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이미경 지음 / 남해의봄날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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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다녀갔다. 함께 모여 구슬아이스크림을 만들고, 티비를 조금 보다가, 괴물놀이를 하고, 둘러 앉아 그림을 그리고, 각자 그린 그림으로 이야기를 지어내 해 달라고 하고, 컴퓨터로 좋아하는 동영상들을 하나씩 보고, 이불속에 숨는 놀이를 하고, 다같이 고무 다라이에서 목욕을 하고는 각자 집으로들 돌아갔다. 이렇게 노는 모습을 찍어 친구에게 보여줬더니, “너네 아이들은 뭔가 우리 어린 시절 같다”고 얘기를 한다. 마주보고 깔깔대며 땀 흘리며 노는 아이들을 보니, 정말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고만고만한 몸뚱이와 발 디딜 땅만 있으면 뭐라도 하며 놀 수 있었던 우리 어린 시절.

 

거기에 동전 하나만 있으면 그 풍요로움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50원짜리 ‘오뎅’ 하나 천천히 음미하며 먹고, 짭조롬한 국물 플라스틱 바가지로 배가 터지도록 먹으면 한겨울 추위쯤은 그냥 우스웠고, 10원짜리 ‘쨈’ 사다가 입술에 루주처럼 바르며 놀다가 조금씩 핥아먹으면 그 맛은 또 얼마나 야릇하고 좋았던가. 어쩌다 100원이라는 거금이 생기면 ‘밀크캬라멜’을 사 먹을 수 있는데, 이는 정말 천상의 맛이었다.

 

여러 가족이 함께 산 마당 넓고 펌프 물 시원하던 우리 옛집과, 우리 골목과, 골목에 나와 앉아 있는 동네 어른들 그리고, 전봇대 옆 현주네 점빵.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은 그런 고마운 기억들을 일깨워준다. 어린 우리들을 키워준 건 가족의 관심과 사랑과 함께 바로 그런 것들이 아니었겠나 생각하며.

 

“평온하고 따뜻한, 수평을 지향하는 마음을 그림에 담는다. 주제가 되는 이미지를 중앙에 떡 하니 배치해 자리를 잡고 그와 함께하는 사물로 아기자기하게 화면을 구성한다. 날카로운 선의 촘촘한 중첩 속에 하나의 형상이 모습을 드러내고 하얗게 남겨진 배경과 조화를 이뤄 여백의 미와 정중동의 회화 원리를 표현한다. 몸을 낮추고 거센 비바람과 혹한, 그리고 모진 세월에도 견디어 내는 구멍가게는 작지만 단단하게 그린다.” p. 138

 

"수직에서 느껴지는 경쟁과 성공 지향의 이미지와 엄숙함, 숭고함이 나는 낯설다. 그저 동시대의 소박한 일상이나 사람과 희망에 의지하여 오늘도 작업에 임할 뿐이다. 정겨운 구멍가게, 엄마의 품, 반짇고리 같이 잊고 있던 소중한 마음을 되돌아보게 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p. 139

 

이 책에는 작가가 20여 년 동안 전국 곳곳의 구멍가게를 찾아다니며 그린 펜화 80여 점이, 작가의 담백한 글과 함께 실려 있다. 오래 곁에 두고 천천히 몇 번이고 다시 보고 싶은 따뜻한 구멍가게의 모습들이, 사계절 자연 풍광과 곁들여져 있기도 하고, 몇 그루 나무와 함께 있기도 하고, 오롯이 홀로 서 있기도 하다. 오롯이 홀로 있는 구멍가게라도 쓸쓸해 보이진 않아, 당장 개구진 꼬마 하나가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과자 하나를 들고 뛰어 나올 듯 쓸쓸해 보이지 않고, 여름 한 낮의 구멍가게 앞엔 물이라도 한바가지 뿌려 놔야 될 것 같은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듯하기도 하다. 사람은 하나도 볼 수 없지만, 이제 좀 나가도 되겠냐며 그림 한구석에서 쓰윽, 누구라도 나설 것처럼 모든 그림이 섬세하고, 생동감 넘치고, 정답고, 예쁘다.

 

나는 이 책을, 신문에서 보고, 인터넷으로 구입했다. 이 책이 내 손에 들어오기까지 어떤 정다운 눈맞춤도 대화도 없었다. 그게 슬펐다. 엄마에게 이 책 좀 보시라고, 이런 가게들이 기억 나시냐고, 정말 잘 그리지 않았냐고 자랑하며 나는, 좁고 긴 직사각형 모양의 가게, 바닥에서 천장끝까지 책이 빼곡이 꽂혀 있던 중앙서적의, 골라든 책마다 한마디씩 해 주시던 아저씨가 유독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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