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자 오리하라 이치의 ○○자 시리즈
오리하라 이치 지음, 김선영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리하라 이치! 서술 트릭의 일인자, 예측할 수 없는 방향성과 곳곳에 숨겨놓은 트릭으로 독자들의 머리를 지끈하게 만들기로 유명한 그의 세번째 놈놈놈(者)시리즈와 만난다. '행방불명자', '원죄자'에 이은 이번 작품은 오리하라 이치라는 이름을 더욱 굳건히 가슴속에 각인 시키는 계기가 될 것 같다. 다행히 이 작품 이전에 '원죄자'를 미리 만나본 터라 '원죄자'의 한 인물이 이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기에 더욱 기대를 가지고, 전작과의 연관성을 찾아보는 또 하나의 재미까지 선물 받은듯 하다.

 

을 중심으로 하는 본격 미스터리, 여행 미스터리, 그리고 서술 트릭 작품들로 그의 전작들을 크게 구분지을 수 있다고 한다. 앞의 두 유형의 작품들을 만나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서술 트릭 작품인 '者시리즈' 들과의 즐거운 만남에 어떤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듯 보인다. 특히 근래 그의 작품들이 가지는 특징은 세간의 실제 사건들을 작품의 모티브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그 대표작이 바로 '원죄자'이었고 이 작품<실종자> 또한 일본에서 일어났던 사카키바라 사건(1997년)의 소년 범죄와 소년법이 그 기조를 차지한다고 한다.

 

이것은 작년 가을부터 금년에 걸쳐 일어난 연쇄 실종 사건에 대한 진실이다.

숨소차 쉴 틈을 주지 않는 서술 트릭의 거장,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구키시는 사이타마 현 북동부에 위치한 인구 7만의 작은 도시이다. 이 도시에서 어느날부터 월요일이면 여자들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행방불명 되었던 한 여인의 시체가 발견된다. 기타자와 가오리라는 28세 여성 회사원. 시체 옆에는 '유다의 아들' 이란 메모가 놓여있었다. 그녀의 것으로 보이는 현금카드와 현금이 고스란히 놓여 있는 상황으로 미루어 금전을 노린 강도사건도, 성폭행이 목적인 것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연이어 사카마키 가요코라는 20세 회사원의 실종과 피묻은 손수건이 발견되고, 다다 유카리라는 19살 대학생이 또 다시 행방불명되게 된다. 그것도 월요일에 말이다. 사실 이 사건 이전에 이와 유사한 범죄가 구키시에서 일어난 적이 있었다. 15년전, 그때도 월요일이었다. 중학생, 회사원, 주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여성들이 행방불명된 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리고 15년후 현재, '유다의 아들'이란 메모가 함께 발견된 여성의 시체 근방에서 그때 사라졌던 여성들의 백골이 검은 비닐 봉투에 싸여 발견된다. 그리고 그 곁에는 '유다'라는 쪽지가 발견된다.

 

다와 유다의 아들, 뭔가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사건을 논픽션 작가인 '다카미네 류이치로'가 파헤치기 시작한다. 그의 조수인 간자키 유미코와 함께. 15년전 사건의 범인은 '소년 A'라는 이름으로 세간에 알려져 있었다. 소년범죄의 경우 소년법의 보호를 받아 아이들의 신상이나 이름을 알려지지 않기에 통칭해서 '소년 A'라고 불린다고 한다. 15년전 사건의 경우 소년 A와 더불어 동네 양아치였던 시모야나기와 이발사였던 다마무라 미쓰오라는 두 인물이 용의선상에 올랐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범인은 소년 A로 밝혀졌고 사건은 일단락 되었다. 그리고 15년이 흐른 현재, 행방불명되었던 그때 그 여성들의 백골과 현재 실종사건의 여성들의 시체가 발견된 것이다.

 

인은 과연 누구인가?

15년전 용의선상에 올랐던 시모야나기와 다마무라의 뒤를 쫓으며 현재의 사건과 연관이 있어 보이는 과거 사건의 진실을 찾으려는 다카미네 류이치로, 그리고 소년 A의 실체와 소년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밝히려는 간자키 유미코. 이 두 사람의 치밀하고 숨가쁜 추격이 시작된다. 이 두 주인공의 활약과 함께 <실종자>는 또 다른 시점으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간다. '아버지가 보내는 편지'를 통해 소년 A의 아버지로 보이는 인물이 들려주는 소년의 어린시절과 가정 환경, 성장 등이 또 하나의 축을 이루며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더불어 현재 사건의 범인인 '유다의 아들'이 들려주는 독백이 또 다른 중심 축을 이룬다.

 



 

요일에 여자가 사라진다.

현재의 사건과 15년전 사건이 뒤엉키고, 과거 용의 선상에 있던 등장인물들이 끊임없이 머리를 어지럽게 하는가 하면, 소년 A의 정체와 책의 후반부 등장하는 또 다른 소년 A의 모습이 혼돈을 일으킨다. 월요일에 여자들이 사라지는 이유는 무엇이고, 1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때 그 실종자들이 백골로 발견된 이유는 무엇일까? 중간 중간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을 혼동시키는 작가의 트릭에 독자들은 또 다시 허우적되지 않을 수 없다. 서술 트릭의 달인 답게,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조금은 불공평한 작가의 트릭으로 인해, 범인을 찾아보겠다는 초반 독자들의 열의는 점점 몽롱하게 불빛만을 바라보듯 어지러워지기 시작한다.

 

실제 사건들을 소재로 했다는 이 작품은 '소년 범죄와 소년법 문제'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결국 말이지, 세상에는 나 같은 소년 A가 넘쳐나. 이름이 있어도 미성년이니 소년 A인 거지.' 라고 말하는 시모야나기의 말처럼, 소년 범죄에 대해 어디까지 보호해줘야 하고 그 피해자들은 어떻게 해야하는지 우리 사회의 고민을 이 작품은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우리에게도 이런 소년범죄 문제에 대한 처벌과 처리는 상당한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중고등 학생들의 묻지마 살인에서 성폭력,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폭력 등 피해자 뿐만 아니라 피의자들에 대한 처리문제에도 상당한 고민을 갖고 있는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약 네가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제 자식이 살인자인 경우와 피해자인 경우, 둘중 어느 쪽이 낫겠느냐. 부모에게는 더없이 가혹한 선택이지만 대개의 부모는 틀림없이 제 자식이 살인자이기보다는 차라리 피해자인 편이 낫다고 생각할 게다. ... 하지만 나는 자식이 살인자인 쪽을 고르련다. 이유는 그래, 죽어버리면 자식을 두번 다시 만날 수 없지 않느냐....'  - P. 14 -

 

더불어 '가족' 이라는 이름 앞에 놓인 수많은 비애도 독자들의 가슴을 안타깝게 만들기도 한다. 이혼, 폭력, 성폭행, 은둔형 외톨이, 사회 부적응, 사회에 대한 서슴없는 폭력이 난무하는 우리 가족사의 현실이 가슴을 아프게 만든다. 그리고 그런 환경 속에서 상처받아야 하는 아이들의 안타까움도 귀길울이게 된다. 더불어 자식이 살인자인 쪽을 택하겠다는 아버지의 절절한 한 마디가 가슴속에 와 닿는다. 혹시라도 나에게 그런 선택이 주어진다면 어떠할까? 작지만 깊은 고민앞에 서게된다.

 

과연 누가 범인일까? 15년전 사건과 현재의 사건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굳이 월요일에 그녀들이 사라지는 이유는? 작가가 말하려하는 소년범죄와 소년법은 이 작품에 어떤 모티브를 제공했을까? 유다와 유다의 아들은 무슨 연관이 있을까? 그리고 '원죄자'에서 등장했던, 이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던 그는 누구일까? 수많은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내 어머니도 월요일에 사라졌어.'

다카미네 류이치로의 이 한마디가 많은 것을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많은 것을 잃게 만든다. 독자들은 여지없이 작가에게 농락당하고 만다. 교묘한 트릭과 긴장감있게 전개되는 이야기 구조는 역시 오리하라 이치!구나라는 감탄을 터져나오게 만드는데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단순한 미스터리의 재미를 넘어 사회문제에 대한 고민까지 담고있는 이 작품을 간직하고 싶다. 오리하라 이치의 '者시리즈'의 다음 작품인 '도망자'가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수없이 그에게 농락당하더라도, 그리고 계속해서 그와 머리 싸움을 해야할지라도 오랜 시간 그와 함께 하고 싶다. 서술 트릭의 거장, 오리하라 이치! 오리하라 매직에 그렇게 매혹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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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장
신란 지음, 이영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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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티베트에서 불어온 거센 피바람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티베트는 독립된 한 나라가 아니다. 1950년 중국에게 짓밟힌 이후 아직까지도 독립의 의지를 불태우며 거대 중국을 상대로 외롭게 싸우고 있는 중국의 자치주이기 때문이다. 달라이 라마가 누구를 만나고, 이에 대해 중국이 항의하고 하는 일련의 뉴스들을 종종 접하게 된다. 한국전쟁으로 혼란하던 1950년 마오저뚱에 의해 침공 당한 티베트, 그리고 지금까지 '독립'만을 외치며 살아온 그들에게 국제사회는 공허한 메아리만을 내어 던지고 있을뿐이다.

 

풍부한 자원, 이국적인 풍광, 인도와의 접경 등 지정학정 요충지에다 다민족 국가인 중국으로서 티베트의 이런 움직임이 달갑지만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마오저뚱의 야욕이 불러일으킨, 50년 넘게 달구어져온 뜨거운 감자 티베트. 어느 강대국도 티베트에 대해서 쉽게 언급할 수 없고 중국의 야욕을 무너뜨릴 호기도 부릴 수 없다. 그렇게 그 야욕이 시작된, 뜨거운 불씨가 타오를 1950년대 전쟁의 시간으로 되돌아가본다. 그리고 그 속에는 감히 상상하지 못할 '사랑'의 변주곡이 들려온다.

 

'수원', 티베트인의 행색이지만 얼굴 생김새는 중국여인인 그녀가 쑤저우에 나타난다. 그녀가 담고있을 기나긴 사랑의 여정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채, 저널리스트인 '나'는 조심스레 그 시간들을 기록한다. 수원과 커쥔의 기나긴 사랑의 여정이 시작된다.

 

'커쥔과 결혼할 때 내 인생을 그이에게 모두 바치기로 서약 했어요!' - P. 39 -

 

부부가 된지 100일도 지나지 않은 수원과 커쥔, 하지만 그녀의 남편 커쥔은 결혼한지 삼주를 보내고 군의관으로 티베트와의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그리고 돌아온 한통의 사망통지서. 인민해방군의 거듭된 승전보속에 수원은 커쥔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리고 커쥔을 찾아 가리라라는 굳은 마음을 먹게 된다. 어디에 있는지도, 어떻게 찾아가는지도 모르지만 남편에 대한 수원의 사랑과 열정은 그렇게 그녀의 발걸음을 누구도 예상치못한 기나긴 시간속으로 밀어넣고 있었다.

 

그렇게 먼 길을 떠난 수원, 군대의 한 틈에 끼어 길을 떠난 수원은 줘마를 구해주게 되고 이 만남은 운명의 굴레처럼 수원이 또 다른 도움을 받게 된다. 티벳을 줘마의 납치, 수원의 부상, 티베트 인들과의 만남과 도움 그리고 그들의 문화와 삶에 대한 이해가 숨가쁘게 수원의 사랑을 향한 가시밭길 속에 그려진다. 그리고 남편 커쥔의 죽음을 둘러싼 수수께끼에 조금씩 조금씩 다가가게 되는데...

 



사실 마지막 옮긴이의 말처럼 이 작품 <풍장>은 그리 마음 편안하게 읽을 수 있지 만은 않아 보인다. 전쟁이란 소재가 사랑을 만났을때 그 애절하고 절절한 이야기는 독자들의 마음 한켠을 더 진한 감동으로 물들이곤 한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왜곡이 그 속에 담겨져 있다면 이야기는 다를 수 있다. 다분히 중국인의 시선을 통해 바라본 침략의 역사가 '해방'이라는 수식으로 포장되어 있기에 그렇다는 말이다.

 

'전쟁은 공부할 시간도, 적응할 기회도 주지 않네. 사람들간에 사랑과 증오를 확실히 구분 지어 주지. ...무슨일이 일어나든 한가지만 명심하도록. 살아있는것 자체가 승리라는 걸.' - P. 40 -

 

한일병합 100년이 되는 올 해, 이 작품속에 들어있는 '해방'이란 중국인들의 심리는 더욱 우리의 심기를 거스르게 만든다. 갑작스럽게 집과 터전을 잃고, 가족의 죽음을 겪고, 점령군처럼 등장한 중국인들이 티베트인들에게 어떻게 해방의 역사를, 달콤한 미래를 약속할 수 있단 말인가? 전쟁! 왕량이 했던 말처럼 전쟁은 살아있는것 자체가 승리이다. 공부할 시간도 적응할 시간도 없이 오로지 죽고 죽이는, 서로간의 증오만 일깨우는 시간이 바로 전쟁이란 이름일 것이다. 그릇된 역사속에 시작된 사랑의 변주곡은 그래서 조금은 바랜 색깔처럼 감미롭지만은 않아보인다.

 

그래도 다행히 남편의 죽음을 찾아 떠나는, 우리 시대에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아내의 지고지순한 사랑은 여전히 눈에 띈다. 그리고 커쥔의 죽음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도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녀의 사랑이야기속에 담긴 또 하나의 사랑, 줘마와 톈안먼의 애잔한 사랑도 또 다른 감동을 전해준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티베트라는 잊혀진 나라에 대한 문화와 풍습이 그 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는 사실이다. 짬바, 방목, 종교, 창, 일처다부제, 풍장 등 다양하고 신비롭기만한 티베트 유목민들의 풍습과 삶이 색다른 인상으로 다가온다.

 

다소 아쉬운 부분이 눈에 띄기도 하지만 '사랑'이라는 테마속에 그려지는 색다른 즐거움과 감동이 담긴 이야기는 독자들을 신선한 자극속에 몰아넣기에 충분해 보인다. 쉽게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다반사처럼 되어버린 우리 현실속에서 수원의 이 숭고한 사랑을 찾은 여정은 깊이 있는 감동을 전해준다. <풍장>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만큼 순수한 문학의 향기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옴마니밧메훔! 을 외치는 티베트에서도 이런 사랑의 메세지가 자유와 독립이라는 이름과 함께 짙게 피어오르기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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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틸다
빅토르 로다토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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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른이 된다는 것'은 차디찬 겨울밤 눈보라속을 걸어가는 일이 아닐까? 누구나 봄이 올 것을 알지만 지금 걷고 있는 그 길위에서는 언제나 외롭고 차갑고 힘겹다. 그리고 그 기나긴 겨울의 끝자락, 자신이 걸어온 길 위에 눈이 녹고, 새싹이 돋아나고, 봄이라는 말처럼 따사로운 햇살이 자신을 비출때 그 길었던 시간들이 자신의 삶에 얼마나 필요한 시간이었고, 오랫동안 간직될 소중한 시기였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렇게 차가운 겨울밤 눈보라속을 걷는 한 명의 소녀와 마주한다. 그녀의 이름은 '마틸다' 이다.

 

'나는 끔찍해지고 싶어. 끔찍한 짓을 하고 싶어!'

열 세살 소녀, 그녀의 이름은 마틸다. 세상에 소리치고 반항하고픈 나이, 열 세살. 굳이 그것이 아니라해도 마틸다의 일상이 그리 평범해 보이지는 않는다. 1년전 언니 헬렌이 사고로 죽고 그 충격은 그녀를 비롯한 가족 모두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다. 그녀의 엄마는 가족들 돌보기는 커녕 자기 자신조차 돌볼 수 없고, 마틸다 역시 엄마와 아빠의 관심을 필요로하는 철부지 소녀에 불과하다. 언니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풀려고 하는 마틸다. 그리고 그 속에 묻혀있던 진실이 고개를 든다.

 

마틸다의 목소리가 들려주는 소녀의 성장이야기!

예쁘고 똑똑하고 모두에게 인기 많았던 언니 헬렌, 모두의 관심은 그런 그녀에게 집중된다. 관심받는 언니 대신 마틸다는 철저히 주변인의 모습이다. 철저하게 혼자이고 표지에서 보이는 찻잔속 모습처럼 외롭다. 자신도 관심 받길 원하고 사랑 받길 기대한다. 하지만... 언니의 1주기가 다가오고 의문스런 헬렌의 죽음에 대해 파고드는 마틸다. 마틸다의 목소리를 따라가던 독자들은 어느 시점에서 이 소녀의 목소리에 '당했다!'는 한숨을 내어 쉴지도 모를 일이다.

 

독자와 대화를 나누듯이 진행되는 <마틸다>는 어른이 되어가는 한 소녀와의 끝없는 대화이다. 평범한 일상에서 모든것이 새롭게 느껴지고 일상이 새로움으로 다가오는 사춘기를 그리고 있다. 그 특별한 시간 마틸다에게 다가왔을 충격적인 사건들, 그리고 사건의 진실속에서 마틸다가 하고 싶었을 마음속에 감추어진 이야기들을 꺼내어 놓는다. 수많은 관계를 갖게 되고 인식하며, 또 수많은 이별과 만남을 이어가는 사춘기, 마틸다의 그 비밀스런 이야기를 듣고나면 어느새 한층 더 커져있는 그녀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속에 놓여진 뭉클한 감동과도 마주한다.

 



 

'가족' 이라는 이름이 있다. 언제나 '사랑'과 '웃음'이란 단어가 연관검색어처럼 따라다닐듯 하지만 현실속 가족이란 이름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아 보인다. 기러기 아빠, 맞벌이 부부, 돌싱, 미혼모, 외도... 가족이란 이름 이면에 놓여진 이런 단어들이 우리 사회의 현재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불완전한 가정속에서 성장해가는 아이들은 어떨까? 마틸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사실 조금은 불안불안 하기도 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가족해체라는 말이 어울릴지, 도무지 쉽게 융화될 수 없고, '사랑'이 꽃피는 집이라는 말은 연상될 것 같지 않으면서도 끝까지 가족이라는 이름을 내려 놓을 수 없는 그 무엇을 그 속에서 발견하게 된다. 가족의 의미가 바로 그 속에 담겨져있다.  

 

마틸다에게 열세살의 시간은 하루하루가 전쟁이다. 아니 마틸다뿐만 아니라 그녀를 둘러싼 주변인 모두가 그랬을 것이다. 책속에는 유난히 전쟁에 관한 기록들이 자주 등장한다. 마틸다와 전쟁, 아니 마틸다의 전쟁. 작가는 아마도 사춘기 그녀의 시간들을 전쟁이란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들과 연관을 시킨듯 보인다. 마틸다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소녀적 감수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의 작가가 '아저씨'라는 사실을 알았을때는 더욱 놀라움을 금치 못할것이다. 엉뚱한 소녀 마틸다, 작가는 어디선가 그 소녀를 만나본 것일까?

 

'하지만 나를 지켜봐. 알았지? 내가 부탁하는 건 다만 그뿐이야. 부디 나를 지켜봐줘. 무엇이 다가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잖아. 심지어 언니라도 별 수 없어. 미래는 모든 것의 가장 큰 비밀이니까. 정말이지 서두를게 뭐람?...' - P. 336 -

 

'진정한 용서는 상대방을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미움을 선택해서 스스로를 고통속에 빠뜨린 나 자신을 용서하는 것이다.' 라는 말이 있다. <마틸다>를 내려놓으며 왠지 이 말이 떠오른다. 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용서, 혹은 그것이 아닐지라도 그 힘겨운 시간들을 거쳐가면서 그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 그것이 바로 어른이 되어가는 하나의 과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열세살 소녀의 반항과 일탈속에서 우리는 가족의 진정한 의미와 감동과 마주하게 된다.

 

오프라 윈프리는 <마틸다>를 독서 가이드까지 만들어 추천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녀가 추천하는 마틸다를 읽기 위한 여덟가지 질문을 기억하면서 이 작품을 만나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 될 것 같다.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 표지와 엉뚱 소녀가 들려주는 색다른 이야기는 가을을 맞이하는 우리에게 특별한 감동과 추억을 선물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차디찬 겨울밤 눈보라속을 무사히 헤쳐나온 그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언제까지 마틸다, 널 지켜보겠다는 약속 또한 잊지 않으면서... 그녀의 말처럼 서두를게 뭐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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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나는 타이어
이케이도 준 지음, 민경욱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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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받아들고는 '두 번' 놀라게 된다. 하나는 책의 두께에 놀라게 되고, 다른 하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그렇다. 600페이지가 넘는 작지만 무거운 이 책은 올해 만난 작품중 단연 최고를 자랑한다. 그리고 <하늘을 나는 타이어>라는 조금은 판타스틱한 제목과는 다르게 '경제 미스터리' 소설이라는 점에 다시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놀라움으로 시작한 <하늘을 나는 타이어> 이제 그 진정한 즐거움과 재미, 놀라움의 세계속으로 손가락을 옮겨본다.

 

카마쓰 도쿠로. 아버지를 이어 운송회사를 경영하던 그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회사 트레일러의 바퀴가 빠지면서 인도를 걷던 주부를 공격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경찰은 서둘러 이 사고를 정비불량이라고 결론 짓게 되고 아카마쓰의 회사는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하지만 운전자 과실도, 정비 불량도 아니라고 확신한 아카마쓰는 다른 운송회사에서도 이와 같은 사고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사고의 숨겨진 실체를 찾기위해 고군분투를 벌이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사고의 원인이 대기업 호프 자동차의 차체 결함이라는 사실을 밝혀내게 되고 거대한 바위를 상대로 작은 운송회사, 아니 한 개인의 계란치기가 시작된다.

 

'타이어 분리에 의한 보행자 사망 사고' 

2002년 일본에서 있었던 미쓰비시자동차의 대형 트럭 타이어 분리 사고로 리콜 은폐 사건이 이 작품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하늘을 나는 타이어>는 픽션을 지향하면서도 어디까지나 현실속 우리 시대의 모습이 담겨있어 더욱 관심이가고 주목받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더욱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도요타 사태, 자동차 업체들을 넘어 수많은 대기업들의 횡포가 만연된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이 이 책을 통해서 고스란히 보여지고 그에 대한 분노를 담아내고 있는 색다른 작품이다.

 



 

이 작품은 다양한 시점을 통해 사건을 바라본다. 대기업 호프 자동차, 계열사인 도쿄호프은행, 주간지 기자, 경찰, 그리고 피해자인 아카마쓰 등 이 사건을 바라보는, 입장이 전혀 다른 인물들의 시선을 따라 이야기가 전개된다. 아마도 우리 사회의 현실이 이렇지 않을까 싶다. 분명 객관적으로 바라봐도 억울하고 잘못된 일임을 알지만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이기에,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되는 줄서기에 열중하게 되는 우리 현실이 안타깝게 다가온다. 

 

종종 뉴스 메인을 차지하는 급발진 사고들, 차체 결함에 항의해 갓 구입한 자동차를 부수던 소비자의 동영상, 제품의 결함을 소비자의 부주의 쯤으로 취급하려는 거대기업들의 이런 횡포들이 우리사회에서 횡횡하고 있는게 사실이다. 얼마전 있었던 국내 모 대기업의 내부고발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사회의 시선들도 이런 정재계와 사법, 언론의 유착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자신의 이해득실을 따져 사회적 정의와는 상관없이 일방적인 줄서기가 만연하는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이 이 작품속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누군가의 한마디로 공정한 사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이 이루어질까?

 

'은행원 니시키 씨의 행방' 이라는 금융 미스터리를 통해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한 이케이도 준의 이번 작품은 '경제 미스터리'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매혹시킨다. 우리 사회의 현실적인 문제점들을 제기하고 다양한 사람들의 관계를 중요시하며 작품 활동을 해온 이케이도 준의 작품들은 일본에서 드라마로 제작되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이 작품 <하늘을 나는 타이어> 역시 드라마로 만들어져 각종 작품상을 휩쓸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드라마로도 꼭 만나고 싶은 작품...

 

'요타 사태를 예견한 화제작' 이라는 수식만으로 이 작품을 손에 든 독자들이 많을 줄 안다. 그리고 우리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한듯한 내용에 분노와 울분을 참지 못했을 줄 믿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보다 더한 한 개인의 싸움, 그 속에 숨어있는 작고 소소한 이들의 일상이 우리에게 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사회문제에 대한 접근, 그 속에서 숨가쁘게 펼쳐지는 재미와 감동! 이케이도 준이 전해주는 색다른 미스터리의 세계에 다시금 빠져든다. 무르익는 가을에 만나보면 좋을 한 권의 책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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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잉 아이 - Dying Eye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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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은 유난히도 많은 일본 미스터리 작품들과 만났던 한해 였다. 기시 유스케, 기리노 나쓰오, 미치오 슈스케, 미쓰다 신조, 와카타케 나나미, 아케노 데루하, 오리하라 이치, 슈카와 미나토.... 일본엔 미스터리 추리 소설 작가만 있는 것이 아닐텐데도 참 많은 작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기존 작가들이 일구어 놓은 탄탄한 기반과 이를 바탕으로 한 신인 작가들의 거침없는 활약, 이런 것들이 일본 미스터리의 다양성과 특별함을 일구어낸 이유일 것이다. 일본 미스터리 추리소설이 가진 최고의 강점이 바로 이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 올 여름 만난 작품속에도 그의 이름을 빼놓을 수 없다. '명탐정의 규칙'이란 작품을 통해 미스터리 추리소설의 공통된 방정식?을 독자들에게 서슴없이 펼쳐 놓았던 그의 용기와 그 속에 풀어놓은 재미에 매혹 될 수 밖에 없었던 이 작품. 그 규칙들을 깨고 자신은 새로운 길로 들어 서겠자는 작가의 다짐이자 기존 패턴을 따라가기만 하려는 신생 작가들의 자세를 바꾸고자 하는 의지가 그의 작품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어 인상깊었다. 그리고 이 가을 무렵,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이름 뒤에 <다잉 아이>라는 수식어를 새롭게 붙여보게 된다.

 

평범하기만한 일상의 어느날, 바텐더로 일하는 신스케는 퇴근길에 누군가가 휘두른 둔기로 머리를 맞고 쓰러진다.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머리에 커다란 부상을 입게된 신스케는 이 사건을 계기로 두가지 일상의 변화와 마주한다. 하나는 단기 기억상실이라는 것과 다른 하나는 과거에 자신이 일으켰던 교통사고로 한 여인이 죽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단기 기억상실이 일어난 신스케는 그때의 어떤 기억도 떠올릴 수가 없다. 정말 자신이 교통사고를 일으켰는지, 죽음을 맞이한 그여인이 도대체 누구인지...

 



신스케의 사고 이후, 그의 주변에서는 점점 의문스런 일들이 벌어진다. 레이지의 집에서 우연히 보게된 한 마네킹의 사진, 누군가를 닮아 있는 듯 묘한 느낌을 전해주는 그 마네킹은 무엇일까. 신스케와 동거중이던 나루미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지고, 자신을 습격했던 범인은 시체로 밝견되고, 신스케의 주위를 멤도는 정체 불명의 여인 루리코의 비밀스런 수수께끼, 자신이 일으켰다던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려는 신스케의 고군분투는 그렇게 일상을 뒤집어 놓은 사건과 인물들로 인해서 시작된다.

 

과거 사건에 대해 조금씩 다다를수록 전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과연 사건의 진실은 무엇이고 그의 주변을 멤도는 인물들의 정체는 무엇인지... 사건에 다가갈수록 조금씩 그의 기억을 되돌아오고 반전과 반전을 거듭하며, 등장인물들이 숨기고 있던 비밀들이 하나 둘씩 그 실체를 드러낸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필력이 돋보이는, 읽으면 읽을 수록 빠져드는, 책에서 손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그의 펜끝이 여전히녹슬지 않았음을 새삼 느끼게 만든다.

 

'그것은 마네킹 얼굴이라 여겨지지 않을 만큼 완벽했다. 그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한 여자의 얼굴이 있었다. 다른 마네킹에는 없는 생명의 기운이 감돌았다. 하지만 그것은 죽음의 기운이기도 했다. ... 이 여자는…… 날 보고 있어.'

 

'명탐정의 규칙'을 통해 도전이 없는 반복과 규칙을 꾸짖었던 히가시노 게이고, 어쩌면 이번 작품은 그만이 창조하려했던 자신의 미스터리 규칙을 답습하는지도 모르겠다. 작가가 담으려하는 사회 비판과 주제의식, 치밀한 스토리텔링, 곳곳에 숨겨놓은 복선들,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 구성, 더불어 미스터리 호러라는 장르속에 녹여놓은 공포와 긴장이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탄성을 절로 불러오게 만든다. 

 

'다시는 이렇게 쓸 수 없을 것 같다.' 이 작품을 마치고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만큼 이 작품에 쏟은 작가의 열정을 느낄 수가 있다. 인간이 가진 욕망의 그림자, 복수와 원한의 그늘을 작가는 치밀한 구성과 주제의식속에 담아낸다.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이름속에 담긴 독자들의 기대치만큼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끝없는 고민과 열정은 그 이상, 한계를 모르고 올라가야만 할 것 같다. 그리고 그런 그의 노력이 계속 되고 있음을 이 작품을 통해 느끼게 된다. 여름의 마지막 끝 자락, 히가시노 게이고! 그의 열정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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