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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창고 살인사건
알프레드 코마렉 지음, 진일상 옮김 / 북스토리 / 2010년 11월
평점 :
나의 고향은 수도권 근교의 작은 시골 마을이다. 물론 이름만 대면 또 다른 사건으로 인해 모두가 알 이름이지만... 그것이 그리 중요하진 않으니... 시골에는 향기가 있다. 어린 시절 아침 저녁으로 피어오르던 굴둑의 연기, 그 모습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도시와는 다른 어떤 향기를 지닌다. 시골에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 집 누가 어떻고, 누구네 집엔 무슨일이 있고, 동네 아주머니들의 입에 입을 타고 비밀이란 없을 것처럼 수많은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우리의 시골은 그렇다. 자주 출장을 다니는 남도의 시골 마을은 그보다 더 순박하고 진한 향기를 품는다. 우리의 시골 마을은 그렇다. 그렇다면 포도가 익어가는 오스트리아의 시골 마을은 어떨까?
<와인창고 살인사건>은 이런 향기가 뭍어난다. 오스트리아의 한적한 시골, 와인 향기가 흘러 넘칠 것 같은, 와인을 주로 재배하는 이 마을, 포도주를 만드는 양조장 와이너리에서 한 남자, 알베르트 하안의 시체가 발견된다. 사인은 와이너리에 가득찬 발효가스에 의한 질식사로 밝혀진다. 최근 이 근방에서만 4번째 발생한 사건이라고 한다. 이 사건은 관할 경찰인 시몬 폴트 경위가 맡게 된다. 지역 의료 담당 의사의 사인도 밝혀졌고 별 특이점이 없어 보이는 사건이지만 하나씩 하나씩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게 된다.
알베르트 하안!
하안의 아내에게 그의 죽음을 알리러간 폴트 경위는 뜻밖에 말을 그녀의 입을 통해 듣게된다.'죽었죠. ... 시골에서는 소식이 금방 퍼진 답니다. 특히 좋은 소식은요.' 라는... 하안의 죽음이 이 작은 시골마을에 좋은 소식인 이유는 무엇일까? 알베르트 하안이란 인물에 대해서 알아가면서 그의 아내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이 하안에게 품었던 적개심 그 이상의 증오를 하나씩 알아가게 된다. 그의 죽음이 왠지 후련한 기분이라는 하안의 아내, 그녀는 하안의 수많은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
페터 샤힝어! 알베르트 하안의 압착장 앞 나무에서 몰래 버찌를 따던 두 아이들중 하안에게 잡힌 페터 샤힝어는 압착장으로 끌려 들어간다. 하안에게 폭행을 당하지도 않았고 몸에 어떤 흔적도 없었지만 페터는 그에 대한 적개심으로 가득하다. 도대체 그들에게 무슨일이 있었던 것일까? 알베르트 하안과 관련한 마을 사람들과의 다툼은 이뿐만이 아니다. 폴트 경위의 친구이기도 한 프리드리히 쿠르츠바허의 경우, 하안에게 돈을 빌리게되고 다시 돈을 갚지만 하안은 이를 발뺌한다. 이로 인해 하안과 소송이 진행되기도 한 쿠르츠바허. 그 외에도 하안에게 임금을 받지 못한 체코인 인부 등 하안의 죽음은 어쩌면 그의 부인의 말처럼 마을에 '좋은 소식' 처럼 다가온 하나의 사건 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하안의 죽음과 연관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면서 폴트는 그의 석연찮은 죽음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고 책의 중반 즈음에 접어들어 알베르트 하안이 직접 쓴 편지 한장이 발견 되면서 사건은 또 다른 국면을 맞게된다. 이 편지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하안이 범인에 대해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안이 지목한 그들이 범인일까? 누가 진짜 하안을 죽인 것일까? 범인을 찾기보다 범인이 아닌 인물을 지워가는 독특한 이야기들이 시몬 폴트 경위에 의해 흥미롭게 그려진다.
오스트리아에서 날아온 흥미로운 미스터리 추리소설 한편이 마지막 가을의 시간을 쉽게 잊혀지게 만든다. 익히 편중되어있던 일본, 미국 작가 중심의 독서 패턴에서 볼 때 이 작품은 조금은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트릭과 반전, 혹은 서술 트릭으로 뒤통수를 쓸어 내려야 했던 기존의 작품들과는 다르게 그다지 빠른 전개도 아니면서 평범함속에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심리적인 묘사가 두드러지면서 인물들에 촛점을 맞추는 구성이 왠지 오스트리아에서 날아온 와인 한병을 '퐁~' 여는 매력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와인의 향기가 뭍어나는 추리소설, 이 작품 속에서 주인공 시몬 폴트 경위의 모습 또한 영웅적으로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특별함이 뭍어나지는 않는다. 지극히 인간적이고 시골 마을 관할 경찰다운 마음과 모습으로 우리에게 따스함으로 다가온다. 그리 빠르게 전개되고 쉽게 읽히는 작품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짧게 나뉜 단락 단락이 마음에 든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약간은 리듬이 떨어지고 템포가 느려져 작품에 쉽게 집중하고 몰입하기가 쉽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마지막까지 개운치 않은 뭔가가 책을 내려놓으려는 손길을 가로 막는다. 불편하고 무거운 진실을 앞에 두고도 우리 사회의 엉크러진 모습을 보는듯해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 지기도 한다. 오스트리아에서 날아 온, 와인의 향기에 흠뻑 젖은 추리 소설 한편이 많은 생각과 색다른 즐거움을 느끼게 해준다. 잘 숙성된 와인 한잔과 함께 이 책 <와인창고 살인사건>이 잘 어울릴것 같다. 모짜르트와 알프스, 사운드오브 뮤직의 나라 오스트리아에서 날아온 와인향기 가득한 추리소설과 함께 가을이 익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