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하는 근본주의자 민음사 모던 클래식 60
모신 하미드 지음, 왕은철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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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가 모신 하미드가 파키스탄 출신이어서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라는 제목을 읽으면 이슬람 근본주의자가 테러를 저지를지 말지 주저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되지만, 이 소설이 처음에 다루는 근본주의자는 이슬람교와 상관이 없다. 찬게즈는 파키스탄 출신으로 프리스턴 대학의 모든 수업에서 A학점 이상만 받고 졸업한 수재이다. 그는 뉴욕의 언더우드 샘슨이라는 감정회사에 분석가로 취업한다.


근본적인 것에 집중하라는 언더우드 샘슨의 제1원칙이다. 근본적인 것은 숫자로 표현된다. 분석가 찬게즈는 컨설팅을 요청한 회사의 자잘한 것들, “지방질을 제거해서 건전한 재정상태를 도모한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인원을 감축하고 불필요한 사업은 정리하거나 다른 회사에 외주를 준다. 찬게즈와 동료들은 미국 여러 지역뿐만 아니라 필리핀, 칠레 등 다양한 국가에 있는 회사를 분석하고 컨설팅해준다.


전무이사 짐은 채용 면접 자리에서 찬게즈의 굶주린 모습에 좋은 점수를 줘 채용을 결정한다. 찬게즈는 왜 굶주렸는가? 파키스탄에 있는 찬게즈의 집안은 대대로 전문직에 종사한 괜찮은 집안이었다. 하지만 전문직 종사자의 수입이 과거와 달리 시원찮아 졌고 과거의 영광은 상인 계급에 내줬다. 찬게즈는 아직 가난하지는 않지만 더 이상 부자도 아닌 문턱에 걸쳐 있는 형편이다. 언더우드 샘슨은 신입사원에게 8만 달러의 연봉을 약속한다. 전무이사 짐은 자신도 젊은 시절 가난을 겪었기에 찬게즈의 굶주림을 알아본다. 문턱 이쪽에 있다가 저쪽으로 넘어간다는 비유는 소설 속 다른 장면들에서도 중요하게 사용된다.


찬게즈는 언더우드 샘슨에 채용이 확정된 후 프리스턴 동창들과 떠난 여행에서 에리카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에리카는 다른 사람들을 제쳐두고 찬게즈에게 마음을 열지만 몇 년 전에 죽은 첫사랑 크리스를 잊지 못한다. 크리스는 에리카가 내면에서 만날 수 있는 과거이고, 찬게즈는 에리카가 바깥에서 마주치는 현재이다. 찬게즈에게 상류층 백인 에리카와의 사랑은 그의 가치를 보증해준다. 언더우드 샘슨의 신입사원 평가에서 1위를 차지했기에 별문제가 없었다면 회사에서도 승승장구하고 에리카와의 관계도 잘 진전되었을지도 모른다. 찬게즈는 필리핀의 음반회사를 평가하러 떠난 출장지에서 9.11 테러 소식을 듣는다.


9.11 테러 이후 미국 사회는 과거로 회귀한다. 귀국길에 오른 찬게즈는 외국인 심사대에서 추가 심사를 받아야 해서 동료들과 따로 귀가한다. 찬게즈는 그동안 약간의 위화감이 느껴져도 언더우드 샘슨의 분석가라는 지위를 이용해서 미국인처럼 행동해왔는데 9.11 테러 이후엔 주변의 편견 어린 시선 때문에 이슬람이라는 정체성에 묶이게 된다. 9.11 테러 이후 뉴욕은 코즈모폴리턴적인 분위기가 사라졌고, 미국과 이슬람은 다른 부족이 되었다. 미군의 중동 주둔 이후 파키스탄은 인도와 긴장 관계가 심해진다. 찬게즈는 가족들이 걱정되어 파키스탄에 일시 귀국한다. 찬게즈는 오랜만에 찾은 집안이 낙후되어 있다고 느낀 자신이 미국인의 시선으로 집안을 둘러보고 있음에 놀라고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는 귀국 중에 기른 수염을 미국에 돌아가서도 깎지 않는다. 회사 동료들은 찬게즈의 수염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며 수군거린다.


에리카가 찬게즈 앞에서도 크리스를 잊지 못하자, 찬게즈는 자신이 크리스라고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미국인처럼 행동하며 회사 생활을 이어온 것처럼, 에리카와의 관계에서도 중심을 잃고 다른 사람인 척한 것이다. 미국 사회가 과거로 회귀한 것처럼, 에리카도 내면의 크리스와 더 많이 대화를 나누며 과거로 돌아간다. 에리카는 크리스의 죽음 이후 겪은 정신질환이 9.11 테러 이후 심해져서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그 후 그녀는 실종된다.


찬게즈는 칠레의 출판사를 분석하러 간 출장지에서 자신이 더 이상 분석가 업무를 받아들일 수 없음을 알게 된다. 그는 더 이상 미국인의 언어를 사용할 수 없고, 다른 사람의 삶을 망치는 일에 가담할 수 없다. 그는 회사를 그만둔다. “근대적인 예리체리로 사는 걸 멈춘다. 숫자와 이익만 보지 않도록 베일을 걷고 진실을 마주하기로 한다.


찬게즈는 이 모든 이야기를 고향의 식당에서 만난 한 미국인에게 들려준다. “진짜 군인처럼 말하는 이 미국인에겐 매 시각 전화가 온다. 무슨 전화일까? 식당 안 수염을 기른 낯선 남자는 왜 미국인을 계속 경계하는가? 미국인이 식당의 웨이터를 위협적이라 느끼는 건 기분 탓일까? 찬게즈는 왜 오늘이 조금은 중요한 밤이라고 말할까? 찬게즈가 말하는 곧 벌어질 가장 살벌한 일은 무엇일까? 숙소로 돌아가는 미국인와 찬게즈를 따라오는 듯한 저들은 무슨 신호를 보내는 걸까? 식당의 웨이터는 왜 미국인의 숙소 앞까지 따라온 걸까? 이 모든 오싹한신호는 찬게즈가 또 다른 근본주의자가 됐음을 암시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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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길이 되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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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우리 스스로 말로 표현하지 못해서 기억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까지 기억한다. 불평등, 위험한 노동, 혐오 발언 등에 노출된 개인들은 오염된 물속에서 살아가는 물고기들처럼 건강이 나빠진다. 사회역학자 김승섭은 사람들을 상처 입혔던 사건들을 해석하는 담론 또한 개인의 건강에 영향을 준다고 말한다. 재난을 겪은 개인들은 제대로 된 사과와 보상을 요구해도 움직이지 않는 국가 권력이나 피해자를 비난하는 사람들 앞에서 좌절을 겪고 건강이 나빠진다. 저자의 작업은 고통받는 사람들을 둘러싼 언어를 바꾸고 당사자들의 외침을 지지해준다. 저자는 지식과 권력의 공모를 의심하고, 상처받은 이들의 언어를 지지하는 과학적 연구를 내놓으려고 노력한다. 자신의 생각이 주변 사람들과 다를 때 자기의 경험과 상처를 얘기하고 나눠야 더 나은 삶을 꾸릴 수 있다는 저자의 조언은 깊은 울림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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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엣 - 파란색과 사랑에 빠진 이야기, 그 240편의 연작 에세이
매기 넬슨 지음, 김선형 옮김 / 사이행성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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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틴바우어 새가 파란색 물건을 수집해 둥지를 꾸미는 것처럼, 저자는 파란색 물건을 모으고, 파란색에 관한 글과 예술작품을 감상하며, 자신의 일상을 파란색 일화로 채워 나간다. 저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파란색을 글쓰기를 통해 기억에 더 잘 새겨둔다. 저자는 연구기금 신청에서도 파란색으로 유명한 장소로 세계여행을 가서 파란색 연구를 진행하겠다고 적지만, 연구비를 타는 데 실패한다. 작가는 교통사고를 당해 몸이 불편해진 가까운 친구와의 일화를 책을 관통해서 써낸다. 작가는 자신이 마주친 것에서 파란색이 상징하는 슬픔과 우울의 감정을 읽어낸다. 작가는 파란색을 사랑하는 걸 선택하지는 않았고 그저 파란색이 자신에게 다가왔다고 말한다. 우리가 무엇을 사랑할지 선택할 수는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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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여행하는 법 땅콩문고
임윤희 지음 / 유유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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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작가는 도서관과 사서가 없었다면 자신의 작업이 불가능했을 거라며 감사를 표한다. 저자는 공부와 연구의 공간을 내어주는 도서관의 매력에 끌려서 미국, 캐나다, 일본 등 세계 각지의 도서관을 찾아다녔다. 독자는 이 책에서 아름답게 지어진 도서관의 사진을 볼 수 있고, 적극적으로 정보를 찾아주는 사서의 역할에 대해 알 수 있다. 도서관의 ‘기능’이 본질적으로 정해져 있는 건 아니라지만 세계의 도서관이 이용자에게 전하는 다양한 ‘선물’을 보면서 독자는 한국 도서관이 어떻게 변해야 좋을지도 생각하게 된다. 한 ‘대상’에 대한 사랑과 탐구가 이렇게 성심성의껏 이뤄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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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과 회사의 본질 - 재산권과 계약권의 이종교배
김종철 지음 / 개마고원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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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사건이나 세월호 사태처럼 유한책임 주식회사가 일으켰지만 제대로 책임지지 않은 비극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모두 금융과 주식회사에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많은 사람이 은행의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주식회사에서 일하고 회사의 제품을 구매한다. 온실가스 배출에 따른 지구 온난화 문제나 양극화 문제도 은행과 회사가 설립된 17~8세기 유럽에서 시작됐다


저자는 오늘날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법과 제도가 언제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추적한다. ‘신탁법은 영국 지주계급이 영지를 왕에게 빌리지 않고 직접 소유하려고 13세기부터 투쟁을 이어오다 17세기 말 왕을 상대로 승리를 거둬 제정되었다. 이 책의 핵심 개념인 재산권과 계약권의 이종교배는 신탁법에서 처음 나타난다. 영국의 귀족은 왕에게 토지를 빌려 영주 역할을 하다 사망하면 왕에게 토지를 되돌려 줘야 했다. 영국 귀족들은 자식에게 자신의 권리를 물려주기 위해 제3자에게 땅을 양도하면서도 땅에 대한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계약을 맺는다. 왕은 귀족이 죽어도 제3자에게 양도된 땅을 찾아올 수 없게 된다.  (고대 로마와 서구 근대의 공통점=배타적 재산권->제국주의->노예제. 차이점=서구 근대가 재산권과 계약권을 이종 교배한 점.)


저자는 17세기 영국 금세공업자들이 시작한 은행업’(2현대 금융의 기원’), 1855~1862년에 도입된 회사법의 유한책임제도’(1주식회사의 본질’), 2008년 금융위기를 초래한 월스트리트의 금융기법 레포(환매조건부채권)’머니마켓펀드’(4‘21세기 국제금융위기의 본질’)에서도 재산권과 계약권의 이종교배라는 아이디어를 발견한다. 저자는 또한 17세기 영국 명예혁명으로 도입된 대의제에서도 정치가들이 국민에게서 주권을 빌린 채무자이면서 주권을 독점하는 재산권자이기도 하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1684차일드사에서 발행한 은행권[아직 남아 있다니 책에 사진을 실었으면 어땠을까. 표지 디자인에 일러스트 형태로 활용했어도 좋았을 것 같다]이나 1837블라이 대 브렌트소송사건의 판결문, 1855년부터 도입된 회사법에 대한 당시 학술지 편집자의 의견, 2008년 금융위기를 일으킨 월스트리트 부외 금융 시스템의 모형 등을 분석하면서 현대 금융업의 본질을 추적한다. 그중에서도 2003내국세 세무청 대 레이어드 그룹 공공유한회사소송의 판결문은 주식회사의 본질을 정확히 정의한다. “[주식은] 계약권들의 다발 그 이상이다. () 이 권리들은 순수한 계약권이 아니다. 그것들은 회사의 자산에 대한 재산권은 아니지만, 회사에 대한 재산권이다.” 주식회사의 대주주는 1855~1862년에 도입된 회사법과 일련의 법원 판결(1837블라이 대 브렌트소송사건 등)로 의결권과 인사권 등 회사의 재산권을 누리면서도 문제가 생길 때는 채권형태의 주식보유자로서 책임을 면제받는다. 저자는 대주주가 책임이 적은 만큼 의결권이나 인사권 등의 권한도 내려놔야 한다고 말한다.


주식회사와 금융업이 초래하는 문제점을 해결하려면 근대적 인격 개념순환적 자아 관념으로 대체해야 한다(7로크의 인격-재산의 존재론’). 철학사에서 니체나 화이트헤드에 의해 극복된 근대적 인격 개념은 은행업이나 회사법에 그대로 남아 있다. 영국 금세공업자들은 고객들이 맡긴 예금보다 더 많은 돈을 더 높은 이자로 빌려줘서 수익을 얻지만 '뱅크런'으로 파산할 위험 또한 얻는다. 영국 금세공업자들은  뱅크런으로 은행이 망하는 걸 막으려고 영원히 죽지 않는 안정적 채무자 국가에 돈을 빌려준다(국채 발행). 국가가 은행에 돈을 빌릴 만큼 자금이 필요했던 이유는 근대의 팽창 정책으로 전쟁 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국가가 은행에 빌린 돈과 그 이자는 국민의 세금으로 갚아야 한다. 저자는 왕이 죽거나 한 세대가 지나면 기존의 채무가 사라졌던 근대 이전처럼, 빚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근대적 채무의식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6장에서 소개되는 기본자산제에서는 기본소득제사회적 지분제도와 다르게 개인이 채권자에게 빚을 지고 있어도 자산을 약탈당하지 않는다. 한 사람이 자유를 지키고 불공정한 계약을 맺어 노동하지 않으려면 일정 정도의 자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회사법에 따르면 회사의 주인은 직원이나 경영자가 아니라 회사의 주식을 보유한 사람들이다. 기본자산제를 활용하면 개인이 협동조합에 자산을 출자해 회사의 주인으로서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 회사의 직원들이 주인이 되어 회사의 대표를 뽑고 직접 책임진다면 무고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도 책임지지 않는 기업은 사라질 것이다. 사회 구성원들에게 줄 기본자산은 사회적 상속(자식 한 명 당 4억 이상 상속 금지)으로 마련된다. 저자는 플라톤의 법률이나 신라 시대의 정전제에서 기본자산제의 원형을 찾되 오늘날의 실정에 맡도록 제도를 보완해 설득력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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