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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형사 유키히라의 살인 보고서 ㅣ 여형사 유키히라 나츠미의 두뇌게임 시리즈 2
하타 타케히코 지음, 김경인 옮김 / 북스토리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하타 타케히코, 낯선 이름의 작가들과 만나는 일은 유쾌한 도전이자, 색다른 즐거움이 되기도 한다. 익숙한 이름을 가진 작가들, 어쩌면 틀에 박힌듯한 그들의 작품속 일정한 패턴을 따라가는 책읽기가 조금은 지루해질 무렵, 한번쯤 이런 도전?이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한번의 낯설었던 이름과 제목에서 기억할 수 밖에 없는 특별함을 발견 할 때면, 진주를 발견한 어부 마냥 주체할 수가 없는 들뜬 기분으로 행복감에 사로잡힌다. 바로 이런 기분, 작가 하타 타케히코와 <여형사 유키히라의 살인보고서>의 만남속에서 느끼게 된다.
생후 3개월 된 여자아이의 유괴사건!
아이의 이름은 가메야마 루코. 싱글맘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는 가메야마 후유미의 딸인 루코가 어느날 사라진다. 채 1살도 되지 않은 아이의 행방불명, 후유미의 신고로 사건을 경시청 수사 1과가 맡게 된다. 그리고 매력적인 여형사 유키히라 나츠미가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좌우대칭의 잘생긴 얼굴, 아름답게 오뚝한 코, 아몬드형의 큰 눈, 속이 비칠 듯한 흰 피부, 곧게 늘어뜨린 긴 흑발, 170센티미터에 가까운 큰 키, 군살 하나 없이 완벽한 비율' 유키히라에 대한 책속 묘사만으로도 그녀가 얼마나 매력적인 외향을 가졌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표지를 장식한, 만화속 주인공과 같은 그녀의 모습에 가장 먼저 시선이 고정된다.
'쓸데없는 미인' 유키히라 나츠미!
하지만 사람들은 그녀를 '쓸데없는 미인'이라 부른다. 경찰이라는 직업에서 그닥 필요없는 미인이 바로 그녀인 것이다. 하여튼 이 유아유괴사건의 단서를 찾기 위해 유키히라는 종횡무진 활약을 펼친다. 후유미 주변 인물들을 탐문 조사하기 시작하지만 좀처럼 아이를 유괴할 동기를 가진 인물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자신이 루코를 데리고 있다는 범인의 전화가 걸려오고, 범인은 '네 딸에게 어울릴 만한 것을 서둘러 준비해' 라는 알듯 모를듯한 말을 남긴다. 사건은 점점더 미궁에 휩싸이게 된다.
유키히라는 사건을 맡으면서 이혼녀이며 싱글맘인 후유미의 마음을 조금은 더 이해하는 듯하다. 그녀가 자신과 조금은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다는 생각에... 2년전 각성제 중독의 미성년자를 사살한 유키히라는 지나친 수사라고 언론의 질타를 받는다. 그녀의 딸 미오는 주변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받고 남편과는 이혼하는 등 가족 자체가 붕괴되는 고통을 격었다. 그리고 얼마전 두번째 피의자 사살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게 된다. 경시청 수사1과의 검거율 넘버원이지만 더불어 현직 형사로서 최다 피의자 사살이라는 불명예를 가지고 있는 그녀, 유키히라 나츠미. 그녀가 더욱 궁금하다.
루코의 유괴범은 전화를 통해 유키히라에게 도발적으로 다가온다. '사람을 죽인다는게 어떤 느낌인지' 말하라고 유키히라를 자극하기도 하고, '나에겐 시간이 없다' 라는 말로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리고 또 다른 소녀들의 사체가 발견되면서 사건은 점점 미궁속에 빠져든다. 사실 책을 읽다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범인이 누구다, 하는 짐작을 하는 눈치빠른 독자들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라는 꼬리표가 계속 쫓아다니게 된다. 왜? 왜? 왜? 그리고 그 왜?라는 질문의 대답을 털어 놓을때쯤, 아니 유키히라가 미스터리한 사건의 추리를 마무리 할때쯤 독자들은 누구도 예상치못한 충격적인 결말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범인이 했던 '네 딸에게 어울릴 만한 것을 서둘러 준비해'라는 의미도 깨닫게 될 것이다.

하타 타케히코의 작품은 국내에서 '추리소설'이란 작품만 출간된 듯하다. 이 작품 <여형사 유키히라의 살인보고서>는 바로 '추리소설'의 속편이라고 한다. 아직 그 작품을 만나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책을 내려놓으며 가장 먼저 드는 아쉬움이다. [언페어] 라는 드라마로 일본에서 커다란 인기를 얻었다는, 유키히라 나츠미라는 캐릭터의 존재감과 활약상은 이 작품속에서 더욱 크게 매력을 발산하는 듯 보인다. 완벽에 가까운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남성적인 강한 이미지를 풍기는 독특한 캐릭터, 외향적인 행동과는 달리 깊이 있는 사고와 가족을 생각하는 그녀의 모습속에서 독자들은 지금까지 그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던, 매력적인 짙은 향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미스터리 추리소설속에서 형사라는 캐릭터들은 다소 멍청한 들러리에 불과했다. 주요 사건은 뛰어난 두뇌를 가진 탐정들이 해결하고, 형사들은 언제나 뒤늦게 사건을 쫓다가 탐정들이 사건을 해결하면 주로 곁에서 깜짝 놀라는 역할?정도만을 담당하곤 했던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 작품속에서 유키히라의 모습은 그 어떤 매력적인 주인공들, 탐정들 못지않게 저돌적이면서 강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완벽'이라는 말로도 다 표현 할 수 없는 매력적인 그녀의 모습에 매혹되지 않을 독자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비열한 유괴범 vs 살인 여형사? 등장인물중 하나인 유미코의 드라마 기획서 카피이기도한 이 문구는, 아마도 그녀가 이 사건의 본질을 모르기 때문에 사용한 것이리라. '촌철살인 여형사 vs 다정한 유괴범!!' 정도가 가장 적당한 표현이랄까? 무엇하나 빼어놓을 수 없는 매력적인 여형사와 마지막 책을 내려놓을때쯤 고개가 끄덕여질 '다정한' 유괴범의 긴장감 넘치는 대결, 미스터리 범죄 소설이 전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즐거움이 책속에서 펼쳐진다.
범죄소설에서 느끼는 재미와 더불어 작가는 '가족애'라는 특별한 감동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유키히라의 두번에 걸친 피의자 사살때문에 딸 미오는 '살인자의 딸'이라는 놀림과 따돌림을 받게 된다. '엄마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기도 하지만 유키히라와의 대화에서 엄마의 건강을 걱정해주는, 그녀의 딸 미오를 보면서 가족이란 정말 이런 것이구나 하는 감동과 마주하게 된다.
더불어 작가는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모습'을 고스란히 작품속에 비춰낸다. 유아유괴사건과 같은 소재, 연쇄 살인이나 가출 소녀들의 원조교제와 같은 치명적인 사회 문제, 자극적이고 가쉽성 프로그램을 양산하는 방송의 제작 현실, 그리고 사회 지도층이란 이들의 삐뚤어진 모습에 이르기까지... 편안하고 쉽게 읽을 수 있는 대화적 구성, 길지 않으면서 여러개의 장으로 나누어진 빠른 전개, 등장인물들의 섬세한 심리묘사... 극작가, 연출가, 시나리오 작가로도 유명하다는 그의 이력답게 재미와 가독성이 탁월한 작품이다.
'잠든 얼굴이 꼭 천사 같았다. 아니, 잠든 얼굴만은 천사 같았다.'라는 가메야마 후유미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제 2개월 된 딸 아이의 아빠로서 그 맘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천사속에 아무리 악마?의 모습이 감추어져 있다 하더라도 천사는 영원히 천사일 수 밖에 없다. 가족이란 이름이 언제나 함께 하기 때문이다. 책을 내려놓으며 만일 내가 1년 밖에 못산다는 선고를 받는다면? 하는 질문 앞에 서본다. 그리고 그 질문앞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다. 바로 '가족'이라는 이름이다.
<여형사 유키히라의 살인보고서>는 신선한 도전처럼 만난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특별함을 발견한 작품이었다. 아직 만나보지 못한 하타 타케히코의 '추리소설'과의 만남을 곧바로 준비해야겠다. 재미와 감동,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향연, 색다른 구성과 반전의 묘미까지 전해준 이 특별한 소설이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더 많은 이들이 유키히라 나츠미, 그녀의 매력속에 빠져들기를 기대해본다. 그리고 매력적인 그녀, 유키히라 나츠미와의 다음 만남도 손꼽아본다. 그 기다림의 시간이 너무 길지 않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