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06월 04일 04:08:44

오랜만에 들어왔네요...

딱 한달만인가...

너무 오래 비우면 잊혀질것 같은 두려움에 잠시 다녀갑니다..... ^^

 

5월은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울 성빈이가 만3살을 되었습니다...

하루 휴가내서 유치원에서 생일 파티를 간단하게 해주고 자전거를 선물해 줬어요.

조금 크긴한데 제법 잘 타기래 사줬는데 아무래도 브레이크 작동이 좀 무리가

따르네요... 할수 없이 빈 공터에서 주말마다 연습 시키고 있습니다.

괜히 사람많은데 가서 사고(?)치면 안되니깐....

나이도 한살 더 먹고 좀 더 어른(?)스러워지길 바랬지만 지나친 욕심이었음을

반성하는중입니다... 왜 그리 말을 안듣고 뺀질되는지...요즘은 아들인지 왠수인지,

귀엽고 이쁘다가도 속이 타기를 하루에도 서너번...

그나마 낮에 함께 못 있는게 났다고 느껴질 정도이니...

제 아빠랑도 무지 싸웁니다.... 예전에는 제 아빠밖에 모르더니 요즘은

엄마만 달 달 볶네요... 에구 에구.... 미운 세살이라는 말을 실감합니다...

 

울 선우는 14개월이 지났는데 어찌나 이쁜지...

여자아이들이 남자아이보다 빠르다는걸 실감하는 중입니다.

말귀 다 알아듣고 싫다 좋다 구분하는것 보면 어찌나 웃긴지...

아직 말은 잘 못하니깐 고개를 설레 설레 젓거나 끄떡입니다.

정말 알아듣는건가 궁금해서 몇번 실험(?)을 해 보았는데 진짜 정확히 의사표현을

하지뭐예요.  울 성빈이는 그 때 그렇게 의사표현이 정확하지 않았는데....

아빠 부를때의 목소리는 또 어찌나 애교스러운지 요즘 제 아빠가 껌뻑 죽습니다.

가지고 싶은것 먹고 싶은것 있으면 말로 못하니깐 아빠를 끌고 가서 달라고

합니다.

참 희안한게... 성빈이한테는 그리 장난치거나 하지 않았는데 선우한테는 장난치면

왜 그리 재미있는지 요즘 그 재미에 푹 빠져 있네요...

 

형제는 형제, 자매는 자매가 좋다고들 말하지만

그래도 부모 욕심이 둘 다 키워보고 싶다고들 하는데

요즘 그 말을 실감하는 중입니다....

아들은 아들대로 딸은 딸대로... 왜 그리 하는짓이 이쁜지...

헌데 재밌는건 성빈이는 인형을 다 눕혀놓고 놀기도 하는데

선우는 인형은 던지고 공구를 가지고 놀고 있으니...

아무래도 세째 낳으면 아들이겠지요.... ㅋㅋㅋㅋㅋ

 

아직 정해놓은 목표가 달성되지 않아서

여전히 방 나들이는 쉽지 않겠지만

다른 블로그에 자주 들락거리고는 있습니다.

자주 꼬리 안달려도 넘 섭해하지 마세요... ^^

 

이제 6월이네요...

푹푹 찌는 여름이 시작되는 모양입니다...

지난주 연휴부터 이곳 날씨는 80도가 넘어가고 있습니다.

갑작스런 더위와 환절기에 감기들 조심하고

모두 건강하세요....

 

빈방에 들어와 좋은 글, 그림, 사진등 남겨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언제나 행복과 사랑이 넘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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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03월 19일 05:43:25

3월14일 많은 사람들의 추카속에

우리 딸 선우의 돌 잔치를 무사히

맞쳤습니다.

 

어떻게 날짜가 딱 맞아 떨어져서 진짜 생일날 잔치를 할수 있게 되었는데 

그것도 제 복이겠지.... ^^

장소도 떡도 풍선도 큰애와 같은 곳에서 다 준비를 했다.

나중에 비교하면서 따지고 들면 골치

아프니깐 아예 똑같이 해버리리긴

했는데...

 

변한게 있었다면 아이들이 많아지다

보니 (장장 20명 남짓) 이번에는 광대를 따로 불러서 아이들이

놀게 해주고...

큰애 때 케익을 안먹고 버리는것 같아서 이번에는 케익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 좀 다르긴 하지만......

설마 그거 가지고 나중에 시비 걸지 않겠쥐.....^^

한번 경험이 있으니 준비하는데는 생각보다 수월하고 빠르게 진행이 된것 같다...이래서 경험이 중요한걸 새삼 다시 실감했지만....^^

 

성빈이는 돌잡이할때 무조건 돈이 일순위였는데 뺏어도 다시 돈

뺏어다 놔도 돈...

그후에야 연필을 잡았던것 같다....

헌데 울 딸내미는 처음에 무시하고 옆으로 걸어가는것이 아닌가....

앞에다 다시 데려다 놨더니.. 가운데 있는 돈은 쳐다도 보지 않고

연필을 하나 잡아서 바로 걸음을 옮긴다.... 욕심이 없는건지...

우리집 애들은 왜 한꺼번에 잡지를 않는걸까????

다시 가운데 데려다 놓으니 그냥 쳐다 보다가 다시 걸음을 옮기고 제 자리 데려다 놓으니 용감하게 실을 잡아 들고 옆으로 잽싸게

빠지는것이 아닌가....   주위에서 한마디들.... 네 엄마 생각해서 돈

좀 잡아라..... 에구... 들킨 기분이다... ^^

그래... 공부든 뭐든 열심히 해라....

헌데 왜 돈을 안잡으면 이리 서운한 맘이 드는 껄까...... ㅠ.ㅠ

하긴 네 오빠가 열심히 돈 잡았으니 네 뒤는 봐주겠지.....

 

그래도 다행인것은 큰녀석이든 작은녀석이든 그 힘든 잔치를 하면서 보채거나 울지 않아서 어찌나 고맙던지....

큰 녀석은 돌 잔치 할때 가만 있지 않고 여기 저기 돌아다니느라... 솔직히 편했는데 울 딸내미는 엄마 품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아서 계속 안고 있는라 좀 힘들었던것 같다.

거기다 낯까지 가려서 다른 사람이 안아주지도 못하고.....

확실히 예민한 딸보다는 이럴때는 아들이 훨 수월한 기분이 든다.

 

잔치도 무사히 마치고 이제 큰일은 다 치룬 느낌이다...

잔치집에 온 집들을 보니 아직도 돌 상 받아야 할 아그들이 여럿!

2세 계획적인 집이 또 여럿! 앞으로 한 3-4년은 돌집을 열심히

?아 다녀야 할것 같다..... ^^

 

그래도 이 만나기 어려운 미국 생활에서 이렇게 만날수 있는 매개체가 있다는건 참 좋은것 같다....어찌보면 결혼식보다 더 맘 설레고 뿌듯한것이 아이들의 돌 잔치가 아닌가 싶다...

건강하고 열심히 자라준다는 의미이니 그것만큼 기쁜 일이 또 있을까....

 

선우야 한살 된것 정말 추카하고 그리고 건강하게 자라줘서 고맙고

앞으로도 우리 성빈이 선우 건강하고 밝게 자라주길 엄마, 아빠는

간절히 바란단다....

 

사랑해요.. 우리 아기들....

 

울 선우를 위해 추카해주신 모든 분에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건강하게 키우겠습니다....

 

사진은 나오는대로 올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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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02월 27일 17:36:52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왜 이래야 되나

싶다.

처음에는 잘 도와주고 먼저 알아서 해주던 일들이 이제는 말을 해도 도와주질

않으니....

아이들은 잘 봐주고 잘 놀아준다....

헌데 그것도 잘 해주다가도 어쩔땐 알아서 해주는것이 아니고 몇번 얘기를 해야지만 마지 못해 움지이는게 보일정도이다.....

 

나도 일을 하고 집에 오면 저녁하고 아이들 뒤치닦거리에 왠지 힘들고 지치기는

마찬가지인데.... 우리 신랑 자기는 설것이는 정말 싫다고 해서 그건 되도록 도와달라

소리 하지 않는다.... 그치만 쓰레기 버리는건 항상 해주던 일인데.... 그냥 쌓아놓고

보다 못한 내가 갖다버리고...

집에 오면 요즘은 도대체 뭘 도와준다는건지 알수가 없다....

제 아빠만 찾던 아들녀석도 커갈수록 엄마만 찾아대고

아들이든 딸이든 잠잘때는 함께 놀아주던 아빠도 싫단다...

나보고만 재워달란다.....

집에 와서 이렇게 컴을 만지는 시간은 12시가 넘어서나 가능하고....

피곤한 몸 그냥 자자니 나를 위해 한 시간은 하나도 없는것이 억울해

이렇게 한소리하고 있다.....

 

오늘은 너무 견디다 못해 남편한데 소리를 질렀다....

자기! 도대체 왜그래....

맨날 한다 한다 하면서 도대체 왜그러는거야....

너무 화가 나고 열이 난다..... 쌓여있는 쓰레기를 갖다 버리면서 마음이 답답하다.

그넘의 고집을 알기에... 건딜면 왜 그런 곤조를 부리는지...

꼼짝도 안하고 들은척도 안한다... 정말 밉다....

둘째가 신발을 가지고 놀고 있는데.... 너무 화가나서 아이의 손등를 때려줬다...

만지지 말라고 했잖아... 아이가 옆에서 그러고 있는데도 쳐다도 보지 않다니...

정말 짜증난다!  아이는 엄마가 화를 낸것에 서러웠는지 울어댄다....

방으로 따라오더니 이번에는 공기 청정기 스위치를 만지작 거린다...

다시 손등을 때려줬다.... 좀 아팠나 보다... 아이가 서럽게 울어댄다...

아이가 잘못을 하긴 했지만 돌도 안된 아이한테 화풀이 할 일은 아닌데....

남편에 대한 화가 아이한테로 옮겨갔던 모양이다....

아이를 안았다... 그렇잖아도 감기때문에 몸도 안좋은 아이에게 넘 한것 같아

품에 꼭 안아줬다... 아이가 푹 안겨서 계속 어깨를 들먹인다....

만지지 못한게 문제가 아니였다... 엄마가 자기를 야단친것이 서러웠던 모양이다....

가슴에 매달려 떨어질줄을 모른다....

아이을 한참 가슴에 안고 있으니 화가 가라앉는다....

예전에 비해서 화가 오래 가지는 않는다...

아이 약을 먹이기 위해 신랑에게 약을 먹이라고 했다....

아이 약을 먹인다.... 자연스런 대화....

결국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풀어나간다....

오늘 일 보느라 운전을 많이 해서 다른날 보다 더 피곤할 남편을 안다....

그치만 왠지 이런날은 내 몸도 많이 지쳐있으니..

이해하려고 해도 왠지 억울한 생각도 드는건 어쩔수 없는것 같다....

일도 내가 많이 하고 아이들한테 시달리는것도 내가 더 많이하고 가사 부담까지...

언제부터 그리 게을러 지고 있는지...이제 결혼 4년차가 지났다.. .횟수로는 6년인데..

살면서 변해가는 모습을 벌써 봐야하는걸까..... 앞으로 살날이 더 많은데...

얼마나 많이 변해갈려고 저렇게 하나 싶어 서글프다....

 

남편이 밉고 화가 나다가도....

컴 하는 마루라 옆에서 쭈꾸리고 자고 있는 남편을 보면 불쌍하고

안쓰러운 생각이 든다.....

사랑해서 결혼한 건 맞는것 같다...

아직도 저런 모습이 안쓰러우니....

데리고 들어가 자야겠다...

나 기다리다 거실에서 자버린 남편....

방에 들어가도 한 이블속에서 자지도 못하는데 그냥 들어가 자지....ㅉㅉㅉㅉ

난 아이 둘을 옆에 끼고 자야 하는 탓에.....

 

자기야...

우리 싸우지 말자....뭐 나의 일방적인 싸움이지만...

나 혼자 북치고 장구치구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자리에서 서 있는 남편....

그래 그렇게 한자리에 서서 버팀목이 되어 주는구나...

정말 사랑하는데 그래도 가끔은 정말 얄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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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01월 28일 04:43:51

아무래도 아이들끼리 있으면 싸우기도 하고 놀기도 하고 그렇게 자란다는건 안다..

헌데 어제 유치원으로 아이를 데릴러 갔더니 선생님들이 너무 미안해 하신다...

성빈이 눈밑에 약간의 멍든 자국과 볼에 약간에 끊긴 자국...

그리 심해 보이지는 않지만 보기 좋은 상처는 아니였다...

아무래도 얼굴이다 보니.....            

아이들끼리 싸움이 붙었단다....

전에도 말했듯이 울 성빈이는 너무 남의 일에 간섭을 많이 한다.....

학교에 정아라는 여자아이가 있다... 성빈이보다는 2살은 더 먹은것 같은데...

선생님들 말에 의하면 손이 좀 많이 가는 아이라는 말씀은 하셨다...

헌데 울 아들이 그 꼴을 못 보는거다....

그 아이가 다른 아이들 물건을 만지거나 가지고 있는걸 가만두지 못하고 참견을

하는거다...  울 아들은 그런면에서는 칼이다... 제 물건과 남의 물건에 대해서

확실한 개념이 있는지... 제가 보는 앞에서 다른 아이가 원래 가지고 있던 아이의 물건을

가지고 가면 참지를 못하고 제가 다시 뺏어서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는 식이다...

한마디로 싸움을 말리려다 제가 대신 싸우는 타입이라고 해야 하나....

정식한것도 좋고 되돌려주는것도 좋지만 남의 일에는 제발 참견을 안했음 하는 바램이

크다... 그러다가 자라서도 다른 사람들 일때문에 제가 싸우고 들어오는 일이 생길까봐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그런 성격탓에 아직 유치원 생활한지 한달도 안됐는데 벌써 통반장을 다 한다니...

정아라는 아이가 싸나운 편인지 다른 아이들은 그 아이에게 대드는애가 없다는데

성빈이가 유일하게 그 아이의 행동을 못 마땅해 한다고 선생님이 그러신다...

싸우다 정드는거 아닌지 모르겠네.....

헌데... 어제는 영광(?)의 상처를 가진 아이가 울 아들뿐이 아니였다...

캐이시라는 사내아이도 얼굴에 크게 손톱 자국이 생긴것이 아닌가...

캐이시 어머님도 남자아이들이니깐 놀다 다칠수도 있고 하는건 괜찮은데 얼굴에

생긴 상처가 흉이 될까봐 걱정을 하신다... 그 아이는 다른 자매들과 싸움이 붙었다는데...

이런 이런 사내녀석들이 여자아이들한테 맞아서야....

아이들을 키우면서 느끼는 건데... 여자아이들이 남자아이들에 비해 싸나운것 같다...

나도 성빈이 밑으로 딸을 키우는데 확실히 성빈이 애기때에 비해 더 앙칼진걸 느끼게

된다.....  이런면에서는 딸가진 부모는 오히려 걱정할 필요가 없을것 같다....

성빈이의 성격은 어리지만 자신의 주관이 뚜렸하다...

그런탓인지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단점도 되는것 같다...

선생님들도 그런 말씀은 하신다..

자신의 주관이 뚜렷하다보니 이해력도 빠르고 의사표현이 확실하다고... 헌데 자신이

아니다 싶거나 만져보고 싶은것에 대해서는 끝까지 고집을 피워서 그점 때문에 손이

간다고....  일단 한번 자신이 체험을 하면 그다음에는 미련을 두지 않는데 그전에는

어떻게 해서든 자신이 하려고 하는 고집을 피운다....

학교에서 잘 교육시켜주길 바랄뿐이다... 아무래도 엄마나 아빠랑 있는 시간보다

학교에서 있는 시간이 많으니깐...

싸운것에 대해서는 성빈이한테 따로 할말이 없었다...

차에 앉아서 손으로 턱받치고 딴곳을 바라보는 녀석을 보니 뭔가 큰 고민이 있는것

같다....  성빈이 울었어... ? 울었어.... 친구랑 싸우지마...  말이 없다...

32개월짜리가 그 말을 알아들었을까??? 아마 못 알아들었겠지만..

집에와서 세수 시키는데 얼굴이 아프단다... 넘 속상하다.... 

 

원래 약싹 빠른 사람은 싫어했지만 자식일이다 보니 울 아들이 차라리 다른 아이들처럼

방관자가 되길 바라는 맘은 어쩔수가 없는것 같다.....

 

성빈아...

그래도 제발 맞고 오지는 말아라... 엄마 참 속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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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소설 같은 이야기 입니다

엄청난 보물을 찾아내고,자칫 사라질 뻔한 문명을 밝혀낸 꿈 같은 이야기. 그리스 영웅들의 용맹했던 옛날 이야기 일리아드 를 읽으면서 자라난 일곱살 소년이 품었던 꿈,  일리아드에 매료된 이 소년은 "하인리히 슐리먼" 이라는 독일 소년입니다

일리아드란 ‘일리온에 관한 시’라는 뜻인데,일리온은 소아시아 서북부에 있는 트로이라는 옛 도시를 말합니다.  이 소년이 성인이 되어 불타버린 트로이 성과 왕의 보물들을 찾겠다던 꿈을 39년 만에 이룬 이야기입니다.

긴글이지만 무척 흥미있는글 입니다.

그럼시작합니다...

1822년 독일 메클렌부르크의 작은 마을에서 가난한 목사 집안에 태어난 하인리히 슐리만 소년은 아버지로부터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에 나오는 영웅들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일리아드’는 오늘날의 서양 문학을 낳았으며,헤브라이즘과 함께 서양 문명을 이끌어온 헬레니즘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19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2,700년 동안 알렉산더 대왕을 비롯하여 ‘일리아드’를 즐겨 읽은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그저 호메로스라는 시인이 전설을 모아 엮은 옛날이야기라고 생각해왔다.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여왕 헬레네를 유괴함으로써 벌어진 트로이와 그리스의 10년 전쟁 모습을 그린 이 이야기에는,여러 신들이 인간과 어울려 싸움에 끼어들고 심지어는 다치기도 한다.

누가 보아도 이 이야기가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소년은 믿었다.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와 헥토르 같은 천하 무적 용사들은 실제로 있었던 사람들이며,트로이 성도 어디엔가 있을 거라고.

가난 때문에 소년의 학교 생활은 열네살에 끝났다.

소년은 작은 도시의 식품점에서 5년 동안 점원일을 한 뒤 배 안에서 심부름꾼 노릇도 하고 작은 도매상을 경영하기도 하면서 돈을 벌어 마침내 큰 무역회사 사장이 되었다.

그 10여년간 슐리만이 이룬 것은 돈만은 아니었다.

그는 난로도 못 피운 다락방에서 덜덜 떨면서 혼자 아홉나라 말(영국,프랑스,네덜란드,스페인,포르투갈,이탈리아,러시아,스웨덴,폴란드)을 배웠다.

어찌나 정신을 쏟아 공부했는지,그는 한나라 말을 6주일 만에 터득하곤 했다.

1856년 돈을 많이 번 슐리만은 드디어 그리스 말을 공부했다.

역시 6주 만에 그리스 말을 다 익힌 슐리만은,다시 석달 동안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두루 꿸 만큼 공부했다.

그가 그리스 말을 제일 나중에 배운 까닭은 트로이 성을 찾는 데 드는 돈을 벌 때까지는 절대 그 일에 뛰어들지 않으려는 마음에서였다.

1864년 슐리만은 견문을 넓히고자 세계 여행을 했다.

그는 그때 라틴 말과 아라비아 말도 배웠는데,일기는 언제나 자기가 머물고 있는 나라 말로 썼다.

1868년 마흔여섯살 때 백만장자 슐리만은 트로이를 찾아 나섰다.

그가 처음 찾은 곳은 부나르바시.

그 무렵 학자들은 만약 트로이가 실제로 있었던 도시라면 부나르바시 마을 근처에 있었으리라고 추측했다.

‘ 일리아드’의 스물두번째 시에 더운물이 솟는 샘과 찬물이 솟는 샘 이야기가 나오는데,부나르바시 마을에도 비슷한 샘 두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나르바시를 둘러본 슐리만은 그곳은 절대로 트로이가 아니라고 단정했다.

바닷가에서 멀리 떨어진 데다,큰 성을 쌓을 만한 큰 언덕이 없었다.

‘ 일리아드’에는 그리스군이 배와 트로이 성 사이를 하루에 몇 번이나 오갔으며,트로이 성은 방이 62개나 되는 큰 성이라고 묘사되어 있었다.

슐리만은 ‘일리아드’에 나오는 전투 장면을 떠올리면서 바닷가를 누볐다. 그리고 마침내 부나르바시에서 북쪽으로 두시간 반 거리에 있는 뉴 일리엄 마을을 찾아냈다.

그곳은 바닷가에서 한시간쯤 걸리는 거리에 있었으며,언덕 위가 가로 세로 각각 235m쯤 되는 널찍한 네모꼴 터였다.

‘일리아드’에는 헥토르와 아킬레우스가 비탈에서 성을 세바퀴 돌면서 싸웠다고 되어 있다.

부나르바시 언덕은 비탈이 너무 심해 달리면서 싸우기가 어렵지만 뉴 일리엄의 언덕은 밋밋해서 뛰면서도 너끈히 싸울 수 있어 보였다.

뉴 일리엄,

오늘날에는 히사를리크(궁전)라고 불리는 언덕을 자세히 살펴본 슐리만은 그곳이야말로 3,000년 전 그리스 연합군과 트로이 용사들이 조국의 명예를 걸고 10년 동안 싸운 트로이 성터라고 굳게 믿었다.

“누구든지 이곳에 발을 디디면 이 히사를리크 언덕은 자연이 만든 위대한 성이라고 느끼게 된다. 성을 튼튼히 쌓으면 이곳에서 트로이 벌판 전체를 손아귀에 거머쥘 수 있을 것이다. 이곳과 견줄 만한 성터는 어디에도 없다. 히사를리크에서는 이다산이 보이는데 주피터는 그 꼭대기에서 트로이 성을 내려다보았다고 하지 않는가.”

평생을 별러온 일이 눈앞에 닥치자 슐리만은 온몸을 내던져 트로이 찾는 일에 매달렸다.

1869년 그는 꿈에 본 헬레네처럼 아름다운 그리스 처녀 소피 엥가스트로노메스와 결혼했다.

그녀는 남편이 바라는 대로 아름답고 가난하고 헌신적이며,‘일리아드’를 아주 잘 아는 여자였다.

1870년 4월,슐리만과 그의 아내는 히사를리크 언덕에서 첫 삽을 떴다.

그 뒤로 1873년 6월15일까지 3년여 동안 그들은 일꾼 100여명을 데리고 37m 높이 언덕에서 1톤 트럭 25만 대분이나 되는 흙을 파냈다.

슐리만은 열병과 좋지 않은 물,다루기 어려운 일꾼과 싸웠다. 힘든 것은 그뿐이 아니었다.

학자들은 슐리만이 트로이 발굴에 나선 뒤로 그가 죽은 뒤에까지 끊임없이 괴롭혔다

이유는 슐리만이 학자가 아니라는 단 한 가지. 그들은 처음에는 전설 따위를 믿고 무턱대고 땅을 파헤친다고 비웃었고,나중에는 그가 비과학적이고 비도덕적으로 트로이 유적을 망가뜨렸다고 헐뜯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슐리만이 수십년 동안 품어온 꿈,인생에서 가장 강렬한 힘을 가지고 있는 어린 시절의 꿈을 꺾을 수 없었다.

그는 신들린 듯이 발굴에 매달렸고,소피도 남편과 함께 모든 어려움을 나누었다.

일리아드’에는 아테네 신전이 도시의 가장 높은 곳에 서 있었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신전은 언덕 한가운데 있을 터이고 둘레의 평평한 땅에는 성벽이 있었을 것이다.

슐리만은 자기가 추리한 대로 곧바로 언덕을 파들어갔다.

얼마 안되어 그곳에 화려한 도시가 있었다는 증거가 하나둘 나타났다.

무기·가재도구·장식물·그릇이 나오고,언덕은 마치 거대한 양파의 껍질을 벗기듯이 파들어갈수록 층층이 다른 유적지를 드러냈다.

층마다 다른 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듯이 전혀 다른 유물과 집터가 한꺼풀씩 벗겨졌다.

폐허를 파면 그 밑에 또 다른 폐허. 그 곳을 파면 그 아래 또 하나의 폐허. 슐리만은 무려 일곱 개나 되는 도시를 찾아내기에 이르렀다.

거기에 쇠붙이를 쓸 줄 몰랐던 원시 시대의 두 취락지까지 합하여,히사를리크 언덕에 층층이 파묻힌 도시는 모두 아홉 개나 되었다.

맨 위 층(나중에 알렉산더 대왕이 제물을 바쳤던 2200년 전 도시로 밝혀졌다)에서부터 맨 아래 층 도시 가운데 어느 것이 트로이인가?

슐리만은 양파 껍질을 벗길 때마다 온갖 지식과 자료를 끌어내 트로이를 찾으려고 애썼다.

맨 끝에서 두 번째와 세 번째 층에서 그는 불에 탄 자취와 튼튼한 성벽,거대한 성문터를 발굴했다.

그는 이 성벽이야말로 프리아모스왕의 궁전을 빙 둘러쌌던 벽이며,성문터는 저 유명한 스카에아 문이라고 믿었다.

1873년 6월 어느 더운 날 아침,슐리만은 그가 평생 꿈꾸어 온 트로이의 보물을 손에 넣었다.

일꾼들은 슐리만이 프리아모스 궁전이라고 믿는 돌 건물 8.5m 아래에서 흙을 파내고 있었다.

아내와 함께 일꾼들의 삽 끝을 지켜보던 슐리만의 눈이 갑자기 빛을 뿜었다.

“여보,얼른 저 사람들을 돌려보내!”

그가 아내의 팔을 끌어당기며 속삭였다.

“오늘이 내 생일이라고 말해. 나머지 시간은 쉬어도 좋다고 말이야. 빨리!”

일꾼들은 좋아라고 자리를 떴다.

“당신의 빨간 숄을 가져와요!” 슐리만은 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자 주머니칼로 어느 한 곳을 미친 듯이 파헤쳤다.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구덩이 위의 무거운 성벽이 언제 무너져내릴지 몰랐지만,보물상자를 놓고 앞뒤를 살필 겨를이 없었다.

슐리만이 찾아낸 유물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팔찌,브로치,목걸이,접시,단추 등 금으로 만든 온갖 것이 쏟아져 나왔다. 자그마치 8,700여점이나 되는 금붙이 가운데서도 가장 눈부신 것은,순금 조각 1만6,000개로 이루어진 금관이었다.

“누군가가 프리아모스 궁전에서 이것들을 급히 상자에 넣은 뒤 자물쇠에서 열쇠를 뺄 틈도 없이 가지고 나온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이 사람은 성벽 위에서 적의 손에 죽었거나 화살에 맞았으리라.”

슐리만이 회고한 말에서도 드러났듯이 그는 그 보물들이 트로이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죽기 얼마 전에야 그것이 트로이보다 1,000년 앞선 시대의 유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쨌든 그때 그는 보물을 집으로 옮긴 뒤 갖은 모험을 무릅쓰고 터키 국경선 밖으로 빼돌렸다

(나중에 이 보물들은 슐리만의 유언에 따라 베를린의 선사시대박물관으로 옮겨졌다가,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독일에 진주한 소련군에게 탈취돼 지금은 러시아가 보관하고 있다).

슐리만은 트로이에만 너무 열중했던 탓에 다른 시대 건물들을 무너뜨리거나,중요한 실마리가 될 벽들을 깨뜨리며 깊이 파들어갔다.

그러나 그러한 실수 덕분에 밑바닥에서 여섯번째 층에 묻힌 트로이가 드러난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슐리만이 새로운 유적을 발굴할 때마다 전세계 신문에 발표하면 고고학을 모르는 사람들도 열광했다.

1873년에는 집에서나 거리에서나,우편마차에서나 기차 안에서나 전세계 어디에서고 트로이 이야기가 넘쳐 흘렀다.

마침내 트로이 성의 실체를 발견하다 트로이를 비롯하여 미케네와 티린스의 유적을 발굴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슐리만에게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한이 있었다.

그가 히살리크 언덕에서 트로이 유적을 발견했다고는 하지만, 히살리크의 유적은 시대에 따라 여러 층으로 구분되어 있어서 호머의 서사시에 나오는 트로이 전쟁이 정확하게 어디서 전개되었는지 확정짓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호머의 트로이 전쟁에서 발굴의 계기를 얻은 슐리만에게 있어서 이 문제가 아직도 해명되지 못했다는 것은 그동안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유감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히살리크 언덕에서 트리이 전쟁 시대의 유적을 확정짓겠다고 결심한 슐리만은 1889년에 히살리크로 돌아가 다시 발굴을 시작했다.

물론 이때는 공동 발굴자로 고고학의 전문가와 동행했다. 세계적인 명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뒤를 따라다니던 아마추어라는 딱지는 결코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1890년에 슐리만이 트로이의 경계라고 믿었던 지점에서 약간 떨어진 장소에서 커다란 건물들의 유적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출토된 도자기들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미케네 시대의 것들이었다.

이제 결론은 분명해졌다. 슐리만은 제1차 발굴 당시 자기가 찾던 트로이를 통과해서 파 내려갔던 것이다.

이전의 발굴에서 그는 자신이 발견한 아홉 개의 도시 중 밑에서 두 번째 것이 트로이라고 믿었다.

불탄 흔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그 위에 있는 일곱 개 도시들의 유적을 완전히 파괴하면서 발굴했다.

그러나 제2차 발굴을 통해 그는 비로소 자신이 발견했던 보물 상자가 사실은 트로이 전쟁 때 것이 아니라 그보다 1천 년이나 앞선 시대의 유물임을 알게 되었다.

이제 슐리만은 진짜 트로이 유적을 발굴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1891년에 슐리만은 길을 가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트로이 유적에 대한 제3차 발굴 계획도 자연히 무산되었다.

슐리만이 사망하자 그가 찾고자 했던 전설의 트로이가 어디인가에 관심이 모아졌다.

결국 그가 발굴하던 커다란 건물 유적에서 발견된 미케네 양식의 도자기들이 실마리를 주었다.

그것은 호머의 트로이가 히살리크 언덕의 경계에서 훨씬 더 뻗어 발전했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밑에서부터 두 번째가 아니라 여섯 번째 도시가 바로 그들이 찾던 도시였다.

그곳에서 발견된 벽은 안쪽으로 약간 경사가 져 있는데 그것은 호머의 묘사와도 일치한다.

더구나 높이가 18미터 이상 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탑이 반 이상 무너진 상태로 있었다.

그 성은 가로 180미터에 세로 135미터밖에 되지 않았지만 매우 튼튼하고 인상적이었다.

학자들은 그리스인들이 왜 10년 동안이나 성을 점령할 수 없었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산 정상에 우뚝 솟은 트로이 성은 전쟁이 일어났던 시대의 전투 기술로는 접근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견고했던 것이다.

이제 한 가지 질문이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트로이 성은 과연 어떻게 함락될 수 있었을까?

미국의 칼 브레건은 호머의 트로이로 알려진 여섯 번째 지층이 지진으로 파괴되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성벽은 무너져 있었고 주춧돌들의 위치가 뒤바뀌어 있기도 했다.

터키에서는 근래에도 자주 지진이 일어나고 있다.

10여 년 동안 트로이를 점령하지 못한 그리스 연합군은 마침 트로이가 지진으로 파괴되자 극적으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율리시스가 만들었다는 목마에 대한 이야기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병사들을 숨긴 목마를 남겨 두고 그리스인들이 철수하자 트로이인들은 목마를 성안으로 들여놓을지 말지 찬반 토론을 벌이다가 결국 목마를 신들의 선물이라고 생각하여 성안으로 끌고 갔다는 구절이 호머의 서사시에 나온다.

『일리아드』에서 그리스인이 남기고 간 목마를 트로이성으로 들여놓는 것을 가장 반대한 사람은 트로이의 사제였던 라오콘이었다.

그러자 그리스인을 지지하던 포세이돈은 물뱀을 보내 라오콘과 두 아들을 죽인다.

이 장면은 유명한 '라오콘 상'으로 잘 알려져 있다.

라오콘이 죽고 난 후에야 트로이인들은 목마를 성안으로 들여놓기로 결정한다.

비록 『일리아드』에 이렇게 적혀 있다고는 하지만 그리스인들과 10년 이상 전쟁을 치룬 트로이인들이 바보일 리는 없다.

따라서 그들이 목마 안에 그리스 병사들이 숨겨져 있는 사실을 모르고 성안으로 목마를 끌어들였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나 이 전설 같은 이야기는 당시 트로이가 갑작스러운 지진으로 인한 파괴 때문에 멸망했다면 어느 정도 근거가 있다.

당시 그리스인들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을 가끔 말로 표현했고, 말로 만든 포세이돈 상에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포세이돈은 그리스인들이 고난에 처할 때마다 항상 바람처럼 나타나 군의 사기를 고취시키고 승전으로 이끌었다는 말이『일리아드』에도 나온다.

그리고 포세이돈은 바로 지진의 신이기도 했다!

갑작스러운 지진의 여파로 트로이를 멸망시킬 수 있었다면 그리스인들이 지진의 신인 포세이돈의 덕택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니기 때문에 ‘트로이의 목마’라는 전설이 생겼으리라는 주장이 정설이다.

콜린 윌슨은 트로이의 멸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트로이 전쟁이 일어났던 시기는 소아시아에서 전쟁이 많이 일어나던 때였다.

당시 트로이의 후견인이자 강력한 제국이었던 히타이트 제국은 쇠퇴 기미를 보여 영향력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는데 이를 틈타서 그리스인들이 각 지역의 반란을 부추겼다.

이때 트로이의 왕자인 파리스가 스파르타로 아가멤논의 동생인 메넬라우스를 찾아갔고, 메넬라우스의 아내인 헬렌은 자신의 남편보다 더 매력이 있는 패리스와 함께 야반도주를 해 버렸다.

과거에는 왕비라 할지라도 정실에 따라 이동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아내가 도망을 가자 미넬리우스는 씩씩거리며 형인 아가멤논 왕을 찾아갔다.

당시 그리스의 맹주였던 아가멤논 왕은 동생의 하소연을 듣고 나서 트로이의 후견인인 히타이트가 마침 아시리아를 비롯한 여러 주변 국가들과 전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트로이 지역을 공격하기에 적기라고 판단했다.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트로이를 공격했다.

그의 예상대로 히타이트 제국은 지원군을 보낼 여력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로이는 난공불락이었다. 그러다가 전쟁이 일어난 지 10년째 되던 해에 지진이 일어나서 성안은 혼란 상태에 빠졌고 그 틈을 타서 그리스인들이 성을 점령해 버렸다.

남자들은 모두 살해되었고 여자와 어린이들은 노예로 끌려갔다. 트로이는 불탔고 집들은 파괴되었다.”

이렇게 트로이는 멸망 했던것 이다.

이 트로이 발굴사 는 성서에 나오는 사라진 제국 '니느웨' 와 더불어 고대유적지 발굴사의 위대한 발견 입니다

근래부터 일기 시작 한 신화 이야기와 영화 '트로이' 거기다 오늘 개막되는 그리스 올림픽은 우리에게 신화의 무한한 상상력을 품게 합니다.

저도 어렷을때 저 '하인리히 슐리먼' 처럼 그리스 신화에 무척 빠졌던 기억이 납니다

성인이 되어 다시읽어도 여전히 신화는 저를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수많은 신들과 공주, 장수 등등과 정신적 교감을 하고 신화속의 주인공이 되게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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