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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틸다
빅토르 로다토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어른이 된다는 것'은 차디찬 겨울밤 눈보라속을 걸어가는 일이 아닐까? 누구나 봄이 올 것을 알지만 지금 걷고 있는 그 길위에서는 언제나 외롭고 차갑고 힘겹다. 그리고 그 기나긴 겨울의 끝자락, 자신이 걸어온 길 위에 눈이 녹고, 새싹이 돋아나고, 봄이라는 말처럼 따사로운 햇살이 자신을 비출때 그 길었던 시간들이 자신의 삶에 얼마나 필요한 시간이었고, 오랫동안 간직될 소중한 시기였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렇게 차가운 겨울밤 눈보라속을 걷는 한 명의 소녀와 마주한다. 그녀의 이름은 '마틸다' 이다.
'나는 끔찍해지고 싶어. 끔찍한 짓을 하고 싶어!'
열 세살 소녀, 그녀의 이름은 마틸다. 세상에 소리치고 반항하고픈 나이, 열 세살. 굳이 그것이 아니라해도 마틸다의 일상이 그리 평범해 보이지는 않는다. 1년전 언니 헬렌이 사고로 죽고 그 충격은 그녀를 비롯한 가족 모두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다. 그녀의 엄마는 가족들 돌보기는 커녕 자기 자신조차 돌볼 수 없고, 마틸다 역시 엄마와 아빠의 관심을 필요로하는 철부지 소녀에 불과하다. 언니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풀려고 하는 마틸다. 그리고 그 속에 묻혀있던 진실이 고개를 든다.
마틸다의 목소리가 들려주는 소녀의 성장이야기!
예쁘고 똑똑하고 모두에게 인기 많았던 언니 헬렌, 모두의 관심은 그런 그녀에게 집중된다. 관심받는 언니 대신 마틸다는 철저히 주변인의 모습이다. 철저하게 혼자이고 표지에서 보이는 찻잔속 모습처럼 외롭다. 자신도 관심 받길 원하고 사랑 받길 기대한다. 하지만... 언니의 1주기가 다가오고 의문스런 헬렌의 죽음에 대해 파고드는 마틸다. 마틸다의 목소리를 따라가던 독자들은 어느 시점에서 이 소녀의 목소리에 '당했다!'는 한숨을 내어 쉴지도 모를 일이다.
독자와 대화를 나누듯이 진행되는 <마틸다>는 어른이 되어가는 한 소녀와의 끝없는 대화이다. 평범한 일상에서 모든것이 새롭게 느껴지고 일상이 새로움으로 다가오는 사춘기를 그리고 있다. 그 특별한 시간 마틸다에게 다가왔을 충격적인 사건들, 그리고 사건의 진실속에서 마틸다가 하고 싶었을 마음속에 감추어진 이야기들을 꺼내어 놓는다. 수많은 관계를 갖게 되고 인식하며, 또 수많은 이별과 만남을 이어가는 사춘기, 마틸다의 그 비밀스런 이야기를 듣고나면 어느새 한층 더 커져있는 그녀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속에 놓여진 뭉클한 감동과도 마주한다.

'가족' 이라는 이름이 있다. 언제나 '사랑'과 '웃음'이란 단어가 연관검색어처럼 따라다닐듯 하지만 현실속 가족이란 이름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아 보인다. 기러기 아빠, 맞벌이 부부, 돌싱, 미혼모, 외도... 가족이란 이름 이면에 놓여진 이런 단어들이 우리 사회의 현재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불완전한 가정속에서 성장해가는 아이들은 어떨까? 마틸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사실 조금은 불안불안 하기도 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가족해체라는 말이 어울릴지, 도무지 쉽게 융화될 수 없고, '사랑'이 꽃피는 집이라는 말은 연상될 것 같지 않으면서도 끝까지 가족이라는 이름을 내려 놓을 수 없는 그 무엇을 그 속에서 발견하게 된다. 가족의 의미가 바로 그 속에 담겨져있다.
마틸다에게 열세살의 시간은 하루하루가 전쟁이다. 아니 마틸다뿐만 아니라 그녀를 둘러싼 주변인 모두가 그랬을 것이다. 책속에는 유난히 전쟁에 관한 기록들이 자주 등장한다. 마틸다와 전쟁, 아니 마틸다의 전쟁. 작가는 아마도 사춘기 그녀의 시간들을 전쟁이란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들과 연관을 시킨듯 보인다. 마틸다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소녀적 감수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의 작가가 '아저씨'라는 사실을 알았을때는 더욱 놀라움을 금치 못할것이다. 엉뚱한 소녀 마틸다, 작가는 어디선가 그 소녀를 만나본 것일까?
'하지만 나를 지켜봐. 알았지? 내가 부탁하는 건 다만 그뿐이야. 부디 나를 지켜봐줘. 무엇이 다가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잖아. 심지어 언니라도 별 수 없어. 미래는 모든 것의 가장 큰 비밀이니까. 정말이지 서두를게 뭐람?...' - P. 336 -
'진정한 용서는 상대방을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미움을 선택해서 스스로를 고통속에 빠뜨린 나 자신을 용서하는 것이다.' 라는 말이 있다. <마틸다>를 내려놓으며 왠지 이 말이 떠오른다. 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용서, 혹은 그것이 아닐지라도 그 힘겨운 시간들을 거쳐가면서 그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 그것이 바로 어른이 되어가는 하나의 과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열세살 소녀의 반항과 일탈속에서 우리는 가족의 진정한 의미와 감동과 마주하게 된다.
오프라 윈프리는 <마틸다>를 독서 가이드까지 만들어 추천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녀가 추천하는 마틸다를 읽기 위한 여덟가지 질문을 기억하면서 이 작품을 만나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 될 것 같다.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 표지와 엉뚱 소녀가 들려주는 색다른 이야기는 가을을 맞이하는 우리에게 특별한 감동과 추억을 선물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차디찬 겨울밤 눈보라속을 무사히 헤쳐나온 그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언제까지 마틸다, 널 지켜보겠다는 약속 또한 잊지 않으면서... 그녀의 말처럼 서두를게 뭐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