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뜻대로 하세요 - 전예원세계문학선 306 ㅣ 셰익스피어 전집 6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신정옥 옮김 / 전예원 / 1990년 12월
평점 :
나의 노래여, 나뭇가지에 매달려 사랑의 증인이 되어다오. ..... 이 나무들을 수첩삼아 그 껍질에다 내 심정을 새겨 놓으리다. ..... 그 아름답고 정숙함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그녀의 이름을 모든 나무에 새기자. -p78, 3막 2장, 올랜도
낭만 희극으로 분류되는 이 작품은 1599년에서 1600년 경에 창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역사극과 비극 사이의 휴식기간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에 대해서 역자는 '감동적인 분위기로 우리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작품', '어둡고 냉랭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지 않은, 암울하고 황량한 분위기를 풍기지 않고 쾌적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극의 대부분은 아덴의 숲이라는 자연을 배경으로 주인공들이 사랑의 하모니를 이루어가는데, 인위적인 궁전이나 대저택에서 벗어난 이러한 배경 설정이 이 작품에 쾌적함과 상쾌함을 불어넣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의 소재는 토마스 로지의 <로잘린드-유퓨즈의 진주의 유문>이라는 산문 로맨스 작품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이 작품은 동생인 프레데릭 공작에 의해 성에서 쫒겨난 전 공작이 아덴의 숲으로 잠적하게 되는 것을 시작으로, 그 후에 프레데릭의 딸 실리어와의 친분으로 성에 남았던 전 공작의 딸 로잘린드가 쫒겨나게 되는 과정에서 실리어가 아버지 몰래 로잘린드와 동행하기로 하고 함께 집을 나와 아덴 숲에 거처를 마련하고 기거하게 되는 사촌간의 우정, 또 다른 형제 올리버와 올랜도와의 갈등, 올랜도와 로잘린드가 서로에게 사랑에 빠지게 되는 성에서의 숙명적인 만남과 아덴 숲에서 로잘린드의 남장으로 인해 두 사람 사이의 변형된 사랑 나눔, 로잘린드가 피비와 실비어스의 사랑에 얽히게 되는 이야기 등이 이리저리 얽혀서 사랑이라는 큰 주제를 이루고 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여느 희극에서처럼 이 작품에서도 여성인 로잘린드가 사랑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십이야>에서의 올리비아나 <베니스의 상인>에서의 포오셔보다도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작품의 주된 뼈대는 사랑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여러 남여간에 이루어지는 로맨스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러한 사랑이 결혼이라는 축복으로 맺어지는 과정은 숲이라는 배경과 어울려 상쾌하고 유쾌하게 진행됩니다. 이러한 면이 이 작품을 읽는 이나 연극을 보는 이들 모두가 역자의 평가대로 가슴 뭉클한 감동을 안고 책을 덮거나 극장을 나올 수 있는 힘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사려깊은 독자나 관객이라면 이러한 사랑이라는 주제가 주는 경쾌함에 덧붙여진 이 극의 이면에 담긴 몇 가지 요소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셰익스피어가 이 작품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는 또다른 메시지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풍요롭기는 하겠지만 배신과 음모의 음습함이 담겨있는 궁궐에서의 생활과 물질적인 빈곤을 겪지만 몸과 마음의 순전함을 유지할 수 있는 아덴 숲을 배경으로 하는 자연 속 생활의 대비를 통해 우리의 삶의 위치를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전 공작의 '이런 생활이 몸에 배고 보면 겉모양만 화려한 저 궁궐 생활보다 한결 상쾌하지 않느냐 말이오? 이 숲이 저 사악함이 가득찬 궁궐보다 위험성이 오히려 없잖은가? ..... 그리고 동지 섣달 모진 바람이 사납게 휘몰아쳐 살을 저미듯하고 온몸이 추워 오그라들 때에도 난 웃으면서 이렇게 의연하게 말할 수 있소, "이건 간신의 알랑수가아니라 진심으로 나의 참다운 위치를 가르쳐 주는 올바른 충신의 직언이다."라고.....'라는 대사를 통해서 나타나는 자연속에서의 삶에 대한 예찬은 곧 저자가 독자 -또는 관객-에게 하고 싶은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력의 한단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한가지는 광대 터취스턴과 전 공작을 따라 숲으로 들어간 항상 우울한 제이퀴즈의 대사에 담긴 삶에 대한 유모와 풍자, 비판이 주는 일깨움입니다. 사랑이라는 작품의 주제를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우리가 마냥 그 주제에 취해서 현실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현실의 모순과 냉혹함에 대해서 일깨우는 두 인물의 대사는 이 작품에서처럼 가슴뭉클한 사랑이라는 주제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을수도 있는 숨겨진 우리 삶의 진정한 일면을 진지하게 살펴볼 수 있게 해 줍니다.
아름다움을 준 여자에게는 정조를 주지 않고, 정절을 준 여자에게는 추함을 같이 준다니까. -p29, 1막 2장, 실리어
현명한 분네들이 바보짓을 하는 판국을 바보가 현명한 말로 해서 안되다니. 젠장 알고도 모를 일이군. -p31, 1막 2장, 터취스턴
역경이야말로 우리 인간에게 주는 아름다운 교훈이오. 이는 옴두꺼비를 닮아 보기 흉하고 독도 뿜지마는 그 머리에 귀한 보석을 지니고 있지 않소? 속세와 멀리 떨어져 온갖 사람들로부터 방해 받지 않고 사는 우리의 나날은 수목에서 말을 듣고 흘러가는 여울물을 책으로 삼고, 작은 돌에서 신의 가르침을 얻고 삼라만상 속에서 선을 발견하지 않느냐 말이오. -p49, 2막 1장, 전 공작
잊혀지지도 않습니다만 제가 어떤 여자에 반했을 땐 칼로 돌을 쳐서 부러뜨리고선 한밤중에 제인 스마일을 찾아가는 놈은 이렇게 작살을 내겠다고 외쳐댔습죠. 그리고 아직도 생각납니다만 그 처녀가 쓰던 빨래방망이엔 말할 것도 없고, 그녀의 곱싸한 손으로 짠 젖소의 젖꼭지에 입을 맞추기도 했습죠. 그리고 완두깍지를 그 여자로 생각하고 사랑을 하소연도 했으며, 그 깍지 안에서 알맹이 두 개를 꺼냈다가 도로 넣어서 그 처녀에게 준 다음 눈물을 흘리면서 "날 위해 이걸 지녀다오." 하고 말했습죠..... 정말로 참다운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란 묘한 미친 짓을 잘하나 봐요. 세상만사가 덧없듯이 사랑은 하면 모든 사람이 미련둥이가 되나보죠! -p58, 2막 4장, 터취스턴
이 세상 모두가 하나의 무대요, 남녀 모두는 한낱 배우에 지나지 않는다. 제각각 무대에 등장했다간 퇴장해버리고 하지. 그리고 살아 생전에 사람은 여러가지 역할을 맡아 하는데 연령에 따라 7막으로 나눌 수 있는 바..... 우선 제1막은 아기역 ..... 제2막은 개구장이 학동 ..... 제3막은 사랑하는 젊은이 ..... 제4막은 군인 ..... 제5막은 법관 ..... 제6막은 실내호를 신은 수척한 어릿광대 노인 ..... 파란 많고 기이한 인생살이의 마지막 제7막은 제2막의 어린아이랄까, 오직 망각이 있을 뿐. 이도 빠지고, 눈도 안보이고, 입맛도 없고, 세상만사가 허무하다. -p71-72, 2막 7장, 제이퀴즈
시간의 걸음걸이는 사람에 따라 다르답니다. ..... 시간은 어떤 분하고 걸을 땐 느리구 또 어떤 분하곤 종종걸음을 하구 또 어떤 분하곤 마구 달리는가 하면 누군가에게는 아주 정지하기도 한다 이 말입니다. -p90, 3막 2장, 로잘린드
남자란 청혼할 때는 화사한 사월이지만 일단 결혼하고 나면 눈보라 치는 섣달이지요. 처녀 역시 처녀 땐 따스한 오월이지만 결혼하구 나면 변덕스런 날씨가 되거든요..... -p119, 4막 1장, 로잘린드
"우자는 자신을 현인인 줄 알고 현인은 자신을 우자로 아느니라"..... 어떤 철학자는 포도가 먹고 싶자 입을 딱 벌리구 포도를 집어 녛었다지 뭔가. 포도는 사람이 먹기 위해 생겨났고, 입은 벌리기 위해 생긴 것이라는 거야..... -p134, 5막 1장, 터취스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