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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6월
평점 :
인류 멸망의 가능성, 아프리카에 신종 생물 출현!
미국의 대통령 번즈가 자리한 아침 브리핑에 등장한 보고서의 제목이다. 무심코, 지나치듯 넘기기 쉽겠지만 사실 이 보고서가 바로 다카노 가즈아키의 <제노사이드>의 주요 소재이자 전부인지도 모른다. <제노사이드>란 제목이 조금은 생소하게 들린다. 제노사이드는 쉽게 말해 '대학살'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종족간의 갈등, 그리고 그들이 자행하는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대량 학살과 참혹한 살생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인간의 잔혹성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 바로 제노사이드인 것이다.
제노사이드란 제목도 생소하지만 사실 개인적으로 '다카노 가즈아키'란 이름도 물론이다. '13계단'이 그의 작품이란 말을 들었을때 '아~' 하는 탄성이 잠시 흘렀을뿐.... 하지만 아직 그 유명한 그와 그의 작품들을 만날 기회는 없었다. 바로 이번 <제노사이드>와의 만남이 바로 그와의 첫만남인 것이다. 에도가와 란포상,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등 일본의 내노으라하는 미스터리 분야의 상을 휩쓴 다카노 가즈아키! 그리고 더불어 그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와 영화 또한 상당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작가! 그런 그를 이제서야 만나보려 한다. 작은 두근거림을 갖고...
이라크에서 민간 군사 기업에 고용되어 주로 요인 경호 업무를 맡고 있는 용병 '조너선 예거'는 윌리엄 라이븐이란 인물에게 한 달 동안의 특수 임무를 제안 받는다. 불치병에 걸린 아들 저스틴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얼마남지 않은 아들과 함께 할 시간까지 내놓아가며 선택한 임무, 아프리카로 향한 예거는 또 다른 세명의 대원들과 조우하게 된다. 그리고 임무 완수를 위한 특별 훈련을 받게 된다. 어린이 마네킹에 총알을 퍼붇는... 드디어 치명적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피그미 족을 죽이는 가디언 작전의 막이 오르고 예거 일행은 수많은 의문을 간직한채 아프리카 콩고로 발길을 옮긴다.
불치병에 걸린 아들, 그런 아들의 병원비를 위해 목숨을 건 임무를 맡게된 아버지. 조금은 신파 냄새를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시작부터 이야기는 흥미를 더해간다. 예거와 같이 조금은 궁금증을 갖고 그가 맡게 될 임무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인류를 멸망 시킬 수 있는 치명적 바이러스, 그것에 감염된 이들을 제거하고 미국인 과학자 나이젤 피어스를 제거하라. 그리고 그의 소형 노트북을 가져오고 혹시라도 낯선 미지의 생물과 조우하면 사살하라!' 여기서 두가지 의문점?? 왜 나이젤 피어스라는 과학자를 죽이라는 것이고, 낯선 미지의 생물이란 또 무엇인가? 음.... 이거 점점 흥미진진해 지는데...!!!
한편 여기 또 다른 한 사람이 있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게 된 약학 대학원생인 '고가 겐토'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큰일을 치르고 집으로 돌아온 겐토에게 죽은 아버지로부터 메일이 도착한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알듯 모를듯한 암호 같은 말들을 남긴 아버지. 다시 아버지의 집을 찾은 겐토는 아버지의 말을 따라 '아이스바로 더러워진 책'을 찾고 그 속에서 아버지가 남긴 메모와 거금이 든 현금 카드를 발견한다. 다시한번 비밀리에 진행하라는 말과 함께 도쿄의 한 아파트 주소로 안내하는 아버지의 메모. 기묘한 실험실에서 아버지가 진행하던 비밀 실험을 계속 하고 2월 28일까지 연구를 완성하라고 아버지는 지시한다. 그리고 하이즈먼 리포트!!!

686!!! 한손을 가득 채우는 두툼한 페이지의 <제노사이드>는 그 외형적인 무게 만큼이나 묵직한 줄거리를 가지고 쉴 새 없이 전개되는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와 과학과 철학을 넘나드는 디테일에 빠져들며 읽는 이를 책속으로 몰아세운다. 아들을 잃을 위기에 처한 한 남자와 죽은 아버지의 유언을 따르며 수수께끼를 풀어내듯 하나씩 실체에 다다르는 한 청년! 그리고 나이젤 피어스가 간직한 수수께끼는 무엇이고 '하이즈먼 리포트'에서 밝혀지는 인류 멸망과 겐토의 연구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언젠가 미국인 한 명이 너를 찾아 올 것이다.'라던 아버지의 유언... 그 주인공은?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랭킹 1위! 라는 측면에서 단순히 <제노사이드>를 미스터리라는 장르로 한정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단순한 상상 그 이상의 상상력을 보여준 SF 문제작이자 과학과 심리, 추리, 밀리터리까지 적절히 조합한 다카노 가즈아키의 필력에 처음이지만 감탄을 금치 못한다. 읽는 내내 이 작가 괴물이다! 라는 말이 입 끝에서 계속 맴돈다. 소설을 만나는 가장 즐거운 접근이 '재미'에 있음은 당연하다. 물론 나 조차도 너무 무겁거나 또 너무 가벼움을 경계하지만 어찌 되었건 소설에서는 재미라는 측면을 가장 먼저 꼽는다. 그런 의미에서 <제노사이드>는 정말 정말 강추라고 할 만하다.
재미를 가장 우선 꼽으면서도 이 작품이 더욱 인상적인 이유는 우리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성찰이 주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초인류를 대하는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한계! '어째서 우리는 인간끼리 서로 죽이고 두려워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하는 작가 자신의 자조 섞인 외침이 이 작품속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두려움을 극복하려 또 다른 인간을 서슴없이 죽이려는 미국의 대통령과 일본인들의 잔인함, 그리고 역사속 오류를 보여주는 듯한 용병 믹(미키히코)! 아프리카의 무장단체들이 보이는 인간으로써 감당하기 힘든 참혹한 현실! 작가는 이런 다양한 모습들을 통해 우리 사회를 비판한다. <제노사이드>라는 제목이 주는 섬뜩함으로...
그러면서도 아직 인간들의 가슴에 남아있는 휴머니즘을 끄집어 내는 수고도 잊지 않는다. 인간의 잔혹함에 혀를 내두르며 채찍을 가하다가도 공존과 인간적 삶의 희망을 여운처럼 꺼내어 놓는다. 처음 만나는 작가, 처음 접하는 그의 작품! <제노사이드>는 다카노 가즈아키라는 이름을 가슴속에 각인 시키는 정말 인상적인 작품이다. 미국, 일본, 그리고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하는 거대한 스케일, 과학과 심리를 디테일하게 그려내고 박진감 넘치게 풀어내는 구성, 예거와 겐토 그리고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의 활약상, 철학적 사고에 이르기까지 무엇하나 아쉬움이 없는 특별한 작품이다.
쓰네카와 고타로의 소설을 좋아한다. 그가 창조해낸 가상의 시공간, 색다른 세계관과 독특한 캐릭터, 무엇보다 그것이 그의 머릿속 상상력으로만 탄생한 것이라는데 감탄을 금치 못하기에 그의 작품이 좋다. 쓰네카와 고타로와는 다른 장르적 특성을 가지지면서도, 전혀 다른 세계와 상상의 세계를 그려내는 다카노 가즈아키, 다르지만 같은 느낌의 공존속에 그의 진정한 팬이 되어버린다. 이번 여름 굉장한 작품과 만났다. 지금까지 만나지 못했던 다카노 가즈아키의 특별한 이야기가 이 여름을 녹인다. 작은 두근거림으로 시작했지만 내 가슴은 지금 더 크게, 거대하게 요동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