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발레리 통 쿠옹 지음, 권윤진 옮김 / 비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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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떠 바라보아요 그댄 정말 가셨나요. 단 한번 보내준 그대 눈빛은 날 사랑했나요. 또 다른 사랑이 와도 이젠 쉽게 허락되진 않아. 견디기 힘들어 운명같은 우연을 기다려요' 글 속에 멜로디를 넣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드라마에서 사랑을 받기도 했던 이승철의 '인연'의 가삿말이다. '운명같은 우연' 우연이 반복되면 그것은 운명이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무수한 만남과 헤어짐, 생각지도 못했던 짧은 순간이 가져오는 삶의 변화, 오늘도 우리는 그런 우연과 운명속을 거닌다.

 

우리의 삶은 하루하루가 의사결정의 연속이다. 아마도 그 순간은 기회, 혹은 좌절이라는 결과로 나타나게 된다. 하지만 의도하지 않게 그런 의사결정의 순간을 벗어난 시간과 종종 맞닥드리게 된다. 우리는 그것을 운명, 혹은 인연이라 부른다. 사랑이 내재된 운명이라면 인연일 것이고, 특별한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면 그것은 운명일 것이다. 하나의 사건을 통해 <운명>이란 이름과 마주한 이들의 이야기가 여기에 있다. 그들의 모습속에서, 책은 내려놓으며 당신은 그 '운명'의 어떤 측면을 바라보게 될까? 도미노처럼 이어지는 인연의 끈, 그들의 운명을 어떤 모습일까?

 

'행복은 사람을 아름답게 만든다. 나는 사랑을 했고, 사랑을 받았다. 소박하고 수수하고 아름다운 삶이었다.' - P. 98 -

 

<운명>은 다양한 계층의 남녀 네명을 주인공으로 한다. 아들 폴로를 키우는 싱글맘 마릴루, 성공한 건축가 알베르 푄, 유능한 여성 변호사 프뤼당스, 존경받는 교수 톰 조드. 최선을 다해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는 그들이지만 보이지 않는 상처들을 가슴에 간직하고 있다. 중요한 서류를 상사에게 전해야하지만 교통정체와 지하철 인사사고로 인해 늦어져 조급해하는 마릴루, 일흔일곱의 알베르 푄은 암이라는 판정을 받게 되고, 프뤼당스는 흑인이라는 점때문에 과거에도 현재에도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톰은 연인 리비에게 청혼을 하려하지만 자전거 사고를 당하게 되는데...

 

늦게 도착한 마릴루는 운명처럼 회사에서 발생한 폭파사건에서 유일하게 생존자가 되고, 알베르 푄은 마지막 발걸음에서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듣게 된다. 프뤼당스는 클라라의 애완견을 산책 시키다 톰과 부딛치고 현재 자신이 맡은 의뢰인에게 상처를 받게 된다. 톰은 자전거 사고로 인해 연인인 리비의 실체를 보게되고 병원을 찾았다가 또 다른 운명의 장난과 마주하게 된다. 현실속 네 남녀, 그들의 가슴속에 숨겨져 있던 상처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든다. 그리고 하나의 사건을 통해 그들은 마주치고 운명의 굴레속에서 또 다른 희망과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도미노처럼 이어진 그들의 인연은 운명이란 이름으로 하나둘 제자리를 찾아간다.

 



 

최인호 작가의 '인연'이란 작품속에서 작가는 인연을 이렇게 말한다. '인연은 생의 강을 건너게 하는 징검다리'라고... '인연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라는 질문과 함께 '그건 우리가 지금 시간의 강을 건너며 우리의 어깨에 지고 가는 사람들의 무게가 아닐까.' 라고 말한다. 마릴루의 어깨위 무게는 아마도 폴로와 그녀를 떠나간 폴로의 아빠일 것이다. 아빠의 죽음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그렇게 흘러온 사이 폴로는 어느새 자신의 상처를 감싸줄 정도로 성장했음을 느끼는 마릴루. 알베르 푄에게 어깨의 짐은 바로 그의 가족들이다. 사랑받지 못하고 상처로 가득한 그의 성장 과정, 하지만 모든걸 내려놓고 용서하려 하지만 또 다른 진실을 알고 더 의미있는 일을 찾다가 또다른 운명과 마주하게 된다.

 

톰과 프뤼당스 또한 이런 자신들이 짊어진 어깨의 짐, 그 무게를 내려놓거나 인식하면서 특별한 인연과 운명을 맞닥드리게 된다. 단순한 작은 일들이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꾼다. 작은 사고로, 교통정체로 늦어서, 두드러기가 난 친구 때문에... 병원을 찾은 이들은 그 속에서 인연처럼 또 다른 운명과 마주한다. 그들 네 사람의 운명을 뒤바꾼 또 한 사람이 있다. 어쩌면 그가 이 아름다운 인연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마릴루는 그들사이에서 벌어진 작은 사건, 운명의 일들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세상도 가끔 딸꾹질을 하는게 아닐까요? 어떤 식으로 흘러갈거라 정해져 있는데, 무언가가 혹은 누군가가 최후의 순간에 계획을 바꾸기로 결심한 거죠.' - P. 244 -

 

'우리는 상처를 바탕으로 성장한다. 우리의 상처와 고통이 성숙하도록 해야 한다. 상처와 고통이 우리를 완성된 존재로, 혹은 완성될 준비가 된 존재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통은 피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고통에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저자인 발레리 통 쿠옹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자신이 가져온 상처와 고통으로 인해서 좌절하지 말라고, 좌절이 아닌 기회와 또다른 운명이란 행운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인연, 운명, 행운, 이 말들은 모두 닮아있는듯 느껴진다. 쉽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끈을 놓아 버리지 않는다면 분명 언젠가 이런 기분 좋은 말들이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할 것임을 믿는다.

 

<운명>은 현재 영화로도 제작되고 있다고 하니 너무 기대가 된다. 어느때보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는 계절에 더욱 어울릴 듯한 작품이다. 퍼즐을 끼어맞추듯 등장인물과 사건들이 맞물리지만 어색함보다는 경쾌함과 산뜻한 느낌을 전해준다. 운명같은 우연, 그것은 아마도 땀흘리고, 상처를 이겨내는 이들에게 기회처럼 다가올 것이다. 잠시 자신을 둘러보자. 지금 자신이 어깨에 지고 무거움이 무엇인지 바라보자. 너무 아파 무겁고 힘겹더라도 운명같은 우연을 믿고 기대하며, 살아갈 힘을 이 작품을 통해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운명같은 행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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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산드라의 거울 2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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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기 직전, 천사는 손가락으로 아기의 입술을 누르고서 이렇게 속삭인다. [너의 전생들을 모두 잊어버리렴. 그래야 그 기억이 이 생에서 너를 번거롭게 하지 않는단다] 갓난 아기의 입술 위에 인중이 찍힌 것은 이 때문이다.' - 카발라 -

 

연말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연례 행사가 있다. 올해 최고의 작가, 최고의 작품을 뽑는 일인데 지금 서점과와 인터넷 상에서 그 작업이 한창 진행중이다. 이 연례 행사에서 거의 빼어놓지 않고 주목받는 작가가 있다. 그가 바로 '베르나르 베르베르'이다. 한국을 자주 방문하는 작가중 한 명이기도 한 그는 언제 부터인가 올해의 책과 작가에 이름을 올리지 않는때가 없을 정도로 터줏대감이 되어버렸다. '개미', '뇌', '파라다이스', '신' 등 주옥같은 그의 상상과 열정이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어느새 그를 국민작가의 반열에 올려놓기에 이른다.

 

그리고 2010년의 마지막 문턱에서 <카산드라의 거울>을 마주한다. 독특한 상상, 미래에 대한 그의 안목을 바라볼 수 있는 이 작품은 또 어떤 즐거움과 감동을 전해줄까? 이야기는 고대 신화속에서 모티브를 찾는다. 기원전 1300년경,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의 딸이었던 카산드라! 자신을 숭배하던 신전에 내려온 아폴론 신은 카산드라를 보게되고 아이에게 미래를 보는 예지능력을 선물하게 된다. 카산드라가 성인이 되고 아폴론 신전의 사제가 된 그녀, 아폴론 신은 그녀에게 구애를 하지만 그녀는 거절하고 만다. 아폴론 신은 그녀에게 저주를 내리게 되는데, 그 저주는 그녀의 말을 세상사람 그 누구도 믿지 않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현재, 고대 카산드라와 동명이인인 카산드라 카젠버그! 17세 소녀인 그녀는 테러로 부모를 잃고 고아 기숙 학교에서 생활한다. 학교에서 사고를 잃으켜 교장에게 불려간 그녀, 필리프 파파다키스 교장은 그녀에게 작은 소포를 전해주고 그녀를 겁탈하려 하지만 카산드라는 그의 귀를 물어 위기를 모면한다. 그리고 그녀는 쫓기는 신세로 전락한다. 외톨이가 되어버린 그녀,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위기에 처한 그녀를 구해주는 금발 거한, 그리고 그와 함께 시립 쓰레기 하치장에서 지내는 3명의 동료들! 카산드라는 그들과 함께 미래를 구하기 위한 발걸음을 내딛는다.

 



 

그녀를 구해준 금발거한은 오를랑도, 외인부대원이었던 그는 그들 무리에서 사냥을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요리와 바느질을 맡고 있는 건 에로배우 출신 에스메랄다, 모든 분야의 전문 기술자인 동양인 , 세네갈 사람인 페트나는 의사와 정신 분석가, 약초 전문가의 역할을 맡고 있다. 그들은 남작, 공작부인, 후작, 자작 등 자신들끼리 작위를 부여하고 살아간다. 소외되고, 쫓기고 도시에서 추방된 그들과 카산드라는 특별한 미래를 만들어가게 된다.

 

신화속 카산드라와 같이 미래를 볼 수 있는 예지능력을 가진 그녀!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그녀이지만 그녀의 과거는 알지 못한다. 그의 부모가 누구였으며 어떤 인물들이었고 그녀의 오빠, 다니엘과 그가 만든 5초후 생존가능성을 보여주는 시계 프로바빌리스의 비밀은 무엇인지 하나하나 찾아 나선다. EFAP 화학공장 폭발 사고를 계기로 '시쓰장' 동료들의 믿음을 얻게된 카산드라는 암울한 미래를 자신들의 손으로 조금씩 변화시켜 나가기 시작한다. 자신의 과거를 찾고 자신이 예견한 미래를 변화시키는 거대한 임무가 그녀와 그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카산드라의 거울>을 손에 쥐고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바로 기존 작품들에서는 찾기 힘든 종이의 재질과 컬러풀한 디자인이다. 한국어 판에만 담겨져 있다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만화가인 홍작가의 그림들은 작품속 이야기의 흐름과 캐릭터들의 모습을 세련되고 깔끔하게 그려내어 책의 가독성과 몰입을 도와주기에 충분하다. 만화적이면서도 상황과 캐릭터들의 심리를 적절히 묘사한 일러스트의 매력이 <카산드라의 거울>에서 꼽을 수 있는 특별함의 첫번째이다.

 

'김예빈'이란 인물도 빼놓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책의 출간 전부터 한국인의 등장이라고 해서 관심을 받기도 했는데, 사실 그는 한국인이 아닌 평양 태생의 탈북자이다. 그를 성룡이라 묘사한 부분이라던지, 이름만으로는 여성으로 착각할 수도 있는 이름의 선택이라던지, 이것은 아마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한국에 대한 인식 부족은 아닐지 조심스럽게 생각해보게 된다. 어쨌든 소설의 중심에 선 동양계 조연의 활약은 <카산드라의 거울>의 특별함이 아닐 수 없다.

 



 

마지막으로 주목할 점은 작가의 현실 인식이다. 오를랑도의 말 속에서 그것을 찾을 수 있다. 시립 쓰레기 하치장의 버려진 물총 하나를 보고, 비인간적으로 노예처럼 착취당하고 학대 당하는 중국 어린이들을 말하기도 하고, 버려진 플라스틱 잡동사니 때문에 프랑스가 중국에 지게되는 빚을 이야기한다. 세계 무역의 불균형이랄까 이런 철학이 그의 말속에 담겨진 것이다. 티베트의 침략, 북한을 비롯한 잔인한 독재자들에 대한 중국의 지지에 대응하지 못하는 무책임한 현실에 대한 비판이 그의 말속에 드러난다. 작가의 이런 현실 인식은 곳곳에서 드러나는데, 단순히 미래에 대한 제시만이 아니라 현재를 바라보는 눈이 그의 작품속에 담겨진다.

 

19세기 프랑스의 소설가인 '쥘 베른'과 비교되기도 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그것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미래를 예견하고 상상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측면에서는 그와 비슷하기도 하지만.... 쥘 베른의 시대에는 과학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는 믿음이 주를 이룬 시기였다고, 그래서 과학자들이 인류를 구원할 구원자라 여겨졌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말이다. 이 말은 자신의 작품속에서는 단순한 과학을 넘어 과학이 가져야할 도덕과 원칙, 환경보호와 같은 인류의 문제들까지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와는 조금 다르다는 언급을 하고 있는듯 싶다.

 

'우리는 미래를 볼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마도 볼 수 없다 일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미래를 만들겠다며, 그걸 막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 2권, P. 454 -

 

베르나르 베르베르, 우리는 그를 천재라고 쉽게 부른다. 단순히 미래를 예측하고 거침없는 상상을 이야기해서가 아니라, 그 속에 단순히 과학을 넘어서는 도덕과 원칙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거침없는 상상뒤에 그것을 뛰어넘는 비판과 철학! 그것이 바로 이 작가가 사랑받는 이유가 아닐까? 암울한 미래를 그리지만 그는 그 미래를 그렇게만 내려려 둘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바꾸고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맹목적인 과학이 아닌 인간적이고 따스한 과학과 나름의 철학을 내어놓는다.

 

<카산드라의 거울>을 읽은 독자들이라면 이 책속에 등장한 작가의 숨겨진 다른 작품을 찾았는지 묻고 싶다. '표지 중앙에는 파란색 나무 한그루가 우뚝 서있다', [나무]가 이 작품속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책이다. 항상 새로운 것을 시도 하려하는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작가의 상상속에서 우리가 걸어갈 길을 보고, 우리가 만들고 꿈꾸어갈 미래를 생각해본다. 작가의 독특한 철학과 상상력이 만나 창조된 특별하고 매력적인 이야기에 이 차가운 겨울이 그렇게 익어간다.

 

'노인이 죽기 직전, 천사는 그의 이마에 손가락을 대고는 이렇게 말한다. [이 지나간 삶을 잘 기억해 두세요. 다음번 삶을 위한 교훈이 될 수 있게끔.] - 카산드라 카젠버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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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산드라의 거울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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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해외 문학 작품들의 대다수는 미국과 일본에 편중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름만들어도 가슴을 설레게 하는 미국, 일본의 유명 작가들과는 달리, 몇몇 낯익은 작가들의 이름을 제외하고는 유럽이나 제3세계 작가들의 작품을 만나기란 쉽지 않을 뿐더러 아직 국내 독자들의 시선은 좁은 폭으로 한정되어 있기도 하다. 하지만 '베르나르 베르베르'라는 이름은 조금 다르다. 조금은 독특한 그의 이름 뿐만아니라, 그 제목만으로도 열광적인 사랑과 반응을 받고 있는 작품들이 즐비할 뿐더러, 얼마전부터는 국내 독자들을 찾는 횟수로 늘어 이제 '국민 작가'라는 평을 듣기도 하는 이름이 바로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이기 때문이다.

 

2007년으로 기억되는데.... 그 해에도 베르나르는 우리나라를 어김없이 찾아왔다. 그리고 인터넷 상으로 그와 주고받는 대화의 시간을 갖게 되었는데, 그때 내가 했던 작은 질문이 선정되기도 해서 개인적으로 너무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기도 했다. 그때 인상적인 또 다른 질문중에 이런 질문이 있었다. 어떤 작가가 되고 싶으냐?는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우선 나는 다양한 것을 쓰고자 애씁니다. ... 나는 항상 변신을 시도하고 또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합니다. 독자들을 재미있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권태로워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나는 문학의 모든 표현기법들을 건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라고 그는 답한다. 작품의 다양성을, 독자들을 위한 재미를 위한 그의 노력, 3년이란 시간이 지난 오늘 그의 그런 신념과 노력의 결과물이 우리의 손에 놓여있다.

 

카산드라 카젠버그, 17세 소녀를 통해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미래를 이야기한다. 이번에 그가 쏟아내는 미래의 이야기는 어떤 모습일까? 상상의 테러리스트! 라고 말해도 좋을까? 그의 작품이 가지는 매력을 손에 꼽으라면 가장 먼저 내어놓는 이야기가 바로 '상상, 그 이상의 가치'(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 ^^)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카산드라의 거울> 은 바로 그런 그의 상상이 결집 된, 기존 작품들과는 또 다른 느낌의 이 작품은 천재작가라 불리는 그의 이름을 다시한번 각인 시키는 좋은 계기가 될 것 같다.

 



 

'카산드라! 넌 천재야, 아니면 괴물이야?'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의 딸, 카산드라! 지금으로 부터 약 3천년전 이야기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니 사실 이야기는 카산드라의 오빠 다니엘과 그가 만든 '프로바빌리스'라는 손목시계를 첫 장면으로 연출된다. 하지만 카산드라가 가진 비밀을 풀어놓기 위해서는 이 고대 신화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아폴론 신의 사랑을 받게 되어 그로부터 미래를 보는 예지능력을 선물로 받게 된 카산드라! 하지만 성인이 된 카산드라는 아폴론 신의 구애를 거절하게 되고 아폴론 신은 그녀에게 두번째 선물을 주게 된다. 카산드라의 말을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라는 저주를 말이다.

 

현재의 카산드라는 한 사내 앞에 서있다. 필리프 파파다키스 교장, 그는 그녀에게 과거 카산드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현재의 그녀도 별반 다르지 않음을 인식시키려고 한다. 그리고는 누군가에게서 온 소포 꾸러미 하나는 그녀에게 전한다. 검은 가죽띠가 달린 금빛의 손목시계, 5초후 사망확률이라 쓰여진 조금만 액정화면을 가진 손목시계가 바로 그것이다. 교장은 그녀를 겁탈하려하지만 그녀는 그의 귀를 깨물어버리고 그곳에서 도망친다. 이롱델 학교, 고아들을 위한 아동학교를 그렇게 도망친 카산드라는 경찰들을 피해가며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속에 발길을 내딛게 된다.

 

'여기는 정글이야. 이 사람들은 현대의 야만인들이고. 하지만 이들과는 통할 수 있을 것 같아!'

 

파리에서 북쪽을 몇킬로 떨어진 미지의 정글과고 같은 곳에서 위험에 처했던 카산드라는 뚱뚱한 금발 거한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하게 되고 그를 따라 도착한 그들의 터전, 시립 쓰레기 하치장(시쓰장)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그녀를 구해준 금발거한은 오를랑도, 외인부대원이었던 그는 그들 무리에서 사냥을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요리와 바느질을 맡고 있는 건 에로배우 출신 에스메랄다, 모든 분야의 전문 기술자인 동양인 , 세네갈 사람인 페트나는 의사와 정신 분석가, 약초 전문가의 역할을 맡고 있다. 그들은 남작, 공작부인, 후작, 자작 등 자신들끼리 작위를 부여하고 살아간다. 소외되고, 쫓기고 도시에서 추방된 그들과 카산드라는 특별한 미래를 만들어가게 된다.

 

산드라의 비밀!

카산드라 카젠버그, 그녀는 누구일까? 고대 신화속 아폴론의 저주처럼 그녀는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꿈결처럼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예지력이 있는 그녀이지만 그 누구도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다. 어떻게 그녀는 그런 능력을 갖게 된 것일까? 그녀는 또 누구인가? 테러로 인해 죽음을 당한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떤 분들이었으며, 그녀에게 프로바빌리스(5초후 생존가능성을 보여주는 시계)를 보낸 오빠는 어떤 비밀을 가지고 있고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무엇보다, 카산드라 그녀는 누구인가? 어떤 존재인가?

 



 

수많은 의문속에 카산드라가 가진 예지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어렵사리 '시쓰장' 동료들과 호흡을 맞추게 된 카산드라는 그들을 통해 자신이 바라본 미래의 테러를 막고 사람들을 구하게 된다. 더불어 동양인 김예빈과 함께 자신의 가족, 자신이 잊어버린 과거와 비밀을 하나하나 찾아 나서게 된다. 암울한 미래, 미래를 변화시켜보려는 한 소녀와 네명의 아나키스트들의 거침없는 발걸음! 누구도 예측 할 수 없었던 비밀과 미래의 모습에 독자들은 다시한번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천재성에 감탄사를 연발하게 될 것이다.

 

<카산드라의 거울>에서 특이할만한 점은 바로 '김예빈'이란 동양인의 등장일 것이다. 책의 소개를 통해 한국인이 베르나르의 작품속에 등장한다고 해서 기대를 많이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한국인이 아닌 탈북자이면서 프랑스인의 모습이다. 한국을 자주 방문한 그이지만 한국에 대한 인식은 어쩌면 상당히 낮은 것으로 인식된다. 탈북자인 그를 '성룡'으로 묘사하는 부분도 그렇고, 남자인 그를 여자 이름처럼 '예빈'이라고 했다는 점 등에서 그런 느낌을 갖게 된다. 그의 한국 사랑을 느낄 수 있어 즐겁기도 하지만 약간은 가벼워 보이는 한국에 대한 인식이 아쉽기도 하다.

 

'사랑, 그것은 항상 미래예요. ... 하지만 언제나 실망만을 맛볼 뿐이죠. 아니면 더 큰 비극을 맛보든가요. 하지만 설탕을 먹는건 달라요. 그건 완전한 현재죠. 나는 미래보다는 현재가 좋아요. 미래 ... 그것은 언제나 제멋대로니까' - 1권, P. 116 -

 

베르나르 베르베르, 그가 그리는 미래의 모습은 어쩌면 조금은 암울하다. 하지만 그가 바라보는 미래는 그 모습과는 조금 다르게 그려진다. 바로 희망과 의지가 그 미래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래를 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의 대답을 '볼 수 없다'라고 그는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미래를 만들겠다면 그걸 막을 사람을 없을거라고 덧붙여 말하는 그의 모습속에서 미래에 대한 작가의 인식을 느끼게 된다.

 

기존의 책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컬러풀한 책 디자인, 작품의 이해를 돕고 인상깊게 자리잡은 멋진 일러스트들, 무엇보다 작가의 독특한 상상속에 담아낸 작가의 철학이 읽는 이들에게 특별한 느낌을 전해줄 수 있을 것이다. 미래, 누구나 꿈꾸지만 예측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현재'의 다른 이름이 '과거의 미래' 이듯이, 현재를 어떻게 만드느냐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철학과 상상, 그의 그릇 속에 담긴 소재가 어우러져 즐겁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창조해낸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그를 만나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미래와 현재, 과거를 넘나드는 여행이 꿈과 상상, 그리고 작은 로맨스로 행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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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개
미치오 슈스케 지음, 황미숙 옮김 / 해문출판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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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도 이제 마지막 달력 한장만을 남기고 있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책과 관련된 사이트와 카페에서는 한창 올해의 책과 작가에 대해 독자들의 의견을 묻는 투표와 선정 작업으로 분주해보인다. 이름만으로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수많은 작가와 작품들속에서 개인적으로 꼭 한 명의 이름을 외치고 싶다. 그 이름이 바로 '미치오 슈스케'이다. 일본 미스터리 소설을 즐겨 만나는 독자들이라면 잘 알 수도 있겠지만 아직까지 그의 이름은 다소 낯설것이라는 생각이든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2010년 일본 미스터리 추리소설계에 '신인상'을 주라고 한다면 서슴치않고 그의 이름을 부르고 있을것이다.

 

'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으로 미치오 슈스케, 그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2010년의 아침을 맞이했다. 그리고 해(年)가 저물어 갈 때 즈음 또 다시 그 이름과 마주한다. 처음 만날때 그랬던것처럼, '반가워 친구!'하며 뒤통수를 사정없이 후려 갈기던 그 모습 그대로 그는 그렇게 우리 앞에 서있다. '따라올테면 따라와봐!' 이말도 어울릴까? 아직도 얼얼한 뒤통수를 어루만지고 있는 나, <솔로몬의 개> 라는 작품을 살며시 내미는 그의 손을 또 다시 덮석 잡아버리고 만다.

 

로몬의 개>는 우연처럼 일어난 한 소년의 죽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숨겨진 진실을 찾아가는 청춘 미스터리 소설이다. 사가미노 대학 응용생물학부에 다니며 퀵서비스 회사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아키우치'가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그와 같은 대학에 다니는 3명의 친구들이 이야기를 주도한다. 첫만남부터 설레임으로 시작해 줄 곧 짝사랑으로 이어지고 있는 '하즈미 치카', 치카와 고등학교때부터 친구인 '마키사카 히로코', '괜찮다면 친구하지 않겠어'라며 갑작스레 다가온 친구 '토모에 쿄야' 가 바로 그들이다.

 

Welcome to riverside cafe SUN's

 

대학에서 미생물학을 가르치는 싱글맘 '시이자키 쿄코'조교수, 시이자키 쿄코 교수의 열 살난 아들 '요스케'와 그의 견공 애완견 '오비'는 이 미스터리의 중심에 선다. 아키우치의 시선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갑작스런 비에 조금은 이상한 느낌을 전해주는 한 카페에 들어가게 된 아키우치, 그리고 얼마후 그 곳을 찾아온 3명의 친구들. 그들은 2주일전 벌어진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중에 살인자가 있는지 없는지'라고 말하는 아키우치, 도대체 그들에게는 어떤 사건이 있었던 것일까?

 

2주일전 햇볕이 따가웠던 일요일, 퀵서비스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아키우치에게 그의 짝사랑 치카가 전화를 걸어온다. 연인 사이였던 쿄야와 히로코가 항구에서 놀러오라고 했다는 이야기에 단숨에 항구로 달려간 아키우치. 그곳에서 요스케와 오비와 우연한 만남이 있게 되고 ... 그날 오후 애완견이던 오비의 갑작스런 행동으로 인해 요스케가 트럭에 치어 사망하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한다. 그 사고 직전 아키우치는 건너편에 있는 니콜라스라는 가게의 2층에서 내려오는 3명의 친구들을 발견한다. 그 순간 쿄야의 이상스러운 행동, 오비의 갑작스런 돌진, 요스케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이 아키우치의 머릿속을 어지럽게 조여온다.

 



 

주인인 요스케의 죽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애완견 오비는 그 때 이후로 사라져 행방이 묘연하고, 사고 순간을 목격했던 아키우치는 동물생태학자 마미야 미치오 선생을 만나 자신의 머릿속 한 구석에 들러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어떤 의문'에 대한 물음표를 해결해보려 한다. '요스케는 내가 죽였어' 라고 말하는 치카, '이키우치... 어떡하지... 저질러버렸어'라며 다급하게 알듯 모를듯한 말을 하는 쿄야. '시이자키 쿄코' 조교수의 자살, 쿄야의 의심스런 행동... 우연한 사고라고 생각했던 하나의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점점더 깊은 미궁속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이번에는 '개(Dog)' 다!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에서는 고양이가, '외눈박이 원숭이'속에는 원숭이, '구체의 뱀'은 뱀이, '용의 손은 붉게 물들고'에서는 용 ...  사람들은 이런 소재들로 인해서 그의 작품들을 하나의 시리즈라고 오해하기도 한다. 뱀, 용, 원숭이 등의 소재들로 인해 '십이지 시리즈'가 아니냐고... 그리고 더더구나 이번에는 '개'가 그 소재가 된다. 사건의 Key를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소재로 말이다. 그의 작품이 시리즈냐 아니냐로 불리던 그렇지 않던간에 그의 독특한 소재 선택은 흡입력을 생명으로 하는 미스터리 추리소설의 재미를 배가 시키는 또 다른 이슈임에 틀림 없을 것 같다.

 

미치오 슈스케와 가족!

그의 작품속에는 언제나 가족이 등장한다. 최근에 만났던 '용의 손은 붉게 물들고'속 소에키다 렌과 여동생 가에데, 그리고 형 다쓰야와 동생 게이스케 가족의 모습처럼 폭력과 상처로 아파하는, 불완전한 가족들의 모습이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속에는 종종 등장한다. <솔로몬의 개>속에 등장하는 가족들의 모습도 온전해 보이지 않는다. 이혼한 싱글맘 시이자키 쿄코 교수와 그녀의 외동아들 요스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있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는 쿄야, 그리고 아키우치의 가정속에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간의 불편한 관계가 그려진다. 이처럼 우리 사회의 커다란 문제점이기도 한 불안한 가정이 미치오 슈스케의 미스터리속 또 하나의 불편한 진실을 그려내기도 한다.

 

춘의 로맨스! 

만난 순간부터 사랑이 시작된 아키우치의 짝사랑, 그리고 그의 그녀, 치카! 연인이었던 히로코와 쿄야 사이의 얽히고 설킨 관계는 요스케의 사고 이후 더욱더 미묘하게 꼬여간다. 고등학교때 남자 친구한테 크게 당한적 있다는 히로쿄와 치카의 과거, 뭔가 숨겨진 비밀을 간직하고 있을것 같은 쿄야의 비밀들, 이런 비밀스런 요소들과 미스터리적 구성으로 인해 아키우치의 짝사랑은 다가오는듯 멀어지는듯 의도치 않게 꼬여만가기 시작한다. 아릿한 첫사랑의 추억이 미스터리를 만나 색다른 느낌과 애틋함을 전해주기에 충분해보인다.

 

환상과 현실을 거침없이 넘나들며, 도무지 독자들의 자유로운 상상과 추리는 말도 안된다는듯 독자와 이야기를 꼭 쥐고 뒤흔드는 미치오 슈스케의 카리스마! 책의 본문 곳곳에 놓여진 마지막 비밀을 푸는 열쇠들, 어느것 하나도 절대 놓칠 수 없게 만드는 미치오 슈스케의 보물들은 어김없이 곳곳에서 그 빛을 뿜어내고 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반전과 곳곳에 자리하던 트릭 또한 그의 작품속에서 빼놓을 수 없는 특별함이다. 매력적인 캐릭터 아키우치와 친구들, 십이지 시리즈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개'를 다룬 독특한 소재, 빠져나올 수 없을 긴장과 흡입력을 갖춘 구성과 섬세한 심리묘사... 역시 미치오 슈스케라는 감탄이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터져나온다. 2010년을 빛낸 최고의 작가, 미치오 슈스케... 그의 매직이 오래도록 환상속에 살아 숨쉬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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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창고 살인사건
알프레드 코마렉 지음, 진일상 옮김 / 북스토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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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향은 수도권 근교의 작은 시골 마을이다. 물론 이름만 대면 또 다른 사건으로 인해 모두가 알 이름이지만... 그것이 그리 중요하진 않으니... 시골에는 향기가 있다. 어린 시절 아침 저녁으로 피어오르던 굴둑의 연기, 그 모습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도시와는 다른 어떤 향기를 지닌다. 시골에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 집 누가 어떻고, 누구네 집엔 무슨일이 있고, 동네 아주머니들의 입에 입을 타고 비밀이란 없을 것처럼 수많은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우리의 시골은 그렇다. 자주 출장을 다니는 남도의 시골 마을은 그보다 더 순박하고 진한 향기를 품는다. 우리의 시골 마을은 그렇다. 그렇다면 포도가 익어가는 오스트리아의 시골 마을은 어떨까?  

 

<와인창고 살인사건>은 이런 향기가 뭍어난다. 오스트리아의 한적한 시골, 와인 향기가 흘러 넘칠 것 같은, 와인을 주로 재배하는 이 마을, 포도주를 만드는 양조장 와이너리에서 한 남자, 알베르트 하안의 시체가 발견된다. 사인은 와이너리에 가득찬 발효가스에 의한 질식사로 밝혀진다. 최근 이 근방에서만 4번째 발생한 사건이라고 한다. 이 사건은 관할 경찰인 시몬 폴트 경위가 맡게 된다. 지역 의료 담당 의사의 사인도 밝혀졌고 별 특이점이 없어 보이는 사건이지만 하나씩 하나씩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게 된다.

 

베르트 하안!

하안의 아내에게 그의 죽음을 알리러간 폴트 경위는 뜻밖에 말을 그녀의 입을 통해 듣게된다.'죽었죠. ... 시골에서는 소식이 금방 퍼진 답니다. 특히 좋은 소식은요.' 라는... 하안의 죽음이 이 작은 시골마을에 좋은 소식인 이유는 무엇일까? 알베르트 하안이란 인물에 대해서 알아가면서 그의 아내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이 하안에게 품었던 적개심 그 이상의 증오를 하나씩 알아가게 된다. 그의 죽음이 왠지 후련한 기분이라는 하안의 아내, 그녀는 하안의 수많은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

 

터 샤힝어! 알베르트 하안의 압착장 앞 나무에서 몰래 버찌를 따던 두 아이들중 하안에게 잡힌 페터 샤힝어는 압착장으로 끌려 들어간다. 하안에게 폭행을 당하지도 않았고 몸에 어떤 흔적도 없었지만 페터는 그에 대한 적개심으로 가득하다. 도대체 그들에게 무슨일이 있었던 것일까? 알베르트 하안과 관련한 마을 사람들과의 다툼은 이뿐만이 아니다. 폴트 경위의 친구이기도 한 프리드리히 쿠르츠바허의 경우, 하안에게 돈을 빌리게되고 다시 돈을 갚지만 하안은 이를 발뺌한다. 이로 인해 하안과 소송이 진행되기도 한 쿠르츠바허. 그 외에도 하안에게 임금을 받지 못한 체코인 인부 등 하안의 죽음은 어쩌면 그의 부인의 말처럼 마을에 '좋은 소식' 처럼 다가온 하나의 사건 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하안의 죽음과 연관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면서 폴트는 그의 석연찮은 죽음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고 책의 중반 즈음에 접어들어 알베르트 하안이 직접 쓴 편지 한장이 발견 되면서 사건은 또 다른 국면을 맞게된다. 이 편지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하안이 범인에 대해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안이 지목한 그들이 범인일까? 누가 진짜 하안을 죽인 것일까? 범인을 찾기보다 범인이 아닌 인물을 지워가는 독특한 이야기들이 시몬 폴트 경위에 의해 흥미롭게 그려진다.

 

스트리아에서 날아온 흥미로운 미스터리 추리소설 한편이 마지막 가을의 시간을 쉽게 잊혀지게 만든다. 익히 편중되어있던 일본, 미국 작가 중심의 독서 패턴에서 볼 때 이 작품은 조금은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트릭과 반전, 혹은 서술 트릭으로 뒤통수를 쓸어 내려야 했던 기존의 작품들과는 다르게 그다지 빠른 전개도 아니면서 평범함속에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심리적인 묘사가 두드러지면서 인물들에 촛점을 맞추는 구성이 왠지 오스트리아에서 날아온 와인 한병을 '퐁~' 여는 매력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인의 향기가 뭍어나는 추리소설, 이 작품 속에서 주인공 시몬 폴트 경위의 모습 또한 영웅적으로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특별함이 뭍어나지는 않는다. 지극히 인간적이고 시골 마을 관할 경찰다운 마음과 모습으로 우리에게 따스함으로 다가온다. 그리 빠르게 전개되고 쉽게 읽히는 작품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짧게 나뉜 단락 단락이 마음에 든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약간은 리듬이 떨어지고 템포가 느려져 작품에 쉽게 집중하고 몰입하기가 쉽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마지막까지 개운치 않은 뭔가가 책을 내려놓으려는 손길을 가로 막는다. 불편하고 무거운 진실을 앞에 두고도 우리 사회의 엉크러진 모습을 보는듯해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 지기도 한다. 오스트리아에서 날아 온, 와인의 향기에 흠뻑 젖은 추리 소설 한편이 많은 생각과 색다른 즐거움을 느끼게 해준다. 잘 숙성된 와인 한잔과 함께 이 책 <와인창고 살인사건>이 잘 어울릴것 같다. 모짜르트와 알프스, 사운드오브 뮤직의 나라 오스트리아에서 날아온 와인향기 가득한 추리소설과 함께 가을이 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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