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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모험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3월
평점 :
'요즘엔 소중한 사람이 없는 인간이 너무 많아.' - 요시다 슈이치의 '악인' 중에서 -
'요시다 슈이치'라는 이름과 빼놓을 수 없는 제목이 있다. 바로 '악인'이란 작품이다. 2008년, 물론 그 이전에도 그의 작품과 만나고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지만 '요시다 슈이치'라는 이름을 머릿속에 각인시킨 작품이 바로 '악인' 이었다. 자신 스스로 '악인'을 '지금까지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대표작' 이라고 까지 말하는 요시다 슈이치... 오랫만에, 아니 처음으로 그가 들려주는 속 깊은 이야기들을 함께할 기회가 생겼다. 너무 친근하지만 자신의 속사정이나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던 친구처럼, 잘 알면서도 약간은 어색함이 묻어있던 요시다 슈이치와 조금은 가까워지게 된 계기를 이 책을 통해 얻는다.
<하늘모험> 꽤나 근사한 제목의 이 작품은 2년이란 시간동안 한 항공사의 기내 잡지에 연재했던 작품들을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한 작품이다. 12편의 단편소설과 11편의 여행 에세이! 요시다 슈이치라는 이름, 빼놓을 수 없는 '악인'이란 작품, 그리고 그의 여행담과 짧은 이야기들! 왠지 기대되지 않는가? 작가는 이 작품을 '한 달 늦은 일기'라는 표현으로 말한다. 한 달 늦은 일기... 요시다 슈이치가 꽤나 분위기를 잡으며 이야기에 날을 세운다. 이제 저 높은 곳에서의 모험을 시작해볼까? ^^
'악인'이 그랬던 것처럼, '최후의 아들'이 그랬던 것처럼, '랜드마크'의 그들처럼... 요시다 슈이치는 언제나 우리 사회의 주류와는 조금 동떨어진 가난하고 소외되고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시선을 가져간 작가이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 더 감동받고 깊이 있는 여운을 오래도록 간직 할 수 있기도 했다. 지금까지 만났던 이런 작품들과 그가 담아내던 소재와는 다르게 <하늘모험>은 조금은 가볍고, 조금은 상쾌하게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조금에 조금 더...
평범한 이들의 일상, 소소한 삶의 흔적들이 단편소설로 되살아난다.
한 연예인의 팬으로 도쿄로 상경한 미쓰코,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레스토랑의 점주가 되고 그가 열광했던, 하지만 지금은 인기가 시들해진 예전 그 연예인을 자신의 가게에서 만난다는 내용의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로 단편소설의 막이 오른다. 5박 6일의 스위스 여행, 지방 출장중 들른 선술집, 후배가 보내온 선물과 축제, 3박 4일의 홋카이도 여행을 나선 중년의 여성, 홍콩 유학생과 사귀는 대학생... 다양한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 여행을 닮은 삶의 이야기들이 소설같지 않은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한국 남자들은 축구랑 군대 얘기로 밤새 술을 마신다니까.' - P. 87 , [연인들의 식탁] 중에서 -
<하늘모험>속에서는 '한국'이란 나라에 대해서 꽤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연인들의 식탁'에서 비비안의 형부가 바로 한국인으로 나온다. 남자들의 축구와 군대 얘기... 이 정도라면 꽤나 한국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이 뿐만이 아니다.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는 실연당한 리카가 찾은 한국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그려진다. 에세이속에서도 한국은 계속 등장한다. '부산, 한국'은 부산 국제 영화제에 초청받았던 작가와 그곳어서 느낀 색다른 느낌들을 담았고, '뉴욕, 미국'과 '라볼, 프랑스'에서도 한국인 혹은 우리 문화의 색깔을 담아 그녀진다.
한국에 대한 요시다 슈이치의 관심은 아마도 소외된 계층에 대한 작가의 시선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일본이란 나라에서, 역사속에 묻혀, 상처받고 아픔받아온 재일동포들의 삶과 회환을 잘 아는 작가, 그가 관심 갖은 그들의 나라 대한민국. 그렇게 한국이란 나라에 대한 관심이 시작되지 않았을까 나름 추측해본다. 어찌되었건 그의 아름답고 자유로운 여행을 담은 이야기들속에, 우리나라가 아름답고 독특한, 매력적인 색깔로 그려져 뿌듯함과 함께 색다른 느낌을 전한다.
'낯선 사람과 내일이면 잊어버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다케이는 마음 편하고 좋았다.' - P. 45 , [선술집] 중에서 -
'여행' 이란 것이 그렇다. 지금까지의 나를 잠시 벗어 버리고 새로운 시간과 공간, 사람들 사이로 나 자신을 던져버리는... 그것이 바로 여행이 주는 묘미이자 특별함일 것이다. 낯선이들과의 즐거운 수다도 그렇고, 나를 모르는 사람들틈에서 거리를 활보해보는 느낌도 즐거울 것이다. <하늘모험>을 통해 직접 그 거리를 걷지는 못하더라도, 그 나라를 눈속에 담지는 못할지라도, 단편 소설속 주인공이 되고 요시다 슈이치의 눈이 되어 즐거운 여행을 꿈꾸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일상을 담담하게 그려내는 에세이란 것이 그렇듯, 문체가 부드럽고 간결하며 상큼한 맛이 느껴져야 진정한 에세이의 향기를 느낄수가 있다. 그렇기에 요시다 슈이치의 일상과 일상같은 짧은 단편들을 맛깔나게 번역한 이의 노력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이영미 번역가의 간결하면서도 일상의 향기를 풍기는 번역이 그래서 마음에든다. 요시다 슈이치의 '악인', '요노스케 이야기', '사랑을 말해줘'를 비롯해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 최근 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등 그녀의 대표작의 면면을 들여다보니 꽤나 유명한 번역가인듯하다. 사실 그것도 그렇지만 이분... 경력을 보니 우리 학교 동문이다. ^^ 뿌리뽑자 학연 지연.... ㅋㅋ
<하늘모험>은 요시다 슈이치라는 이름만으로 선뜻 집어든 작품이다. 오랫만에, 아니 처음 접하는 요시다 슈이치의 일상과 조금은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에세이로, 짧은 단편으로 조금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악인'으로 대표되는 개인적으로 너무나 거대한 작가 요시다 슈이치, 그의 작고 일상적인 이야기속에서 조금더 친근한 요시다 슈이치를 만나게 된다. 역시나 '악인'으로 대표되는 작가이기에 에세이의 마지막 '악인으로 돌아보는 여행'과 '악인을 만나는 여행'에 이르기까지 즐거움을 전해준다. 대중성과 작품성, 그리고 소소한 일상까지... 한국을 사랑하는 작가 요시다 슈이치와 이제 일촌? 정도는 되지않을까? 그의 끝나지 않은 다음이야기가 궁금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