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에브리원
다이애나 피터프로인드 지음, 이소은 옮김 / 비채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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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첼 맥아덤즈, '노트북'과 '시간여행자의 아내'를 통해 그녀의 팬이 되어버렸다. 매력적인 외모와 톡톡튀는 개성, 감동적인 연기와 아름다움으로 무장한 그녀에게 무장해제 당하지 않을 남성들이 있을까? 주말이면 아내와 가장 먼저 보는 TV프로그램이 영화소개하는 프로그램들이다. 아이가 생기기전까지는 아내도 나도 영화를 정말 즐겨보고 많이 찾았었는데, 이제는 그게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몇주전 주말에도 그렇게 영화소개 프로그램을 함께 보고 있었다. 그리고 레이첼 맥아덤즈, 그녀의 영화가 눈에 들어왔다. <굿모닝 에브리원>이란 제목이었다. 아내가 말한다. '정말 재미있겠다.' 하지만 그 말 속엔 작은 한숨이 뭍어있다. 이번에도 극장을 찾긴 힘들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번에는 그녀를 책 속에서 만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영화와 같은 이름으로...

 

이 작품은 TV 방송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레이첼 맥아덤즈가 연기한 '베키 풀러'는 요즘 너도 나도 말하는 스펙은 딸리지만 방송에 대한 열정 만큼은 그 누구에 못지 않은 20대 여성 프로듀서이다. '내게는 취재가 데이트보다 훨씬 쉽다'고 말할 정도로 일에 대한 사랑과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그 스펙이란 녀석때문에 자신이 일하던 직장에서 억울하게 쫓겨나고 만다. 하지만 그녀의 방송에 대한 열정은 사그러들지 않고, 어렵사리 만난 새 직장 IBS 방송국에서 아침 프로그램을 맡게 되는데... IBS '데이브레이크'의 책임프로듀서, 베키 풀러! 자신의 프로그램을 갖게 된 그녀의 이 꿈만 같은 기적! 하지만 그 기적이 악몽의 시작일줄은 그녀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데이브레이크'라는 이 아침 프로그램은 줄곧 동시간대 다른 아침 프로그램과의 경쟁에서 시청률 최하위를 도맡아 하는, 방송국 내에서도 골치거리인 프로그램이다. 이전 직장에서 받던 연봉의 절반 정도만을 받으면서도 '데이브레이크'의 구원자가 되겠다 자처한 베키, 그녀의 눈 앞에는 커다란 두 개의 산이 놓여있다. 이 방송의 터줏대감인 칼린의 히스테리가 그 하나이고,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녀가 섭외해온 포머로이의 왕고집이 또 다른 하나이다. 물론 우왕좌왕하는 스텝들의 모습은 이들에 비하면 그냥 웃어넘겨줄만한 수준의 애교로 봐줄 수도 있을것이다.

 

베키 풀러의 방송에 대한 순수한 열정! 그녀는 쓰러져가는, 시청률 최하위 프로그램을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으로 되살려 낼 수 있을까? '까칠한 그녀와 고집쟁이 그'를 어떤 방법으로 호흡하게 만들어 갈수 있을까? 오합지졸 같은 스텝들을 지휘해서 일사분란하게 통제할 수 있는 그녀만의 카리스마를 찾는 일이 바로 이 작품 <굿모닝 에브리원>을 읽는 즐거움이 아닐까 생각된다. 더불어 20대 젊은 여성의 일과 사랑, 두 마리 토끼를 잡아가는 모습은 현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여성들의 꿈이 아닐까싶다. 베키 풀러, 그녀를 통해 현대 여성들이 가진 이런 고민을 해결 할 수 있지는 않을지... 그 즐거운 시간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하고 싶다.

 



 

이 작품은 역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라는 영화를 떠올리게 만든다.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 패션계와 방송계라는 전문적인 직업을 가진 여성들의 이야기라는 점, 자신들의 꿈을 향해 수많은 고통과 시련을 이겨내며 나아간다는, 여러가지로 비슷한 연결점들이 '악마는...'을 떠올리게 만든다. '뉴욕 옵서버'에서는 <굿모닝 에브리원>을 두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이후 가장 멋지고 가장 유쾌한 코미디'라 평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지난 3월 17일 국내에서도 영화로 개봉되었다. 관객들의 평은 엇갈리기도 하지만 유쾌하고 즐겁다는 점은 공통적인 의견인것 같다. 이 작품이 기분좋게 만드는 작품임에는 틀림없다는 평가인 것이다. 그리고 그 유쾌함은 책속에서 더욱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매력적인 그녀 레이첼과 해리슨 포드, 다이앤 키튼이 각각 베키, 칼린, 포머로이를 연기한다. 간혹 책이 가진 한계점은 등장인물들의 모습과 성격 등의 특징을 쉽게 인식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인데... 영화와 함께 만날 수 있는 이 작품은 등장인물과 배우와의 매칭이 절묘하다는 생각을 들게한다. 열정으로 가득한 베키, 베테랑에 여우같은 카리스마 칼린, 왕고집에 삐뚤어질테다를 외치는 듯한 포머로이의 모습이 영화속 배우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다. 이 작품을 조금 더 쉽게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점이 바로 이런 캐릭터들에 대한 확실한 인상이 있다는 사실이다. 아직 영화를 만나보지 못했지만 그, 그녀들의 연기가 너무나 기대가 된다.

 

'이 프로그램은 앞으로 내리막길을 걸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는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겁니다. 제 얘기 알아들으세요? 포머로이씨가 무슨 짓을 하든 신경 쓰지 않겠어요. 전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요.' - P.271 -

 

방송계를 속속들이 들여다 볼 수 있는 재미 또한 <굿모닝 에브리원>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하나의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프로듀서를 비롯한 다양한 스텝들, 뉴스라는 특수성을 지닌 방송이 가지는 매력, 등장인물들이 연기하는 앵커라는 직업 등 겉으로 내어보이는 방송이 아닌, 그 뒷 이야기들이 숨가쁘면서도 유쾌하게 그려진다. 그 속에 담겨진 시청률이라는 보이지 않는 덫을 향해 내달릴 수 밖에 없는 방송계의 현실과 고민은 독자들에게 또 다른 생각거리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스펙에 목숨걸고, 시청률에 목을 메는 방송계의 모습을 보면서 현실속 다른 직종에서 보여지는 공통점들을 발견하고는 쓴웃음이 지어지기도 한다.

 

'굿모닝 Good morning!'을 위해 뛰는 20대 여성의 고단한, 하지만 행복한 일상이 유쾌하게 그려진다. 방송계라는 알고싶고 궁금한 공간을 배경으로 일과 사랑을 두손에 거머쥐려는 워킹걸의 특별한 아침은 오늘도 시작된다. 취재가 데이트보다 쉽다던 베키의 사랑은 어떻게 될까? '데이브레이크'는 만년 꽁찌의 수모를 벗어났을까? 따스한 봄날의 주말, 내리 쬐는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벤치에 앉아 <굿모닝 에브리원>을 펼쳐보면 어떨까? 유쾌하고 감동적인 일과 사랑의 이야기들이 겨우내 고단했던 당신의 가슴을 시원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그렇게 당신의 '굿모닝!'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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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복 수사 제복경관 카와쿠보 시리즈 1
사사키 조 지음, 이기웅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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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의 피' 그리고 사사키 조!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에 오르며 최고의 경찰소설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그와 그의 작품은 이미 많은 이들의 사랑과 시선을 받아왔다. 이번에 만나게 된 <제복수사>는 '경관의 피' 이전의 작품이다. 어쩌면 '경관의 피'를 있게 만든 숨은 공신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제복수사>는 '주재 경관'이라고 불리는, 우리로 따지자면 시골 마을 파출소 순경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은, '카와쿠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한 연작소설이다. 이 작품은 3대에 걸친, 60년이란 시간을 이어져 내려온 경관의 운명을 아픔을 간직한 현대사와 견주어 풀어내던 '경관의 피'가 가진 무게와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6천명 정도의 작은 인구를 가진 시골 마을, 시모베츠로 근무지를 배정 받게 된 카와쿠보는 평범해보이는 이 작은 마을에서 전혀 예측 할 수 없는, 미스터리한 사건들과 맞닥드리게 된다. 우리가 흔히 만날 수도 있음직한, 일상 미스터리의 틀을 그리 크게 벗어나지 않는 사건들, 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조금은 끔찍하고, 추악한 진실, 가슴 아픈 현실이 숨겨져 있다. 25년이란 긴 시간동안 강력계에서 활동했던 카와쿠보에게 이 조요한 마을에서 벌어진 사건들이 평범하지 않게 다가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 제복 주재 경관입니다. 귀를 쫑긋 세우고 이 지역의 자질구레한 정보에 관심을 기울이는 몸이죠. 그게 제 임무입니다. 이런 사건의 수사와 용의자 체포는 담당 수사원의 임무고요....' - P. 270 -

 

복 주재 경관에게는 수사권이 없다. 그렇기에 경찰 소설로서 보다 적극적인 사건의 접근을 통해 긴박감과 스릴을 느껴보려는 독자들에게 이 작품 <제복수사>는 어쩌면 조금은 밋밋한 미스터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이 작품을 내려놓을 때쯤 경찰소설이라는 기대와 그에 따르는 한계를 동시에 예상했던 독자들이라면 전혀 생각치 못한 색다르고 독특한 재미와 감성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제 주재경관 카와쿠보의 시선을 따라 이 작은 마을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확인해보자. 그리고 수사권이 없는 그가 어떻게 그에게 주워진 사건들을 해결하는지도...

 

이 작품은 모두 다섯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불량한 아이들과 어울리던, 평범한 이혼모의 아들, 미츠오의 실종사건을 다룬 '일탈'을 시작으로, 얼굴에 산탄총을 맞고 죽은 개와 그들 이웃과의 미스터리를 다룬 '유한', '깨진 유리'속에는 아동 폭력과 전과자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원인 불명의 연쇄 화재사건과 연관해 인간의 추악한 진실을 그려낸 '감지기', 마지막으로 과거 13년전에 일어났던 소녀 실종사건과 현재의 소녀 행방불명사건을 풀어낸 '가장제' 등... 베테랑 경관, 하지만 단지 주재 경관이란 한계점을 가진 카와쿠보의 활약상을 느릿한 영상에 섬세하고 따스하게 그려낸다.

 



 

주재 경관 카와쿠보가 이 작은 마을에 발령 받게 된 이유는, 한 경관이 저지른 잘못으로 인해 내려진 경찰의 방침 때문이다. 한 부서에 7년이상 재직한 자는 전근, 한 지역에 10년이상 근무한 자는 타지 이동... 카와쿠보는 바로 후자를 이유로 이곳 시모베츠라는 작은 마을에 발을 내딛게 된것이다. 우리 사회에도 만연한 이런 비리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들... 작가는 카와쿠보와 시모베츠라는 조합을 만들어내기 위해 이렇듯 치밀한 설정을 만들어내고, 또 그 속에서 이런 사회 문제들을 막기 위한 방편이 또 어떤 나쁜 결과들을 가져오는지 보여준다. 이 즈음에서 우리 현실에게도 묻고 싶다. 시크릿 가든속 주원의 말을 빌어... 경관들의 순환 배치!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

 

'결국 마을 뒤나 깊은 데서 벌어지느 추악한 일들 따위는 전혀 모르고 딴 데로 가게 돼. 지역 사회와의 유착을 우려한답시고 말들은 많지만, 겉만 핥고 지나가는 것보다는 유착을 우려할 만큼 지역사회를 샅샅이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 없질 않군.' - P. 35 -

 

책속에는 카와쿠보 말고도 빼 놓을 수 없는 또 한 명의 중심인물이 있다. '카타기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처음 그를 찾아온 카와쿠보에게 그는 위에 있는 말을 들려준다. 카와쿠보가 잘 알 수 없는 마을의 속사정들, 카타기리가 말한 추악한 진실들을 풀어내려는 카와쿠보를 기꺼히 도와주는 카타기르의 조언과 활약은 이 작품에서 없어서는 안 될 만큼 중요한 부분이다. 강력계 25년의 베테랑 형사 카와쿠보와 마을을 속속들이 꿰고 있는 카타기리 명콤비의 활약! 앞으로도 계속 될 그들 명콤비의 활약기 기대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겉으로 보이는 사건 너머에 존재하는 추악한 진실. 카와쿠보는 그 진실을 찾기위해 두 발로 뛴다. 하지만 매번 주재 경관이라는 한계에 부딪히게 되고... 그렇지만 그는 강력계 베테랑 형사였던 경험을 바탕으로 색다르게 자신의 방식으로 문제들을 풀어나간다. 사건의 진실 앞에선 이들에게 그가 던지는 촌철살인 한 마디는 모든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깨진 유리'에서 오시로에게 자신의 이름이 힘이 될 것 같으면 마음대로 쓰라고 말하는 카와쿠보, '감지기'에서는 자동차 보험과 검사증이 만료된 카즈오를 보내주면서 검문에 걸리지 말라고 충고하는 그를 보면서 지금까지 미스터리라는 장르속에서 보기 힘든 따스함을 한껏 느낄 수 있기도 했다.

 

시모베츠라는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한 것에 대해 너무나 곤란했다는 작가의 토로에 웃음이 난다. 하지만 그렇기때문에 더 섬세하고 우리가 익히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사건들을 찾게되고, 숨어있는 진실들에 한발 가까이 다가갈 수 있어 더욱 재미있고 흥미를 더해갈 수 있는게 아닌가 싶다. '제복 경관 카와쿠보 시리즈'의 첫번째 이야기는 이렇게 독자들의 가슴에 따스함을 남기는 미스터리로 기억될 것이다. '이렇게 작은 마을에서...'라는 작가의 투덜거림을 뒤로하고 카와쿠보 시리즈는 벌써 두 번째 작품까지 나왔다고 한다. [폭설권]이란 이름으로 말이다.

 

단순히 경찰 소설의 대가로 불리우는 사사키 조가 아닌, 청춘, 추리, 하드보일드 소설들을 막라하는 그의 다양한 작품들을 전하는 작가로 그의 이름을 넓혀가고 싶다. 우선 경찰 소설의 연장선이자 나오키상 수상작이기도 한 [폐허에 바라다]를 비롯해, 지금의 그를 있게 만든 작품이기도 한 [에토로후발 긴급전] 도 어서 만날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카와쿠보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 [폭설권] 또한 빨리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다. 왠지 끌리는 매력을 가진 카와쿠보, 치밀하고 섬세하게 써내려간 사사키 조의 따스한 미스터리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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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행관람차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7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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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 가나에, 이제 그녀를 만나는 일은 설레임을 넘어 행복이다. 평범한듯 하면서도 충격적인 결말로, 일상적인듯한 일들속에서 섬세하게 이야기를 그려내는 그녀만의 예리함이 돋보이는 그녀의 작품들. 6개월이 지나면 어김없이 찾아와 자신의 존재를 확실하게 각인시키는 그녀, 미나토 가나에! 벌써 그녀와의 네번째 만남을 갖는다. 처음 '고백'이라는 작품과 함께 했을때, 그녀의 이름은 낯설기만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속죄', '소녀'로 그녀의 이름과 미나토 가나에식 미스터리에 독자들은 헤어나올 수 없는 매력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이제 데뷔 2년차인 그녀, 미나토 가나에는 이제 일본 미스터리 소설의 대표작가로 인식되기에 충분해보인다.

 

그렇게 또 다시 6개월이 흘렀다. 이번에는 <야행관람차>라는 제목으로 그녀를 만난다. 이 제목 때문인지 문득 기노시타 한타의 '악몽의 관람차'라는 제목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미나토 가나에라는 작가의 기존 작품들을 볼 때 '악몽의 관람차'와 같은 밀실살인과 같은 방식은 아닐테고... 그래서 더욱 이 작품이 궁금해진다. 두툼해보이는 이 책을 집어들고는 여느때처럼 잠시 망설여진다. 좀처럼 내려 놓을 수 없게 만드는, 그녀 작품의 공통점인 강한 흡입력때문에 망설여지는 것이다. 잠시 잠깐의 여윳시간이 아니라 미나토가나에를 만나려면 몇시간쯤은 비워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야행관람차>는 '가족'에 대해 묻는 작품이다. 책속에는 두 가정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의 한 이웃이 함께 한다. 고급 주택가인 '히라리가오카'에 사는 엔도 가족과 다카하시 가족, 그리고 그들의 이웃 고지마 사토코라는 할머니가 등장한다. 엔도 가족은 가장인 게이스케와 아내 마유미, 그리고 그들의 딸 아야카가 함께 산다. 엄마를 빌어먹을 할망구라고, 당신이라 서슴없이 부르고, 아빠를 아저씨라고 말하는 히스테리컬한 중학생 아야카 때문에 엔도 가정은 바람 잘 날이 없다. 반면 고풍스러운 집에 사는 다카하시 가족은 다카하시씨를 비롯해 아내 준코와 딸 히나코, 아야카 또래의 신지가 산다. 아이들은 모두 사립학교에 다닐 정도로 똑똑하고 별 문제 없는 단란한 가정처럼 보인다.

 

그러던 어느날 사고가 일어난다. 사고의 진원지는 문제를 안고 사는 엔도 가정이 아니라 다카히시씨의 집이다. 부인인 준코가 말다툼끝에 장식품으로 남편을 때렸고 쓰러진 다카하시씨는 결국 죽고 만다. 자신이 남편을 때렸다고 순순히 자백한 준코. 하지만 사건발생 얼마전 앞집에 사는 마유미는 준코와 아들 신지가 다투는 소리를 듣게 되고, 얼마후 편의점에서 마유미를 만난 신지는 그녀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한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마유미는 사고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고, 편의점에서 만난 이후 신지의 행방은 묘연해진다. 다카하시씨의 죽음과 관련한 이 사건의 범인은 정말 준코일까? 아니면 사라진 다카하시 신지일까?

 

다카기 순스케! 책속에서 쉴새 없이 등장하는 인물이다. 얼굴 한번 보이지 않지만 마유미에게도, 아야카에게도, 신지와 고지마 사토코에게도 그 소년은 꽤 유명한 인물이다. 그리고 사건을 이어가는 하나의 연결점 역할을 하게 된다. 다카하시 신지와 많이 닮았다는 연예인 순스케 때문에 준코부인이 범행을 자백한, 명백해보이는 사건속에서도 독자들의 시선은 왠지 자꾸 '신지' 에게 모아진다. 그리고 아야카, 히스테리를 마구 부리는 어린 소녀, 그녀의 가슴속엔 어떤 상처들이 묻혀 있는 것일까? 엔도 가족과 다카하시 가족의 이야기들이 번갈아 진행되지만 그 사이사이 자신의 아들과 며느리에게 수다를 떠는 고지마 사토코 할머니도 꽤 인상적인 캐릭터이다.



 

아들을 멀리 보내고 홀로 살아가는 두 노인의 가정, 청춘 앓이 혹은 아야카가 말하는 '언덕길 병' 때문에 힘겨운 엄마 마유미와 가족의 문제에 방관자적 태도를 취하는 엔도 게이스케, 별 문제 없어 보이지만 재혼 가정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작은 트러블로 얼룩진 다카하시 가족. 세상 어느 가족을 둘러 보아도 서로 다를지는 모르지만 각자의 문제에 맞닥드리지 않은 가정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것을 얼마나 현명하게 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이자 노력이다. 더불어 가족의 문제는 다만 가족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이웃의 보살핌도, 따가운 눈초리가 아니라 그들을 어루만지는 따스한 시선이 필요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용서는 부모형제 사이에 쓸 말이 아니야. 서로 감정이 어떻든 가족은 언제까지나 가족이니까. 나도 이런저런 생각은 많지만 가족끼리 잘잘못을 따지고 싶지는 않아. ... 그래, 가족 안에서 일어난 사건에 타인의 판결은 필요 없어. 우리 가족만 사실을 알고 있으면 돼...' - P. 326 -

 

미나토 가나에, 이번 작품 역시 그녀 작품들에서 보여지는 공통점들이 엿보인다. 앞서 언급했던 '가족'이라는 이름 말고도 다양한 갈등과 고민때문에 힘겨워하는 '청춘'들이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시작부터 독자들을 짜증나게 만드는 아야카와 보이지 않는 고민을 가진 신지... 이들 청춘들의 고민과 아픔, 보이지 않는 열등감과 갈등, 그녀 작품속 다양한 청춘들의 고민과 그리 많이 다르지 않다. 더불어 고지마 사코토라는 인물로 대변되는 노인들의 '고독'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소녀'에서 보여지던 그들의 작은 목소리를 이 작품속에서도 찾게 된다.

 

<야행관람차>는 기존에 만나왔던 미나토 가나에의 전작들과는 조금 차별화된다. 미스터리라는 장르가 가지는 충격적 반전을 기대하던 독자들이라면 약간 밋밋한 작품이라 생각이 들수도 있겠지만, 가족 사이에서 벌어진 작은 사건 하나를 가지고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속속들이 파헤치고 들추어 묘사하는 그녀 특유의 섬세함에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나 같이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생생함과 강력한 흡입력 또한 빼어놓을 수 없다. 밋밋한 결말에 조금 아쉬울지라도 이번 작품에서 그녀가 담아내고자 하는 가족애와 진한 우정은 그 아쉬움을 뛰어넘는 특별함으로 다가온다.

 

'인간의 속마음을 해부하는 그녀! 미나토 가나에!' 이 표현이 너무 잘 어울린다. 다시금 6개월을 설레임속에 기다려야겠다. 같은 틀속에서 매번 새로운 무엇가를 꺼내어내는 그녀의 펜 끝에 모두가 다시 한번 주목하게 될 것이다. 그녀의 다음 작품은 아마도 'N을 위하여'가 될까? 5년후 자신의 대표작이 '고백'이 아니길 바란다는 그녀의 말처럼, 앞으로도 언제나 새로움으로 다가오는 미스터리의 여왕, 미나토 가나에를 꿈꾸고 기대해본다. 앞으로 수없이 많은 그녀의 '고백'을 기다려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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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의 미궁호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6
야자키 아리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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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같은 호텔을 배경으로 한 중년 남성 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바로 <앨리스의 미궁호텔>이다. 모두 다섯편으로 구성된 이 작품의 네번째 이야기이기도 한 <앨리스의 미궁호텔>은 호러 작가 구마노이 선생이 소설을 쓰기 위해 찾아간 그랜드 호텔에서 핑크빛 봉제인형 돼지돼지씨와의 만남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움직이는 봉제인형, '돼지돼지씨' 보고는 요괴라고 호들갑을 떠는 구마노이, 구마노이는 작품 마감기한을 얼마 남기고 앨리스의 토끼를 대신해 '돼지 벚꽃'이란 돼지를 등장시켜 독특한 이야기를 완성시킨다. 모두 돼지돼지씨를 만난 덕분이다. 구마노이가 썼다는 중년판 앨리스가 궁금하다.

 

'돼지 인형이다. 빛바랜 분홍색에, 쀼죽 튀어나온 코와 커다란 귀. 오른쪽 귀는 뒤로 젖혀졌다. 검은 구슬을 꿰매 붙인 점 눈. 그것이 테이블 끄트머리에 얹혀 있다.'

 

오랫만에 정말 즐겁고 행복해지는 작품과 만난듯하다. 맨 첫번째 이야기 '인형의 밤'의 주인공 '스기야마 오리'는 그랜드 호텔에서 만난 돼지돼지씨를 이렇게 묘사한다. 봉제 인형 돼지돼지씨는 '저는 기본적으로 손님 앞에 되도록 나서지 않기 때문에 저를 발견하실 수 있는 분은 정말 몇분 안 계시거든요.' 라는 말로 봉제 돼지가 말을 하고 호텔의 버틀러로 일한다는 황당한 설정을 아무렇게도 않게 설명한다. 봉제 돼지가 말을 하고 호텔 직원들을 교육한다. 조금은 황당하기도 하지만 책을 넘기다보면 그렇게 낯설지도 당황스럽지도 않다. 무슨 이유에서일까?

 

이야기는 이렇다. 작은 도시의 그랜드 호텔, (두번째 이야기속에서 주인공 아키미쓰는 이 호텔의 분위기를 '백악의 저택'이라 했던가? 어쨌든) 이 호텔을 방문한 이들이 만나는, 버틀러로 일하는 분홍빛 봉제인형 돼지돼지씨에 의해 '현실의 작은 상처와 고민'에 맞닥드린 이들이 위로를 받고 기적을 만들어낸다는 어찌보면 단순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돼지돼지씨가 누구에게나 보이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일상에서 삶에서 어떤 고민과 상처가 있는 이들의 눈에 보이는, 정말이지 환상과도 같은 키다리 아저씨의 모습이랄까? 각 단편 하나하나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서로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벚꽃 축제와 기념 연극, 돼지돼지씨라는 소재로 연결될 수도 있다.

 

갑자기 쓰러진 어머니를 위해 고향으로 돌아와 병원과 동생의 꽃집일, 집안일에 여념이 없던 스기야마 오리. 생활을 바꾸고 싶다던 그녀이지만 벌써 석달째 이렇게 정신없이 빡빡한 일상을 살아간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친구의 전화를 받은 오리, 그랜드 호텔에 근무하던 친구는 벚꽃 축제 20주년 기념 연극공연에 그녀의 도움을 요청한다. 그리고 호텔에서 만난 돼지돼지씨, 연출자인 스자쿠씨는 결정을 망설이던 오리에게 돼지돼지씨가 연극에 참여할 수 있게 설득해달라는 임무?를 맡게 되고... 첫번째 이야기 '인형의 밤'은 이렇게 돼지돼지씨와의 대화와 만남을 통해 오리는 그녀가 잊고 있었던 열정을 되찾게 된다는 내용을 그린다.

 



 

다른 세편의 이야기들도 이와 비슷한 구성을 갖는다. 여자친구와 호텔을 찾았다가 다투게 되는 '아키미쓰', 이혼한 후 떨어져 사는 자신의 딸 '쓰구미'가 벚꽃 축제 기념 연극에 참여한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도 연극 오디션에 참여하는 '우도 겐', 그리고 마지막 중년판 앨리스를 쓰게 된 '구마노이 선생'의 이야기까지 그랜드 호텔에서 돼지돼지씨를 만나 사랑을 되찾고, 잊고 있었던 딸 아이에 대한 사랑을 깨닫게 되고, 마감을 얼마 남기지 않고 소설을 완성하게 된다.

 

그들 뿐만이 아니다. 마지막 단편인 '작은 사람과 큰 하늘'에서는 각 단편속 주인공의 맞은 편에 서있던 등장인물들이 축제 기념 연극 '오셀로'를 보게 되면서 그들이 놓치고 있던 것들을 깨닫고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특별한 기적과 마주하게 된다. 앞선 네개의 단편들이 각자 주인공 한명의 시점에서 전개되었다면 마지막 이야기에서는 아키미쓰와 작년에 호텔을 찾았었던 가나에, 우도 겐의 이혼한 전처인 히로코, 구마노이 선생의 동료 작가인 도리우미씨, 오리의 남동생 요시나리, 쓰구미의 친구인 미쿠...등 번갈아가며 시점을 달리하게 된다. 이들 또한 축제 기념 연극을 중심으로 해서 모여 들고, 연극을 관람하게 되면서 소리없이 작은 기적과 마주한다.

 

핑크빛 봉제인형 돼지돼지씨는 어떤 초능력을 가지고 있거나 마법을 부리는 존재가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귀엽고 예쁜 핑크빛 봉제인형일 뿐이다. 하지만 그를 보고 만나게 된 사람들은 마법처럼 상처와 고민을 치유받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돼지돼지씨의 온화하고 따뜻한 말투와 행동에, 마음에 담겨져있던 온전한 자신들의 속마음과 고민을 털어놓게 되고, 비로소 홀가분하게 새로운 일상으로, 삶으로 되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우리 현실속에서도 그렇다. 진정한 친구는 고민을 털어놓는 친구에게 충고나 대처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조용히 친구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돼지돼지씨의 이런 행동이 바로 그들에게 기적을 만들어낸 것이다.

 

현실을 그려내면서도 환상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 작품이다. 돼지돼지씨를 만나러 그랜드 호텔로 달려가고 싶어진다. 역자 후기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이지만 돼지돼지씨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이 무려 열 두권이나 된다고 한다. 이 작품은 발행 순서로 볼 때 중간쯤에 위치하는 작품이라고 한다. 하지만 책속 단편단편이 하나의 이야기로도, 혹은 연결된 이야기로도 손색이 없는 만큼 순서에 구애받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비채의 블랙&화이트 26번째 시리즈이기도 한 <앨리스의 미궁호텔> 역시 다른 시리즈가 그랬던 것처럼 매혹적인 작품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너무나 따뜻한 책이다. 노오란 표지 아래쪽에 커다란 코를 킁킁 거릴것 같은 돼지돼지씨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현실의 고민과 상처를 가진 이들에게 위로와 기적과도 같은 행운을 전해줄 <앨리스의 미궁호텔>이 반갑다. 돼지돼지씨와 만나는 당신은, 자기 자신을 비어낼 용기를 얻고 사람과 사랑을 키우고 만들어나갈 기적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뛰어난 가독성,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구성, 독특한 소재와 따뜻한 이야기들이 읽는 이의 마음까지 편안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호텔 버틀러는 물론이고, 요리 선생, 아르바이트 산타, 형사와 찻집 종업원에 이르기까지 시리즈에서 다양한 직업으로 등장하기도 한다는, 귀여운 핑크빛 봉제인형 돼지돼지씨와의 또 다른 만남이 기대된다. 다음에는 어떤 모습일지, 또 어떤 행운과 기적을 선물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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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인간
아베 고보 지음, 송인선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절금지!' 표지를 보고는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바로 이 문구이다. 한껏 고개를 숙인 한 남자, 작은 상자속에 커다란 몸을 웅크린 이 남자의 모습은 몇년전 유행했던 '좌절금지'라는 모습이 떠오른다. 무엇이 그토록 힘겹고, 얼마나 힘들기에 작은 공간속에 자신의 몸을 꼭꼭 숨기려 하는 것일까? <상자인간>이란 독특한 제목도 인상적이다. 종종 코미디의 소재가 되기도하고, 어린 시절 로봇을 꿈꾸며 만들기도 했던, 최근에 노숙자들의 필수품처럼 되어버린 상자와 한 남자의 이야기는 이렇게 궁금증을 부풀리며 우리 곁을 찾아온다.

 

'이것은 상자인간에 관한 기록이다. 나는 지금, 이 기록을 상자 안에서 쓰기 시작한다.'

 

<상자인간>은 종이상자를 뒤집어쓰고 도시를 떠도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왜 그래야하는지, 무슨 이유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가운데, '나'의 시점으로 이야기는 쓰여진다. 상자 안에서 쓰기 시작한 상자인간에 대한 기록!이 이 작품의 전부이다. 상자를 만드는 법을 시작으로 현실이되고, 간혹 환상이 되었다가 꿈인듯, 독특한 구성을 띄며 이야기는 계속된다. 책의 중간 중간에는 부랑자, 행려병자... 들에 대한 기사들이 등장한다. '나'의 시각속에, 나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다가도 또 다른 이야기들이 드러나기도 하고, 작은 사진속 이야기가 들려오기도 한다.

 

이 작품의 저자인 아베 고보는 일본 현대의 대표작가로서 초현실주의적인 작품들을 통해 인간 소외나 정체성의 상실과 같은 현대 사회의 문제점들을 싶도 깊게 이야기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이런 실존주의적 작품들로 인해서 그를 일본의 카프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조금은 낯선 작가이기도 하다. 미스터리 추리 소설의 재미에 빠져 조금은 단순하고 가벼운 이야기들을 즐기던 시간이 많았기 때문일까? <상자인간>이 왠지 무겁고 어렵다는 느낌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가 없다.

 



1973년, 지금으로부터 거의 40여년 전에 출간된 이 작품은 이제서야 국내 독자들과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가벼움에 익숙해진 독자들의 평가가 어떨지, 초현실주의와 실존주의에 익숙치 않는 독자들의 평가는 어떨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상자인간'이 되어 도시를 떠도는 전직 카메라맨, 그가 상자에 써놓은 내용들이 이야기하듯 책속에서 넘실거린다. 너무 독특한 작품이다. 존재에 대한 새로운 해석, 상자라는 도구를 통해, 상자인간의 모습을 통해 그려지는 이 시대의 모습이 환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그려진다.

 

'나는 나의 추함을 잘 안다. 낯 두껍게 타인 앞에서 알몸을 드러낼 정도로 뻔뻔스럽지는 않다. 하긴 추한 것은 결코 나만이 아니다. 인간은 99퍼센트가 덜떨어진 존재다. 인류는 털을 잃었기 때문에 의복을 발명한 것이 아니라, 알몸의 추함을 자각해서 의복으로 감추려 했기 때문에 털이 퇴화한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런데도 사라들이 어떻게든 타인의 시선을 견디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사람의 눈의 부정확함과 착각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 P. 119 -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서 말하려는 바는 무엇일까?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상자인간>이 내포한 의미는 무엇일까? '상자인간'이란 말 속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지듯, 사회적 약자 혹은 사회 부적응자라는 의미가 그 첫번째일 것이다. 더불어 사회에 구속받기 싫어하는 사람들, 그들이 말하는 자유로운 삶 또한 '상자'속에 포함될 것이다. 또 어떤의미들이 숨겨져 있을까? 인간의 추함을 감추기 위해 굳이 상자를 뒤집어쓴 사람들, 또는 지금까지의 '나'를 버리고 싶은 욕망, 그리고 전혀 다른 '나'를 찾아가는 도구로서의 의미를 '상자', '상자인간'속에 담아내는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한없이 추한 인간이란 존재, 그 존재의 욕망과 추함을 벗고 자유와 또 다른 삶을 갈구하는 인간들의 모습이 책속에 담겨져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일본의 카프카 아베 고보의 이 작품을 통해 오랫만에 재미를 벗어난 '문학'을 만났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다소 난해하고 어렵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한번이 아닌 몇번 손 위를 내려오고 나면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아베 고보의 '실종 3부작'이라 불리는 '모래의 여자', '불타버린 지도', '타인의 얼굴'이란 작품들도 기회가 된다면 꼭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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