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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불의 집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시작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돌이켜보면 2009년은 '기시 유스케' 라는 작가와의 만남이 꽤나 많았던 한 해였다. '천사의 속삭임', '신세계에서', '13번째 인격' 그리고 '크림슨의 미궁'에 이르기까지... 기시 유스케를 일컬어 '인간의 욕망과 광기를 섬세하게 그려내는 모던 호러의 대표작가' 라고 불리는데 작년 그에 대한 이런 수식이 적절함을 새삼 느끼는 한해가 되었던것 같다. 또한 그의 대표작인 '검은집'을 읽어본 독자들이라면 이 말을 절실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단지 모던 호러라는 장르뿐만이 아니라 기시 유스케는 SF나 미스터리 추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작가이기도 하다.
'기시 유스케'의 작품속에서 느낄 수 있는 '특징'들은 '인간의 욕망과 광기'를 섬세하게 그리는데에 그치지 않는다. 그가 작품속에서 그리는 독특한 소재와 다양한 세계속의 폭넓은 지식들은 그의 작품을 만나는 독자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작품속에서 유영하듯 살아숨쉬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향연 또한 기시 유스케라는 작가만의 펜끝에서 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다. '검은집'과 기시 유스케, 그리고 이제 다시 '도깨비불의 집'을 통해 그만의 색깔을 만난다.
레스큐 법률사무소의 아오토 준코 변호사, 전직 범죄자였지만 지금은 방범용품 전문점을 운영하는 에노모토 케이. 이들 두 콤비가 미스터리한 '밀실살인'의 실체를 풀어낸다. 표제작이기도 한 '도깨비불의 집'을 포함해 모두 4편의 단편이 등장하는 <도깨비불의 집>은 기시 유스케의 본격 미스터리 단편집이다. 인간의 욕망과 광기를 세밀하게 그려내는 작가 기시 유스케가 그려낼 이 흥미진진한 밀실살인 미스터리가 벌써 부터 기대된다. 그리고 준코와 케이, 두명의 매력적인 콤비의 활약 또한...
'도깨비불은 우리의 시선을 잘못된 곳으로 향하게 한다' - P. 85 -
고진마을의 집으로 돌아온 니시노 마사유키는 집안에서 죽어있는 큰 딸, 마나미를 발견한다. 단란하고 행복하기만 했던 한 가정에 갑자기 시련이 불어닥친다. 모든 문은 닫혀있고, 유일하게 북쪽 작은 창문만이 열려있는 상황, 완전한 밀실 살인이 벌어진 것이다. 이 밀실 수수께끼를 해결하기 위해 레스큐 법률 사무소의 준코 변호사가 등장한다. 어지럽혀져 있는 방, 비밀 금고에서 사라진 서른개의 금괴... 범인은 과연 누구이고 어떤 이유로 마나미를 죽인 걸까?
유일하게 열려있는 북쪽 창, 벌의 사체, 접사다리, 현장에서 발견된 이 집안의 아들 다케루의 지문이 묻은 라이터, 마사유키를 찾아온 친구 엔도... 준코에게 도움을 요청받은 케이가 단서들을 중심으로 사건을 조금씩 풀어가기 시작하지만... 다케루의 집에서 그의 전 여자친구인 리카가 또 다시 죽음을 당하게 된다. 또 다른 밀실살인이 벌어진 것이다. 사건이 도대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것인지... 표제작인 [도깨비불의 집] 부터 독자들을 꼼짝못하게 하는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 세밀한 추리와 구성, 다양한 트릭과 반전이 돋보인다.

[검은 이빨]에서는 죽은 남편이 남긴 애완동물과 유산에 얽힌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후루미조라는 사람의 의뢰를 받게 된 준코, 후루미조와 미망인 미카, 특별한 애완동물과의 관계속에서 밀실 살인 전문 변호사 답게 준코는 단순 사고로 끝난 사건에서 주도면밀하게 계획된 사고의 냄새?를 맡게 되고, 이번에도 역시 케이의 도움을 받게 되지만 결국은 준코 자신이 밀실 수수께끼를 풀어내게 된다. [장기판의 미궁]은 그 제목에서 연상되듯 호텔에서 죽은, 5단의 장기 기사의 밀실 살인을 이야기한다. 나호코라는 그의 연인, 그녀가 용의선상의 인물로 제시한 세명, 준코와 케이의 추리는 또 날카로운 빛을 내기 시작한다.
마지막 작품인 [개는 알고 있다]에서는 연극 극단의 단장의 죽음과 관련한 밀실 수수께끼가 이어진다. 마쓰모토 사야카의 의뢰를 받은 준코는 극단원중 사건 당일 알리바이가 없는 세명을 중심으로 미스터리를 풀어간다. 단장이 기르고 있던 개가 이 작품에서는 주요 단서가 된다. 세명의 용의자와 사건의 범인을 알고 있는 개, 어떻게 준코와 케이는 개의 입을 열게? 만들 수 있을까?
<도깨비불의 집>은 기시 유스케의 전작인 '유리망치'에서 선보였던 아오토 준코와 에노모토 케이 콤비가 밀실 살인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구성을 띤다. 하지만 사실 개인적으로 '유리망치'를 만나보지는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앞서 언급했듯 기시 유스케의 작품들의 특징중 하나는 바로 다양한 소재와 폭넓은 지식을 꼽을 수 있다. 이번 단편집속에서도 엿보이듯 [검은 이빨]속 애완동물이나 [도깨비불의 집]에서 보여지는 다양한 소재들과 관련 지식들은 그 분야의 지식이 없는 독자들로서는 경이로운 수준? 그 이상을 넘어선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작가의 보이지 않는 땀의 흔적에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 없다.
'왜 자꾸 선로를 이탈하는 거예요? 그만 본론으로 들어가세요!'
준코 변호사의 외침이 단지 그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에노모토 케이에게 던진 이 한 마디는 이 작품을 읽는 독자들 누구나 케이에게 던지고 싶은 말일 것이다. 물론 그가 사건을 해결하는 일등공신임에는 틀림없지만 너무 산만하고 산발적으로 펼쳐놓는 사건의 단서와 실마리들은 오히려 독자들을 어지럽고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아직 케이와 준코 콤비의 활약이 매끄럽지 않아서 일지도 모르겠지만 너무 눈에 보이는 트릭을 일삼는 케이의 모습은 페어플레이를 사랑하는 독자들을 우롱하는듯해 아쉽기도 하다.
오랫만에 만난 기시 유스케, 그리고 더 오랫만에 모습을 보인 준코와 케이 콤비! 기시 유스케를 사랑하는 독자들이나 그의 전작들을 만나본 이들은 물론이고 그와 그의 작품들을 처음 만나는 독자들이라 하더라도 이 한 작품만으로 그를 매력적으로 그의 작품을 색다르게 바라볼 이유는 충분해 보인다. 약간의 아쉬움이 있기는 하지만 준코와 케이라는 이 두 캐릭터 만으로도 매력적인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역자가 후기에서 언급하듯, 개인적으로도 준코와 케이의 조금은 더 유쾌한 사랑이야기가 언제쯤 그려질까 궁금해진다.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그려낼 또 다른 밀실 수수께끼들이 앞으로 더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