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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 ㅣ 요시키 형사 시리즈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엮음 / 시공사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일본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작가 한 두명쯤은 꼭 가슴에 새겨둘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미치오 슈스케와 미나토 가나에, 이 두 작가의 작품 스타일을 최근 들어 가장 선호하고 있다. 일본 미스터리를 굳이 구분하자면 본격, 사회파, 신본격이라는 일종의 흐름처럼 나누기도 하는데... 이 두 작가의 경우는 아마도 사회파 미스터리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것 같다. 사회파 미스터리는 말 그대로 미스터리속에 사회문제를 내어놓는 장르라고 말 할 수 있다. 본격 미스터리는 영미 추리소설에서 영향을 받은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식이고, 신본격 미스터리는 본격 미스터리의 장르, 고전 추리소설로의 회귀를 원하는 작풍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신본격 미스터리의 창시자라 말할 수 있는 이름이 바로 '시마다 소지'이다.
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사건'을 사람들은 흔히 신본격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개인적으로는 아쉽게도 아직 만나보지 못했지만 이 작품을 만난 독자들의 평을 들어보자면 소위 '환상적'이라는 말로 밖에 설명할 길이 없을 것같다. 빠른 시일내에 이 작품을 만나 볼 것을 다짐하며, 시마다 소지의 또 다른, 환상적인 작품을 만나보려 한다.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라는 제목의 이 작품 또한 독자들의 평가는 환상적이다. 물론 일본 미스터리 소설사에 한 획을 그은 시마다 소지라는 작가와 그의 작품을 평가한다는 자체가 좀 우습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제서야 펼쳐보는 시마다 소지와의 첫 만남, 설레임과 기대속에 책장을 열어본다.
쇼와 32년 홋카이도의 한 야행열차에서 수수께끼 같은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열차 안에서 삐에로가 죽고 그 시체가 눈깜짝 할 사이에 사라진 기괴한 사건이 발생한다. 밀실 살인이라는 독특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로 시마다 소지는 초반부터 독자들의 시선을 꼼짝 할 수 없게 사로잡는다. 그리고 현재로 되돌아온 이야기는 도쿄 상점가에서 단돈 12엔 때문에 벌어진 살인사건으로 시선을 옮긴다. 부랑자처럼 보이는 노인이 상점 여주인을 칼로 찔러 살해한 것이다. 형사 요시키 시리즈중 한 작품인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는 그렇게 26년 동안 유아유괴 살인사건으로 교도소에 복역한 노인과 이 노인의 정체속에 숨겨진 잔혹한 역사의 그늘을 그려낸다.
요시키 형사는 이 단순하고 명확해 보이는 사건에 의문점을 품고, 노인이 복역했던 교도소를 찾아가 노인의 청체를 밝혀내려 한다. 요시키는 이 노인이 유아유괴 살인사건의 누명을 썼으며, 이 노인이 저지른 살인 사건과 과거 어떤 사건들과 연관이 있는지 과거속에 묻혀진 여러가지 수수께끼를 풀어내게 된다. 신본격 미스터리의 시작을 알린 작가답게 시마다 소지는 환상적인 느낌으로 분위기 띄우면서도 다양한 트릭과 기막힌 이야기 전개로 독자들의 혼을 빼어놓고도 남을 만큼의 재미를 선사한다. 단지 본격 미스터리가 지닌 재미에만 치우쳤다면 아마도 기존 시마다 소지의 이전 작품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의 또 하나 특별함은 바로 '본격과 사회파의 융합'이라는 점이다. '기발한 발상'을 통해 본격 미스터리의 재미를 녹여 놓았다면 과거 일본의 치부를 과감히 들추어내어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조선과 조선인들의 상처를 사회에 제시함으로써 본격과 사회파 미스터리의 특징을 멋지게 조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국가 권력에 의해 희생당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울부짖음에 귀기울이고 그것을 과감히 사회에 부르짖을 수 있는 용기가 그에게는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12엔과 연관된, 단순해 보이기만 한 작은 사건을 통해 역사의 어두운 그림자를 과감하게 꺼내어 놓는 작가로서의 양심을 가진 작가, 시마다 소지만의 특별함이 바로 이것이다.
'일단 유죄가 확정된 이상 많은 권위의 체면이 관련되고, 또 그것이야말로 질서 유지의 문제가 되니까 간단히 번복할 수 없습니다. 번복하려면 관계자의 죽음을 기다리든지 해서, 역시 질서 유지가 최우선으로 배려됩니다. 아니면 수인을 독방에 넣고 미치기를 기다립니다. 최대 다수의 이익을 위해 국가 권력이라는 폭력이 약자를 향해 행사되고 있습니다.' - P. 153 -
또 하나 빼어놓을 수 없는 매력 한가지! 이 작품의 주인공인 경시청 형사 요시키 다케시가 바로 그것이다. 잘생긴 외모에 정의로 불타오르는 열정적인 형사 요시키가 있어 이 작품이 더욱 재미있고 따스하게 느껴진다. 자신의 아픔이 있기에 다른이의 아픔에도 귀 기울일 수 있음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이 작품은 이미 일본에서 출간된 열 한편의 형사 요시키 다케시 시리즈중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된 작품이라고 한다. 그렇게 많은 작품들중에서 왜 이 작품이 가장 먼저 우리 곁을 찾아왔는지 책을 내려놓을 때쯤이면 아마 고개가 끄덕여 질것이다. 매력적인 요시키 형사의 또 다른 활약이 무척이나 궁금하다.
국내 독자들이라면 이 작품을 꼭 만나봐야 할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일본 미스터리에서 쉽게 찾을 수 없었던 우리 조상들, 과거 조선인들의 상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아니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는 상처에 대해서 작가의 용기와 열정이 배어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일제 강제 징용문제, 정신대 문제 등 아직까지 치유되지 못한 상처와 아픔들이 미스터리라는 장르속에서 되살아난다. 얼마전 가슴아프게도 홋카이도에서 지진이 발생했다. 그리고 어제 일본은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내용을 교과서에 실었다. 우리의 상처는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상처를 보듬어주려는 우리의 순수한 의도마저 왜곡하려 하고있다. 언제까지 철로위의 두 레일처럼 평행선을 그으며 달려가야 하는 것일까? 이 작품을 읽는 재미속에서 여러가지 물음표와 느낌표가 교차한다.
'나는 도쿄 변두리의 이런 지저분한 동네 한 모퉁이에서 점쟁이 간판을 걸고서 갖가지 슬픔의 목소리를 들어왔어. 그래서 나는 더러운 쓰레기더미처럼 보이는 이 도시가 실은 여러가지로 억압된 비명이 가득찬 소굴인 것을 알았지. 그래서 그때마다 항상 생각했어. 듣는 것은 이제 충분하다고. 그런 시대는 오늘로 단호히 끝내자. 이제 슬슬 누군가를 구해줘도 될 때야. - P. 518, 작품해설 中에서 -
슬픈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작가 시마다 소지! 그가 작가로서 지켜온 기본적인 자세, 그가 했던 말처럼 시대의 아픔, 역사의 상처를 이제는 끝내야 하지 않을까? 신본격의 창시자가 사회에 던지는 문제에 언제쯤 일본인들도 귀를 기울일 수 있을까? 본격과 사회파 미스터리의 융합이라는 새로운 시도로 독자들은 또 다른 행복에 빠져든다. 궁금하게 만드는 제목과 일본이란 이미지가 물씬 풍기는 표지, 재미와 의미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아낸 시마다 소지의 작품이들이 기다려진다. 형사 요시키 다케시의 매력적인 활약이 빨리 국내에도 많이 소개 되기를 희망해 본다. 하지만 먼저 '점성술 살인사건'을 만나봐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