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과 회사의 본질 - 재산권과 계약권의 이종교배
김종철 지음 / 개마고원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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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사건이나 세월호 사태처럼 유한책임 주식회사가 일으켰지만 제대로 책임지지 않은 비극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모두 금융과 주식회사에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많은 사람이 은행의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주식회사에서 일하고 회사의 제품을 구매한다. 온실가스 배출에 따른 지구 온난화 문제나 양극화 문제도 은행과 회사가 설립된 17~8세기 유럽에서 시작됐다


저자는 오늘날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법과 제도가 언제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추적한다. ‘신탁법은 영국 지주계급이 영지를 왕에게 빌리지 않고 직접 소유하려고 13세기부터 투쟁을 이어오다 17세기 말 왕을 상대로 승리를 거둬 제정되었다. 이 책의 핵심 개념인 재산권과 계약권의 이종교배는 신탁법에서 처음 나타난다. 영국의 귀족은 왕에게 토지를 빌려 영주 역할을 하다 사망하면 왕에게 토지를 되돌려 줘야 했다. 영국 귀족들은 자식에게 자신의 권리를 물려주기 위해 제3자에게 땅을 양도하면서도 땅에 대한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계약을 맺는다. 왕은 귀족이 죽어도 제3자에게 양도된 땅을 찾아올 수 없게 된다.  (고대 로마와 서구 근대의 공통점=배타적 재산권->제국주의->노예제. 차이점=서구 근대가 재산권과 계약권을 이종 교배한 점.)


저자는 17세기 영국 금세공업자들이 시작한 은행업’(2현대 금융의 기원’), 1855~1862년에 도입된 회사법의 유한책임제도’(1주식회사의 본질’), 2008년 금융위기를 초래한 월스트리트의 금융기법 레포(환매조건부채권)’머니마켓펀드’(4‘21세기 국제금융위기의 본질’)에서도 재산권과 계약권의 이종교배라는 아이디어를 발견한다. 저자는 또한 17세기 영국 명예혁명으로 도입된 대의제에서도 정치가들이 국민에게서 주권을 빌린 채무자이면서 주권을 독점하는 재산권자이기도 하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1684차일드사에서 발행한 은행권[아직 남아 있다니 책에 사진을 실었으면 어땠을까. 표지 디자인에 일러스트 형태로 활용했어도 좋았을 것 같다]이나 1837블라이 대 브렌트소송사건의 판결문, 1855년부터 도입된 회사법에 대한 당시 학술지 편집자의 의견, 2008년 금융위기를 일으킨 월스트리트 부외 금융 시스템의 모형 등을 분석하면서 현대 금융업의 본질을 추적한다. 그중에서도 2003내국세 세무청 대 레이어드 그룹 공공유한회사소송의 판결문은 주식회사의 본질을 정확히 정의한다. “[주식은] 계약권들의 다발 그 이상이다. () 이 권리들은 순수한 계약권이 아니다. 그것들은 회사의 자산에 대한 재산권은 아니지만, 회사에 대한 재산권이다.” 주식회사의 대주주는 1855~1862년에 도입된 회사법과 일련의 법원 판결(1837블라이 대 브렌트소송사건 등)로 의결권과 인사권 등 회사의 재산권을 누리면서도 문제가 생길 때는 채권형태의 주식보유자로서 책임을 면제받는다. 저자는 대주주가 책임이 적은 만큼 의결권이나 인사권 등의 권한도 내려놔야 한다고 말한다.


주식회사와 금융업이 초래하는 문제점을 해결하려면 근대적 인격 개념순환적 자아 관념으로 대체해야 한다(7로크의 인격-재산의 존재론’). 철학사에서 니체나 화이트헤드에 의해 극복된 근대적 인격 개념은 은행업이나 회사법에 그대로 남아 있다. 영국 금세공업자들은 고객들이 맡긴 예금보다 더 많은 돈을 더 높은 이자로 빌려줘서 수익을 얻지만 '뱅크런'으로 파산할 위험 또한 얻는다. 영국 금세공업자들은  뱅크런으로 은행이 망하는 걸 막으려고 영원히 죽지 않는 안정적 채무자 국가에 돈을 빌려준다(국채 발행). 국가가 은행에 돈을 빌릴 만큼 자금이 필요했던 이유는 근대의 팽창 정책으로 전쟁 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국가가 은행에 빌린 돈과 그 이자는 국민의 세금으로 갚아야 한다. 저자는 왕이 죽거나 한 세대가 지나면 기존의 채무가 사라졌던 근대 이전처럼, 빚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근대적 채무의식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6장에서 소개되는 기본자산제에서는 기본소득제사회적 지분제도와 다르게 개인이 채권자에게 빚을 지고 있어도 자산을 약탈당하지 않는다. 한 사람이 자유를 지키고 불공정한 계약을 맺어 노동하지 않으려면 일정 정도의 자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회사법에 따르면 회사의 주인은 직원이나 경영자가 아니라 회사의 주식을 보유한 사람들이다. 기본자산제를 활용하면 개인이 협동조합에 자산을 출자해 회사의 주인으로서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 회사의 직원들이 주인이 되어 회사의 대표를 뽑고 직접 책임진다면 무고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도 책임지지 않는 기업은 사라질 것이다. 사회 구성원들에게 줄 기본자산은 사회적 상속(자식 한 명 당 4억 이상 상속 금지)으로 마련된다. 저자는 플라톤의 법률이나 신라 시대의 정전제에서 기본자산제의 원형을 찾되 오늘날의 실정에 맡도록 제도를 보완해 설득력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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