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하! 그와의 만남이 어느새 20여년을 넘어서는 듯하다. 청춘의 사랑과 이별! 나에게도 그런 시기가 있었다. 그리고 그 아픈 사랑의
시간들을 되새김질하며 만난 이가 바로 이정하 시인이다. 그의 시속에는 사랑이 있다. 아니 그보다도 더 많은 이별이 있다. 그의 시는 이별을
이야기하면서도 영롱하고 찬란하다고 말해야할 뭐 그런 가슴 뜨거운 가슴 저림이 있다.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그 뒤에 숨겨진 이별, 상처가 그 사랑을
만드는 경험적 페이지랄까? 뭐 그런 찬란한 아픔 같은게 있다.
오늘 나는, 꿈꾸지 않고 잠들기를, 네가 없이도 깊이 잠들기를
바랐다.
이별을 베고 잠들면 사랑이
떠나갈까.
가끔 나는 소망한다. 너를 잊기를. 단1초라도 너에게 시간을
빼앗기지 않은 날이 있기를.
사랑, 그 마약 같은 중독에서 벗어나 내가 한없이
자유로워지기를. - 네가 없이도 -
<이 모든 것을 합치면 사랑이 되었다> 역시도 표지부터 사랑의 짙고 붉은 빛깔을 담고 있지만 그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랑보다 이별인 경우가 더 많아 보인다. '네가 없이도'라는 작품에서 '이별을 베고 잠들면 사랑이 떠나갈까'라는 표현이
너무 안타깝다. 청춘이 느끼는 사랑과 이별, 이별의 상처속에서 고스란히 담고 있는 바램, 이별후에 그, 그녀를 놓아주고 싶어하는... 아니
자신이 이제 편히 놓아버리고 싶어하는데 그것조차 쉽지 않은 그 모습이 청춘의 시간을 지내온 나에게 공감이란 단어로 다가온다. 그 쉽지 않음이
느껴진다.
이정하의 시들은 제목 자체가 아름다운 시어들이다. 가장 대표적인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는 말할 것도 없고, '사랑해서 외로웠다'
, '당신이 그리운건 내게서 조금 떨어져있기 때문입니다' , '혼자 사랑한다는 것은' , '오늘 그를 위해 눈물을 흘려 보아라' , '그대 굳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 '사랑하지 않아야 할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면' .... 제목만 들어도 가슴속에서는 소용돌이가 치듯 사랑의 상처들이,
오랜 그 시절의 아픔들이 되살아난다. 나쁜 의미로의 추억 되새김이 아니라 '그땐 그랬지' 정도의 미소 띤 상처들이랄까? ^^
이 작품은 모두 다섯가지 사랑을, 아니 이별을 그리고 마지막을 이야기한다. 1장 '사랑이 시작되다'와 2장 '사랑한다는 것은'
에서는....버스에서 만난 꿈에 그리던 그녀, 그녀가 다가온다 그리고 말을 건다. 그리고는 그녀의 친구가 나를 좋아한다고 만나보라고... 이렇게
얄궂은 사랑을 말하기도 하고, 후회를 남기지 않게 사랑에 용기를 내어보라고 말하기도 한다. 사랑을 시작하던 우리들의 오래전 시간과 지금의 시간은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을것 같다.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시작을 했으면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이야기는 조금씩 조금씩 깊어진다.
''' 그의 장점, 좋은 것들만 사랑한다면
그 사랑이 완전할 수 없다.
단점, 나쁜 것들까지 포용하고
사랑해야...
그의 좋은 면만 보는
것도
그의 단점을 감싸주는 좋은 방법이다.
시들고 있는 꽃에게
'너는 왜 시들고 있느냐'고 묻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시들고 있는 꽃을 사랑하는
방법은
그 꽃이 시들지 않게 물을 주는 일이다. ... -
'사랑은, 그 어둠까지 감싸는 일이다' 중에서 ...
-
3장 '길 위에서'는 사랑이라는 것과 함께 우리의 '삶'에까지 이야기를 넓혀간다. '사는 건 아마 이런 것일 거야. 외롭다는 걸 알아차리고, 그리고 그 외로움과 도란도란
사이좋게 지내는 일' 이라고 호박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꽃이 피고 나면 그 자리에 알찬 열매가 맺기 때문이라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 삶의 작은 단면들이 보여주는 가르침을 편하고 여유로운 문장들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솔직하고 그래서 솔깃하고... 그것이
사랑이건, 삶이건 말이다. 어쨋건 삶속에는 사람과 사랑이 모두 담겨 있으니까...
'이별을 베고 그리움을 덮고' 이제 그가 서서히 본색을 드러낸다. '그대는 사랑했다고 했고 나는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라는 제목처럼
이정하의 주종목 '이별'이 고개를 서서히 들어올린다. 요즘은 어떨지 모르지만 예전의 경험으로 비춰볼때 사랑노래가 귀에 쏙쏙 잘 들려오고 가슴에
비수처럼 꽂힐때는 바로 '이별'을 한 직후였다. 이별은 어쩌면 사랑의 또 다른 시작이다. 하지만 그 사랑했던 시간들을 잊는 일이 맘처럼 쉽지만은
않기에 사랑은 사랑으로 잊혀진다고 했나?, 그런 유행가 가사가 마음에 와닿기도 했던것 같다. 어쨋든 이정하 시인의 특기인 이별, 그리고 그
마지막이 4장과 5장에서 그려진다.
그의 문장들은 참 유려하다. 설레기도 하다가 어느새 가슴속 아픈 추억들을 콕 찝어 내 건드린다. 어쩌면 달달한 사랑보다는 새살이 더 빨리
돋아나도록 아픈 상처를 건드려주는듯 싶게도 느껴진다. 그토록 뜨거웠던 사랑이 식어내리고 그리움과 기다림을 견디고 견뎌 그 사랑에 덤덤해지게 하는
무언가를 담아낸다. 책속에는 다양한 에피소들이 등장한다. 아름다운 시어들도 가득하지만 추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시계바늘이 우리를 그 시간속으로
안내한다.
이별은 사랑의 씨앗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죽을만큼 아프지만 시간은 언젠가 그 아픈 상처에 딱지를 올리고 새살을 돋게 만든다. 이정하 시인의 작품들이
어쩌면 딱지와 새살의 그 시간을 만들어주는듯도 하다. 그리고 또 다시 사랑은 시작된다. 물론 SNS로 사랑과 이별은 통하는 요즘의 사랑은 조금은
빠른듯도 하지만... 어쨋든 사랑은 이별이라는 상처와 아픔을 씨앗으로 더욱 굳건하게 열매를 맺어간다. 하지만 그것이 끝인지 마지막인지 우리는,
아니 그 누구도 알수는 없다. 삶의 마지막까지 그럴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것 한가지는 있다. 이별, 상처, 아픔, 삶, 사람, 설렘, 추억,
그리고 사랑.... 이 모든것을 합치면 사랑이 된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