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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 - 안도현 아포리즘
안도현 지음 / 도어즈 / 2012년 11월
평점 :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누구나 알고 있을 이 멋진 시의 아버지가 바로 시인 안도현이다. '너에게 묻는다'라는 이 시의 제목은 몰라도 이 시의 짧은 몇 귀절 정도는 온 국민이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요즘은 흔히 보기 힘든 광경인지도 모를 연탄재. 하지만 연탄이란 이름만으로도 가난, 추위, 겨울 나기라는 여러가지가 연상될 정도로 다양한 느낌이 전해진다. 그래서인지 겨울이면 한번쯤 이 시의 귀절을 읊조리게 되기도 한다. 그래...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말자!
요즘 가장 즐거 보는 TV 프로그램 중 하나가 'K팝 스타'라는 프로다. 굉장한 인기를 끌었던 '나가수'를 통해 가수의 존재감, 노래의 재해석이라는 의미를 깨닫고 감동 받았다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는 가수를 꿈꾸는 이들을 통해 노래의 순수함, 노래가 주는 감동, 노래를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다. 평범하게만 생각했던 노래에 대한 반란을 듣고 있다고 말해야 할까? 어쨌든 노래만 잘하면 되는 오디션 프로그램과는 분명히 다른 느낌을 전해진다.
갑자기 이런 오디션 프로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노래에 대한 재발견!을 그 프로그램을 통해서 했다면 우리 삶을 재발견 할 기회를 갖게 하는 책 한권과 마주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말라던 그를 통해서... <네가 보고 싶어 바람이 불었다>는 안도현의 아포리즘이란 부제와 함께 한다. 아포리즘? 이 말은 경구(警句)나 격언(格言), 금언이나 잠언(箴言)을 일컫는데 삶의 교훈이 담긴 간결한 글정도로 말할 수 있을것 같다. 안도현은 시(詩)나 에세이, 혹은 짧은 글로 우리 삶을, 우리의 사랑을,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 물구나무를 서야 바로 보이는 세상이 있는 것처럼, 뒤집어 놓았을 때 진실이 보이기도 하는 것. ... 단칸방에 살다가, 아파트 12평에 살다가, 24평에 살다가, 32평에 살다가, 39평에 살다가, 45평에 살다가... 문득 단칸방을 그리워하다가, 결국 한 평도 안되는 무덤 속으로 들어가 눕는 것. 도대체 삶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물어도 물어도 알 수 없어서, 자꾸 삶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되묻게 되는 것.' - P. 14 , 삶이란 무엇인가 중에서 -
삶이란 무엇일까? 나이 사십이 넘어서면서 가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새해가 밝아왔는데, 그러고도 벌써 한달이 지나가는데도, 별다른 감흥도 열정도 느낌도 없다. 끓어 넘치지는 않더라도 뭔가 불같지는 않더라도 허무하지는 말아야 할텐데...정해진 길을 달리는 기차, 정해진 길 밖에 달릴줄 몰라 안타깝기도 하지만(P.20) 사람들은 젊을때 그 정해진 길, 안정적인 길을 향해 청춘을 바치지 않는가? 누구나 타오를땐 나이와 시간을 잊지만, 세상을 반쯤 건넌 나이가 되면 서러움에 잠깐 젖어 보기도 하고, 그 서러움의 힘으로 살아가고, 또 살아가야 할 세상이 보이는 나이라는 그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P. 40)

'삶은 너무 가볍다'로 시작해서 이야기는 사랑으로 이어진다. 후회라는 의미보다 '사랑'이라는 풋풋한 의미로 '너한테 나를 잠깐 빌려 주고 싶은데...'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P. 83) 중년이라는 이름을 얻게된 요즘 개인적으로 그런 생각이든다. '아~ 사랑을 하고 싶다'라는...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사랑이 하고 싶다. 아내도 사랑하고 아이들도 사랑하지만 왠지 모를 공허함, 후회, 가슴 아픔이 있다. 익숙해진 일상과 사람들, 그 틀에서 벗어나 풋풋한 사랑을 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어떤이는 불륜을 저지르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은 녹녹하지 않다. 그렇기에 책이 전해주는 사랑은 더욱 간절하고 그 간절함을 넘어 다시금 현실의 지인, 가족들과 사랑을 나눌 수 있으리라 믿는다.
'... 적어도 사진관에서 정식으로 찍은 가족사진이라면 누룽지처럼 말라붙은 가난이 드러나지 않는다. 가족사진은 절대로 슬픔이 앉아 있을 자리를 마련해 놓지 않는다. 가족사진을 보면, 그래서 늘 흐뭇해진다. 빙긋 웃음이 나오게 만드는 것, 그것이 가족사진이다.' - P. 103 , 가족사진 중에서 -
'내 마음의 느낌표'는 가족에 대해, 추억에 대해 이야기한다. 얼마있으면 둘째아이 돌 사진을 찍으려 한다. 어느새 커서 걷기도 시작하고 아빠와 의사소통도 쬐끔 가능한 아이. 지금도 집에 걸려 있는 큰아이 돌 사진과 둘째가 태어나서 찍은 사진속 가족들은 언제나 밝은 웃음과 함께한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찍게될 가족사진도 왠지 기대되고 설레인다. 몇년후 바라보게 될 사진속 웃음이 기다려진다. 모든 사진이 미래에 대한 약속이라는(P. 111)... 추억의 소중함, 따스한 추억들. 다시금 깊히 박혀있는 추억의 앨범들을 꺼내봐야겠다.
어머니와 아내의 차이에서 웃음이 빵 터진다. 엄마는 이미 안계시지만 아마 지금 아내와 만난다면 이 글들을 통해 그 모습들이 고스란히 그려진다. 일탈! 일상에 대한 탈출. '고래는 왜 육지를 떠났을까'는 지금 우리가 걷는 일상이란 시간을 거스르라 말한다. 승용차가 아닌 버스를 타고 바라보는 세계, 미쳐 깨닫지 못하던 또 다른 세상과의 만남이 우리를 기다릴 것이다.
'... 고래는 왜 육지를 떠났을까? 간단하다. 고래는 육지에서의 삶에 지쳐서 바다로 간 것이다. 사람도 그렇다. 자신을 지치게 하면 어디든 떠나고 싶어진다.' - P. 173 , 고래는 왜 육지를 떠났을까 -
마지막 '그의 이름을 불러주자'에서는 왠지 김춘수의 '꽃'이 떠오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누군가에게 특별한 의미를 주는, 되어주는, 부여하는 이름을 불러주자. 누군가에게 특별한 의미가 사람이 되자. <네가 보고 싶어 바람이 불었다>속 작은 이야기들로 많은 이야기가 피어오른다.
가슴이 먹먹하기도 하고 삶이 허무하기도 한 중년 즈음에 이 작품을 만날 수 있어서 기쁘다. 아무리 바람이 세게 불어도 그것이 나의 시원함을 달래주지 못한다면 그건 슬픔이자 고통일 뿐이다. 하지만 살랑 불어오는 작은 바람에도 가슴이 설레이고 누군가가 떠오른다면 그 바람을 이미 바램이 될 것이다. 안도현 작가의 수많은 작품속에서 빛나던 문장들이 이 한 권의 책속에 담겨 진정한 별이 되었다. 그 별이 가슴 시린 이들에게 따스함으로, 엄마의 약손이 되어 상처를 어루만져줄 것이다. 오늘도 어디선가 작은 바람이 일렁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