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산드라의 거울 2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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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기 직전, 천사는 손가락으로 아기의 입술을 누르고서 이렇게 속삭인다. [너의 전생들을 모두 잊어버리렴. 그래야 그 기억이 이 생에서 너를 번거롭게 하지 않는단다] 갓난 아기의 입술 위에 인중이 찍힌 것은 이 때문이다.' - 카발라 -

 

연말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연례 행사가 있다. 올해 최고의 작가, 최고의 작품을 뽑는 일인데 지금 서점과와 인터넷 상에서 그 작업이 한창 진행중이다. 이 연례 행사에서 거의 빼어놓지 않고 주목받는 작가가 있다. 그가 바로 '베르나르 베르베르'이다. 한국을 자주 방문하는 작가중 한 명이기도 한 그는 언제 부터인가 올해의 책과 작가에 이름을 올리지 않는때가 없을 정도로 터줏대감이 되어버렸다. '개미', '뇌', '파라다이스', '신' 등 주옥같은 그의 상상과 열정이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어느새 그를 국민작가의 반열에 올려놓기에 이른다.

 

그리고 2010년의 마지막 문턱에서 <카산드라의 거울>을 마주한다. 독특한 상상, 미래에 대한 그의 안목을 바라볼 수 있는 이 작품은 또 어떤 즐거움과 감동을 전해줄까? 이야기는 고대 신화속에서 모티브를 찾는다. 기원전 1300년경,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의 딸이었던 카산드라! 자신을 숭배하던 신전에 내려온 아폴론 신은 카산드라를 보게되고 아이에게 미래를 보는 예지능력을 선물하게 된다. 카산드라가 성인이 되고 아폴론 신전의 사제가 된 그녀, 아폴론 신은 그녀에게 구애를 하지만 그녀는 거절하고 만다. 아폴론 신은 그녀에게 저주를 내리게 되는데, 그 저주는 그녀의 말을 세상사람 그 누구도 믿지 않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현재, 고대 카산드라와 동명이인인 카산드라 카젠버그! 17세 소녀인 그녀는 테러로 부모를 잃고 고아 기숙 학교에서 생활한다. 학교에서 사고를 잃으켜 교장에게 불려간 그녀, 필리프 파파다키스 교장은 그녀에게 작은 소포를 전해주고 그녀를 겁탈하려 하지만 카산드라는 그의 귀를 물어 위기를 모면한다. 그리고 그녀는 쫓기는 신세로 전락한다. 외톨이가 되어버린 그녀,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위기에 처한 그녀를 구해주는 금발 거한, 그리고 그와 함께 시립 쓰레기 하치장에서 지내는 3명의 동료들! 카산드라는 그들과 함께 미래를 구하기 위한 발걸음을 내딛는다.

 



 

그녀를 구해준 금발거한은 오를랑도, 외인부대원이었던 그는 그들 무리에서 사냥을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요리와 바느질을 맡고 있는 건 에로배우 출신 에스메랄다, 모든 분야의 전문 기술자인 동양인 , 세네갈 사람인 페트나는 의사와 정신 분석가, 약초 전문가의 역할을 맡고 있다. 그들은 남작, 공작부인, 후작, 자작 등 자신들끼리 작위를 부여하고 살아간다. 소외되고, 쫓기고 도시에서 추방된 그들과 카산드라는 특별한 미래를 만들어가게 된다.

 

신화속 카산드라와 같이 미래를 볼 수 있는 예지능력을 가진 그녀!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그녀이지만 그녀의 과거는 알지 못한다. 그의 부모가 누구였으며 어떤 인물들이었고 그녀의 오빠, 다니엘과 그가 만든 5초후 생존가능성을 보여주는 시계 프로바빌리스의 비밀은 무엇인지 하나하나 찾아 나선다. EFAP 화학공장 폭발 사고를 계기로 '시쓰장' 동료들의 믿음을 얻게된 카산드라는 암울한 미래를 자신들의 손으로 조금씩 변화시켜 나가기 시작한다. 자신의 과거를 찾고 자신이 예견한 미래를 변화시키는 거대한 임무가 그녀와 그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카산드라의 거울>을 손에 쥐고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바로 기존 작품들에서는 찾기 힘든 종이의 재질과 컬러풀한 디자인이다. 한국어 판에만 담겨져 있다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만화가인 홍작가의 그림들은 작품속 이야기의 흐름과 캐릭터들의 모습을 세련되고 깔끔하게 그려내어 책의 가독성과 몰입을 도와주기에 충분하다. 만화적이면서도 상황과 캐릭터들의 심리를 적절히 묘사한 일러스트의 매력이 <카산드라의 거울>에서 꼽을 수 있는 특별함의 첫번째이다.

 

'김예빈'이란 인물도 빼놓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책의 출간 전부터 한국인의 등장이라고 해서 관심을 받기도 했는데, 사실 그는 한국인이 아닌 평양 태생의 탈북자이다. 그를 성룡이라 묘사한 부분이라던지, 이름만으로는 여성으로 착각할 수도 있는 이름의 선택이라던지, 이것은 아마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한국에 대한 인식 부족은 아닐지 조심스럽게 생각해보게 된다. 어쨌든 소설의 중심에 선 동양계 조연의 활약은 <카산드라의 거울>의 특별함이 아닐 수 없다.

 



 

마지막으로 주목할 점은 작가의 현실 인식이다. 오를랑도의 말 속에서 그것을 찾을 수 있다. 시립 쓰레기 하치장의 버려진 물총 하나를 보고, 비인간적으로 노예처럼 착취당하고 학대 당하는 중국 어린이들을 말하기도 하고, 버려진 플라스틱 잡동사니 때문에 프랑스가 중국에 지게되는 빚을 이야기한다. 세계 무역의 불균형이랄까 이런 철학이 그의 말속에 담겨진 것이다. 티베트의 침략, 북한을 비롯한 잔인한 독재자들에 대한 중국의 지지에 대응하지 못하는 무책임한 현실에 대한 비판이 그의 말속에 드러난다. 작가의 이런 현실 인식은 곳곳에서 드러나는데, 단순히 미래에 대한 제시만이 아니라 현재를 바라보는 눈이 그의 작품속에 담겨진다.

 

19세기 프랑스의 소설가인 '쥘 베른'과 비교되기도 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그것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미래를 예견하고 상상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측면에서는 그와 비슷하기도 하지만.... 쥘 베른의 시대에는 과학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는 믿음이 주를 이룬 시기였다고, 그래서 과학자들이 인류를 구원할 구원자라 여겨졌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말이다. 이 말은 자신의 작품속에서는 단순한 과학을 넘어 과학이 가져야할 도덕과 원칙, 환경보호와 같은 인류의 문제들까지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와는 조금 다르다는 언급을 하고 있는듯 싶다.

 

'우리는 미래를 볼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마도 볼 수 없다 일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미래를 만들겠다며, 그걸 막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 2권, P. 454 -

 

베르나르 베르베르, 우리는 그를 천재라고 쉽게 부른다. 단순히 미래를 예측하고 거침없는 상상을 이야기해서가 아니라, 그 속에 단순히 과학을 넘어서는 도덕과 원칙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거침없는 상상뒤에 그것을 뛰어넘는 비판과 철학! 그것이 바로 이 작가가 사랑받는 이유가 아닐까? 암울한 미래를 그리지만 그는 그 미래를 그렇게만 내려려 둘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바꾸고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맹목적인 과학이 아닌 인간적이고 따스한 과학과 나름의 철학을 내어놓는다.

 

<카산드라의 거울>을 읽은 독자들이라면 이 책속에 등장한 작가의 숨겨진 다른 작품을 찾았는지 묻고 싶다. '표지 중앙에는 파란색 나무 한그루가 우뚝 서있다', [나무]가 이 작품속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책이다. 항상 새로운 것을 시도 하려하는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작가의 상상속에서 우리가 걸어갈 길을 보고, 우리가 만들고 꿈꾸어갈 미래를 생각해본다. 작가의 독특한 철학과 상상력이 만나 창조된 특별하고 매력적인 이야기에 이 차가운 겨울이 그렇게 익어간다.

 

'노인이 죽기 직전, 천사는 그의 이마에 손가락을 대고는 이렇게 말한다. [이 지나간 삶을 잘 기억해 두세요. 다음번 삶을 위한 교훈이 될 수 있게끔.] - 카산드라 카젠버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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