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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타라 - 상
후지타니 오사무 지음, 이은주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청춘' 그 화려하고 가슴 아픈 젊은 날의 추억! 누구나 한번쯤 젊음의 시간을 추억할때면 자신도 모르게 얼굴에 피어나는 작은 미소를 경험하기도 할 것이다. 아무리 아프고, 상처받고, 힘겨워하던 시간이었더라도 인간의 뇌는 고통보다는 아름다운, 아픔보다는 열정 넘치는 추억의 한 장면을 머릿속에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청춘의 모든 것은 실험이라는 말이 이제서야 조금 실감이 나기도 하면서 젊음이라는 것은 나이가 아니라 생각이 만드는 것이라는 이어령 교수님의 말씀으로 아직 내가 젊구나 하는 작은 안도 같은 것이 떠오르기도 한다.
오랫만에 동창 녀석들을 만나면 으례 학창시절 이야기들로 꽃을 피운다. 어떤 선생님이 이랬고, 그때 그 여학생들에 대한 이야기, 학교 생활에서의 작은 일탈, 청춘과 의리로 하나되던 그때의 이야기들로 어느새 그 아름다웠던 청춘의 시간이 현재로 되살아나곤 한다. 사랑이라는 말이 낯설기만 했던, 순수한 첫사랑은 지금 어떤 모습일지 친구들의 입과 입을 통해 흐르는 말은 어느새 귀로 붙잡아보기도 한다. 그 시절의 나는 지금 없지만, 그 시절의 나는 그 시간에 남아 흐른다.
그 시절의 나는 이제 없다!!
<배를 타라>라는 다소 철학적이고 여러가지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을것 같은 제목을 가진 두 권의 책이 쉴 새 없이 추억하게 만드는 젊음의 단어들을 우리에게 가져다준다. 현재의 나만 존재하고 사라져버린 그 시절의 나, 쓰시마 사토루! 그가 망쳐버린 젊음의 시간들이 담담한 색채로 그려진다. 거만하고 변덕스러운 부잣집 도련님, 자신의 아이에게 음악을 적극적으로 가르치는 엄마 덕분에 첼로를 켜게 된 사토루, 하지만 예고를 지원했다가 떨어지는 좌절을 겪게 되고 어쩔 수 없이 자신의 할아버지가 계시는 학교에 진학하게 되고 여러 친구들과 선배를 만나 새로운 음악적 도전을 계속하게 된다.

미나미 에리코! 운명적인 그녀를 만난다. 첫사랑의 그녀, 가난하지만 자신의 꿈을 키워가는 바이올린 소녀 미나미에 첫눈에 반한 사토루. 음악적 공감대와 다양한 음악 활동을 통해 그녀와 순수한 사랑을 키워가고, 나름대로 예대에 가서 바이올린과 첼로 듀오를 하자는 작은 목표를 세우는 등 그녀와 사토루는 나름 아름다운 음악적 협주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달콤하기만한 첫키스... 한없이 아름답고 화려한 시간들이 청춘을 채워나간다. 하지만 두 달이라는 사토루의 짧은 독일 유학을 계기로 모든 일들이 하나둘씩 삐걱대기 시작한다.
고통스럽고 달콤한 청춘의 한 악장이 흐른다.
<배를 타라>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는 사토루의 이야기이다. 상권에서는 초등학교 중학교의 시간을 통해 사토루의 가정환경과 음악을 가까이하고 첼로와 만난 계기, 그리고 예고에 입학하지 못한 작은 아픔, 하지만 새로운 학교에서 적응하는 사토루와 그의 첫사랑 미나미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아름답고 찬란한 청춘의 이야기들이 그 화려함 만큼이나 철학적이고 감동적이며 아름다운 선율이 담긴 음악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도덕의 지구도 둥글다. 도덕의 지구도 양 극점을 가지고 있다. 양 극점도 실존의 권리를 지니고 있다. 발견해야 할 하나의 세계가 있다. 하나 이상의 세계가 있다. 배를 타라, 철학자들이여!' - 니체 -
하권에서부터 청춘이 가진 좌절과 갈등이 서서히 떠오른다. 그 짧은 기간 떠나있다가 돌아온 사토루, 사랑하는 그녀 미나미는 왠지 자신을 피하기만한다. 그리고 그녀가 예상치 못한 임신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토루는 억누를 수 없는 분노와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패배감과 좌절은 자신의 정신적 지주였던 카마쿠보 선생님의 교직까지 잃게 만들고 자신마저 첼로를 놓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달콤했던 그들의 미래는 한 순간 어둠이 가득한 내리막길로 굴러 떨어져버린다.

후지타니 오사무! 이 작가의 작품은 처음이다. 음악과 영화학과를 거쳐 예술가들의 도시에서 서점을 경영하고 있다는 독특한 작가의 이력이 작품속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하다. 음악을 통해 시간적 흐름과 이야기의 전반에 활력과 생동감을 불어 넣으면서 이야기들이 눈속에 그려지듯 회화적인 느낌을 전해준다. 청춘의 이야기이니 만큼 선과 악, 극과 극을 넘나드는 이야기들이 차분하면서도 리듬을 타듯 음악적 선율로 흘러 넘친다. 그의 다른 작품들도 만나볼 기회가 주어진다면 좋을것 같다.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시간의 흐름은 오로지 인생을 쇠퇴시킬 뿐이라며 한탄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인생은 지금부터라든가 살다보면 좋은 일도 있다는 경솔한 말을 입 밖에 낼 정도로 살아오지도 않았다.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그 시절과 비교해서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됐다. 천천히, 그러나 끊임없이 파도에 흔들리면서 항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하권 , P. 368 -
배를 타라, 배를 타라... 청춘들에게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흔들리고 아파하고 좌절하면서도 인생의 배를 타라고 말이다. 단한번 밖에 오지 않는 청춘이기에, 모든것을 가능케 하는 청춘이기에, 실패조차 미래를 위한 성공을 위한 밑거름이기에 과감하게 배에 오르라고 말한다. 단순히 청춘이라는 것이 시간을 말하는 단어가 아닌것 처럼 지금 우리의 모습도 흔들리는 배를 탄 청춘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음을 작가는 말하는 듯하다. 한 권의 청춘소설을 넘어 작가는 과거의 나와 현재의 자신을 되돌아보는 특별한 시간을 건네준다.
지금도 시간은 흐르고 있다. 달콤하고 혹은 잔혹하기도한 청춘의 한 악장을 통해 어쩌면 지금도 내리막길을 걷는 우리들, 흔들리는 배를 탄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춰본다. 미래에 대한 불안, 현재에 대한 불만, 호기심과 상처입은 가슴, 짜릿한 사랑과 열정속에 묻어야 했던 아픔들... 지금도 흔들리는 배에 몸을 맡긴 우리들에게 그때 그 시간의 이야기는 또 다른 느낌과 경험으로 다가온다. 그 시절의 나는 없지만 나는 아직도 그 시절을 걷고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지금도 흐른다. 우리들의 배는 아직도 흔들린다. 청춘들이여 배를 타라! 배를 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