 삶 또한 그들의 시선속에서 그려진다.
인간과 고양이, 두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이 작품은 편안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면서도 그 속에 담겨진 이야기들을 듣고 있노라면
안타까움과 흐뭇한 미소, 또 애틋한 그리움 같은 다양한 감정을 되살아나게 만든다. '고양이는 안는 것'이라고 말했던 고흐나 자신의 불행한 처지
속에서도 요시오를 잘 돌보려 했던 사오리의 고양이에 대한 사랑이 가슴을 따스하게 하고, 어쩔 수 없는 이별과 또 다른 만남이 작은 행복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인간의 잘못된 마음속에 상처받는 어린 생명들이 아프게 다가오기도 하고, 그럼에도 인간을 미워하기 보다 자유, 행복, 그리고
겸허함을 말하는 '센'이라 불렸던 흰색고양이의 말이 참 인상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어이, 키이로. 너는 다시 돌아온 몸이잖아. 집고양이도
해봤고 길고양이도 해봤으니까 어느 쪽이 더 행복한지 허심탄회하게 말 좀 해봐."
"그건 뭐, 운명이니까." ... "정답은
없어." - P. 172 -
<고양이는 안는 것>은 다양한 시점에서 인간을, 그리고 고양이의 세계를 이야기한다. 인간을 사랑한 고양이들의 눈으로 바라본
인간들의 모습을, 살아가는 일이 너무나 벅차고 사랑에 아파하는 인간들이 느끼는 고양이의 모습이 그려진다. 혹은 철학자로 불리는 백로의 눈으로
보여지는 세계도 담겨진다는 사실이 독특하다. 만남이 있고 헤어짐이 있다. 인간이라 자신을 믿는 고양이와 인간 사이의 인연, 사랑은 그 끝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 지점에서 행복이라는 단어가 그 의미를 더욱 크게 부각시킨다. 행복이 무엇인가? 그것이 고양이에게 인지, 아니면 인간의
그것인지 모르겠지만... 책은 그 행복과 인연에 대해서 이야기를 집중하는 듯하다.
행복에 어떤 정답은 없다는 키이로의 말이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이 아닐까? 이름이 없는 아기 고양이가 센을 찾아와 이름이 있을때, 없을때
어느쪽이 좋느냐라는 질문을 내놓을때 센이 했던 대답도 이와 비슷하다. 구속 그리고 자유! 그 속에서 고민하고 갈망하는 것은 고양이 뿐만 아니라
인간도 마찬가지일테니까. 그리고 센의 마지막 말 역시 많은 생각을 갖게 만든다. 살면 살수록 자신이 미약하다는 걸 느끼고, 알면 알수록
겸허해진다는... 우리 인간에게 가장 필요하고 소중한 말 중 하나일테니까 말이다. 단순히 고양이와의 교감 정도가 느껴지는 책일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감동과 재미, 깊이 있는 철학까지 담고 있는 보석같은 작품이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이들, 아니 일상에 지친 모든 이들에게 선뜻 내밀고
싶어진다. 이게 바로 <고양이는 안는 것> 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