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죄(冤罪),
'억울하게 뒤집어 쓴 죄'를 말하는 이 말은 사실 우리에게는 그리 익숙한 단어가 아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라면 보통 원죄(原罪)라는 말로
이야기된다. 인간이 원초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죄를 말하는, 종교적인 의미를 조금은 담고 있는 이런 의미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물론 일본
미스터리 작품들을 즐겨 만나는 독자들이라면 원죄(冤罪)라는
이 말이 또 그리 생소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어찌됐건 나카야마 시치리가 이번 작품에서 꺼내어 놓은 카드는 바로 이 '원죄(冤罪)'에
있다.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날, 부동산 업자 부부 살해 사건이 벌어진다. 신참 형사 와타세는 베테랑 선배 나루미 형사와 함께 현장에 출동하게
된다. 칼에 찔려 죽음을 맞이한 이 사건에서 그들은 좀처럼 실마리를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어렵사리 용의자를 한 사람 찾게 되고 용의자의
집에서 피 묻은 점퍼가 발견되면서 사건은 일단락되고, 결국 용의자는 피의자로 재판에 넘겨져 사형을 구형 받게 된다. 무죄를 주장하던 피의자는
항소하게 되지만, 결국 항소심에서도 기존의 증거와 자백을 근거로 원심과 같이 사형 판결이 나게된다. 결국 피의자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감옥에서 자살을 하고만다.
그리고 5년이란 시간이 흐는다. 이제는 경부로 승진하고 베테랑 형사가 되어버린 와타세가 엄청난 진실앞에 놓여지게 된다. 우연히 잡은
강도살인 용의자를 심문하던 중, 5년전 일단락 되었다고 믿었던 부동산 업자 부부 살해 사건의 진범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당시 신참
형사였던 와타세는 경찰의 폭력적 심문, 증거조작, 강압적인 수사 그리고 사법부의 정의롭지 못한 판결! 이런 것들 앞에 서있었던, 아니 놓여있었던
한낱 작은 존재엿을 뿐이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와타세 경부는 잘못된 과거와 현재 진행형인 사법부와 경찰의 민낯 앞에서 진정 소중한
가치를 진심을 다해 꺼내어 들게된다.
<테미스의 검>은 언제나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언제나 여러가지 색깔을 그려내는 작가 나카야마 시치리가 꺼내놓는 사법부와
경찰에 대한 날카로운 칼날이다. 원죄(冤罪)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듯이 억울한 죄에 대해, 과거 와타세 경부 자신과도 관련이 있는 - 물론 과거에는 그런 잘못된 관행을 알지못하는 신참이었지만
- 사건에 대해서 숨기지 않고 자신이 속해 있는 공권력과의 과감한 전쟁, 쉽지 않은 선택을 하게 된다.

벌써 나카야마 시치리와 참 많은 작품들을 함께 해왔다. 지난달 '작가 형사 부스지마'와 함께 했었고, 두 달 전에는 '추억의 야상곡'을
통해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와 만나기도 했다. '세이렌의 참회'에서는 언론의 잘못된 관행들을 꼬집기도 했고, 이 작품 <테미스의
검>과도 연관이 있는 '속죄의 소나타'와의 만남 속에서 '속죄'와 '원죄'에 대해서 깊이 있는 재미를 느끼기도 했었다. 또 이 작품을
통해서 와타세 경부와의 만남을 갖기도 했고 말이다. 물론 그 전에 '히포크라테스 선서'에서도 그를 이미 만났었지만....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이번 작품이 더욱 익숙하기도 하고 그 속에서 또 다른 재미를 마주하는 것 같기도 하다. ^^
"그토록 자신의 행동에 죄책감을 느끼신다면 형사님이 직접 그
희망이 돼 보시는 건 어떨까요? 두 번 다시 원죄를 만들지 않겠다. 두 번 다시 틀리지 않겠다. 자신이 그런 경찰관이 되고, 또 그런 경찰관을
양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이 바로 상자를 열어 버린 자가 속죄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 P. 270
-
이 작품은 원죄, 그리고 속죄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또 거대한 공권력의 폭력을 이야기한다. 그에 맞서는 한낱 작은 인간의
목소리를 말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와타세 경부의 이런 진실한 모습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를 일이다. 진실에 다가가는 일은 정말
힘겹고 어려운 일이다. 단순히 책속에서 다뤄지는 사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도 이런 비슷한 원죄에 관한 사건, 몇십년만에 무죄를
확정받았다는 이야기들을 종종 듣게 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 조차도 몇몇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을것 같다. 훨씬 더 많은
이들이 아직도 무고함을 외치고, 공권력과 다투는 우리의 현실속에서 이 작품이 가져다 주는 의미는 보다 크다고 말할 수 있을것 같다.
우리도 아직까지 촛불을 켜고 있다. 권력을 쥔 이들이 올바르지 않았기에 우리가 겪어야 했던 커다란 상실과 아픔을 지금까지 겪고 있다.
정의가 사라진 권력 앞에서 한낱 작은 촛불이었던 우리가 그 거대한 공권력의 폭력 앞에 '혁명'을 이룩했다는 사실이 아직도 실감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끝나지 않은 그 폭력적 권력의 하수인들의 모습에 실망감, 허탈감을 감출수 없는 현실 역시 지금 이 시대 우리의
모습임을 잊지 않으려 한다. 나카야마 시치리를 통해 어쩌면 조금은 익숙한 소재속에서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돌아보는 현실인식의 기회를 얻게 된것
같기도하다.
반전의 제왕, 나카야마 시치리!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을 가진 작가, 그리고 진정한 이야기꾼의 모습과 다양한 스펙트럼속에
독자들을 가두어 버리는 화려한 스토리 텔링 마법사!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창조하는 능력자! 거듭 거듭 그와의 만남이 이어질수록 놀라움은 커져만
간다. '안녕 드뷔시!'를 뛰어넘는 대단한 작품들을 거듭 창조하는 작가! '새로움은 바로 이런 것이야!' 하며 익숙함속에 신선함을 담아내는
특별함의 소유자! 나카야마 시치리! 앞으로도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와의 만남을 담은 '은수의 레퀴엠'으로, '네메시스의 사자'속에서 만나는
와타세 경부의 또 다른 모습으로 그와의 즐거운 만남이 계속 이어지기를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