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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남친
아리카와 히로 지음, 김미령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마주칠 인연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당신 옆에 나를 위한 자리가 비어 있나요?'
2009년 마지막 즈음에 만난 '사랑, 전철' 이란 작품이 떠오른다. 일본 오사카 지역의 사설 철도인 한큐전철, 이마지 선을 배경으로 그려진 이 따스하고 사랑스런 이야기들이 그 제목과 어울려 오래도록 마음에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사실 '아리카와 히로' 라는 작가의 이름은 스치듯 지나쳐 언듯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 지난 가을에 만났던 '백수알바 내집장만기'도 그녀의 작품이었지! 그리고 오래지나지 않아 그 이름을 다시 한번 마주치게 된다. <고래 남친>이라는 또 다른 애틋하고 잔잔한, 봄을 닮아있는 이야기를 통해서 말이다.
길고 차갑던 겨울이 드디어 봄의 따스함에 두 손을 들어버렸다. 눈이 온 세상을 뒤덥던 것이 엇그제 같은데... 어느새 하얀색 눈은 이미 투명한 물방울이 되어 봄을 알린다. 보슬보슬 내리는 봄비에 세상은 온통 푸르른 기지개를 펴기 시작한다. 한가지 안타까운것은 일본 원전 사고 때문에 방사능이 섞여버린 무서운 비, 안타까운 비라는 사실이다. 이 비와 함께 '봄이구나!' 라는 느낌을 한껏 느껴보고 싶은 우리의 마음을 조금은 움추리게 만든다. 그래도 봄비 내리는 4월, 한 편의 연애소설을 손에 들고 그 따스함 속에 빠져보려는 욕망은 그 누구도 막지는 못 할 것같다.
아리카와 히로의 <고래 남친>은 모두 여섯쌍 남녀들 사이의 로맨스를 그리고 있다. 한가지 독특한 점이 있다면 모두 일본의 군대?(일본 헌법상 일본은 군대를 가질 수 없지만...)인 '자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군대라고 하면 우리에게도 떠오르는 몇가지 단어들이 있다. 축구, 곰신(요즘은 군화?), 면회, 외박, 휴가... 사랑하는 연인들 사이에 커다란 간격을 만들기도 하고 더욱 애틋한 사랑을 꽃 피우기도 하는 그 짧지만 길기만한 시간, 우리에게 익숙한 이런 이미지와 이야기가 일본이란 나라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받아들여지고 전해지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일본은 직업군인제인 모병제 국가다. 우리는 징병제로 국민의 의무인 반면 자신들의 선택에 따른 군대라는... 이런 이유들로 해서 약간은 우리와 놓여진 상황이 다르긴해도... 군대라는 한정된 공간, 자유롭지 못하고 제약된 활동들 때문에 우리 군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랑 이야기들이 담겨지지 않을까 기대를 해보면서... 이야기속으로 들어가본다. 잠수함에서 근무하는 남자 친구를 무작정 기다리는 한 여자의 애틋함, 항공 자위대원과 항공기를 제작하는 여자의 로맨스, 군대 동기인 남녀 군인들간의 사랑, 탈영한 자위대원의 이야기, 여성 파일럿의 가정과 사랑... 짧지만 잔잔하고 애절한 그들의 유쾌한 로맨스는 군대라는 특정 공간의 깊이와 사랑이라는 일반론을 연결지으며 독자들의 가슴을 따스하게 어루만진다.

'나잇살 먹은 어른은 활자로 된 달착지근 러브로맨스를 좋아하면 뭐 안 되나!'
'활자로 된 달작지근 러브로맨스' 를 쓰고 싶다는 그녀, 아리카와 히로는 작가 후기에서 이렇게 소리쳐본다. 그녀는 자신의 작품을 '어른들을 위한 라이트노벨'이라 부르고 스스로를 '라이트노벨 작가'로 규정하고 있다고 한다. 라이트노벨은 소재가 굉장히 가볍고 흥미위주로 쓰여진, 젊은층을 노린 소설 장르를 말한다. 하지만 10대나 20대 연령 독자들을 대상으로 작은 문고판이나 만화풍 일러스트를 곁들여 흥미를 유발 시키는 라이트노벨과 그녀의 작품은 차별화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자신과 자신의 작품을 라이트노벨이라는 틀에 가두려는 그녀의 의도는 무엇일까?
그것은 굳이 문학이라는 틀안에 자신을 가두어 권위적이고 가식적인 작품 활동을 하고 싶지 않다는 그녀 자신의 의지가 아닐까 생각된다. 독자들과 보다 친근하고 자신만의 따스하고 색다른 이야기를 창조해내고 싶은 진정한 '작가'로서의 의지를 드러낸 것이 아닐까싶다. 그것이 바로 이 작품 <고래 남친>을 통해서도 보여지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연애 소설이라는 가벼움 속에서도 서로를 깊은 시선속에 가두고, 그렇게 가벼움으로만 내려놓지 않으려는 작가의 의도를 한 작품, 한 작품 읽어 내려가다보면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4월의 봄! 겨우내 입고 있던 무거운 옷을 벗어내듯, 머릿속 내려 앉은 먼지를 떨어버리듯, 조금은 가볍고 조금은 유쾌한 작품을 만나보는 일이 봄맞이 대청소처럼 이 봄에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이 아닐까싶다. 오늘처럼 비빗울이 흩뿌리는 날, 작은 창밖을 바라보며 커피 한잔에 만나는 로맨스 소설 한 권이 '아~ 봄이구나!'라는 느낌을 전해주기에 충분할 것이다. 너무 흔하지만 너무 익숙하고 너무 소중한 '사랑'이란 말! 당신에게 사랑은 무엇입니까? 누군가 그렇게 뭍는다면 당신의 대답은???
사랑에 대해서 자주 쓰는 말이 있다. '들고 있으면 팔이 아프고, 내려 놓으면 마음이 아픈 것이 사랑이다' 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들고 있을 수도 내려놓을 수도 없지만 이 작품 <고래 남친>에 담긴 이야기들속 그와 그녀들은 여전히 사랑을 들고 서있다. 팔이 아프지만 유쾌하게 마음을 풀어놓을 수 있는 따스한 행복을 만끽 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싶다. 깜빡깜빡 아리카와 히로라는 이름을 잊어버리곤 했다. 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이제는 더이상 잊혀지지 않는 따스하고 유쾌한 작가, 아리카와 히로를 기억하려 한다. 그리고 그녀의 '활자로 된 달작지근 러브로맨스'를 앞으로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