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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이름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27
루스 뉴먼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내 동생 곱슬머리 개구쟁이 내 동생~ 이름은 하나인데 별명은 서너개~ 엄마가 부를 때는 꿀돼지~ 아빠가 부를 때는 두꺼비~ 누나가 부를 때는 왕자님~ 어떤 게 진짜인지 몰라 몰라 몰라' 영국의 여성 작가 루스 뉴먼의 <일곱 번째 이름>을 펼치면서 문득 이런 동요가 떠오른다. 이 작품의 이름이 가진 내용과 이어질지 어떨지는 잘 모르지만... 문득... 기분 좋은 동요 한자락이 떠오르고, 표지가 전해주는 따뜻하고 독특한 제목도 시선을 사로잡고... '마지막 50페이지가 이토록 숨 가쁘게 넘어간 책은 없었다'는 스타 매거진 UK의 평가도 그렇고... 궁금함과 기대감으로 첫 페이지를 열어본다.
'토하면 어쩌지.' 산뜻한 표지와는 사뭇 다르게, 초반부터 강한 인상이 전해지는 살인 사건 현장이 그려진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영국의 명문 대학 케임브리지를 배경으로 연쇄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케임브리지의 여신이라 불리는 아만다, 그리고 일라이저와 준까지... 대학 캠퍼스 내에서 벌어진 이 참혹하고 잔인한 여대생 연쇄 살인 사건은 피해자 신체의 일부분을 가져가거나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등 잔혹함으로 언론과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다. 그리고 세번째 살인사건의 현장에서 발견된 두명의 학생이 있다. 올리비아 코스캐던과 닉 하드캐슬, 올리비아는 피 범벅이 되어 현장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고, 닉은 시체에서 흘러나온 창자를 되담고 있었다.
'메리, 헬렌, 반나, 주드, 켈리, 크리스티, 그리고 올리비아... 그중 어떤 것도 내 진짜 이름은 아니에요!'
스티븐 경감의 지휘아래 이 연쇄 살인사건 수사가 진행되는데... 사건현장에 있던 닉이 용의선상에 오르지만 별다른 혐의점을 찾아내지는 못한다. 사건 해결의 유일한 희망이자 단서인 쓰러져 있던 올리비아, 하지만 그녀는 그때의 충격으로 기억을 잃어버리고 만다. 스티븐 경감의 친구인 법의학자 매튜가 올리비아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치료를 맡게 된다. 올리비아는 가끔 알 수 없는 행동을 하기도 하고, 그녀가 떠올린 기억들은 그녀 주변의 친구들의 진술과 조금씩 차이를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올리비아의 내면에 숨겨져 있던 다양한 모습의 그녀!를 발견하게 되는 매튜 박사!
<일곱 번째 이름>은 '모중석 스릴러 클럽' 의 스물일곱번째 '이름'이다. 할런 코벤이나 딘 쿤츠, 제프리 디버 등 다양한 나라의 흥미진진한 스릴러를 소개해 국내 독자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브랜드인 '모중석 스릴러 클럽'의 선택을 받은 루스 뉴먼의 이번 작품은 '다중인격장애'를 소재로 한 심리 스릴러이다. 다중인격장애라는 소재는 많은 작품들을 통해 소개되어 독자들에게도 이미 익숙하다. 고전이 되어버린 '지킬 앤 하이드'도 그렇고, 국내 영화 '장화, 홍련'이란 작품속에서도 그렇다. '검은집'으로도 유명한 일본 작가 기시 유스케의 심리 스릴러 '13번째 인격'도 독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조금은 익숙한 소재속에 루스 뉴먼은 어떤 특별함을 녹여 놓았을까? 그것이 궁금하다.

''비틀린 날개'는 기생 곤충이다. 다른 곤충의 몸에 침입하여 숙주의 몸을 매우 능숙하게 의태한다. 숙주 곤충은 자신이 내부에서 점차 먹히고 있는 줄 깨닫지 못하고, 결국 외피밖에 남지 않게 된다. 다른 곤충들은 '비틀린 날개'가 안에 있음을 모르고 그 외피로만 상호작용한다.' - P. 192 -
국내에서는 <일곱 번째 이름>이란 이름으로 다가온 작품이지만, 이 작품의 원제는 '트위스트 윙(Twisted Wing)'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다. '비틀린 날개'정도로 해석되는 이 이름은 책의 중간에도 언급되듯 한 사람의 몸속에 가지고 있는 다중인격이 그 사람을 어떻게 지배하고 그녀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을 비틀린 날개라는 기생 곤충을 빗대어 쉽게 인식시켜주고 있다. 그리고 이렇듯 자신의 몸속에 기생하는 곤충이 만들어진 이유와 배경을 통해 서글픈 우리 사회의 현실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기도 하다. 더불어 다중인격이란 이름이 단순히 정신병적인 모습을 대변하는 것만이 아닌 현대 사회를 걸어가는 우리의 자화상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로 확대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작품의 배경이기도 한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범죄학과 심리학을 전공한 작가답게, 그녀는 사건과 그 해결사이에 전문적인 지식을 쏟아 놓는다. 치밀하고 섬세한 트릭과 복선, 사건의 재구성을 통해 독자들을 심리적 함정에 빠뜨리고, 예상치 못한 반전을 통해 어김없이 뒤통수를 후려 갈긴다. '들고 있으면 팔이 아프고 내려 놓으면 마음이 아픈' 사랑이란 이름처럼 이 책도 한번 들게 되면 망설임없이 절대 내려놓을 수 없는 사랑에 빠져들게 만든다. 한없이 잔인하고 한없이 서글픈 이 시대의 모습을 바라보는 독자들은 책을 내려놓으며 한동안 멍한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심리학 전공자답게 미묘한 감정들, 갈등과 긴장을 섬세하고 날카롭게 표현한 그녀만의 특별함은 익숙한 소재를 그 익숙함속에 내려놓지 않고 차별화된 재미와 긴장감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과거와 현실을 넘나들며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속에서 작가는 심리적 트릭과 치밀한 구성으로 쉴 새 없이 독자들을 밀고 잡아 당긴다. 그녀의 손아귀에서 독자들은 익숙함을 가지고 색다르게 느껴 갈 수 밖에 없는 것조차 그녀의 치밀한 계산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구성의 특성상 자연히 대화문이 많이 나오게 되는데, 인물들의 성격과 특성을 고려하여 말투나 화법에 한국어에서만 가능한 맥락을 부여하는 데에 특히 주의를 기울였다.'는 옮긴이의 열정 또한 책속에서 느낄 수 있는 특별함이다.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육아기생의 달인 뻐꾸기의 모습이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라는... 뻐꾸기는 다른 새들의 둥지에 자신의 알을 낳고 부화기생을 시킨다. 현실속에서 자신의 모습과 양심을 버리고 양면적인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이런 뻐꾸기와 닮아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뻐꾸기의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일곱개의 이름을 만들어 낸 것도 우리이고, 그 이름때문에 한없는 나락에 빠지게 된 것도 우리 자신이다. <일곱번째 이름>은 섬세하고 섬뜩한 심리 잔혹 스릴러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한없이 잔혹하고 한없이 서글픈, 익숙한 소재속에 빛나는 특별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녀의 잔혹한 고백에 그렇게 할 말을 잃고 그렇게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