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경 - 개정판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도 등재된 고려의 대장경은 바로 2011년 올해가 조성 천년 기념해라고 한다. 팔만대장경이 천 년의 시간을 지난 것이다. 과연 우리는 천년의 시간을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하지만 팔만대장경이 실존하지 않고 있는가! 그 역사적 사실만으로도 뭔가 묵직함이 느껴진다. 최근 광화문 현판 균열을 생각하면 그 방대한 시간을 초월한 거룩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렇게 팔만대장경을 손에 쥐듯 조심스럽게 책을 펼치게 된다.

 

아무리 <대장경>이란 제목 속 팔만대장경을 떠올렸지만, 현대사의 굵직한 이야기만을 생각했던 나의 무지로 인해 천년의 시간을 거스름에 깜짝 놀랐다. 창칼을 든 스님들과 대웅전 등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사건의 전개 그 긴박감과 결연함에 다시금 놀랐다. 순간 대장경을 이야기하는데 대장경이 불타 없어진다는 설정이 의아했다. 다시금 역사 교과서의 펼치듯 이야기에 기대어 기억을 되살려보니 팔만대장경 이전에도 대장경(일명 ‘초조대장경’과 속장경)이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정리하면, 거란의 침입을 받던 고려 현종 때 조판되었던 초조대장경은 대구 팔공산 부인사에 옮겨져 보관되던 중 몽골의 침입 때 불타 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고려 무신 집권기의 ‘최우’ 집권 때, 승통 ‘수기’-<대장경>은 ‘수기대사’로 불린다-가 총괄하면서 ‘16년 만’에 완성했다는 사실도 상기해본다. 이야기는 약 10년여의 시간을 풀고 있지만 그 속엔 국난의 위기에서 수많은 이들의 염원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다.

최우과 수기의 갈등 속에서 ‘팔만대장경’ 조판을 둘러싼 정치적 의도를 생각하면 수많은 민초들의 고통이 더욱 배가 된다. 또한 이는 IMF사태 때의 금모으기로 확장되면서 왠지 ‘허탈’함을 느끼지만, <대장경>에서 다만 민중들의 숭고한 정신과 시공을 초월한 역사적 유물 ‘팔만대장경’에만 시선을 모으기로 한다.

 

일련의 대장경 조판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함으로써 마치 그 현장 속으로 빨려 들어간 느낌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 마음이 되어 반복되는 일과 속에서 마음과 정신을 모으는 과정은 단지 상상에 머물지 않는다. 다시금 광화문 현판 균열 사건을 떠올리며 ‘팔만대장경’을 만들어가는 시간들과 수많은 사람들의 열정에 절로 숙연해진다. 천 년의 시간을 거슬러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뜨거움에 기인한 것이라 생각하면 전율에 몸서리처질 정도였다. 그리고 그 전율은 우리가 안고 있는 많은 폐단을 뒤돌아보게 한다.

 

작가의 상상력에 기대어 ‘팔만대장경’이 조판에 나 역시 참여하는 마음이었다. 수시로 이것은 상상에 불과하다며 자기 암시를 하였지만 활자 그 너머의 숭고한 의지와 땀만큼은 결코 부정할 수 없었다. 몸이 바스라지고 숨이 넘어가는 순간들, 그 ‘불덩어리의 자학적 정열’의 순간에 가슴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올라오는 뜨거운 불기둥을 느끼며 눈시울이 절로 붉어졌다.

벼랑 끝의 순간에도 나라를 향한 민초들의 뜨거운 예술혼의 결정체가 바로 ‘팔만대장경’이라고 생각하니, 단순한 역사 유물에 머물지 않는다. 솔직히 고백하면 역사적 유물의 가치를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단지 역사적 유물, 문화재라는 사실만을 인식할 뿐이었다. 하지만 <대장경>을 통해 대장경이 비로소 내 안에 자리한 느낌이다. 그리고 수많은 문화재가 담고 있는 가치와 의의에 대해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장을 열어주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국에서 한 걸음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11
안나 지음, 박윤정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미국을 천국이라 믿었던 소녀의 가슴 시린 성장통’이란 문구가 강렬하게 사로잡았다. 왠지 모르게 정말 가슴 시린 성장통이면서 우리의 또 다른 현실일 것 같아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내고 있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속칭 ‘청소년소설, 성장소설’이 갖는 많은 매력을 또다시 만끽하려는 의도 그래도 마음껏 이야기가 갖고 있는 매력에 흠뻑 취했다. 또한 어린 소녀의 시선으로 바라본 어른들의 세계, 그 자체가 갖는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행을 결정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아픔과 좌절, 그리고 그 꿈의 결실들이 이젠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많은 이주노동자들의 삶에 투영되면서 우리의 어제와 오늘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최근 ‘1박2일’을 통해 이주노동자의 또다른 일면에 가슴이 뭉클하였다. 머나먼 타국에서 홀로 남모를 아픔을 삼키며 꿋꿋하게 자신의 꿈을 일구어가는 사람들, 그리고 남겨진 가족들의 그리움이 공감하면서 그들의 뜻밖의 재회에 절로 눈물을 훔치게 되었다. 이번 <천국에서 한 걸음>은 할머니를 남겨두고 고모가 있는 미국으로 이민을 결행한다. 그들이 꿈꾸었던 미국에서의 삶, 그 속의 처절하고 쓰디쓴 고통의 다발 속에서 한 소녀가 조금씩 천국으로 한 걸음씩 내딛는다. 문화 환경적 차이와 오해 그리고 부모의 갈등이 표면화되고 커다란 상처를 남기지만 어느새 우리의 주인공 영주는 자신의 상처와 마주한다. 자신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던 아버지의 존재, 그리고 항상 쉼터가 되었던 어머니의 존재가 갖는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다. ‘꿈꾸는 집안의 아이’라는 진실을 일깨우면서 아버지와의 소중했던 추억(무서운 파도에 맞설 용기를 주었던 아빠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면서 영주가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다시금 용기 있게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란 사실에 우리는 모두 박수를 보내게 될 것이다.

 

‘안나’라는 작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단지 ‘미국을 천국이라 믿었던 소녀’를 바로 한국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안나라는 작가가 바로 한국에서 태어나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갔던 것이다. 그런 작가의 이력이 영주라는 소녀와 하나가 되면서 궁금증을 키우기도 하였다. 작가의 설명이 덧붙여지면서 훨씬 영주라는 소녀의 용기와 희망에 공감하고 힘찬 박수를 보내게 된다. 그리고 그 박수는 ‘자기긍정’과 ‘치유’라는 또 다른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내 안에 작은 희망의 씨앗을 심어주었다. 항상 비빌 언덕이 되어주었던 부모님의 존재에 새삼 감사드리게 된다. 영주라는 아이를 통해 엿본 이주노동의 삶과 그들의 꿈에 대해 우리는 소홀히 할 수가 없다. 단지 이방인이란 이유로 모난 시선을 보냈던 스스로를 반성해본다. 그리고 아프고 처절한 현실 속에서 멋진 자신들만의 꿈을 이루기 위해 용기 있게 한 걸음씩 내딛을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다짐해본다. 바로 그곳이 ‘천국’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년을 위로해줘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조금씩 스며들던 유쾌함과 벅참을. <소년을 위로해줘>는 익숙하면서 뭔가 참신함으로 무장하고 있다고 할까? 봄 햇살 끝, 새초롬히 새싹을 막 틔운 작은 연초록빛 물결이 펼쳐진다. 추운 겨울 뒤에 찾아든 가슴 벅찬 반가움과 설렘 그 자체!? 쉽게 정리가 되지 않지만 숱한 감정들 중에서 행복하고 선한 기운들이 한 가득 손끝으로 스며들었다.

 

이혼한 엄마와 단둘이 살아가는 연우라는 인물이 중심이 되어, 엄마와 엄마의 애인 그리고 새학기 전학을 하면서 만나게 된 인물들(태수, 채영, 마리)과의 사랑, 우정을 그리고 있다. ‘연우’라는 인물의 풋풋함과 반듯함, 의젓함이 불안정하고 방황하는 다채로운 인물들 사이에 무게 중심을 꽉 잡고 있다. 그리곤 십대의 상큼한 사랑과 다소 거친 듯이 끈끈한 우정이라는 두 개의 평행선이 탄탄하게 뿌리내리고 있다. 끊임없는 혼란, 방황, 갈등 속에서도 ‘뻔’할 수 있는 소재는 이미 그 십대의 시기,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쳐버린 우리에게 진한 그리움을 물들인다. 학창시절의 추억할 수 있는 타임머신의 연료를 가득 싣고 이 한 권의 벗과 함께 즐거운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책을 읽는 내내 지금과는 사뭇 다른 시선에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어느새 나도 어쩔 수 없는 틀 속에 갇힌 신세가 되었단 말인가! 세대를 달리하는 지금의 십대들의 생각을 엿보면서 ‘나’란 존재를 어디에 끼어 맞춰야 할지 이리저리 기웃거렸다. 미숙하고 여전히 혼란 속에 허우적거리면서도 어른의 탈을 쓴 채, ‘연우’,‘태수’,‘채영’,‘마리’의 입장이 되어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기보다는 그들의 생각을 재단하게 판단하기 바빴다. 그들의 목소리에 최대한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이미 어떤 틀, 관념이란 것은 빗장을 잠근 채 좀처럼 마음의 문을 열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빌린 듯한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리고 그 사실을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채영의 아빠’가 된 것일까? 자신의 불안함과 두려움을 들키지 않기 위해 권위라는 갑옷으로 무장하고 뻣뻣하게 서 있는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지난 십대의 모습을 추억하며 함께 감정을 나누기보단 이야기 속 신민아(연우의 엄마), 태수엄마, 재욱 형, 채영의 아빠, 엄마 등의 부모세대의 모습에 나 자신을 투영하면서 과연 어떤 부모가 되어야할지, 되고 싶은지 깊은 시름이 찾아들었다. 이것은 분명 나를 찾아가는 또 다른 길임엔 분명하지만 왠지 서글펐다. 그들과 함께 이야기꽃을 피우고 가볍고 유쾌하게 그들을 이해할 순 없는가?

 

‘음악’이 매개가 되어 미지의 신세계가 열린다. 여름, 가을, 겨울, 봄으로 이어지는 계절의 순환 위에 낯선 세계로 향한 모험이 시작되었다. 그 곳엔 첫사랑, 상처에 대한 두려움, 오해, 이별, 상실, 죽음, 갈등 등의 갖가지 감정들을 겪게 된다. 다양한 사건들 중에서 하프마라톤을 달리는 연우의 이야기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리고 열일곱 살 연우는 하프마라톤을 달린다. 그리고 그 힘들고 고된 순간순간 스치는 숱한 감정들을 섬세하게 생중계한다. 다리의 고통, 어깨의 통증 그리고 순간의 희열과 자부심은 앞으로 살아간 삶에 대한 의지의 또 다른 표현처럼 느껴졌다. 아랫배에 힘을 주고 숨을 조절하면서 ‘더 달리 수 있다’는 자신의 잠재력을 확인하고 ‘나’ 라는 전 존재를 오롯이 느끼며 혼자 짊어진 채 달려야 한다는 명쾌한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 강해지는 기분을 뼈 속 깊이 각인시킨다.

또한 그 소용돌이 속에서 벗어나 한 발짝 뒤로 물러난 연우는 왁자지껄 고등학생들을 보면서 ‘순간의 잘못된 선택이 무엇을 잃게 될 수 있는지 최후의 상황까지 상상’하라고 충고한다. 이는 한 걸음 벗어난 자의 여유로운 호기일지 모르지만 자신의 경험에 바탕을 둔 저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마음의 목소리인 것이다. ‘딱 한 번의 충동과 잘못된 판단, 그리고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치명적 결과에 대해 행동하기 전에 생각하라’고, 스스로 단근질하라는 일침도 잊지 않는다.

 

책을 읽으면서 <상실의 시대>(무라카미 하루키)가 떠오른다. 많이 다르면서도 눈에 익은 ‘상실과 사랑’의 또 다른 버전이랄까? 다만 훨씬 풋풋하고 유쾌한 분위기가 어우러져 밝고 새벽 공기처럼 시원하고 맑다. 소년을 위로해줘! 과연 내가 소년을 위로해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오히려 내 안의 소년은 충분히 위로받았을 것이다.

여전히 멀찍이 물러나 관망하는 자세를 견지할 수 없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내면 깊숙이 자리한 위선, 편견의 틀을 인지하고 그 낡은 갑옷을 던져버리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눈부시도록 아름답게 내려쬐는 봄 햇살의 설렘을 가득 안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아닌 용기와 열정이란 작은 씨앗을 심게 된다. 어느새 <소년을 위로해줘>는 밝게 비쳐드는 햇살 아래 살포시 싹을 틔우려는 작은 꿈틀거림과 움틀거림으로 마음을 간질거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길 위의 시대
장윈 지음, 허유영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박범신의 <비즈니스>와 함께 <길 위의 시대>를 만났다. <비즈니스>와 같은 맥락일 거란 섣부른 생각이 때론 책의 흐름을 방해하고 혼란을 주기도 하였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은 순간의 평온함이 세포 깊숙이 젖어들고 순수를 향한 갈망이 온몸을 휘감는다.

 

장윈, 참 낯선 작가다. 그리고 중국소설을 낯설고 낯설 뿐이다. 그런데 최근 몇 편의 중국 소설을 만나면서, 중국의 현대화의 과정에서 우리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 게 되고, 그 보편성 앞에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물질과 욕망, 자본의 거대한 물결에 휩쓸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의 소중함을 되새기다보니, 장윈이 풀어낸 낯선 이야기는 잔잔한 파문이 되어 가슴 속에 일렁거린다.

 

책 속에서 발견하는 잃어버린 것의 추억, 그 순수성이 조금은 바보스러울 정도로 소박한 뭍사람들을 통해 엿볼 수 있었다. 예러우, 망허, 그리고 천샹이라는 세 인물의 삶 속에서 그려지는 소박한 사람들, 그 스쳐 지났던 많은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의 6,70년대의 전형이라고 할까? 순수, 낭만이 살아 숨 쉬는 옛 추억을 더듬어 시간 여행을 떠난 기분이었다. 예전에 ‘무전여행’이란 것이 가능할 정도였고 ‘서리’라는 것이 어느 정도는 용납이 될 정도로 순수함과 너나 할 것 없는 인정이 살아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떠오른다. 오늘날에는 가당키나 한 일인가? 다시금 우리가 얼마나 사랑, 이상, 도의, 낭만을 포기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길 위의 시대>를 통해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장윈은 중국의 1980년대를 ‘시의 시대’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시의 시대를 대표하는 세 인물(시를 쓰는 시인과 시, 그리고 시인을 사랑한 여인들)을 통해 또 다른 순수에 대한 열망을 그리고 있다. 오늘과 대조되어 두드러지는 순수, 사랑, 낭만이 살아 있는 삶과 그것의 붕괴 그리고 그 처절한 인내의 세월이 함축되어 놀라움을 선사한다.

솔직히 두 여인과 ‘망허’라는 인물의 연결고리가 사뭇 혼란스러웠다. 이야기의 시간과 공간을 헤아리다보면, 뭔가 아귀가 들어맞지 않았다. 도대체 ‘망허’라는 인물은 누구인지, ‘천샹’의 집념과 열정 그리고 예러우와 망허의 사랑이 교차되어 전개되었다. 그 속에 숨겨져 있던 하나의 퍼즐 조각은 결코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었고 충격이었다. 무엇인가 머릿속에서 굉음을 쏟아내며 폭발하는 느낌 그 자체였다. 아무래도 ‘천샹’의 내적 붕괴와 그 어긋남에 순간 몰입되면서 이야기의 폭발력을 실감하였다. 장윈은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한 힘을 가슴 속 깊이 간직한 작가인 듯하다. 어느 한 순간의 폭발력이란, 그 에너지의 원천이 무엇일지 궁금할 정도였다.

 

낭만, 순수성을 잃고 살아가는 현세대에게 자신의 깊은 내면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순수’와 ‘낭만’을 회복하자고 속삭이고 있다. 어느 한 곳에 깊이 뿌리 내리지 못하고 허겁지겁 내달리기 바쁜 우리에게 그의 속삭임은 잔잔한 울림이 되어 마음 속 깊이 따스한 온기의 불씨를 심어 주었다. 격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가슴 깊이 애잔함이 스며들지만 이내 평온함을 되찾고 한결 여유로워진다.

 

잔인한 아름다움 속에 깃든 순수와 열정을 찾아 인생의 길 위에서 방랑자가 되어보면 어떨까?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불안, 두려움마저도 제 것으로 만들어 사랑과 순수를 향해 달릴 수 있는 용기를 마음속에 꾹꾹 담아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즈니스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드디어 청년작가 ‘박범신’을 만났다. 그가 7,80년대 우리 문학계 아닌 문화계에 끼친 영향, 그 에너지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그는 철저하게 -내게 있어- 낯설고 생소한 작가였을 뿐이다. 그리고 몇 해 전 그의 이름 석 자를 알게 된 후 그의 작품들에 눈도장을 찍어두었다. 하지만 그의 신간 소식(고신자, 은교 등)에도 불구하고 여러 번 집었다가 이내 살포시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아직은 시절인연이 아닌가 보다면 다음을 기약해왔다. 그리고 드디어 <비즈니스>라는 책을 만났다.

 

표지, 무척 강렬했다. 붉은 소파 위에 누워있는 야릇한 뒤태는 분명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뭔가 설명하기 어려운 남모를 아픔을 담고 있는 듯했다. 뭐랄까, 그 강력함 속, 지친 어깨에선 쓸쓸함이 묻어나왔다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보면 볼수록 가녀린 모습에서 아련한 슬픔이 차올라 내게로 스며든다. 주체할 수 없는 어떤 욕망의 끝, 스스로 허망함에 무너졌던 기억이 투영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소설을 읽고 난 뒤, 표지의 강렬함은 또 다른 의미로 해석되며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을 담고 있는 듯하다.

 

‘천민자본주의’의 허상을 낱낱이 고발하는 굵직한 이야기들이 최근 또 다른 이야깃거리가 된 것 같다. <강남몽>(황석영)을 시작으로 <허수아비춤>(조정래) 그리고 마지막이 바로 <비즈니스>였다. ‘박범신’이 풀어놓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직접 확인해야만 했다. 우리들은 최근 자본주의의 비애를 온몸으로 느끼며 처절한 고통 속에 살고 있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또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의 열풍으로 설명된다고 생각하였다.

‘돈’의 노예가 된 이 세상에 도덕과 정의, 윤리는 고개를 떨어뜨린 채 우리는 철저하게 수렁 속으로 깊이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긴급한 수혈이 필요한 어느 환자처럼 어떤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는 절박함, 모두의 아우성이 메아리치다보니, 이렇게 하나의 흐름을 잇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어떤 실체를 찾아 <강남몽>을 만나고 <허우아비춤>을 만나고 <비즈니스>를 만나게 된 것이리라. ‘세상의 주인이 자본이고 삶의 유일한 전략은 비즈니스’(53)라 외치는 지금, 우리는 오늘의 현대성을 비판하고 자본주의의 거대한 모래성 위의 불안과 초조함을 대변하고 그 상관관계를 파헤치는 소설들을 만나면서 망설임 없이 책을 펼쳤다.

 

‘비즈니스우먼’, ‘비즈니스맨’을 자청하는 소설 속 인물들은 바닥의 끝을 모르고 추락하는 중이었다. 아니 그 끝이 서서히 자신들을 옥죄어 오고 있음을 예감하면서도 결코 멈출 수 없었다. 아들의 과외비를 위해 몸을 파는 어머니인 화자와 그 주변 인물들- 무력한 남편, ‘돈’만의 왕국을 추종하는 동기, 그리고 신출귀몰의 도둑 ‘타잔’ 그리고 타잔의 자폐증을 앓는 아들-과의 엉켜버린 인연, 그 속의 사건들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빠르게 전개된다.

일단 그들처럼 거침없이 내달렸다. 그 놀라운 흡입력이란 단 한 순간인 듯하다. 강간범, 살인사건 등의 강력범죄가 연이어 일어나는 ‘ㅁ’시, 그녀의 집 창문 밖으로 납치범의 소행으로 여겨지는 한 사건을 따라 길 없는 길을 정신없이 내달린다. 추리소설의 긴장감을 온 세포에 각인시키고, 과연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추측할 사이도 없이 진실의 문을 활짝 열렸다. 온 몸의 신경이 이 책 한 권에 쏠렸다.

 

사랑의 함정에 빠진 그네들, ‘자기 파멸의 욕망’에 허우적거리는 그네들의 삶은 팍팍하고 고단한 우리네의 삶에 현미경을 드리운 듯 섬세하고 날카로웠다. 그네들의 삶에서 우리들, 오늘을 투영하다보니, 정신없이 깊은 수렁에 빠진 그네들과는 사뭇 다른 하지만 본질은 같은 깊은 늪에 빠져들었다. 그만큼 이야기는 거부할 수 없는 맹렬한 기세로 달려들었다. 생생하게 다가오는 그들의 삶은 그 어떤 이론, 원리에 대한 고리타분한 이야기보다 많은 것을 담아내고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처절할 정도로 우리들의 욕망의 그 끝의 허상을 직시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책 속 ‘프란시스 베이컨’의 ‘돈은 최선의 종이요, 최악의 주인이다.’(70)라는 말이 끊임없이 혀끝에서 맴돈다. 우리는 과연 어느 정도로 ‘돈’이라는 물리적 실체에 저당 잡힌 삶을 살고 있는지 스스로 되묻는다.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아니 백 번 천 번 인정한다. 그러나 ‘최선의 종’으로써 활용가치는 무한히 재생될 수 있지만, 과연 그 쓰임이 목적이 되지 않았는지, 이미 최악의 주인이 되어 ‘돈’의 노예가 되지는 않았는가? 책을 읽으면서 매번 최악의 주인이 되어 삶을 변질시키고, 끝을 모르고 추락하는 그네들을 통해 나 자신을 되돌아본다.

 

‘자본의 세계에선 당연히 사랑도 자본재였다’(59)는 고백과 ‘사랑, 의리, 또는 모든 윤리성도 이미 돈에 잡아먹힌 세상’(121)이라는 일침 또한 머릿속에 깊이 파고들었다. 거침없는 일침에,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는 모습들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여러 흉악 범죄들이 매일의 뉴스가 된 오늘,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로 전형화된 갈등 등의 온갖 자본과 인간의 부조리와 모순들의 축소판인 소설 <비즈니스>는 가볍게 읽히면서도 묵직함으로 다가온다.

격렬했던 욕망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떤 삶을 견지해야 하는지 자기 성찰의 시간이 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다. 또한 어김없이 희망의 작은 씨앗들이 싹을 틔우고 있다. 바로 자폐증을 앓는 여름이의 변화된 모습이 첫 번째 희망이었다. 난도질당해 결코 치유될 수 없을 것 같은 상처들은 조금씩 아물어가고 있었다. 작은 희망일지라도 어느새 삶의 희열이 스며든 그녀의 변화된 모습 또한 두 번째로 엿본 희망이었다. 개발과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 구조와 자본이라는 힘에 좌절과 환멸에 의기소침할 필요가 없다! 우리 안에 깃든 내면의 순수성과 삶의 열정, 그 본성은 좀 더 건강하고 당당하게 하루하루에 충실하고 싶다는 더 뜨거운 욕망들이 내 안에 꿈틀거린다.

 

박범신, 그는 현재 지금의 모습을 낱낱이 그려내는 현역작가, 현실 비판적 이야기를 풀어내는 ‘현역작가’를 꿈꾼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청년작가’라는 수식어가 그렇게 어울릴 수가 없다. 흰머리가 내려앉은 그의 모습에서 푸른 기상을 느꼈고 가슴엔 불타오르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하지만 그가 꿈꾸는 ‘현역작가’란 수식이 더욱 어울리는 내일, 그가 풀어낼 숱한 이야기에 대한 기대로 들뜨면서도 미처 만나보지 못했던 다른 이야기들을 만나러 잰걸음을 놓아 책 속으로 달려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