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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트르타-디텍티브 호텔.  

무려 70유로를 지불하며 간밤의 어둠속을 달려온 곳이다. 이 호텔은 각 방마다 탐정들의 이름이 붙어있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이를테면 '셜록홈즈 방'하는 식이다. 

이곳에서 두사람은 짧은 밤을 보내고 다음날이 밝자 서둘러 밖으로 튀어나왔다.  

아직 해결하지 못한 과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따. 바로, 한국으로 소포보내기!  

에트르타 역시 그동안 두사람이 지나쳐온 다른 도시들과다르지 않게 매우 청결하고 단정한 곳이었다. 숙소를 나서 골목을 잠깐 걷다보니 우체국이 다시 나타났다. 두사람은 결의에 찬 표정으로 그곳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마침내 한국으로 소포보내기에 성공했다. 물론 간단하지는 않았다. 여기서도 짐부피에 맞는 박스가 없어서 근처 문구점에서 박스를 구해 넣고 테이프로 포장을 하여 무게를 달아 배편으로 보내기를 시도한 것이다. 요금은 101유로!!!!!   

요금이 엄청났지만 두 사람은 '아 여기가 한국과 많이 멀어서 배편으로 보내도 이렇게 요금이 비싼가 보다..'하며 일단 짐을 덜었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얻기로 했다. 

그러나 9월말 여행 막바지, 파리에서 다시 한국으로 보내야 할 짐이 생겨서 또 한번 우체국에 갔을 때 두사람은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에트르타에서 그들이 보낸 짐은 배가아닌 비행기로 한국에 보내졌으며 책이외의 어떤 물건도 배편으로 보낼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그제서야, 한달여가 지나서야 에트르타에서 두 사람은 정말 멍청한 짓을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았으나 이미 소포는 비행기를 타고 3-4일만에 한국에 도착하여 (나중에 한국의 가족과통화하다 알게된 사실...) 집구석에서 여독을 풀고 있었다니!  

분명히 두 사람은 배편으로 보내는 요금은 그렇게 비싸지도않다는 정보를 이미 가지고 있었는도 그런 바보같은 짓을 저질렀다니...그러나 사실 그렇다고 해도 그 짐은 반드시 한국으로 보낼수밖에 없었으므로 비행기편밖에 안된다는 사실을 그당시에 알았더라도 뾰족한 수는 없었을 테지만 말이다.

그 일은 막상 현지에서 직접 부닥치다보니 긴장해서인지 , 아무리 대화에 능숙하다 해도 외국어를 해야 하는 이방인으로서는 의사소통에 분명한 한계가 있었음을 깨달은 사건이었다.  

어쩌면 여행이 후반으로 들어섰으니 그런저런 사정을 자세히 파악할 여유도 갖게되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낯선 곳에 도착하자마자 2-3일 안에, 아직 혀(불어사용이 능숙한 한사람의 혀)도 잘 풀리지 않은상태에서 우체국에서 소포보내기 미션을 시도했으니 그런 시행착오를 겪는 것은 당연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귀도 열리지 않고 혀도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충분한 의사소통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라고 두사람은 그저 위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어찌되었든, 미션을 마친 두사람은 그곳에서 꼭 둘러보아야 할  

 <Le Clos Arsen Lupin(아르센 뤼팽 별장)>으로 찾아갔다.  

숙소에서 나와 걸어서 멀지않은 곳에 그 별장이 있었다.   

모리스 르블랑은 유명한 추리소설 아르센 뤼팽 을 쓴 작가이다.    

1864년 루앙에서 출생. 유복한 도매상 집안에서 성장했다. 1880년 노르망디 전역을 자전거로 여행했는데 이 때 섭렵한 에트르타 절벽이라든가 쥐미에쥬 수도원, 센 강어귀의 여러 지역들, 생트-방드리유의 폐허들은그의 작품들에서 끊임없이 등장한다.  

고향이 루앙인 플로베르의 흉상 제막식에 참석한 수많은 쟁쟁한 작가들의 모습에 감명을 받고, 자신 또한 노르망디 출신의 유명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모파상을 열렬히 숭배하게 되었다. 

1905년부터 아르센뤼팽 시리즈를 발표하기 시작하였는데 1921년에 아르센 뤼팽 시리즈가 프랑스인의 애국심과 자존심을 크게 고취시킨 공로로 레죵 도뇌르 훈장을 받기도했다. 

또한 이때 에트르타에 전원 별장지를 구입해서 'Le Clos Arsen Lupin'으로 이름지었으며  이후로 현재까지 '기암성(l'Aiguilles creuse)'과 더불어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유명코스가 되었다.

 

 

 

 

 

 

 

 

 

모리스 르블랑이 존경해마지 않았던 '모파상'의 이 사진도 그 방 어딘가에 걸려있었다.  

 

  

뤼팽 별장 입구 안내/매표소. 이곳에서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다.   

 

별장 내부 여러 방들에는 모리스 르블랑의 자료는 물론 추리소설 속 주인공 아르센 뤼팽에 관한 많은 자료들로 채워져있다. 관광객들은 추리소설 속 배경과도 같은 여러 개의 방들을 돌아보며 모리스 르블랑과 아르센 뤼팽에 대하여 다시 한번 떠올려보는 의미있는 시간을 갖게된다.    

 

여러 개의 방을 지나던 중 어느 어둑한 실내의 소파 위에 실크햇과 망토가 놓여있다. 아르센 뤼팽의 트레이드마크인 실크햇과 검은 망토-언뜻보면 시공을 초월하여 그가, 그것들을 걸치고 앉아 자신을 보러 온 이들을 맞이하고 있는 듯. 작품 속에서 멋지게 활약하던 모습이 오버랩되는 듯했다.    

문학은 시간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정서에 의미있는 영향을 미친다.  

에트르타의 자연풍광은 또한 작가 모리스 르블랑의 상상력과 감수성에 커다란 의미를 미쳤음에 틀림없다.  

1941년에 세상을 떠났음에도 7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가 숨쉬며 거닐던 그  장소에는 그 자취가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프랑스, 적어도 에트르타 사람들에게는 모리스 르블랑과 아르센 뤼팽이 하나의 의미있는 역사에 다름아닌 듯 했다.  

깔끔하게 손질된 정원의 모습이며 관광객들을 위한 다국어 서비스(영어 불어 일어 스페인어 등 몇개국어로 해설을들을 수있는 헤드셋-오디오가이드)는 물론 관람 후 만나게 되는 기념품 상점까지도...어찌보면 돈벌이에 발벗고 나선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들은 분명 그곳을 찾아온 이들에게 자신들의 문화적 유산을 성실히 알리기위해 노력하고 있는것도 사실이었다. 

그곳에서는 물론 이후로 프랑스나 이탈리아 어디를 가더라도 유명한 관광지에서 오디오가이드를 받을 수 있는 언어중에 일본어가 있다는 사실은 두 사람에게는 당혹감과 충격이었다. 세계속에서 그들의 위상이나 국력 따위가 피부로 느껴졌다고나 할까.... 언제쯤 우리도 오디오가이드헤드셋으로 한국어 설명을 들을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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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람 2011-02-20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것 보라구, 내 '혀'가 문제였다기보단
그 우체국 할망구의 덤벙대는 설명이 부실한 탓이였다니깐두루....

그나저나 내 '혀'는 알코올이 쫌 들어가줘야 수울수울 풀리는데 말이야....


대자 2011-02-24 15:39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알콜이 들어가면 풀린다기보다는...글쎄...

한사람 2011-02-24 17:54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에혀... 하긴, 그것도 다 소싯적 얘기다...

alma007 2011-02-20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에르 바야르가 '셜록 홈즈가 틀렸다'에서 문학 속 인물이 현실과 허구를 넘나든다는 얘기를 다시 듣는 듯한 기분이네요.
 

 

몽생미셸에서 르아브르로 가기 위해  아침일찍 길을 나선 두사람은 중간에 르망이라는 도시에 잠시 머물렀다. 두사람이 타야할 기차 시간에 여백이 생긴것이다.  

그시간에 두사람은 우체국을 찾아나섰다.  

한국으로 부쳐야할 짐이 있었기 때문이다.....파리에 도착하여 몽생미셸로 출발하기위해 렌역으로 가던중 두사람은 각자 하나씩 매고온 매낭의 무게에 지치고 말았다. 여행을 시작한지 겨우 하루만에!! 그래서 렌역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전 지하상가를 지나다 발견한 가방가게에서 커다란 트렁크를 구입하고 말았다. 그리고 두사람의 배낭을 모두털어넣었던 것이다. 비로소 어깨를 천근만근의 무게로 짓누르던 고통에서벗어났으나 속을 토해낸 배낭들이 짐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어찌어찌하여 몽생미셸까지는 끌고갔으나 즐거운 여행을 위해서는 천덕꾸리기 배낭들을 얼른 떼내어버려야만했던것이다.....두사람은 마침 르망 역에서  잠시 남는 시간을 이용해 우체국에서 그것들은 한국으로 날려버리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우리나라의 지방 소도시 정도일것으로 추정되는 르망에서도 두사람은 깜짝 놀랐다. 거리가 너무 깨끗할뿐 아니라....새로 지은 듯한 역사도 너무 깔끔하고, 한국에서는 직접 본적없는 전차가 다니는것도 신기했다. 

 

두사람은 GARE DU MANS(르망 역)에서 커다란 트렁크를 끌고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우체국으로 찾아갔다. 화창한 날씨에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땀이 날 정도로 더웠다.  

두사람은 한참만에 겨우 우체국을찾아갔다. 그리고 기쁘게 한국으로 소포부치기를 실행에 옮기려했다.  

그러나, 일은 그렇게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규격 소포박스가 너무작아서 두개의 커다란 배낭을 넣기엔 불가능했던 것이다.  

 

한사람이 한국으로 소포를 보내는문제로 진땀을 빼고 있을 때 다른 한사람은 한국의우체국이나 우편취급소(출장소)의 풍경과 참 많이 달라보이는 낯선 지역의 우체국이 너무나 새로워서 두리번거리느라 바빴다는...   

결국 두사람은 땀흘리며 끌고 간 짐들을 그대로 또다시 끙끙거리며 르망역으로 돌아가야했다. 이제 곧 그날의 최종 목적지인 에트르타를 향해 출발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다시 르망역에서 기차에 오른 두사람은 파리의 몽파르나스역과 생 라자르 역을 거쳐 저녁 9시가 다되어서야 르 아브르 역에 내렸다.  

낮에도 호텔까지 길을 찾아가려면 정신이 없는데 한밤중에 낯선 곳에 내리고 보니 두사람은 거의 정신을 잃을 지경이 되어 버렸다. 그날의 최종 목적지는 에트르타였으니까.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두사람이 도칙한 시각은 겨우 밤 9시였는데도 에트르타까지 가는 버스는 이미 끊겨버린 것이었다. 하룻밤을 그곳에서 묵고 다음날 아침에 버스를 타고 출발하든지 아니면 택시를 타고서라도 그 밤 안으로 달려가든지 선택을 해야했다...두사람은 르아브르역에서 한참을 망설인 끝에 결국 후자를 선택했다.  

택시기사는 두 사람이 가려는 에트르타의 호텔 코 앞에 내려주고 무려 70유로라는 요금을 받아갔다.  

1유로가 1500원이었으니...70유로는 대체 얼마?!! 피같은 돈을 택시비로 날린 두사람은 그렇게해서 그날 밤 겨우 에트르타의 Detective Hotel에 무사히 들어갔다!  

...긴 여행을 성공하기 위해서는 매우 치밀한 준비와 계획이 필요하다고 한다. 두 사람은 비교적 열심히 꼼꼼하게 계획적으로 준비했따. 그럼에도 그들의 계획대로 모든 일이 돌아가지는 않았다.  

첫날 몽생미셸에서 들어갈 때도 렌역에서 그곳으로 들어가는 차를 놓치는 바람에 이리저리 헤매이다가 퐁도르송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다시 그곳에서 두사람의 숙소가 있는 몽생미셸 근처 마을까지 버스를 타고 그렇게 여러번 헤매면서 도착했던 것이다.  

그러더니 몽생미셸에서의 일정이 끝나고 에트르타로 가기 위해 나선 뒤에도 기차로 가닿을 수 있는 르아브르까지 가서는 다시 에트르타에 가야했는데 시간이 늦어진 바람에 버스를 놓치고 택시를 타는 돌발상황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 택시비가 가난한 여행자의 가슴에는 두고두고 아픈 추억이 되었다. 그러나, 두달여 시간 동안 트렁크를 들고 길 위를 떠도는 내내 겪은 수많은 일들은 그 하나하나가 모두 새롭고 의미있는 경험이 되었음에는 틀림없다.  

어두운 밤길을 낯선 이국땅에서 이방인 택시기사의 핸들에 운명을 맡긴 채 창밖 어둠을 응시할때...두사람의 가슴속에는 흥분과 설레임만 가득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 빠르게 스치며 뒤섞이던 감정과 상념의 조각들은 벌써 5-6개월이 흐른 이제까지도 눈을 감으면 아스라하게 사라져가는 기억 속 한 장면으로 자신들을 데려감을 느낄 것이다.   

그래서 여행이 끝나갈즈음, 고단한 여행자의 가방에는 어느새 추억만이 한가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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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람 2011-02-20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서로 피곤과 긴장 탓에 별것 아닌 일로 토닥거리고 싸운 걸 생각하면 ㅋㅋㅋ

아... 그래도 난 다시 그곳, 그 시간으로 날아가고 싶으이...

(나도 틈틈이 사진들 정리를 해야겠어. 어차피 한번에 시간 내서 통째로 처리할 수 있는 작업량이 아니니까.. 사진만 6천 장에 동영상 2천 건 ㅋㅋㅋ )




alma007 2011-02-20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를 가도 입국세를 치르기 마련이고 거기에는 그 목록에는 대개 예외없이 택시비가 포함되더라구요..ㅎㅎ 그래도 20년전 누가 그랬던 것처럼 택시비 정도가 아니라 택시강도를 만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세요~ㅋ

두두 2011-02-28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두사람은 여행내내 그나마 바보같이 강도를 당하거나 물건을 도둑맞거나 잃어버리거나 하지도 않았답니다. 다만 그정도의 택시비, 혹은 한국으로의 항공소포요금, 그리고 이탈리아로 넘어가는 기차를 타고 가다가 유레일패스에 탑승일자를 적지 않았다는 이유로 벌금 50유로정도 물었을 뿐이었으니까요...

젓가락 2011-02-21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집떠나면 고생이라지만 그노메 유럽은 버스가 너무 빨리 끊긴다는 점, 폐장시간 30분 전부터 나가라고 닭몰듯 쓸려나오는 점,, 약속한 시간도 더 전에 버스가 끊겨서 택시를 탔던 적이 한두번은 아닌 듯 그래서 그 담엔 나도 덩달아 서두르기 아님 한두정거장쯤은 걷기... 어차피 총들고 다니는 강도들도 없으니 꽤 괜챦음^^ 근데 사진 더 없으요?? 6천장 사진과 동영상은 어디에~~~

두두 2011-02-21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통틀어 8000여장의 사진들이 있지만 여기다 어찌 다 내놓으리요?? 누가 책내자고하면 거기다 좀 어케해보든가...ㅋㅋ할라구-

한사람 2011-02-21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두사람 얼굴 나온 것 중 재미난 게 많은데 두두님이 쪽팔려서 싫다네요....

젓가락 2011-02-21 17:50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ㅎ님이 쪽팔리신건 분명 아니죠?ㅋㅋ

한사람 2011-02-22 00:02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전 의외로 상당히 두껍습니다 -_-
 

  

북부 노르망디 해변에는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바위산이 하나 있다.  

원래 몽통브라고 불렸던 몽생미셸은 아브랑슈의 주교인 성(聖) 오베르가 이곳에서 대천사 성 미카엘의 모습을 보고 소(小)예배당을 세웠던 8세기부터 지금의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 바위산 전체가 몽생미셸 수도원이다. 수도원은 바다 가운데 있어서 바닷물이 들어오면 섬이 되어버린다. 그러다 1875년에 만들어진 퐁도르송방파제 덕분에 관광객들이 차를 타거나 걸어서 혹은 렌트자전거로 방파제를 달려 갈 수 있다.  

맨처음 방파제를 걸어 당도했을 때 놀란사실은 그 주변에 잡상인이 전혀 없다는 것, 그리고 쓰레기도 보이지 않았다는것, 문득 우리나라의 유명 관광지를 떠올렸는데, 유명사찰이나 명소의 주변에는 진입로에서부터 온갖 종류의 물건과 음식을파는 상인들이 먼저 관광객을 반겨주지 않던가. 

그후로도 프랑스의 곳곳 어디를 가든, 도시든 시골이든 매우깨끗하다는 점, 그리고 웬만해서는 잡상인을 보기 어렵다는 사실들이 특이했다.  

바위로 이루어진 산에 저렇게 웅장한 수도원을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두 여행자가 도착한 그곳은 8월중순인데도 북부지방이어서인지 추위가 느껴질 정도의 서늘한날씨였다. 8월이 한여름이라는 한국날씨만 생각하고 여름옷만 챙겨갔던 한 사람은 추위에 덜덜 떨다 못해 두꺼운 옷을 사입어야했다. 그곳 슈퍼마켓에는 날씨를 반영하듯 완전 한겨울 옷들이 즐비했다.  

그러나 아는 사람은 당연한듯 겨울 스웨터들을 준비해온다는...    

 

  

 수도원 외벽 아래쪽에서 올려다보며 찍은 아래 사진에 보이는 미끄럼틀같은 절벽은 무엇일까.

 

 이것은 바로 그옛날 수도사들이 수도원의 꼭대기에서 외부로부터식량 등 생필품과 물자를 공급받기 위해 이용한  장치로, 위에서 아래로 도르레를 이용한 승강기 레일이 설치된 통로였다고 한다.

예나지금이나 수도의 길은 멀고 험난했던 듯. 저바위산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해가며 돌을 옮겨가며 저 수도원을 만들어냈을것인가....수도원을 지은 이들 모두가 이미 수도자였을지도 모르겠다

 

 섬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솟아 있는 수도원 교회는 11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위압적인 신랑(身廊)과 플랑부아양 고딕 양식의 우아한 성단(1450~1521 지음)을 갖추고 있다.

수많은 관광객이 지나쳐가는 장소중 한 군데였지만 외벽만큼이나 웅장하고 아름다운 내부 한 기도소에서는 그런 것에 아랑곳없이 수녀님 한 분이 묵상중이셨다.  

오랜세월 전부터 그곳에서 신을 향해 기도하던 수도자들의 자세가 어떤 것이었을지 몸소 보여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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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람 2011-02-15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말 아름다운 수도원이었지... 그나저나 정리하는 필력이 역시 대단하이... 가끔 동영상도 올려봐요. 몽생미셸에서는 재미난 동영상이 좀 있는데..

한사람 2011-02-20 22:50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아참, 하나 빠진 얘기... 길에 똥도 많았다는 거...
염수가 빠진 목초지에 양떼를 방목하는데, 바로 그 녀석들 똥이였다지 아마...
향긋하기도 했지...

젓가락 2011-02-21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랑스 어딜가나 깨끗하긴 한데 똥은 많다는 얘기죠??ㅋ

두두 2011-02-21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아니라....바로 이 몽생미셸가는 방파제위 도로변에 양들인지 소들인지 모를 짐승들이 쓸고 지나가면 엄청 큰 똥덩어리들이 바닥에 쏟아져잇따는 거지. 몽생미셸만.
 

_그 먼    곳으로 출발 

20100816 새벽. 커다란 배낭 하나씩 짊어지고 두사람이 집을 나섰다. 

어둠을 가르고 집근처의 버스터미널에서 인천공항으로 가는 리무진버스에 올랐다.

설레임과 근심이 머리속에서 폭죽처럼 명멸한다. 

난생 처음 유럽, 그 먼길로 출발한다. 

중간 기착지인 홍콩에서 2시간남짓 기다렸다가 비행기를 갈아타는 수고를 마다않고 무려 18시간 20분이 걸려 당일 밤 9시무렵 두사람은 프랑스 파리에 도착했다.  

그렇게 오래, 그먼 하늘을 날아왔는데도 파리는 여전히 16일이라는 사실이 즐거웠다  

밤이 깊도록 공항 근처를 헤매다 예약해둔 숙소를 겨우 찾아들어갔다. 

프랑스 언어에 능통한 한사람, 막상 오랜만에 현지인들과 현지발음으로 대화를 하자니 영 난감한 얼굴이었다.  왠지 뜻대로 뜻이 통하지 않는듯....혹은 뜻대로 혀가 구르지 않는듯...

그 먼길을 달려온 그의 얼굴에 긴장감이 조금 스쳤다.  

긴 여행의 첫 피로를 공항근처 아담하고 포근한 호텔에서 잠시 털어내고,

 

두 사람의 길고 먼 여정은 다음날 본격적으로 시작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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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람 2011-02-15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돌아오자마자 생활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느라 그 값진 추억을 되새김할 여유가 없었네... 지금 이 글을 읽다보니 코끝이 왜 이리 찡.... 평생을 음미할 나날들이었어...

박성식 2011-02-20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무리 맛뵈기라도 감질나게 짧네...담 회부터는 시원하게 풀어보세요.^^

두두 2011-02-20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근이죠. ^^ 자주 들러주세요

젓가락 2011-02-21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프랑스 언어에 능통한 한사람이 혀가 제대로 구르지 않아서,,, 말이 안통해도 함 가보기라도 했으면.... 아무렇게나 찍은 사진도 바로 작품이 되는 그곳 유럽 내후년에 아들이랑 가기로 했는데 계획대로 잘 진행되길~~

두두 2011-02-21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안에 산다는 그분맞구만. 내가 아는!! 그래 다녀와라 대신 기저귀를 충분히 가져가든지 오줌참는 습관을 길러보든지...난아주 죽을뻔 햇거덩..화장실찾아다니느라고...

젓가락 2011-02-21 17:23   좋아요 0 | URL
난 잘 참아요~ㅋㅋㅋㅋ

다시 또 다시 2012-03-22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가고파라.......손붙잡고.....



 
꽃의 지혜 - 꽃에서 펼쳐지는 탄생과 소멸의 위대한 생존 드라마
모리스 마테를링크 지음, 성귀수 옮김, 조영선 그림 / 김영사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지난주 인사동에 갔다가 우연히 들른 갤러리에서

꽃의 지혜에 담긴 그림들을 구경하고

그곳에서 책도 구입하게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동안 차안에서

시간가는줄 모를정도로 책에 빠졌다.

꽃들이, 제자리에 붙박여살아야 하는 천형에도 불구하고

그들 나름의 생존의 방식을 터득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놀라웠다.

더구나 그러한 사실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그것을 우리네 인간사에 견주어

이야기하는 것에 대하여는 감동받지 않을 수 없었다.

꽃들이 번식을 위하여 얼마나 지혜를 짜내는지...물론 그것은

식물들의 발생학적 본능일 뿐이라고 단순하게 넘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꽃들의 지난한 노력의 과정이 자상한 눈길로 담겨있는

그 한권의 책 '꽃의 지혜'는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큰 삶의 진실을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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