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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역사다 - 한국 영화로 탐험하는 근현대사
강성률 지음 / 살림터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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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이상의 이야기가 영화 속에 생생하게, 오롯이 살아있었다. 흥미, 오락 위주로 영화를 봐왔던 내겐 일침을 가하며, 그 속의 숨은 상징, 의미를 날카롭게 분석하며, 방대한 역사 교과서 같은 책이 바로 <영화는 역사다>가 아닌가 싶다. 또한 제목 자체로 무척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하였다. 제목과 부제가 하나가 되면서, ‘한국 영화로 탐험하는 근현대사’란 부제 역시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였다. 영화 속에 녹아있는 우리의 근현대사란 참신한 소재에 기대감과 설렘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근현대사는 가까운 역사 임에도 많이 왜곡되고 감춰진 일면이 있어 아직도 어렵다는 선입견이 있다. 솔직히 학창시절도 많이 다뤄지지 않아 비중 있게 공부했던 기억이 없다. ‘한 문제 틀리고 말지’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기피했던 근현대사. 그러나 최근 어떤 모순과 갈등에 대한 해갈을 위해 근현대사에 대한 궁금증을 키워가는 중이었다. 이렇게 절묘한 시절인연이 닿아 만난 <영화는 역사다>는 여러 영화들을 통해 근현대사의 흐름을 꿰뚫을 수 있을 정도로 깊이 있고, 날카로웠다. 한편, 얼마 전에 읽었던 <강남몽>의 활자가 오히려 생생하게 이미지로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역사가가 아닌 ‘영화감독’의 시각에 의해 재해석된 역사는 그 어떤 역사 이야기보다 강렬하였다. 스스로 논란의 중심이 되어, 대중과 호흡하고 고뇌하고자 했던 수많은 영화들, 그 속에서 우리는 굴곡진 현대사와 생생하게 마주할 수 있었다. ‘영화와 역사의 만남’에 대해 저자는 ‘현재의 필요에 의해 과거를 새롭게 구성한다(5)’며 그 의미를 찾기도 하였다. ‘과거가 단지 지나간, 죽은 시간이 아니라 현재에 의해 언제든지 불러 올 수 있는, 살아 있는 시간’이라며, 영화를 나름의 감독에 의한 역사 해석 작업이라 말한다. 하지만 독자로 하여금, 역사적 사건과 감독의 주관적 시각에 구속되지 말라고 당부하며, 더 나아가 역사 영화를 보는 나름의 시각을 제시한다. 또한 그러한 특정 사건 역시 시간에 의해 또 다시 재해석의 관점이 달라짐을 주시하면서, 그 차이를 면밀히 비교분석 하고 있다.

 

한국 영화 100년, 한국 현대사 100년의 흐름을 정리하고, 굵직한 시기별 영화 속 역사적 쟁점을 일목요연하게 분리, 정리하였다. 특히, 분단과 한국전쟁을 그린 영화들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기도 하였지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화두를 던지고 있어, 기억에 남는다.

또한, 영화로 역사를 풀지만, 영화와 역사의 경계가 모호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오히려 영화 속 특정 역사적 사건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 특히, ‘제주 4·3사건, 광주민중항쟁, 베트남전’이 우리에게 미친 의미, 영향이 새삼 크게 느껴졌다.

기존에 봤던 영화에서 느꼈던 숱한 감정들을 뒤로하고, 미처 알지 못한 현대사의 비화가 무척이나 흥미진진하였다. 주제별로 영화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에 대한 호기심이 손에 땀을 쥐게 하고, 때론 영화 속 묵직한 이야기가 눈시울을 붉히게 하였다. 무자비하고 참혹했던 현대사의 이면이 여실하게 드러나 온몸이 떨리기도 하였다. 영화가 역사와 만남으로써 더욱 면밀하게 삶을 반추하고, 그 속에서 어떤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는 느낌, 그래서 단순히 오락으로만 치부하며 즐겼던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오롯이 우리 현대사를 만날 수 있었다. 우리 현대사가 고스란히 살아 숨 쉬는 영화는 우리에게 숱한 질문을 던지고, 내밀하게 우리는 비춰주었다. 그 속에서 우리는 함께 고민하고, 슬픔을 달래고, 위안를 얻고, 감동을 받았다. 그렇게 우리는 또 다시 어두운 극장을 찾아 울고 웃는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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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말은 왜 얼룩말일까? 풀빛 그림 아이 38
막스 후빌러 지음, 위르크 오브리스트 그림, 김경연 옮김 / 풀빛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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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얼룩말은 왜 얼룩말일까? 왜? 왜? 솔직히 어찌 대답해야 할 지 모르겠다. 나 역시 ‘얼룩말이니까 얼룩말이지!’란 뻔한 대답을 하게 될 듯하다. 그런데 울 집 꼬마 천사를 생각하니, 아찔해진다. 과연 아이의 호기심에 눈을 감은 채 무뚝뚝하고 퉁명스러운 대답으로 일관하며 아이의 말문을 닫게 될까봐 순간 두려워졌다. 어떤 명제 앞에 우리는 ‘왜’란 질문을 던지기보다는 어떤 식으로든 ‘당연한’ 것으로 수용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이제 막 세상에 눈을 뜬 아이에게 온 세상이 ‘얼마나 신기한 것 투성이지 않을까?’를 생각하면, 좀 더 아이의 눈높이에 발맞춰 스스로 질문하고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잃어버린 나의 유년 시절을 되찾아가면서 말이다.

 

자, 이젠 <얼룩말은 왜 얼룩말일까?> 책 이야기를 해볼까?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주인공, 덩치가 조금 작은 얼룩얼룩 줄무늬가 있는 얼룩말은 자신과 비슷한 동물 ‘말’을 보고 뭔가 비슷하지만 ‘다르다’는 것은 인식하게 된다. 그리곤 알고 싶은 것이 아주 많은 작은 얼룩말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어른 얼룩말을 통해서는 속 시원한 해답을 얻지 못하고, 고민만 더욱 깊어져 악몽까지 꾸며 괴로워한다. 생각을 거듭한 끝에 줄무늬가 사라지는 소원을 이루게 되지만 오히려 슬픔에 잠기게 된다.

일련의 그 과정들이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하며 무척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다채로운 배경 속 익살스런 얼룩말들의 표정이 유쾌함을 더하면서 아이의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나게 한다. 최근 ‘어떡하지?’란 말에 손가락을 이마에 집으며 얼굴에 고민을 드러내는 울 집 꼬마에게 호기심 가득한 작은 얼룩말은 아주 좋은 동무가 될 것 같다.

 

비어있는 빨간 그네(앞속표지)가 마지막엔 활짝 웃으며 신나게 그네를 타는 얼룩말(뒤속표지)을 만날 수 있었다. 솔직히 그 그네의 의미가 쉽게 와 닿지는 않지만, 어떤 ‘성장통’의 상징으로 해석해보련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 방황이 시계추처럼 왔다갔다하는 그네처럼 끊임없이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호기심과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한 일련의 고민과 갈등을 통해 자신의 참모습을 찾고 비로소 환하게 웃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될 것이다.

 

‘나는 왜 나일까?’ 솔직히 어른·아이 할 것 없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일 것이다. 나 역시 지금도 가끔씩 질문을 던지곤 한다. 그리곤 어린 얼룩말처럼 ‘내가 나일 때' 비로소 ’가장 좋다는 것, 행복하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깨닫게 된다. <얼룩말은 왜 얼룩말일까?>는 모든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공감하며 즐거운 시간을 공유할 수 있게 하는 책이다.

또한 무궁무진한 호기심의 보고인 아이에 대한 어른의 태도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한다. 온갖 호기심과 괴상망측한 생각들로 가득한 아이들의 마음을 더 적극적으로 헤아릴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갖게 한다.

똘망똘망 앙증맞은 작은 얼룩말의 ‘나를 찾아가는’ 유쾌한 이야기 속에서 ‘나’를 인정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다름’의 차이 속에서 자기 긍정의 힘이 샘솟는 이야기, 작은 얼룩말의 그 환한 미소만으로도 힘이 되는 책 <얼룩말은 왜 얼룩말일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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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1 - 선사 삼국 발해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1
유홍준 지음 / 눌와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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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의 문화적 정체성은 그 원천이 어디에 있는 가로 가름되지 않는다 (5)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유홍준’, 그가 들려주는 한국미술사라, 물론 책을 보자마자 마땅히 읽어야한다는 당위성과 함께 호기심이 일었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우리의 문화유산을 좀 더 쉽게 이해하고, 다가갈 수 있는 용기를 심어준 장본인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솔직히 말하면, ‘미술사’, ‘한국미술사 강의’ 처음엔 ‘어렵지 않을까?’하는 두려움과 걱정이 컸다. 서점에 갔다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이 책을 사가는 어떤 분을 우연히 보면서, ‘와우, 대단하다’는 생각에 감탄 어린 시선으로 쳐다봤을 정도로 내겐 너무 버거울 거란 선입견이 컸다. 그런데 일단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쉽게 읽힌다. 아니, 재밌게 읽었다. 지적 호기심을 왕성하게 자극하였고 아주 많은 도판들을 확인하면서 책을 통해 눈에 익힌 유물들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물관을 가봐야겠다는 의지가 솟구쳐 몰라 박물관 나들이 계획을 세우게 된다.

미술사라지만, 사(史, history)가 아닌 이야기(story)로 소파에 앉아 가볍게 읽힐 수 있길 바란다던 저자의 바람이 어느 정도는 이루어진 듯하다. 물론 내 경우엔, 소파에 앉을 여유는 없었다. 책상 앞에서 정자세를 가다듬으며, 우리의 역사를 만났다. ‘선사, 삼국, 발해’의 미술사를 엮고 있지만, 일단 내겐 미술사보단 역사의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야기를 듣는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하면서도 기존 역사서보다 더욱 깊이 있고, 풍성한 역사를 만나고 있다는 기분이 절로 들었다.  

기회가 되면 ‘박물관’을 곧잘 찾곤 하지만, 솔직히 눈도장 찍은 느낌, 뒤돌아보면 별로 기억하는 것이 없다. 학창 시절 수학여행 때의 박물관 견학과 크게 나아진 점이 없을 정도로 무언가 심한 결핍감을 느꼈었다. 그런데 몇 개의 이미지만으로 기억되었던 역사, 우리의 문화유산, 유물들이 생생하게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시험을 위해 외우기 바빴던 시대별 대표 유물들의 가치를 새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 이런 의미와 가치가 있었구나!’하는 감탄이 절로 터졌다. 저자의 이야기에 다양한 도판들이 더해져 쉽고 재밌게 다가온다. 제멋대로 흩어져 있던 역사 자체가 오롯이 살아 숨 쉬며 다가오는 느낌이랄까? 아니, 박제된 과거가 아닌 오롯이 살아 숨 쉬는 역사 속으로 시간 여행을 한 듯, 박물관 이 곳 저 곳을 거니는 것 같은 현장감이 아주 일품이었다. 예전에 보았던 유물들, 뉴스기사들을 다시금 떠올리면서 역사의 얼개가 더욱 튼실하게 짜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미처 알지 못했던 역사의 숨인 이야기들이 무척 흥미롭게 다가오는 시간이었다.

선사, 삼국, 발해(통일신라를 특별히 강조하면서 남북조 시대로 엮어 발해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의 시간 순으로 엮으면서도 ‘산성, 석탑, 사리함, 불상 등’의 대표 유물별 테마별로 이야기를 엮었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의 특징, 그 미적 가치를 재차 확인하면서 어느 순간 그 차이가 눈에 읽힐 때의 희열은 마음을 바쁘게 하였다. 특히, 백제 불상들에서의 온화한 미소가 가슴 속으로 깊이 파고들었다.

끊임없이 ‘왜?’에 대한 명쾌한 답변을 들으며 그 가치와 의미를 눈으로 확인하는 시간들이었다. 또한 ‘오리모양도기’와 같은 생소한 유물들의 의의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올 정도였다. 기존 역사 교과서에서 다루었던 진부함을 벗어던지고, 다채로운 역사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역사를 만날 때마다 느껴야 하는 통탄과 통한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일제 강점기에 얼마나 많은 문화유산들이 송두리째 파괴되었는지, 그렇게 자행된 많은 문화유산의 파괴, 유린의 실태를 확인 할 수 있었다. 또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역사 왜곡의 문제들(중국의 동북공정, 러시아와 중국이 ‘발해’을 자신들의 하나의 지방사로 편입시키려는 불순한 의도)과 ‘외규장각 도서 환수’ 문제 등등에 대해 고찰하고 나름의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기존 역사 교과서를 통해 알고 있던 유물들의 이름이 쉬운 우리말로 풀어 사용하면서 혼란을 가져오기도 하였지만, 어려운 한자어보다는 훨씬 이해하기 쉬워, 하루 속히 통일된 용어 사용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학자들 간의 다양한 견해들 자체만으로도 흥미롭고, 좀 더 역사적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용어의 사용이 각양각색이라면, 대중들에게 혼란을 야기하고, 역사는 여전히 지루하고 난해하다는 편견의 벽을 더욱 공고히 하지 않을까?

우리의 미술사 통론의 부재, 그 문제에 정면 돌파한 용기, 그 과감한 결단에 힘찬 박수를 보내본다.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우리의 역사를 아우르며 우리 문화유산을 깊이 이해하고, 쉽고 재밌게 읽은 수 있는 입문서임엔 분명하다. 더불어 우리 역사와 문화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가슴 속 저 깊은 곳에서 ‘자긍심, 자부심’이란 것이 마구 치솟아 올랐다. 알면 알수록 그것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더욱 소중해지는 느낌이다. 왠지 모를 뿌듯함이 한 가득 자리하면서 내 뿌리의 굳건함, 바로 민족적 정체성을 순간순간 확인하고, 역사 속 우리 고유의 미적 가치가 피부로 느껴졌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 우리의 문화유산을 소중히 아끼고 보존해야 한다는 단순명료한 명제와 마주한다. ‘광화문 현판’으로 불거진 문화유산의 복원 문제를 다시금 뒤돌아보면서 ‘빨리빨리’, 경제논리에 좌우되는 현실에서 벗어나 좀 더 진중한 자세로 역사에 다가갈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 ‘뿌리 깊은 나무 가뭄 안 탄다’고 하지 않던가! 수많은 위기 속에서도 이 두 발로 바로 설 수 있는 문화·역사적 자긍심과 가치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저자의 계획대로 고려, 조선을 다룬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2.3>이 내년, 내후년에 부디 만날 수 있길 또한 기도해본다. ‘고려, 조선’의 역사, 문화유산의 의의와 가치를 여지없이 생생하게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시간들을 학수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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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대중문화 분야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10월 예술/대중문화의 읽고 싶은 신간 목록,   

가장 읽고 싶은 책은 <눈속임 그림> 

 

 

 

 

 

 

 

<서울, 건축의 도시를 걷다1, 2> 

역사와 건축 이야기를 한 번에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또다른 시선에서 역사바라보기, 건축 바라보기의 시간이 될 것 같아, 기대감에 들뜨네요~  

 

 

 

 

 

 

 

 

그 외에도 <비밀많은 디자인씨> 제목이 눈길을 끌기도 하고,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상징, 알면 보인다>, 기회가 된다면, 꼭 읽고 싶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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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다보면 문득 창비시선 291
정희성 지음 / 창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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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다! 가을 하면 왠지 모르게 쓸쓸함과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휘몰아 닥친다. 몇 해 전부터 드높은 파아란 가을 하늘을 올려다볼 때면, 그 청명함에 오히려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시집들로 즐비한 곳으로 발걸음이 절로 향한다.


돌아다보면 문득!? 제목이 무척 감미롭다고 할까? 어떤 그리움을 가득 안고 애처롭게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선과 마주한 느낌이었다. 돌아다보면 문득 무엇을 그리게 될까? 문득문득 떠오르는 그 무엇, 뭔가 툭툭 떨어지는 느낌은 수없이 꽂혀 있는 다른 시집들 중에서 유난히 빛나고 있었다. 가을의 헛헛함을 풍성함으로 바꿀 수 있길 바라는 간절함으로 보름 가까이 곁에 두고, 펼쳐보고 펼쳐보았다.


 


<<돌아다보면 문득> 이 시집 말이다. 착착 감긴다. 한 구절 한 구절 시·공간을 넘나들며 생경하게 다가오면서, 끊임없이 혀끝을 맴돈다. 뭐라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톡톡’하고 가슴을 두드리고, 긴 여운을 남기며 깊게 울린다.


 


‘그 별은 아무에게나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 별은 어둠속에서 조용히/ 자기를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의 눈에나 모습을 드러낸다’는 서시희망」은 마구마구 가슴을 뛰게 하였다. ‘희망’이란 것을 난생 처음 느낀 듯! 어둠 속에서나 그 빛을 발하는 별들처럼, 희망이란 것이 본디 절망과 고통 속에서 더욱 찬란하게 빛을 발하는 것이니, 그 어둠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찬찬히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명쾌한 진리가 쿵쾅쿵쾅 심장을 뛰게 하였다. 그리곤 곧장 희망을 에두른다. 어둠속에서나 드러나는 별, 그 빛 안에 어둠이 있다고, 그 어둠 속에서 홀로 쓸쓸했다고 말이다.(어둠속에서」)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지도 모른다. 자신만의 문제인 냥, 홀로 자신이란 벽에 갇혀 세상을 등지기 일쑤이지만, 그럼에도 그 쓸쓸함을 찾아 기차 타고 정동진에 가보란다. 그 곳의 소나무 한 그루와 작은 벤치엔 먼저 온 외로움이 기다리고 있단다.(「바닷가 벤치」)


서시 「희망」,「어둠속에서」와「바닷가 벤치」이렇게 연달아 있는 세 편의 시는 하나의 이미지를 그리며, 마음 속 가을의 묵은 감정들을 씻어주었다. 나만의 쓸쓸함, 외로움이 마지막 “너보다 먼저 온 외로움이 너를 기다리고 있다”(「바닷가 벤치」)는 구절에서 봄눈 녹듯 사르르 녹아버렸다. 가슴 속 응어리가 한 순간에 풀린 듯하다.


 


제1부 마지막 시 ‘절망의 반대가 희망은 아니다/ 어두운 밤하늘에 별이 빛나듯/ 희망은 절망 속에 싹트는 거지/ 만약에 우리가 희망함이 적다면/ 그 누가 이 세상을 비추어줄까’(「희망공부」)을 통해 희망하기를 멈추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을 하게 된다. 좌절, 열패감 속에서도 희망의 작은 싹을 틔우고 또 틔우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바로 우리다. 그렇게 ‘희망공부’에 끝없이 매진하라 소리 높인다.


 


‘나의 고향은 공간 속에 있지 않고/ 머나먼 시간 속에 있다/ 어린시절 부르던/ 흘러간 노래 한 소절과/ 그것이 떠올리는 시간/ 아득히 먼 별에 숨어 있는 한 송이 꽃처럼/ 믿을 수 없는 기억 속에’, 「나의 고향은」이란 시가 또한 무척 인상적이었다. 가장 진귀한 보석처럼 가슴 속에 박혔다. 고향과 유년시절의 추억, 무의식 속의 처절한 그리움이 지금 순간순간 속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아득한 상실의 아픔이 「나의 고향은」을 통해 치유되고 위로받았다.


 


2008년의 시간을 거슬러 그 당시를 시를 통해 뒤돌아본다. 현실의 문제를 결코 외면할 수 없었던 시인, 그의 통찰과 연민과 애증은 여전히 뿌리 깊숙이 자리한 우리의 사회 문제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희망을 이야기하되, 현실을 직시하고, 그 속 현실 인식을 놓치지 않고 있다.


 


이젠 달력도 11월이다. 11월~ 벌써 한 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그 동안 뭘 했던가?’ 자조 섞인 푸념을 늘어놓으며, 아쉬움에 고개를 떨어뜨린다. 자꾸만 뒤돌아본다. 그럼에도, 자~ 이젠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란 시를 통해 힘을 내보면 어떨까? 큰 소리내어 읊어보련다.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빛 고운 사랑의 추억이 남아 있네 / 그대와 함께한 빛났던 순간 / 지금은 어디에 머물렀을까 / 어느덧 혼자 있을 준비를 하는 / 시간은 저만치 우두커니 서 있네 / 그대와 함께한 빛났던 순간 / 가슴에 아련히 되살아나는 /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 빛 고운 사랑의 추억이 나누끼네’


 


쓸쓸함과 외로움에 파묻히기 쉬운 이 가을, 나는 정희성의 시집 <<돌아다보면 문득>>을 통해 한결 뽀송뽀송 가벼운 마음과 포근함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가슴 속 희망의 불꽃이 일렁이며, 힘을 내었다.


몇 번이고 들락날락 갈필을 못 잡고 버둥거리는 내게 쉼 없이 맑게 갠 얼굴로 묵묵히 위로해 주고 보듬어 주었다. (‘시는 맑게 갠 얼굴로 제자리에 있다’ 91, 해설 박수연). 마치 느닷없이 가을산을 찾아 정처 없이 헤매다가 어떤 위안을 찾듯이, 정희성의 시는 그렇게 산처럼 어디 안 가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곤 갈팡질팡한 마음을 감싸주었다.


‘가까이 갈 수 없어 / 먼발치에 서서 보고 돌아왔다/ 내가 속으로 그리는 그 사람마냥 / 산이 어디 안 가고 / 그냥 거기 있어 마음 놓인다’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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