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실종자 ㅣ 오리하라 이치의 ○○자 시리즈
오리하라 이치 지음, 김선영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오리하라 이치! 서술 트릭의 일인자, 예측할 수 없는 방향성과 곳곳에 숨겨놓은 트릭으로 독자들의 머리를 지끈하게 만들기로 유명한 그의 세번째 놈놈놈(者)시리즈와 만난다. '행방불명자', '원죄자'에 이은 이번 작품은 오리하라 이치라는 이름을 더욱 굳건히 가슴속에 각인 시키는 계기가 될 것 같다. 다행히 이 작품 이전에 '원죄자'를 미리 만나본 터라 '원죄자'의 한 인물이 이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기에 더욱 기대를 가지고, 전작과의 연관성을 찾아보는 또 하나의 재미까지 선물 받은듯 하다.
트릭을 중심으로 하는 본격 미스터리, 여행 미스터리, 그리고 서술 트릭 작품들로 그의 전작들을 크게 구분지을 수 있다고 한다. 앞의 두 유형의 작품들을 만나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서술 트릭 작품인 '者시리즈' 들과의 즐거운 만남에 어떤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듯 보인다. 특히 근래 그의 작품들이 가지는 특징은 세간의 실제 사건들을 작품의 모티브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그 대표작이 바로 '원죄자'이었고 이 작품<실종자> 또한 일본에서 일어났던 사카키바라 사건(1997년)의 소년 범죄와 소년법이 그 기조를 차지한다고 한다.
이것은 작년 가을부터 금년에 걸쳐 일어난 연쇄 실종 사건에 대한 진실이다.
숨소차 쉴 틈을 주지 않는 서술 트릭의 거장,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구키시는 사이타마 현 북동부에 위치한 인구 7만의 작은 도시이다. 이 도시에서 어느날부터 월요일이면 여자들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행방불명 되었던 한 여인의 시체가 발견된다. 기타자와 가오리라는 28세 여성 회사원. 시체 옆에는 '유다의 아들' 이란 메모가 놓여있었다. 그녀의 것으로 보이는 현금카드와 현금이 고스란히 놓여 있는 상황으로 미루어 금전을 노린 강도사건도, 성폭행이 목적인 것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연이어 사카마키 가요코라는 20세 회사원의 실종과 피묻은 손수건이 발견되고, 다다 유카리라는 19살 대학생이 또 다시 행방불명되게 된다. 그것도 월요일에 말이다. 사실 이 사건 이전에 이와 유사한 범죄가 구키시에서 일어난 적이 있었다. 15년전, 그때도 월요일이었다. 중학생, 회사원, 주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여성들이 행방불명된 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리고 15년후 현재, '유다의 아들'이란 메모가 함께 발견된 여성의 시체 근방에서 그때 사라졌던 여성들의 백골이 검은 비닐 봉투에 싸여 발견된다. 그리고 그 곁에는 '유다'라는 쪽지가 발견된다.
유다와 유다의 아들, 뭔가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사건을 논픽션 작가인 '다카미네 류이치로'가 파헤치기 시작한다. 그의 조수인 간자키 유미코와 함께. 15년전 사건의 범인은 '소년 A'라는 이름으로 세간에 알려져 있었다. 소년범죄의 경우 소년법의 보호를 받아 아이들의 신상이나 이름을 알려지지 않기에 통칭해서 '소년 A'라고 불린다고 한다. 15년전 사건의 경우 소년 A와 더불어 동네 양아치였던 시모야나기와 이발사였던 다마무라 미쓰오라는 두 인물이 용의선상에 올랐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범인은 소년 A로 밝혀졌고 사건은 일단락 되었다. 그리고 15년이 흐른 현재, 행방불명되었던 그때 그 여성들의 백골과 현재 실종사건의 여성들의 시체가 발견된 것이다.
범인은 과연 누구인가?
15년전 용의선상에 올랐던 시모야나기와 다마무라의 뒤를 쫓으며 현재의 사건과 연관이 있어 보이는 과거 사건의 진실을 찾으려는 다카미네 류이치로, 그리고 소년 A의 실체와 소년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밝히려는 간자키 유미코. 이 두 사람의 치밀하고 숨가쁜 추격이 시작된다. 이 두 주인공의 활약과 함께 <실종자>는 또 다른 시점으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간다. '아버지가 보내는 편지'를 통해 소년 A의 아버지로 보이는 인물이 들려주는 소년의 어린시절과 가정 환경, 성장 등이 또 하나의 축을 이루며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더불어 현재 사건의 범인인 '유다의 아들'이 들려주는 독백이 또 다른 중심 축을 이룬다.

월요일에 여자가 사라진다.
현재의 사건과 15년전 사건이 뒤엉키고, 과거 용의 선상에 있던 등장인물들이 끊임없이 머리를 어지럽게 하는가 하면, 소년 A의 정체와 책의 후반부 등장하는 또 다른 소년 A의 모습이 혼돈을 일으킨다. 월요일에 여자들이 사라지는 이유는 무엇이고, 1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때 그 실종자들이 백골로 발견된 이유는 무엇일까? 중간 중간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을 혼동시키는 작가의 트릭에 독자들은 또 다시 허우적되지 않을 수 없다. 서술 트릭의 달인 답게,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조금은 불공평한 작가의 트릭으로 인해, 범인을 찾아보겠다는 초반 독자들의 열의는 점점 몽롱하게 불빛만을 바라보듯 어지러워지기 시작한다.
실제 사건들을 소재로 했다는 이 작품은 '소년 범죄와 소년법 문제'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결국 말이지, 세상에는 나 같은 소년 A가 넘쳐나. 이름이 있어도 미성년이니 소년 A인 거지.' 라고 말하는 시모야나기의 말처럼, 소년 범죄에 대해 어디까지 보호해줘야 하고 그 피해자들은 어떻게 해야하는지 우리 사회의 고민을 이 작품은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우리에게도 이런 소년범죄 문제에 대한 처벌과 처리는 상당한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중고등 학생들의 묻지마 살인에서 성폭력,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폭력 등 피해자 뿐만 아니라 피의자들에 대한 처리문제에도 상당한 고민을 갖고 있는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만약 네가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제 자식이 살인자인 경우와 피해자인 경우, 둘중 어느 쪽이 낫겠느냐. 부모에게는 더없이 가혹한 선택이지만 대개의 부모는 틀림없이 제 자식이 살인자이기보다는 차라리 피해자인 편이 낫다고 생각할 게다. ... 하지만 나는 자식이 살인자인 쪽을 고르련다. 이유는 그래, 죽어버리면 자식을 두번 다시 만날 수 없지 않느냐....' - P. 14 -
더불어 '가족' 이라는 이름 앞에 놓인 수많은 비애도 독자들의 가슴을 안타깝게 만들기도 한다. 이혼, 폭력, 성폭행, 은둔형 외톨이, 사회 부적응, 사회에 대한 서슴없는 폭력이 난무하는 우리 가족사의 현실이 가슴을 아프게 만든다. 그리고 그런 환경 속에서 상처받아야 하는 아이들의 안타까움도 귀길울이게 된다. 더불어 자식이 살인자인 쪽을 택하겠다는 아버지의 절절한 한 마디가 가슴속에 와 닿는다. 혹시라도 나에게 그런 선택이 주어진다면 어떠할까? 작지만 깊은 고민앞에 서게된다.
과연 누가 범인일까? 15년전 사건과 현재의 사건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굳이 월요일에 그녀들이 사라지는 이유는? 작가가 말하려하는 소년범죄와 소년법은 이 작품에 어떤 모티브를 제공했을까? 유다와 유다의 아들은 무슨 연관이 있을까? 그리고 '원죄자'에서 등장했던, 이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던 그는 누구일까? 수많은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내 어머니도 월요일에 사라졌어.'
다카미네 류이치로의 이 한마디가 많은 것을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많은 것을 잃게 만든다. 독자들은 여지없이 작가에게 농락당하고 만다. 교묘한 트릭과 긴장감있게 전개되는 이야기 구조는 역시 오리하라 이치!구나라는 감탄을 터져나오게 만드는데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단순한 미스터리의 재미를 넘어 사회문제에 대한 고민까지 담고있는 이 작품을 간직하고 싶다. 오리하라 이치의 '者시리즈'의 다음 작품인 '도망자'가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수없이 그에게 농락당하더라도, 그리고 계속해서 그와 머리 싸움을 해야할지라도 오랜 시간 그와 함께 하고 싶다. 서술 트릭의 거장, 오리하라 이치! 오리하라 매직에 그렇게 매혹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