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조차 자극적이다. 내용도 역시 자극적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가장 자극적이었던건 이야기 말미에 들려주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반전이 아닐까?
표지를 장식한 전라의 한 여인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제목은 다소 애매하기 그지없다. <고충증> 도무지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는 제목이다. 책소개를 빌자면 '이루 말할 수
없이 음란하고 자극적인,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전율의 에로틱스릴러!'라고 말한다. 역시 자극적이다. 에로틱
스릴러, 신인작가의 다크 미스터리, 어쨌든 기대된다.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 초등학생의 딸을 둔 평범한 가정주부 마미, 그녀의 시선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평범한 주부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전혀 평범하지 않은, 음란하기까지한 그녀의 일상이다. 월, 수, 금, 오후 6시 20분부터 9시까지 일주일 세번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 섹스를
즐기는 주부. 그 일탈의 장소는 그녀의 동생 나미가 살던, 나미 명의의 예전 아파트다. 가족들 누구도 모르게, 이런 일탈을 탐닉하던 마미,
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이 벌어지고 만다.
월요일의 남자 다쿠야의 죽음! 다쿠야의 엄마란 여자가 아파트에 찾아오게 되고, 작은 혹 같은 것이 온몸에 퍼져 갑자기 쓰러져 죽었다는
다쿠야! 그 일이 있고 난후 마미에게도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파삭파삭파삭....'하는 소리가 언제부턴가 귓가를 맴돌기 시작하고 원인모를
복통과 함께 기생충 같은 것이 몸에서 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얼마전 자신과 섹스를 즐기기도 했던 누마타 역시 다쿠야와
비슷하게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된다. 그리고 모든것이 어긋나기 시작한다.
섹스 중독에 걸린듯한 마미의 이야기에 혼란스러워질때쯤 그녀의 동생 나미의 시선이 등장한다. 언니 마미의 남편, 형부를 남몰래 짝사랑하던
나미, 하지만 다른 남자와 이미 결혼을 한 그녀는 남편에 대한 애정이 없다. 남편은 그녀의 집에서도 다른 여자와 섹스를 하기도... 이건
뭐... 어쨌든 이야기를 점점더 강도를 높여간다. 언니 마미의 딸 미사코가 갑작스런 죽음을 맞게되고, 맞물려 마미 역시 행방불명되고 만다.
이상한 쪽지가 남겨진채... 미사코의 죽음, 마미의 행방불명, 그리고 나미의 남편 도시키의 자살! 미궁에 빠진 죽음과 진실들... 그리고 마지막
누군가의 시선으로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자극적인 이야기로 시작된 이야기에 살짝 지루해질 무렵, <고충증>이라는 제목을 연상시키는 죽음들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주인공 마미에게도 찾아오기 시작한 그 죽음의 그림자는, 바통을 이어받은 나미의 시선속에서 더욱 미스터리하게 그려진다. 실제 '다키모리 고충증'
이라는 사례가 있다고 하는데 그것조차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그것이 또 다른 소설속 트릭은 아닐지 생각되기도 한다. 어쨌든 이 고충증이라는
애매한 녀석 덕분에 책을 읽는 내내 독자들은 조금은 더 불안하고 불쾌하기도 하다. 하지만 결국 재밌다는 찬사를 내어놓게 될것같기도 하다.
"그러니까요. 욕망의 끝은 늘 공허한 늪 바닥 같죠. 그
늪의 바닥에 빠졌다가 다시는 밖으로 나오지 못한 남자와 여자를 얼마나 많이 봐왔는지 몰라요. 정말 그런 마음이 절절 하게 들죠. 하지만 욕망은
그나마 낫죠. 가장 무서운건 질투와 악의에요. 그건 정말 무서워요. 사람을 죽이는 무서운 흉기죠. 제 아무리 얌전히 살아도, 어디서 질투의
대상이 될지 알 수 없으니까요. 이른바 묻지마 살인 같은 거죠."
마미의 엄마, 장모를 찾아가는 다카오와 나미가 탄 택시의 기사가 했던 위의 말이 아마도 이 작품에 담고자 했던 작가의 말을 대신하는지도
모를일이다. 섹스, 욕망을 말하면서 고충증이라는 소재를 선택하고 있지만, 결국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것은 바로 인간이 가진 추악한 감정, 바로
'질투와 악의' 라고... 그리고 그것이 더욱 무서운 이유는 그것이 지닌 날카로움 때문이 아니라, 그 칼끝이
향하는 대상이 누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이 아닐까 하는데 있다.
마미의 시선, 그리고 나미로 이어지는 고독하고 뭔가 부족해보이는 현대인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 고독과 부족을 섹스로 충족하고자 하는 그릇된
모습들을 통해 작가는 우리 사회를 호되게 질타하고 있다. 하지만 작가가 말하려는 것은 역시 그런 섹스를 탐닉하는 '위기의 주부들'이 아니라,
질투와 악의로 또 다른 잘못을 일삼고, 여기저기 날카로운 칼을 휘두르면서도 자신들을 정당화 하는 이들에 대한 분노이자 외침이 아닐까싶다.
아무렇지도 않게 지껄여버린 말에 그 누군가는 상처받고 나아가 목숨을 버릴 수도 있다는...
색다른 소재로 시선을 사로잡았고, 섹스 어필로 충분히 감각적으로 다가왔지만, <고충증>은 단순히 자극적인 선택만을 하지는
않았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꺼내놓고, 우리 내면의 추악한 감정들을 사실 그대로 들추어낸다. 끈적끈적한 감정들로 지루해질때쯤, 새로운
사건과 미스터리한 사건들로 이야기는 속도를 더해간다. 사건의 실체, 범인이 이사람이겠구나 단정 지을때 즈음 예상치 못한 반전과 인물들로 색다른
재미를 전해준다. 마리 유키코와 <고충증>, 신인작가의 작품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만큼 매력적인 솜씨로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새롭다.
그리고 재미있다. 하지만 몇세까지 책을 권한까는 여전히 '고민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