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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깜언 ㅣ 창비청소년문학 64
김중미 지음 / 창비 / 2015년 2월
평점 :
모든 계절이 그렇지만 특히 봄은, 처박혀 책읽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다. 볕은 적당히 따뜻하고 (그래서 실내는 춥지도 덥지도 않고), 빛은 적당히 강하고 (그래서 실내는 자연광으로 책읽기에 충분하고), 거리는 적당히 조용하다. 모처럼 아무 약속도 없는 주말 오전, 나는 눈을 뜨자마자 밥 한 술을 입에 떠넣고 침대 아래 햇빛이 가장 잘 들어오는 방구석에 방석을 깔고 쪼그리고 앉아 <모두 깜언>을 읽기 시작한다.
소쩍새 울면 참깨 심고, 꾀꼬리 울면 고추 모 심고, 뻐꾸기 울면 콩 심고, 보리 베고, 모 심고, 피 뽑고 그러다 보만 여름 가고, 가을 오고, 겨울 오고, 그러만 이 할머이는 칠십을 훌쩍 넘겨서 팔십이 될 거고. 그 전에 하느님이 불러 가실 수도 있고 그런 거야. 그러니 뭐가 반갑겄냐? 살날이 창창한 너나 꾀꼬리 소리 들으면 좋지. p.31
꾀꼬리 소리가 좋다는 아이에게 할머니가 하는 말이다. 계절의 오고감이 이렇듯 명료하고 아름답게 그려질 수 있구나, 싶어 옮겨 적어 본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 여자아이는 구순구개열, '언청이'라 불리는 기형을 갖고 태어난 아이이다. 엄마가 성병에 걸리면 언청이를 낳는다는 동네 사람들의 수군거림에, 아이의 아빠는 엄마의 과거를 의심하여 학대하고, 견디다 못한 아이의 엄마는 아이를 버리고 집을 나간다. 아이의 아빠도 집을 나갔다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교통사고로 세상을 뜬다.
아버지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을 때, 할머니는 울지 않았다. 그러나 한밤중이면 할머니 울음소리가 들렸다. 남몰래 일어나 우는 게 아니라 자면서 울었다. 할머니 울음소리는 가을밤 컹컹 우는 너구리 울음소리 같았다. 무서워 할머니를 흔들어 깨우면 할머니는 자기가 울었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p.39
아비를 잃은 아이 앞에서, 아들을 잃은 어미는 울지 못했지만, 슬픔이 늙은 어미의 잠을 잠식해, 어미는 자면서 울었던가 보다. 아들을 잃은 어미의 슬픔이란 얼마나 큰 것인지 나는 짐작조차 못한다. 그저 살아 생전 어떤 어미도 그런 아픔을 맛보지 않기를 바랄 뿐이지만 세상 일이란 게 어디 내 뜻대로 흘러가는가.
아빠의 죽음도 엄마의 재혼도 그저 딴 세상 일 같기만 한 아이, 유정은 부모의 빈자리를 살갑게 채워주는 할머니와 작은아빠, 베트남인 작은엄마와 잘 지내지만, 할머니의 꿈 속 울음 같은 유정의 상처는 키우던 개가 낳은 무녀리를 대하는 가족들을 보며 터져 나온다.
"무녀리구만. 유정아. 너 그가이 제 어미한테 가져다줘라. 그거 못 살아. 넣으 주믄 아마 제 어미가 먹든가 알아서 할 거야. 개나 돼지나 그런 무녀리 한 마리씩 낳을 때가 있어. 그건 사람이 아무리 정성스레 키워도 못살아." p.75
뜬금없게도 그 순간, 언청이로 태어난 나를 그냥 굶어 죽으라고 윗목에 내벼려 뒀다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래서 유정은 그 무녀리 강아지를 살리고 싶었지만, 강아지는 젖병조차 빨지 못할 정도로 약하다.
문득 입천장이 갈라지고 코와 입의 경게가 없어 엄마 젖도 우유병도 빨지 못했다던 내 아기 때가 떠올랐다. 나는 내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아마도 나 역시 이렇게 젖 한 방울 제대로 넘기지 못했을 거라는 사실쯤은 상상이 갔다. p.78
유정의 곰삭은 상처가 죽은 무녀리 강아지를 통해 터져 나오듯, 이 책은 가난한 농촌의 상처, 학대받는 결혼이민자의 상처, 차별당하는 다문화 가정 아이들의 상처를 깜찍하고, 따뜻하고, 신랄하게 그려내고 있다. 아니, 하지만 상처만 있다면 그게 어디 세상인가.
가슴 간질간질한 아이들의 풋사랑이 있고, 그 아이들의 꾸는 다채로운 꿈이 있고, 어려운 가운데 다시 세워지는 농촌의 희망이 또한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강화는 역사적으로 많은 부침을 겪은 곳이다. 청동기 시대와 고려 시대의 유적뿐 아니라 근현대사의 질곡이 곳곳에 남아 있고 그곳마다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농촌과 어촌의 삶이 공존하고, 수도권에 자리한 탓에 도시 문화가 유입되면서 사람들이 잇속에 밝고 도시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과 열등감 또한 높다. 그런 강화가 내 삶의 자리로 들어오는데 십 년이 넘게 걸렸다. 그리고 13년이 되어서야 농촌 이야기를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p.329
작가 김중미는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의 따뜻하고 통찰력 있는 시선 덕에, 오늘, 게으른 내가, 그들의 이야기를 뉘늦게 읽으며 울고 웃고 했다. 세상은 넓고,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하는 이름난 곳들은 차고 넘치지만, 세상은 그만큼 깊고, 우리가 알고 보듬어야 하는 사람들도 이렇게 차고 넘친다는 것을 나는 차츰차츰 알아간다. 이렇게 좋은 책들로 인해.
작은아빠가 그랬다. 힘이 약한 존재들은 그렇게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거라고. 짝을 찾지 못한 할 살배기 까치들도 가을이 되면 자기들끼리 무리를 지어 매서운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겨울을 난다고. 언제나 혼자보다 여럿이 나은 법이라고. p.322
'깜언'은 베트남어로 '감사하다'란 뜻이라고 한다. 반나절 빛 잘 드는 방구석에서 이 책을 읽고, 해질녘 잠시 나가 머리를 자르고, 해진 후 집을 나서 슬슬 밤나들이를 했다. 맞은편에 앉아 종알종알 학교 친구들 이야기를 하는 아이의 표정은 밝고, 종일 침침하던 눈은 그 아이 표정만큼 밝아졌다. 내 게으른 하루와, 모든 사소한 일상과, 모든 사람들의 존재가 새삼 감사했다. 밤이 이미 깊다. 깊게 잠이 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이렇게 속삭여주고 싶다.
"깜언, 모두 깜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