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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드 세트 - 전2권 - 가난한 성자들 ㅣ 조드
김형수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2월
평점 :
공한증!!!,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말중 하나가 바로 공한증이다. 1992년 일본이 다이너스티컵에서 한국을 이길때까지 수십년을 이어온 일본의 공한증, 30년이 넘게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중국 축구의 공한증... 일본 축구는 1992년을 기점으로 자칭 한국 축구를 넘어 탈아시아를 외치고 세계무대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J리그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 유소년 발굴 및 지속적인 투자 등으로 성장하는 일본 축구를 보면서 부러움이 쬐끔은 드는 것도 이것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축구는 아직도 그들에게 공한증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탈아시아가 아닌 아시아를 대표하는, 아시아를 품고 세계로 나아가는 한국축구! 그것이 바로 일본과는 다른 특별함이 아닐까.
'탈脫' 아시아를 외친 일본, 그들의 이런 행보는 종종 아시아 축구인들에게 외면받기도 한다. 그 의미야 아시아를 넘어서 세계로의 도약을 의미하겠지만, 아시아의 축구 수준을 부끄러워하며 자신들은 이미 아시아의 수준이 아님을 강조하는 의미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신들의 축구 역사, 과거를 떼어놓고 현재를 이야기 할 수 없듯, 이런 일본의 행보는 그리 고운 시선으로 머무르지 않는다. 칭기스칸의 일대기를 그린 김형수 작가의 <조드>라는 작품의 프롤로그를 보면 이런 '탈脫'의 의미가 담고 있는 깊은 뜻을 이해하기가 더 쉽다. 그리고 그런 그의 말을 듣다보니 왠지 과거의 일본 축구가 떠오른다. 아시아의 시선이 아닌 유럽과 서구의 시선속에 내 맡겼던 역사가 아시아의 눈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칭기스칸이 말달리던 중세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어쩌면 조금은 엉뚱하게도 한참을 축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조드, 가난한 성자들>은 책의 겉모습까지 동양적인 작품이다. 전통이 깃들여있는 한지와 비단의 이미지를 닮은 띠지가 이 작품 <조드>속에 깃들여 있는 동양적인 감성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이 즈음에서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조드'의 의미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조드'는 쉽게 말해 우리가 잘 아는 '쓰나미'와 유사한 말이라 설명하면 좋을 듯하다. 섬과 바다 근처에서 발생하는 것이 쓰나미라면 '조드'는 대륙의 평원과 같은 건조지대에서 벌어지는 대재앙이다. 가뭄과 추위로 유목민의 생명줄인 가축이 죽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조드>는 테무진의 대몽골제국을 선포하고 대칸으로 즉위하기 이전까지의 시간을 그린다. 잿빛의 푸른 늑대족이 사는 나라의 전설같은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이야기를 시작으로 테무진의 친구이자 의형제, 영원한 라이벌인 자무카, 토오릴 칸, 그리고 테무진의 적 키릭툭 , 반려자인 버르테와의 긴박하고 험난한 여정이 두 권의 책속에 빼곡히 자리잡는다. 유목민의 삶, 그들이 맞서고 상대해야하는 자연의 힘, 다섯개의 화살로 나뉘어진 몽골제국을 하나로 만들어가는 대서사시가 동양적인 정서를 품고 그려져나간다.
3자 동맹을 통해 하나가 되었던 그들, 하지만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이라고 했던가 자무카, 타타르, 나이만 등은 함께 반칭기스칸 연합을 결성, 커져만가는 칭기스칸과 마지막 대결을 벌이지만, 그 결과는 몽골대제국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칭기스칸과 그의 푸른군대의 타타르 정벌을 비롯한 수많은 전쟁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중국 대륙과 유럽의 중세 역사를 뛰어넘는 색다르고 재미있는 초원의 서사를 그려낸다. 대전투라고 하면 유럽의 중세를 배경으로한 이미지들을 떠올리고, 삼국지에 머물러있었던 과거 아시아의 전쟁을, 스펙터클넘치고 생동감넘치는 초원을 달리는 칭기스칸의 전쟁영웅서사가 독자들을 매혹시킨다.
오논 강 찬바람 속에 우리는 서 있었지, 강물이 꽁꽁 얼어 꺼지지 않았어
눈에 불이 있고 뺨에 빛이 있는 친구, 나이 차이도 생각지 않고 둘의 고집도 잊은 채
우리는 서로 지문도 보여줬네, 나의 운명을 엿본 네게, 너의 문명을 보여준 내게
양의 복사뼈가 닳고 닳은 후, 늑대들 속에서 또 만났구나
흘러가는 물의 주인들, 빙빙 도는 강굽의 주인들,
불어대는 바람의 주인들, 누워있는 돌의 주인들께 비나이다
'물방울님게 비나이다'로 시작하는 환상적인 몽골제국의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서, 위에 씌여있는 초원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시적 언어들이 <조드> 전반을 감싸 안는다. 대제국을 건설한 영웅과 그 주변의 인물들의 일대기를 단순하게 그려낸 작품이 아니라, '문학'적 향기가 물씬 풍기는 사라지고 잊혀졌던 초원의 역사를 되살리려는 작가의 노력이 돋보인다. 시적언어로 중요한 순간순간을 담아낸 장면들, 시인이기도 한 작가의 역량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대서사를 단 두 권속에 담으려 숨가뿜이 아니라 섬세하면서도 여유 넘치는 대륙의 기개가 그만큼의 깊이로 느껴진다.
토템은 자신들의 핏줄을 보다 고귀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고안된 인류 최초의 이데올로기였다.
책의 초반 이런 말이 나온다. 이 말을 듣고는 문득 오늘 우리들의 현실 모습이 떠오른다. 자신들의 것이 최고라는 인식, 특히 한창인 선거판에서 자신들만의 주장이 옳다고 외쳐대는 모습들, 다른 이를 핍박하고 낯추어 자신이 옳음을 증명하고 주장하려는 세력들, 반복되는 레드 콤플렉스를 이용하는 이들, 이런 말도 않되는 이데올로기로 우리의 현재를 편가르고 왜곡하고 호도하는 이들에게 칭기스칸이 던진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을 가르쳐주고 싶다. 늑대가 가진 진중함과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푸른 하늘의 뜻, 중세에 이미 드러났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원칙들... 과거를 통해 현재를 새롭게 일깨운다.
'...불나비가 불을 보면 왜 달려드는 줄 알아? 마음이 춥기 때문이야. 모든 생명은 사랑을 빼앗기면 추워.'
곳곳에 드리운 짧은 대화속에 깊이 있는 철학이 숨겨져 있다. '초원의 삶은 눈이 생명이다.'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초원에 사는 이들의 시력은 도시에 사는 이들보다 훨씬 좋다고 한다. 거대한 초원, 자연과 함께 사는 법을 아는 유목민, 수많은 전쟁을 경험하고 배신과 상처를 겪으면서 다져지고 굳건해진 대영웅들의 인생철학이 책속에 녹아있다. 앞서도 언급했듯 단순한 영웅 대서사시를 넘어 문학의 향기로 새롭게 태어난 칭기스칸의 일대기 <조드>. 몇번을 다시 읽어도 다시금 만나고픈 '삼국지'의 영웅들과 같이 이 작품도 책장 한켠에 자리잡고 한동안 여러번 만나봐야 겠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초반 기존 작품들과는 다른 구성과 인물들로 어려움도 겪었지만 이 또한 기존 역사에 익숙한 한계를 뛰어 넘어야했던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칭기스칸의 고향, 몽골에서도 이 작품이 일간지 연재를 시작한다고 하니 그곳에서의 반응도 꽤 궁금해진다. 칭기스칸 이란 이름속에 가득했던 단순한 환상을 어느정도 구체화 시켜준것이 이 작품이 전한 커다란 선물이 아닐까싶다. 몽환적인 분위기, 상상력 가득한 그들의 전쟁과 역사... 칭기스칸이란 영웅이 건넨 역사의 향기가 아직까지도 몽고 반점을 간직한 우리들의 역사와도 연결되어 지금도 흔들리고 있는 우리의 뿌리를 되찾고 되살리는 계기가 되어주지는 않을까 하는 작은 욕심?도 생긴다.
작가가 10년이 넘게 몽골을 찾아 얻어낸 열정의 산물이 바로 <조드> '가난한 성자들'이다. 테무진의 어린시절과 유라시아 대륙을 평정하고 대칸에 오른 거대한 여정을 그려낸 이번 작품이 시작이라면, 작가의 바램대로 대칸이 되고 난 후 마지막 죽음에 이르기까지 대몽골제국과 함께한 칭기스칸의 시간을 끝까지 이어낼 수 있었으면 하고 기대해본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중세 역사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해준 김형수 작가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그를 버린 광야, 거칠은 광야를 품은 테무진, 그곳에서 그를 다시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