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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개
미치오 슈스케 지음, 황미숙 옮김 / 해문출판사 / 2010년 11월
평점 :
2010년도 이제 마지막 달력 한장만을 남기고 있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책과 관련된 사이트와 카페에서는 한창 올해의 책과 작가에 대해 독자들의 의견을 묻는 투표와 선정 작업으로 분주해보인다. 이름만으로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수많은 작가와 작품들속에서 개인적으로 꼭 한 명의 이름을 외치고 싶다. 그 이름이 바로 '미치오 슈스케'이다. 일본 미스터리 소설을 즐겨 만나는 독자들이라면 잘 알 수도 있겠지만 아직까지 그의 이름은 다소 낯설것이라는 생각이든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2010년 일본 미스터리 추리소설계에 '신인상'을 주라고 한다면 서슴치않고 그의 이름을 부르고 있을것이다.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으로 미치오 슈스케, 그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2010년의 아침을 맞이했다. 그리고 해(年)가 저물어 갈 때 즈음 또 다시 그 이름과 마주한다. 처음 만날때 그랬던것처럼, '반가워 친구!'하며 뒤통수를 사정없이 후려 갈기던 그 모습 그대로 그는 그렇게 우리 앞에 서있다. '따라올테면 따라와봐!' 이말도 어울릴까? 아직도 얼얼한 뒤통수를 어루만지고 있는 나, <솔로몬의 개> 라는 작품을 살며시 내미는 그의 손을 또 다시 덮석 잡아버리고 만다.
솔로몬의 개>는 우연처럼 일어난 한 소년의 죽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숨겨진 진실을 찾아가는 청춘 미스터리 소설이다. 사가미노 대학 응용생물학부에 다니며 퀵서비스 회사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아키우치'가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그와 같은 대학에 다니는 3명의 친구들이 이야기를 주도한다. 첫만남부터 설레임으로 시작해 줄 곧 짝사랑으로 이어지고 있는 '하즈미 치카', 치카와 고등학교때부터 친구인 '마키사카 히로코', '괜찮다면 친구하지 않겠어'라며 갑작스레 다가온 친구 '토모에 쿄야' 가 바로 그들이다.
Welcome to riverside cafe SUN's
대학에서 미생물학을 가르치는 싱글맘 '시이자키 쿄코'조교수, 시이자키 쿄코 교수의 열 살난 아들 '요스케'와 그의 견공 애완견 '오비'는 이 미스터리의 중심에 선다. 아키우치의 시선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갑작스런 비에 조금은 이상한 느낌을 전해주는 한 카페에 들어가게 된 아키우치, 그리고 얼마후 그 곳을 찾아온 3명의 친구들. 그들은 2주일전 벌어진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중에 살인자가 있는지 없는지'라고 말하는 아키우치, 도대체 그들에게는 어떤 사건이 있었던 것일까?
2주일전 햇볕이 따가웠던 일요일, 퀵서비스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아키우치에게 그의 짝사랑 치카가 전화를 걸어온다. 연인 사이였던 쿄야와 히로코가 항구에서 놀러오라고 했다는 이야기에 단숨에 항구로 달려간 아키우치. 그곳에서 요스케와 오비와 우연한 만남이 있게 되고 ... 그날 오후 애완견이던 오비의 갑작스런 행동으로 인해 요스케가 트럭에 치어 사망하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한다. 그 사고 직전 아키우치는 건너편에 있는 니콜라스라는 가게의 2층에서 내려오는 3명의 친구들을 발견한다. 그 순간 쿄야의 이상스러운 행동, 오비의 갑작스런 돌진, 요스케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이 아키우치의 머릿속을 어지럽게 조여온다.

주인인 요스케의 죽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애완견 오비는 그 때 이후로 사라져 행방이 묘연하고, 사고 순간을 목격했던 아키우치는 동물생태학자 마미야 미치오 선생을 만나 자신의 머릿속 한 구석에 들러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어떤 의문'에 대한 물음표를 해결해보려 한다. '요스케는 내가 죽였어' 라고 말하는 치카, '이키우치... 어떡하지... 저질러버렸어'라며 다급하게 알듯 모를듯한 말을 하는 쿄야. '시이자키 쿄코' 조교수의 자살, 쿄야의 의심스런 행동... 우연한 사고라고 생각했던 하나의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점점더 깊은 미궁속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이번에는 '개(Dog)' 다!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에서는 고양이가, '외눈박이 원숭이'속에는 원숭이, '구체의 뱀'은 뱀이, '용의 손은 붉게 물들고'에서는 용 ... 사람들은 이런 소재들로 인해서 그의 작품들을 하나의 시리즈라고 오해하기도 한다. 뱀, 용, 원숭이 등의 소재들로 인해 '십이지 시리즈'가 아니냐고... 그리고 더더구나 이번에는 '개'가 그 소재가 된다. 사건의 Key를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소재로 말이다. 그의 작품이 시리즈냐 아니냐로 불리던 그렇지 않던간에 그의 독특한 소재 선택은 흡입력을 생명으로 하는 미스터리 추리소설의 재미를 배가 시키는 또 다른 이슈임에 틀림 없을 것 같다.
미치오 슈스케와 가족!
그의 작품속에는 언제나 가족이 등장한다. 최근에 만났던 '용의 손은 붉게 물들고'속 소에키다 렌과 여동생 가에데, 그리고 형 다쓰야와 동생 게이스케 가족의 모습처럼 폭력과 상처로 아파하는, 불완전한 가족들의 모습이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속에는 종종 등장한다. <솔로몬의 개>속에 등장하는 가족들의 모습도 온전해 보이지 않는다. 이혼한 싱글맘 시이자키 쿄코 교수와 그녀의 외동아들 요스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있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는 쿄야, 그리고 아키우치의 가정속에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간의 불편한 관계가 그려진다. 이처럼 우리 사회의 커다란 문제점이기도 한 불안한 가정이 미치오 슈스케의 미스터리속 또 하나의 불편한 진실을 그려내기도 한다.
청춘의 로맨스!
만난 순간부터 사랑이 시작된 아키우치의 짝사랑, 그리고 그의 그녀, 치카! 연인이었던 히로코와 쿄야 사이의 얽히고 설킨 관계는 요스케의 사고 이후 더욱더 미묘하게 꼬여간다. 고등학교때 남자 친구한테 크게 당한적 있다는 히로쿄와 치카의 과거, 뭔가 숨겨진 비밀을 간직하고 있을것 같은 쿄야의 비밀들, 이런 비밀스런 요소들과 미스터리적 구성으로 인해 아키우치의 짝사랑은 다가오는듯 멀어지는듯 의도치 않게 꼬여만가기 시작한다. 아릿한 첫사랑의 추억이 미스터리를 만나 색다른 느낌과 애틋함을 전해주기에 충분해보인다.
환상과 현실을 거침없이 넘나들며, 도무지 독자들의 자유로운 상상과 추리는 말도 안된다는듯 독자와 이야기를 꼭 쥐고 뒤흔드는 미치오 슈스케의 카리스마! 책의 본문 곳곳에 놓여진 마지막 비밀을 푸는 열쇠들, 어느것 하나도 절대 놓칠 수 없게 만드는 미치오 슈스케의 보물들은 어김없이 곳곳에서 그 빛을 뿜어내고 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반전과 곳곳에 자리하던 트릭 또한 그의 작품속에서 빼놓을 수 없는 특별함이다. 매력적인 캐릭터 아키우치와 친구들, 십이지 시리즈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개'를 다룬 독특한 소재, 빠져나올 수 없을 긴장과 흡입력을 갖춘 구성과 섬세한 심리묘사... 역시 미치오 슈스케라는 감탄이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터져나온다. 2010년을 빛낸 최고의 작가, 미치오 슈스케... 그의 매직이 오래도록 환상속에 살아 숨쉬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