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유령 열차 ㅣ 아카가와 지로의 유령 시리즈 1
아카가와 지로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12월
평점 :
유난히 눈이 많은 올 겨울이다. 지방 출장이 잦은 관계로 주말이면 집에 돌아가야 하는데... 어김없이 내리던 눈 때문에 어려움을 겪기 일쑤였다. 하지만 오랫만의 추억들을 떠올리는 예기치 않은 기회를 만나기기도 했다. 그것은 바로 기차에 관한 것이었다. 벌써 한 이십년전인가? 군대 생활을 하던 동안, 대전을 오가던 기차를 탔던 것이 아마도 기차에 대한 추억의 마지막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리고 이번 겨울, 많은 눈 때문에 의도치않게 타게 된 기차에서 아련한 추억들을 떠올려 보게 된다.
첫사랑과의 떠났던 설레임 가득했던 기차여행, 대학다닐때 정동진 해돋이를 보기 위해 탔던 동아리 MT, 군대에서 휴가를 맞아 집으로 향하던 기차까지... 기차라는 공간에서만 느끼던 특별한 정감과 분위기가 새삼스레 떠오른다. 하지만 오랫만에 탄 기차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갑작스런 폭설에 기차를 가득채운 인파 때문에... 힘겹다. 그래도 자리를 잡고 앉아 친구와 함께 맥주 한잔으로 추억에 잠긴다. 그리고 그 즈음 기차와 관련한 책 한권과 마주한다. 아카가와 지로의 <유령 열차>!!
'네, 승객은 분명히 여덟 명이었습니다. ... 이거 참, 이상한 일입니다. ... 승객 여덟명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우노 교이치, 경시청 수사 1과 4년차 경감. 이제 얼마후면 마흔이다. 보통 키에 보통 체격, 특별하지 않고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그에게 열흘간의 '휴가'가 주어진다. 언론에서 말하는 '유령 열차 사건', 승객 여덟명이 사라져버린 이 사건을 은밀하게 조사하기 위해 이와유다니 온천의 여행객 행세를 하라는 지시를 받게 된다. 이와유다니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유난히 눈에 띄던 젊은 여자, 우노 경감이 말하는 '이상한 나라 토끼' 여자와의 첫 만남이 아카가와 지로 시리즈의 유령의 운명적인 시작을 알린다.
온천 탈의실에서 예기치않게 이상한 토끼 여자의 알몸을 보게되는 행운? 을 만끽?한 우노 경감, 드디어 유령 열차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조사 현장에서 마주치게 되는 그녀, 그녀의 이름은 나가이 유코다. 스물 한살의 대학생, 문학부에 다니는 나가이 유코 역시 이번 유령 열차 사건을 조사하려 한다. 유코의 제안으로 삼촌과 조카 사이로 위장해 동행하기로 한다. 황당한 만남과 예기치 않은 작은 사건들로 우노 경감과 유코 콤비가 드디어 탄생하게 된다.

조금은 진중한 성격의 우노 경감, 활달하고 천진난만해 보이기까지 한 유코! 야마다 켄키치라는 열 살배기 남자아이의 증언으로 사건의 단서를 찾게 되고 예상치 못한 위협들 속에서도 유령 열차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게 된다. 이 작품 <유령 열차>를 통해 1976년 신인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한 아카가와 지로는 유코와 우노 경감 콤비의 활약이 돋보이는 유령 시리즈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유코와 우노경감의 만남부터 콤비가 되기까지, 스물살차이를 넘어선 사랑에 대해 개연성이 조금은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지만, 무겁고 어두운 미스터리보다 유머 미스터리에 가까운 재밌는 캐릭터를 가진 엔터테인먼트 미스터리를 떠올리자 그런 우려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20년이 훌쩍 넘어버린 작품인지라 읽다보면 이야기의 배경과 설정들이 어디서 많이 접해본듯한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사랑에 빠져버린 두 콤비,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이 미스터리 시리즈를 이끌어간다.
아카가와 지로는 국내에서 이 시리즈보다 '삼색털 고양이 홈즈 시리즈'로 더욱 인기가 높은 작가다. 개인적으로는 아직 만나보지 못했지만 미스터리 독자들에게 꽤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듯하다. 더불어 '스기하라 사야카 시리즈' 역시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다. <유령 열차>는 표제작 유령 열차를 비롯해 다섯가지 단편들로 구성된 작품집이다. 얼어붙은 태양, 비옷을 입은 시체, 선인촌 마을 축제와 함께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유괴범의 배신'까지. 평범한 외모의 베테랑 형사와 좌충우돌 하지만 날카로운 눈과 직관을 가진 여대생 콤비의 활약은 기분 좋은 미소를 띄게 만든다.
다작(多作) 작가로도 알려진 아카가와 지로의 다른 이야기들이 궁금하다. 삼색털 고양이 홈즈 시리즈는 어떤 매력을 전해줄지, 매년 한살씩 나이를 먹으며 매년 한 권씩 출간된다는 스기하라 사야카 시리즈의 주인공의 매력은 무엇일지, 유령 시리즈의 이 콤비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재밌고 유머러스하면서도 미스터리의 매력을 내려놓지 않는 아카가와 지로만의 색깔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짧으면서도 가독성이 뛰어난, 유머러스하면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캐릭터가 인상적인, 재밌는 아카가아 지로의 미스터리로 이 겨울이 행복하다. 더불어 기차에 대한 추억을 되살려준 것도 감사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