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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장
신란 지음, 이영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티베트에서 불어온 거센 피바람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티베트는 독립된 한 나라가 아니다. 1950년 중국에게 짓밟힌 이후 아직까지도 독립의 의지를 불태우며 거대 중국을 상대로 외롭게 싸우고 있는 중국의 자치주이기 때문이다. 달라이 라마가 누구를 만나고, 이에 대해 중국이 항의하고 하는 일련의 뉴스들을 종종 접하게 된다. 한국전쟁으로 혼란하던 1950년 마오저뚱에 의해 침공 당한 티베트, 그리고 지금까지 '독립'만을 외치며 살아온 그들에게 국제사회는 공허한 메아리만을 내어 던지고 있을뿐이다.
풍부한 자원, 이국적인 풍광, 인도와의 접경 등 지정학정 요충지에다 다민족 국가인 중국으로서 티베트의 이런 움직임이 달갑지만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마오저뚱의 야욕이 불러일으킨, 50년 넘게 달구어져온 뜨거운 감자 티베트. 어느 강대국도 티베트에 대해서 쉽게 언급할 수 없고 중국의 야욕을 무너뜨릴 호기도 부릴 수 없다. 그렇게 그 야욕이 시작된, 뜨거운 불씨가 타오를 1950년대 전쟁의 시간으로 되돌아가본다. 그리고 그 속에는 감히 상상하지 못할 '사랑'의 변주곡이 들려온다.
'수원', 티베트인의 행색이지만 얼굴 생김새는 중국여인인 그녀가 쑤저우에 나타난다. 그녀가 담고있을 기나긴 사랑의 여정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채, 저널리스트인 '나'는 조심스레 그 시간들을 기록한다. 수원과 커쥔의 기나긴 사랑의 여정이 시작된다.
'커쥔과 결혼할 때 내 인생을 그이에게 모두 바치기로 서약 했어요!' - P. 39 -
부부가 된지 100일도 지나지 않은 수원과 커쥔, 하지만 그녀의 남편 커쥔은 결혼한지 삼주를 보내고 군의관으로 티베트와의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그리고 돌아온 한통의 사망통지서. 인민해방군의 거듭된 승전보속에 수원은 커쥔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리고 커쥔을 찾아 가리라라는 굳은 마음을 먹게 된다. 어디에 있는지도, 어떻게 찾아가는지도 모르지만 남편에 대한 수원의 사랑과 열정은 그렇게 그녀의 발걸음을 누구도 예상치못한 기나긴 시간속으로 밀어넣고 있었다.
그렇게 먼 길을 떠난 수원, 군대의 한 틈에 끼어 길을 떠난 수원은 줘마를 구해주게 되고 이 만남은 운명의 굴레처럼 수원이 또 다른 도움을 받게 된다. 티벳을 줘마의 납치, 수원의 부상, 티베트 인들과의 만남과 도움 그리고 그들의 문화와 삶에 대한 이해가 숨가쁘게 수원의 사랑을 향한 가시밭길 속에 그려진다. 그리고 남편 커쥔의 죽음을 둘러싼 수수께끼에 조금씩 조금씩 다가가게 되는데...

사실 마지막 옮긴이의 말처럼 이 작품 <풍장>은 그리 마음 편안하게 읽을 수 있지 만은 않아 보인다. 전쟁이란 소재가 사랑을 만났을때 그 애절하고 절절한 이야기는 독자들의 마음 한켠을 더 진한 감동으로 물들이곤 한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왜곡이 그 속에 담겨져 있다면 이야기는 다를 수 있다. 다분히 중국인의 시선을 통해 바라본 침략의 역사가 '해방'이라는 수식으로 포장되어 있기에 그렇다는 말이다.
'전쟁은 공부할 시간도, 적응할 기회도 주지 않네. 사람들간에 사랑과 증오를 확실히 구분 지어 주지. ...무슨일이 일어나든 한가지만 명심하도록. 살아있는것 자체가 승리라는 걸.' - P. 40 -
한일병합 100년이 되는 올 해, 이 작품속에 들어있는 '해방'이란 중국인들의 심리는 더욱 우리의 심기를 거스르게 만든다. 갑작스럽게 집과 터전을 잃고, 가족의 죽음을 겪고, 점령군처럼 등장한 중국인들이 티베트인들에게 어떻게 해방의 역사를, 달콤한 미래를 약속할 수 있단 말인가? 전쟁! 왕량이 했던 말처럼 전쟁은 살아있는것 자체가 승리이다. 공부할 시간도 적응할 시간도 없이 오로지 죽고 죽이는, 서로간의 증오만 일깨우는 시간이 바로 전쟁이란 이름일 것이다. 그릇된 역사속에 시작된 사랑의 변주곡은 그래서 조금은 바랜 색깔처럼 감미롭지만은 않아보인다.
그래도 다행히 남편의 죽음을 찾아 떠나는, 우리 시대에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아내의 지고지순한 사랑은 여전히 눈에 띈다. 그리고 커쥔의 죽음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도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녀의 사랑이야기속에 담긴 또 하나의 사랑, 줘마와 톈안먼의 애잔한 사랑도 또 다른 감동을 전해준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티베트라는 잊혀진 나라에 대한 문화와 풍습이 그 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는 사실이다. 짬바, 방목, 종교, 창, 일처다부제, 풍장 등 다양하고 신비롭기만한 티베트 유목민들의 풍습과 삶이 색다른 인상으로 다가온다.
다소 아쉬운 부분이 눈에 띄기도 하지만 '사랑'이라는 테마속에 그려지는 색다른 즐거움과 감동이 담긴 이야기는 독자들을 신선한 자극속에 몰아넣기에 충분해 보인다. 쉽게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다반사처럼 되어버린 우리 현실속에서 수원의 이 숭고한 사랑을 찾은 여정은 깊이 있는 감동을 전해준다. <풍장>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만큼 순수한 문학의 향기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옴마니밧메훔! 을 외치는 티베트에서도 이런 사랑의 메세지가 자유와 독립이라는 이름과 함께 짙게 피어오르기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